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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묵상

내게 주신 은사, 사랑으로 행하여 덕(공동체)을 세우다(고전 13:1-13)

작성자굿뉴스|작성시간26.06.07|조회수168 목록 댓글 1

내게 주신 은사, 사랑으로 행하여 덕(공동체)을 세우다(고전 13:1-13)

1. 오늘의 말씀 : 고전 13:1-13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오는 9월 초 대구여신도회 주관으로 열리는 네팔 목회자 복음생명세미나가 구체적으로 준비되고 있습니다. 어제는 네팔 항공권을 구매하였습니다. 모든 과정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오늘은 천안 세움교회 8주년 기념 예배를 드립니다. 파주와 거창에서도 지체들이 참석합니다. 세움교회를 비롯한 여러 지체가 합력하여 열방의 교회를 세우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땅은 애굽 땅처럼 물이 풍부한 곳이 아니라,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농사를 할 수 있습니다(11:11).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때를 따라 비를 주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하여 언약 안에 거할 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의 방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언약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이 돌보십니다. 날마다 파레시아를 준행하는 자, 그리하여 은혜의 보좌로 들어가는 자마다 하나님이 때를 따라 도우십니다(4:16). 오늘도 이 은혜를 사모하며 말씀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염된 영혼을 보혈로 정케 하소서. 진리의 영으로 말씀을 조명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고린도전서 12-14장은 고린도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은사의 문제를 다룬다. 성령은 예수를 주로 고백하게 하며,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준다. 성령의 은사는 주께서 배정하신 섬김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는 사역을 수행한다. 성령은 하나이며 은사는 여러 가지이다. 하나인 성령과 여러 가지인 은사는 하나인 몸과 여러 가지인 지체의 비유로 도약한다.

 

몸과 지체의 비유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를 뜻한다. 몸이 여러 지체로 구성되었듯이, 교회는 여러 성도로 구성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지체는 서로 같이 돌보며 세워진다. 교회의 지체는 각자 받은 은사를 통해 다른 지체의 부족함을 채운다. 이로써 그리스의 몸인 교회가 세워진다. 12장은 여러 가지 은사를 제시하며, 마지막 구절(31절)은 13장과 14장의 서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이제 내가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새번역).

 

12:31의 전반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라는 14:1로 이어진다. 31절의 후반부, “내가 가장 좋은 길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13장으로 이어진다. 14:1은 13장의 결론이며 12:31의 전반부에서 말한 ‘더 큰 은사’를 제시한다. 더 큰 은사는 ‘사랑’이 아니라, ‘예언’이다. 그러면 예언의 은사가 무슨 은사와 비교하여 더 큰 은사인가? 그것은 방언이다. 예언은 방언보다 더 큰 은사이다. 14장 전체는 예언의 은사가 방언의 은사보다 더 큰 은사임을 논증한다. 여기서 더 큰 은사의 기준은 교회에 덕을 세우는 것에 있다. 일만 마디 방언보다 다섯 마디 예언이 더 유익하다(14:19). 이는 교회(공동체)를 세우기 때문이다.

 

13장의 서언이자 결어인 13:31b~14:1a의 짜임새는 아래와 같다. ① 내가 가장 좋은 길을 보여주겠다(And yet I will show you the most excellent way, NIV)(12:31b). ② 가장 좋은 길로서 ‘사랑’에 대한 제시함(13장). ③ 사랑의 길을 따르라(Follow the way of love, NIV)(14:1).

 

이로 보건대 확실히 ‘사랑’은 은사가 아니다. 사랑은 은사를 사용하는 ‘길’이며 ‘방식’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탁월한 은사라도 ‘사랑’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은사의 궁극적 목적은 교회(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은사를 사랑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공동체를 무너뜨리게 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자를 무너뜨리신다(3:17).

 

은사는 선한 것이나 언제든지 해악을 끼칠 수 있다. 그것은 은사를 잘 못 사용하기 때문이다. 의사의 손에 들린 칼은 사람을 살리나, 강도의 손에 들린 칼은 사람을 죽인다. 은사가 꼭 그렇다!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면 교회를 세우나 잘못 사용하면 교회를 허문다.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오직 ‘사랑’으로 사용해야 한다. 사랑으로 사용하지 않은 은사는 아무것도 아니다.

 

13장은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는 길을 안내한다. 1-4절은 사랑으로 사용되지 않는 은사는 무익하다는 것을 제시한다. 5-7절은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는 사랑의 본질과 내용을 진술한다. 8-13절은 사랑의 영원함에 대한 찬가이다.

