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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묵상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 복음이 부재한 교회와 연대하며 복음을 전하다(고전 16:1-12)

작성자굿뉴스|작성시간26.06.18|조회수89 목록 댓글 1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 복음이 부재한 교회와 연대하며 복음을 전하다(고전 16:1-12)

1. 오늘의 말씀 : 고전 16:1-12

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3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4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5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6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7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8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9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11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나의 행위를 따라 기록된 책대로 하면 불못에 던져지는 심판을 피할 수 없나이다(20:14).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기록되어 심판을 면하고 영원한 구원을 받습니다. 이제 내가 기뻐하는 것은, 사탄이 공중에서 떨어지는 사역의 성과가 아니라 내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인함입니다(10:20). 영적인 일이라도 삼가 모든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행하시는 대로 따르게 하소서. 말씀 앞으로 가오니 내 영혼을 보혈로 정케 하소서. 진리의 영으로 말씀을 조명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서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서신으로 응답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마지막 16장은 마무리와 인사말이다. 1-4절은 예루살렘 교인들을 위한 연보에 대하여 가르치고, 5-12절은 향후 여행계획과 동역자 디모데와 아볼로에 대해 언급한다. 13-24절은 마지막 경고와 인사말이다.

 

바울은 전도 여행 중에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모금하였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선교지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돕기 위함이다. 가난한 성도를 돕는 일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야고보가 부탁한 바이다(갈 2:10). 둘째, 이방인 교회가 모금한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가 수령함으로써 두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바울은 성도들을 도우려고 모으는 헌금에 대하여 말한다(1절). 여기서 성도는 예루살렘 교인들을 가리킨다. 그는 갈라디아 여러 교회에 헌금에 대해 지시했는데,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그대로 지시한다. 헌금은 매주 첫날에 각 사람의 수입에 따라 얼마씩을 따로 저축할 것이다(2절). 그래서 그가 고린도에 가서야 헌금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한다. 헌금을 모으라는 것은 예배 중에 모으라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수입에 따라 모아놓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한 후에 비로소 헌금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바울은 충동적인 헌금이 아니라 준비된 헌금을 요구한다(고후 9:5 참고).

 

“매주 첫날”은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을 가리킨다. 이날은 ‘주의 날’(주일)이다(계 1:10).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의 안식일(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과 달리 주의 날(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린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거둔 헌금을 직접 예루살렘에 전달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고린도 교회에서 헌금을 전달하는 사람을 선정하라고 말한다(3절). 이것은 헌금 전달에 있어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한 처사이다(고후 8:21;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나아가 이방교회 성도와 예루살렘 교회 성도가 직접 교제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물론 필요하면 바울 자신도 동행하겠다고 말한다. “나도 가는 것이 좋다면, 그들은 나와 함께 갈 것입니다”(4절).

 

여기서 바울은 헌금을 “은혜”로 부른다. “은혜”(헌금)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라”(3절). 헌금은 가난한 자를 돕고 교회 일치를 위한 헌금은 구약의 성전세처럼 의무가 아니라, 기쁨과 감사로 하는 은혜이다. 고린도후서 8:7에서 바울은 다른 은혜뿐 아니라 헌금을 드리는 이 은혜도 풍성할 것을 권한다.

 

주목할 부분은 “각 사람의 수입에 따라 적절한 금액”을 헌금해야 한다(2절). 직분에 대한 의무감이나 안 드리면 불편한 죄책감이나 보상 심리에 의해 수입과 무관하게 헌금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심지어 빚을 내서 헌금하는 일은 금해야 한다.

 

5-18절은 고린도 방문계획과 동역자에 대해 언급한다. 바울은 지금 에베소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그는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에 가겠다고 말한다(5절).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가는 방법은 해로와 육로가 있다. 마게도냐를 거쳐 가는 길은 육로이다. 바울은 고린도에 잠깐 들리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성도들과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수도 있다. 그리고 성도들의 보냄을 받아 다른 선교지로 가고자 한다.

