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굿뉴스 묵상

깨달은 말씀을 나누는 예배, 질서 있는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다(고전 14:26-40)

작성자굿뉴스|작성시간26.06.11|조회수98 목록 댓글 1

깨달은 말씀을 나누는 예배, 질서 있는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다(고전 14:26-40)

1. 오늘의 말씀 : 고전 14:26-40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38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어제 건강검진 결과를 보러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는 대체로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하였습니다. 1년 전까지 약을 먹었던 고지혈증이나 전립선도 정상이라고 합니다. 다만 운동을 꾸준히 하여 체중을 관리하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값으로 사신 주의 몸이오니, 청지기로서 잘 관리하여 주께만 영광 돌리게 하소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나, 그의 본심은 긍휼이 많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며 인자가 풍성하시나이다(103:8). 비록 자기 백성을 경책할지라도 영원히 노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풍성한 인자하심을 멸시하지 않게 하소서. 주께서는 내가 티끌의 실존임을 아시나이다. 나 역시 이것을 알고 오직 주를 경외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의 인자하심에 머물게 하소서. 말씀 앞에 엎드립니다. 오염된 영혼을 보혈로 정케 하소서. 진리의 영으로 말씀을 조명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바울은 은사를 권장하되 그 사용을 철저히 제한한다. 은사는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 이에 바울은 은사 자체보다 은사를 사용하는 ‘사랑’의 방식에 강조점을 둔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의 전반부(1-25절)는 교회에 덕을 세우는 관점에서 예언이 방언보다 큰 은사라고 말한다. 후반부(26-40절)에서는 교회에 덕을 세우는 데 있어 방언과 예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한다.

 

26-28절은 교회 생활에서 방언을 사용하는 지침이고, 29-33절은 예언을 사용하는 지침이다. 34-36절은 여성 신자의 은사 사용에 대한 권면이고, 37-40절은 결론 부분으로서 은사의 사용은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할 것을 권면한다.

 

바울은 예배 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은사를 나열한다. 예배 때에 찬송시, 가르치는 말씀(설교), 계시, 방언, 통역이 있다. 이것들은 당시 예배의 요소들인데, 이것들은 자기만족이 아니라 교회에 덕을 세우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바울은 예배의 요소 중에서 방언과 예언(계시)을 특정하여 권면한다.

 

27-28절은 교회 내 방언 은사의 사용을 가르친다. 여기에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하나는 여러 사람이 방언으로 말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한 사람씩 차례대로 해야 한다(27절). 다른 하나는 통역이 없으면 예배 시 방언은 그쳐야 하고 방언하는 자는 하나님께만 말해야 한다(28절). 왜냐하면, 통역이 없을 경우 방언을 하면, 그 자리에 참석한 불신자들을 바깥으로 쫓아내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29-33절은 교회 내 예언 은사의 사용을 가르친다. 예언 역시 방언과 비슷하다. 먼저 예언하는 자는 순서에 따라 하고 다른 사람은 그 예언을 분별해야 한다(29절).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계시가 주어지면 먼저 말하던 사람은 잠잠해야 한다(30절). 이렇게 하여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하고, 또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31절). 그러므로 교회는 누구나 예언을 할 수 있도록(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자유를 주고 배려해야 한다.

 

또 예언하는 사람의 영은 예언하는 사람에게 통제를 받는다(32절).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33절). 33절은 “왜냐하면”(헬, “가르”)로 시작하는 이유문이다. 이렇게 하여 예언하는 자 중 한 사람이 예배 시간 전체를 독점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풍성했으나 그것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였다. 도리어 은사로 인해 교회가 무질서해지고 평화가 깨어졌다. 바울은 하나님의 속성을 깨우침으로써 은사의 사용을 절제시킨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평화의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은사도 질서 있게 사용하여 교회의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

 