 

1-4절에서는 말(방언), 예언, 믿음, 구제, 헌신의 은사를 특정하며,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한다.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1-4절.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은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모든 말을 망라하는 표현이다. 여기에는 고린도 교인들이 자랑하는 ‘방언’도 포함된다. 그러나 아무리 신령한 말이라도 사랑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이것들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 “소리가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는 당시 이방 신전에 제물을 바칠 때 사용하는 악기로서 신의 관심을 끌거나 귀신을 쫓아내는 데 사용되었다. 사랑으로 사용되지 않은 방언의 은사는 이방 제의에 사용되는 소음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예언의 은사에 대해 논한다. 여기서 말하는 ‘예언’은 장래 일을 알아맞히는 것이 아니다. 은사로서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감추어진 비밀과 지식을 말한다(“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고전 2:7-10에서 이 비밀은 창세전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예비된 지혜이다. 이는 영으로만 아는 비밀이며 최상의 영적 지식이며 지혜이다. 그런데 이것을 다 알아도 사랑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산을 옮길 만한 믿음, 곧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믿음의 은사도 그러하다.

 

또 “자기 소유로 구제”하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헌신”이라도 사랑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소유를 내어주는 구제와 몸을 내어주는 헌신은 최고의 선행이다. 그런데도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그러면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는 ‘사랑’”은 무엇인가? 이 사랑은 ‘육체적 사랑’도 아니요, ‘정신적 사랑’(플라토닉 러브)도 아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새 계명으로서 ‘아가페 사랑’도 아니다. 여기 나오는 사랑은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는 길’(방식)이다.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는 길, 곧 사랑은 15가지 내용으로 제시된다. 8개의 부정적 내용(“아니하며”)과 7개의 긍정적 내용(“하며”)을 교차 대구적 형태로 진술한다. 부정적 내용은 “시기, 자랑, 교만, 무례히 행함, 자기 유익을 구함, 성냄, 악을 생각함, 불의를 기뻐함”이다. 긍정적 내용은 “오래 참음, 온유, 진리를 기뻐함, 참음, 믿음, 바람, 견딤”이다.

 

사랑의 내용은 ‘인내’가 그 핵심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로 시작하여(4절),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끝난다(7절). 다음으로 “온유”는 그리스도의 성품이다. “인내”와 “온유”에 이어 자기를 부인하는 내용이 더해진다. “시기, 자랑, 교만, 무례함, 자기의 유익을 구함, 성냄”은 자기 사랑과 자기주장의 전형이다. 그리고 진리의 문제가 이어진다. 악한 것을 도모하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이로 보건대 상기한 사랑의 내용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다. 사랑의 주체인 “내가”의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대체하면 매우 자연스럽다. 그러나 사랑의 주체를 “나”로 읽으면 모든 것이 그 반대이다. 예컨대 자연적 인간으로서 옛사람은 오래 참지 못하고, 온유하지 못하고, 시기하고, 자랑하고, 교만하다. 옛사람인 나는 무례히 행하고 나의 유익을 구하고 성내고 악한 것을 도모한다. 불의와 타협하고 진리를 거스른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옛사람의 실존으로서는 결코 행할 수 없다. 오히려 해악의 결과만 낳는다. 은사는 선한 일을 위해 주어졌다. 그러나 죄의 세력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할 때 즉시 개입하여 자기주장을 일으키며 우리를 사망으로 던져버린다. “죄가 그 계명을 통하여 틈을 타서 나를 속이고, 또 그 계명으로 나를 죽였습니다”(롬 7:11).

 

그러므로 육신(사르크스)에 속한 자기주장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은사가 도리어 나를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나아가 공동체도 무너뜨린다. 실제 교회 안에서 은사를 받고 자신의 소유와 몸을 다 바친 이들이 비참한 결말에 이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아예 열심을 내지 않는다. 은사를 받아도 사장(死藏)시킨다. 이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다.

 

8-13절은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는 ‘사랑의 영원성’을 진술한다. 대표적 은사인 예언과 방언과 지식은 폐한다. 그러나 사랑은 없어지지 않는다(8절). 은사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한시적으로 주어진다. 종말의 때가 오면 아무리 탁월한 은사라도 다 사라진다. 성령의 은사란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성도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게 한다. 종말이 임하면, 모든 은사가 그치는데 당연히 예언도 방언도 지식도 그친다. 종말의 완전한 것에 비하면 현재는 부분적인 것이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한다(9절). 종말에 완전한 것이 드러나면 부분적으로 하던 것은 사라진다(10절).

 

11절은 일인칭으로 바울의 자기 고백이다.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온전한 것이 오기 전 바울은 자신이 어린아이라고 말한다. 말하는 것, 깨닫는 것, 생각하는 것이 미성숙 단계이다. 여기서 어린아이의 그리스어 ‘네피오스’는 부정적으로 ‘미성숙’의 의미가 있다. 반면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어린아이’는 그리스어 ‘파이디온’은 긍정적 의미이다(마 18:1-4).

 

지상적 삶에 속한 자는 바울이라도 어린아이이다. 그는 부분적으로 말하고 부분적으로 깨닫고 부분적으로 생각한다. 부분적으로 아는 것은 거울로 보는 것과 같이 희미하다(12절). 당시 거울은 희미하게 보이는 청동 거울이었다. 지금 주님을 보는 것은 희미하다. 그러나 종말에는 주님을 대면하여 본다. 또한,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된다.