 

“나는 마케도니아를 거쳐서 여러분에게로 가겠습니다. 내가 마케도니아를 지나서 여러분에게로 가면, 얼마 동안은 함께 지낼 것이고, 어쩌면 겨울을 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은, 내가 가려는 곳으로 나를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나는,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러서 여러분을 만나 보려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면, 얼마 동안 여러분과 함께 머무르고 싶습니다”(5-7절).

 

“내가 가려는 곳으로 나를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6절). 이 말은 바울이 다른 곳으로 선교하러 갈때 고린도 교인들이 물질적으로 도와달라는 뜻이다. 바울은 복음이 선포되어 세워진 교회를 통해 물질적 지원을 받고 다음의 선교 사역을 수행하였다. 여기서 물질로 협력하는 성도는 바울과 동등한 ‘복음 전도자’이다. 바울은 자신의 복음 선포를 물질로 도운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복음에 참여하였다”라고 말한다(빌 1:5). 이에 복음 전파는 ‘선포의 내용’뿐 아니라 ‘선포의 행위’도 포함한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머묾과 떠남의 주권을 주님께 맡긴다.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7절). 물론 계획은 전도자 자신이 한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주님이 하신다. 바울은 성령을 따라 고린도 방문을 계획하였다(고후 1:15-17). 그러나 주께서 그의 계획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바울은 자신이 기도하며 계획하였으나 주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을 두고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라고 하며 하나님의 결정을 받아들인다(고후 1:18; “그러나 확실히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NIV).

 

사람이 계획하나 그 일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잠 16:1, 9). 물론 그 계획은 영을 따라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영을 따라 계획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어서도 안 된다. 주의 일을 영으로 계획하되 모든 과정과 결과는 우리보다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러면서 성령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상충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런 일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한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다. 그러나 최종적인 결과는 독자 이삭이 아니라 이삭을 대신한 숫양이었다(창 22장).

 

바울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 계획이다(8절). 왜냐하면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은 전도의 문이다(고후 2:12). 즉 복음을 전하기에 좋은 기회가 생겼다는 뜻이다. 동시에 복음 전파를 훼방하는 대적하는 자들도 많아졌기 때문이다(9절). 따라서 바울이 고린도에 가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시기는 조금 지연될 것이다.

 

바울은 자기가 고린도에 방문하기 전 디모데를 먼저 보냈다(4:17 참고). 이 서신을 쓸 때 디모데는 고린도로 가는 중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가 그들에게 가거든 아무 두려움 없이 그들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보살펴달라고 청한다(10절). 바울은 디모데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주의 일을 한다고 말한다.

 

또한 바울은 아볼로에 관해 언급한다.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도움을 받아 복음을 밝히 깨닫고 고린도에서 사역하였다(행 18:26-29). 고린도교회 안에는 아볼로파가 생겨나기도 하였다(1:12). 그런데 지금 아볼로는 에베소에서 바울과 함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바울은 아볼로에게 다시 고린도에 방문할 것을 여러 번 권하였다(12절_. 하지만 그는 지금 갈 마음이 전혀 없다. 그러나 적절한 때가 오면 그도 고린도에 갈 것이라고 말한다.

 

 

4. 나의 묵상

바울이 그가 세운 이방인 교회에서 헌금을 거두어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려는 것은, 다분히 신학적 의미가 있다. 바울에게 교회는 ‘하나’이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인들은 기존에 지켜 왔던 율법을 고수하였다. 반면 이방인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에 율법을 지키는 일을 무시하였다. 그로 인해 예루살렘 교인 중 일부는 바울을 오해하였고, 그가 예루살렘에 오면 해를 가할 작정이었다.