33b절-35절은 여자 성도에 대한 제한으로써 삽입 구절이다.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이, 여자들은 교회에서는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여자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율법에서도 말한 대로 여자들은 복종해야 합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으십시오.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잠잠하라”라는 명령은 방언하는 자(28절), 예언하는 자(30절)에 이어 여자에게 주어진다. 이 명령은 질서 있고 평화로운 예배를 위해서다. 당시 고린도교회에서는 남편 있는 여자들이 남편 아닌 남자들에게 질문하며 예배를 소란스럽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바울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집에 가서 남편에게 물으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당시 문화에서 기혼 여성들이 공식 석상에서 말하는 것을 금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고 이 명령은 모든 시대 모든 상황에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절대명령은 아니다. 11:5에서는 여자도 기도와 예언을 하였다. 그러므로 “여자가 잠잠하라”라는 명령은 특정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36-40절은 은사에 대한 권면의 결어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 났습니까? 또는 여러분에게만 내렸습니까? 누구든지 자기가 예언자이거나 성령을 은사로 받은 사람이라 생각하거든,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이 글이 주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사람도 인정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36-38절).

 

바울은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 예언하는 사역자들을 경고한다. 예언의 은사는 특정인이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언의 은사를 가진 자가 착각하는 것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것으로 자랑하고 교만해져서 교회 개척자인 바울의 말까지 거부하려 하였다. 이에 바울은 자기 말이 주의 명령이라고 하며, 그들을 경고한다.

 

만일 그들이 바울의 말을 거절한다면, 주의 명령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바울이 그들에게 경고한다. “누구든지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사람도 인정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무식하면서도 자기 확신에 차 있으며 영적인 자를 자처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그런 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39-40절은 방언과 예언의 은사에 대한 결론이다. “그러므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예언하기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그리고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막지 마십시오. 모든 일을 적절하게 하고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

 

1절은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로 시작하며, 결여(39절)는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을 금하지 말라” 하다. 바울은 방언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공동체에 유익을 끼친다는 관점에서 예언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실 모든 은사는 잘 사용하면 교회에 유익을 끼친다. 잘 사용하는 지침은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며, 그것은 적절하고 질서 있는 예배에 기여한다.

 

기독교 진리의 본체는 “계시”이다. 예언은 계시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계시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영역에 실재한다. 그것은 창세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약속이다. 영생을 얻은 자마다 함께 상속자가 되고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엡 3:6).

 

계시를 드러내는 예언의 은사는 특정인이 독점할 수 없다. 그리고 예언은 다른 사람에 의해 판단 받아야 한다. 소위 진리는 진리를 아는 자의 상호 검정으로 확증된다. 자기들만 구원의 진리가 있다고 떠들어댄다. 진리는 검증되고 판단되어도 여전히 진리이다.

 

고린도교회는 다양한 은사가 어우러진 예배를 드렸다. 이때는 1세기 중반경(50-70년경)으로 사도들이 활동하던 때였다. 사도의 시대가 끝난 후 교회는 은사보다 제도 중심으로 변하게 되었다. 소위 감독, 장로, 집사 등 직분이 생겨났고 2세기 이후에는 성찬과 말씀 중심의 예배가 정착되었다. 물론 은사를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예배의 중심축은 공적 질서와 직분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의 예배를 모든 시대 교회의 예배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다만 은사 중심의 예배는 초대교회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그 본질만큼은 전승되는 것이 분명하다. 특히 예언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가 그 핵심이다. 모든 성도는 각자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에서 깨달은 말씀(계시, 예언)을 나눌 수 있고, 교회는 이를 배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말씀의 깨달음과 나눔은 교회 직분자로 한정되지 않으며, 누구나 깨달은 말씀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현대교회에서는 주로 소그룹을 통해서 이런 일을 시도하는데,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권장할 만하다. 평생 교회를 다니고 직분을 받았어도, 공동체 안에서 한 번도 말씀을 나눈 적이 없다면 개인이나 교회나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점에서 성도 각자가 말씀을 묵상하고 함께 모여 깨달은 말씀을 나누는 교회는 초대교회의 본질을 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4. 나의 묵상

오늘날 깨어 있는 교회는 초대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자고 외친다. 구호는 거창하지만, 내용이 부실하다면 울리는 꽹과리나 다름없다. 나의 목회는 선배 목사들의 전례를 그대로 답습하였다. 더구나 작은 교회 목사는 목사 혼자 복치고 장구치며 모든 일을 수행한다. 특히 말씀 사역에서 더욱 그러하다.