 

지상적 삶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제한적이다. 이것은 불충분한 것을 뜻하기보다, 불완전한 것을 뜻한다. 지상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다 알지 못해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주를 다 알지 못해도 주님은 이미 우리를 다 알고 계신다는 뜻이다. 비록 우리가 주님을 다 알지 못해도 충분한 것은 주께서 우리를 다 아시기 때문이다.

 

주께서 우리를 다 아시는 것은 신앙의 초석이다. 신앙의 유지는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아느냐에 달렸지 않고 주님이 우리를 아시는 것에 달려 있다. 자녀는 부모를 다 알지 못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부모가 자녀를 다 알기 때문이다. 자녀의 필요는 그것을 다 아는 부모에 의해 준비되고 채워지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우리가 주님을 다 알지 못해도 그가 우리를 알기 때문에 존치된다. 주님을 안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다 아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안전하고 평안하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이다(13절). 방언과 예언과 지식 등 모든 은사는 사라진다. 그러나 믿음, 소망, 사랑은 이 세대와 오는 세대에서 항상 존재한다. 여기서 믿음은 2절에서 나오는 산을 옮길 만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영접하는 완전한 믿음이다. 소망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진리를 가정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히 소망을 두어야 할 분이시다.

 

믿음과 소망보다 사랑이 위대하다. 그것은 사랑이 하나님의 본질의 계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로 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그 안에서 사는 자는 오직 사랑으로 행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안에서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행할 것이다(요일 2:6). 이것은 종말에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삶이다.

 

은사는 유한하며 한시적이며 제한적이다. 은사를 사용하는 ‘사랑’은 무한하며 영원하며 완전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한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은사 자체보다 은사를 사용하는 사랑에 전심을 다 해야 한다. 사랑으로 나타나는 작고 초라한 은사가 사랑이 부재한 크고 위대한 은사보다 더 귀하다.

 

13장의 결론은 14:1이다. “사랑의 길을 따르며 은사(신령한 것)를 간절히 사모하라.” 은사가 없으면 주의 일을 하지 못하며, 주의 일을 하지 못하면 교회는 세상에 무용하다. 오직 사랑으로 사용되는 은사가 교회를 바르게 세우고, 이는 적극적으로 장려되어야 한다.

 

 

4. 나의 묵상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의 찬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믿는 자의 결혼에 단골로 다루어지는 말씀이기도 하다. 심지어 불신자들도 이 사랑의 찬가를 좋아한다. 그러나 성경은 문맥과 분리되어 적용할 수 없다. 본 장에 나오는 사랑의 내용은 은사를 사용하는 길이요 방식이다. 은사는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목적인데, 사랑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나 역시 받은 은사만 중시했지. 그보다 더 중요한 사용하는 길에 무지하였다. 그것은 은사를 통해 나를 주장하여 사망에 이르는 재앙을 불러왔다. 주변에 받은 은사는 탁월하지만, 사랑으로 행하지 않아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지도자들을 보아왔다. 지금도 그러하다. 얼마 전 군소 신학교 학장이 시기심이 가득하여 목사인 신학교 졸업생을 혼냈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 그 학장은 한때 많은 은사가 있어 사람들이 따랐고, 신학교까지 세우고 주의 종들을 배출하였다. 하지만 노년에 접어들어 남는 것인 시기심과 분노라고 한다. 나 역시 받은 은사를 사랑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노년을 맞이할 것이 분명하다.

 

내게 주신 은사를 어떻게 사랑으로 사용하여 공동체를 세우는가? 그것은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죽는 것이다(고전 15:31). 자기를 주장하려는 육신을 매일 십자가에 못박고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행하시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그리하여 오래 참고, 온유하고,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고, 나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기를 간절히 구한다. 그날에 은사는 사라지나 은사를 사용한 사랑은 영원하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고린도교회 안에 은사가 풍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령이 주신 소중한 은사로 도리어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참으로 풍성한 은사는 감사하지만, 그 사용법을 알지 못하면, 강도의 손에 들린 칼과 같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죽입니다. 아, 은사 자체보다 그것을 사용하는 길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아버지여... 은사는 오직 사랑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은사를 사용하는 사랑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일치합니다. 우리의 옛사람, 육신은 사랑의 내용과 정반대입니다. 하여 육신에 속한 자기주장 의지로 은사를 사용하는 자는 그 자신과 공동체에 해악이 됩니다, 저는 한때 많은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용법을 알지 못하니, 은사는 무용지물이요 도리어 공동체를 해쳤습니다. 내게 임한 당신의 심판은 옳았습니다. 심판이 임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괴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버지... 내게 주신 말씀의 은사, 지혜의 은사를 귀히 여기게 하소서. 귀한 것일수록 바르게 사용하게 하소서. 그것은 오직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주체가 되어 은사를 사용하게 하소서. 이를 위해 날마다 예수의 죽음에 나를 넘기게 하소서. 그리하여 예수 생명이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소서. 모든 은사는 언젠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은사를 사용하는 사랑은 영원합니다. 오늘 세움교회 8주년 예배에 함께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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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답터 | 작성시간 26.06.0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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