 

바울은 그것을 알면서도 직접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전달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으로 갔다(롬 15:36-31 참고). 이는 율법 없이 구원받은 이방인 교회와 율법을 고수하는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로 연대하고자 한 소원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면서까지 교회가 하나 될 수는 없었다. 바울은 복음의 진리에 관한 예루살렘 교회의 유력한 자들에게 조금도 복종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다(갈 2:5).

 

나는 이제껏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지 않고 전하려고 힘써왔다. 하나님 앞에서 내 양심을 따라 증거하건대, 사람들을 위하거나 교회 자체를 위해 복음의 진리를 일부러 왜곡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복음이 부재한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그들과 연대하기를 얼마나 힘쓰고 있는가? 바울은 복음이 부재한 교회, 곧 그리스도께 저주를 받는 교회와 자기를 분리하지 않았다(롬 9:3). 도리어 그들과 연대하면서 그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계속하였다. 이것은 바울 안에서 사시는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이번 로마서 주해묵상을 펴내면서 복음이 부재한 교회와 연대를 진중히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주권은 지금 복음이 부재한 교회라도 언제든지 복음이 들려지고, 복음으로 세우는 교회가 될 수 있다. 내게 맡겨진 일은 그들과 연대하면서 주님이 전하라고 하신 말씀만 전하면 되는 것이다. 지난달 예수생명교회에 이전 예배에서 격려사를 담당하였다. 나는 8분 정도 격려사를 하면서 생명을 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당부하였다.

 

예배 순서가 끝나고 강단을 내려오는데, 그날 기도를 맡았던 서산 새빛교회 목사님이 내게 쪽지를 주면서 ‘기원복음생명’ 책을 부탁하였다. 이후 책을 보내며 통화를 하였다. 그는 젊은 시절 복음을 듣고 복음에 합당한 교회를 세우고자 하였는데, 돌아보니 목회를 잘못한 것 같다고 하면서 나를 초빙하여 사경회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와 복음으로 교제한 적은 없으나 복음이 부재한 교회와 연대한다는 마음이 들어 선뜻 허락하였다. 한 교회라도 복음을 듣고 복음으로 교회가 세워진다면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는가?

 

오늘은 목요 목회자 성경공부 모임에서 강의를 한다. 늘 교수님들의 가르침을 받던 자리라서 사양했는데, 마침 로마서 주해묵상이 출간되어 그것을 나누고자 한다. 나로서는 이번이 여덟 번째 책인데, 저자가 자기 책이 나오기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은 처음이다. 내 영혼을 복음으로 흔들고 변화시키고 충만함과 자유를 준 이 책이 오늘 동역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나누어지기를 간구한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바울은 이방인 교회에 은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헌금을 준비하게 하고, 그것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자를 돕기 위함이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두 교회가 하나가 되기 위함입니다. 바울의 사상에 교회는 오직 하나입니다. 율법을 고수하는 예루살렘 교회가 율법 없이 은혜로 구원받은 이방 교회의 헌금을 받을 때 두 교회는 하나가 됩니다. 그렇다고 바울은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하여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여... 이제껏 복음의 진리를 그대로 전하게 하심이 은혜입니다. 좁고 협착한 길이나 이제껏 걷게 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무엇보다 곳곳에 디모데 같은 복음의 동역자들과 복음을 위해 아낌없이 물질을 드리는 후원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들과 더불어 끝까지 복음의 진리를 사수하게 하소서. 그러면서 복음이 부재한 교회와 연대하게 하소서.

 

아버지... 복음의 진리만을 고수하던 자리에서 복음이 부재한 교회를 돌아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저주를 받은 교회(이스라엘)라도 그들과 함께하였습니다.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은 언제든지 진노의 그릇을 긍휼의 그릇으로 빚으십니다. 복음이 부재한 교회와 연대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듣고 깨닫게 하시는 이, 복음으로 교회가 세워지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몫입니다. 오늘 목회자 모임에서 있을 로마서 강의에 함께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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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답터 | 작성시간 26.06.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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