 

26년 전 내가 교회를 개척할 때만 해도, 성도가 깨달은 말씀을 나누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주님과 은밀히 교제하는 ‘큐티’는 유행했으나 각자가 깨달은 말씀을 나누는 예언의 은사는 거의 보지 못하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 복음을 통해 생명의 교제에 이르렀다. 생명의 교제는 각자 주님과 교제한 이들이 함께 모여 교제할 때 기쁨이 충만하며 교제를 완성한다(요일 1:3-4).

 

복음생명 사역을 한지 1~2년이 지나면서 공동체가 생겨났다. 우리는 함께 모이면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각자 주님과 가진 교제를 나누었다. 개인적으로 말씀을 깨닫고 주님과 은밀히 교제하는 것보다 함께 모여 교제할 때 우리 안에 하나 됨과 기쁨이 넘쳤다. 초창기만 해도 사적 모임이든 공적 모임이든 매우 엄격하여 이를 지켰다. 그래서 우리는 모일 때마다 각자 묵상한 노트를 지참하였다.

 

이제는 공동체가 공적으로 모이고, 그 모임을 통해서 각자 깨달은 말씀을 나눈다. 공동체 모임을 갈 때마다 놀라는 것은, 지체들이 깨달은 한마디 말씀이 내 영혼에 큰 기쁨을 준다는 것이다. 순수한 이들의 한 마디 깨달은 말씀이 공동체에 얼마나 유익이 되는지 모른다. 수만 명이 모이는 유명한 교회의 부목사가 각자 말씀을 나누는 공동체를 방문하였다. 그는 놀라워하며 “이 모임에서는 각자 자기 밥을 먹네요”라고 하였다. 평생 신앙 생활해도 남이 해주는 밥만 먹는데, 이 모임은 특이하다는 것이다.

 

공동체마다 이 은혜가 더욱 풍성하기를 기도한다. 더불어 여전히 남이 해주는 밥만 먹는 신자들이 직접 말씀 앞에 나아가 성령이 깨닫게 해주는 말씀을 먹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역사가 있기를 고대하고 기도한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성령이 주시는 은사는 매우 귀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은 인간에 의해 얼마든지 오남용될 수 있습니다. 먼저 방언의 은사는 차례대로 할 것이며, 통역이 없으면 교회 안에서 잠잠할 것입니다. 또 예언의 은사도 차례대로 하며, 서로에게 판단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여러 지체가 차례로 말씀을 나눔으로써 모든 사람이 말씀을 배우고 모든 사람이 권면을 받게 하라고 합니다. 이렇듯 초대교회는 특정한 지도자나 제도가 없이 은사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고 모임을 가졌습니다.

 

아버지여... 지금은 교회 형태가 초대교회처럼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물론 작은 무리가 모인 교회는 가능할 수 있으나 지금은 전통과 제도를 갖춘 예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처음 생겨난 초대교회의 본질은 사수하는 것이 옳습니다. 방언이든 예언이든 은사는 한 사람이 독점할 수 없습니다. 특히 계시를 깨닫는 예언의 은사는 다양한 은사자가 차례대로 나눔으로써 모든 사람이 권면을 받고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정신입니다.

 

아버지... 저는 철저히 전통을 답습하며 목회하였습니다, 신자들이 말씀을 깨닫고 나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습니다. 각자 주님과 교제하고 서로 교제하는 것이 진정한 공동체요 교회입니다. 거기에 기쁨이 완성됩니다. 복음을 통해 생명에 이르러서야 성도가 깨달은 말씀을 나누는 것이 교회와 공동체의 본질임을 알았습니다. 이후로 생명의 공동체를 곳곳에 허락해 주셔서 깨달은 말씀과 주님과의 교제를 나누게 하십니다. 아, 이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소멸하지 않게 하소서. 초심을 잃지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아답터 | 작성시간 26.06.12 아멘~^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