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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묵상

그리스도의 무덤에서 생명으로, 어찌 이 은혜를 저버릴 수 있을까?(욘 1:17-2:10)

작성자굿뉴스|작성시간26.06.22|조회수72 목록 댓글 0

그리스도의 무덤에서 생명으로, 어찌 이 은혜를 저버릴 수 있을까?(욘 1:17-2:10)

1. 오늘의 말씀 : 욘 1:17-2:10

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2: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어제는 신현교회와 서울공동체에서 말씀을 나누고 서로 교제하였습니다. 분주한 일상에서도 생명으로 살기에 힘쓰는 이들을 축복하소서. 경건한 시인은 주께 범죄하지 않으려고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나이다(119:11). 또 사람들이 재물을 즐거워하듯, 시인은 주의 말씀을 따르는 것을 즐거워하였나이다(119:14). 재물을 숭배하는 맘몬의 시대, 하나님을 떠나 범죄함이 관영한 시대입니다. 주의 말씀이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주를 따르는 것이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 되게 하소서. 사람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에서 즐거워하는 것이 그의 존재를 증거합니다. 속히 말씀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염된 영혼을 보혈로 정케 하소서. 진리의 영으로 말씀을 조명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다시스로 갔다. 하나님은 바다에 큰바람을 던지셔서 요나가 탄 배가 파손되기에 이르렀다. 선원들이 제비 뽑은 결과, 이 풍랑이 요나에게 있음을 알았다. 요나는 자기를 바다에 던지면 바다가 잠잠할 것이라고 하였으나 선원들은 다른 방책을 시도하였다. 바다가 더 흉용해지자, 선원들은 여호와께 기도하고 요나를 바다에 던졌다.

 

요나서 1:17-2:10은 요나가 바다에 던져진 이후의 사건을 서술한다. 한글성경 1:17-2:10은 히브리어 성경 2:1-11이다. 사람이 바다에 던져지면 그 자체로 죽음이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다가 익사하여 물고기 밥이 되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요나는 죽지 않고 구원받았다. 이후 요나는 삼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 물고기가 어떤 종류인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물고기의 역할과 기능이다.

 

요나는 죽지 않았고, 물고기 속으로 들어갔다. 학자들은 이것이 구원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요나는 삼 일간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 요나의 이야기는 얼토당토않은 허구인가? 생물학적, 의학적으로 보면 사람이 큰 물고기 뱃속에 사흘 동안 살아남는 것은 산소, 소화액, 체온 등의 문제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무신론자들이나 일부 역사비평 신학자들은 요나의 사건을 부정한다. 그저 신화나 상징적 의미로 축소한다.

 

바다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다(창 1:9-10). 하나님은 그가 지으신 바다를 던지셨다. 물고기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하나님이 그 물고기를 구원의 수단으로 사용하신다. 요나의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되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만드시는 창조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절대적 권능을 가지신 분이시다.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하나님이다. 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요나가 삼 일간 물고기 뱃속에 있었듯이, 자기도 삼 일간 땅속(무덤)에 있을 것을 말씀하셨다(마 12:39-40).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곧 구원의 하나님께 기도한다(2:1). 2:2-9는 요나가 드린 기도문이다. 요나의 기도는 물고기 뱃속이라는 상황과 달리 바다 한 가운데 빠진 상태에서 드리는 기도이다. 요나는 그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기도한다(2a절). 그의 기도는 시편에서 고난당하는 자가 드리는 기도의 전형이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3절, 시 42:8).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물이 내게 넘치나이다”(6절, 시 69:1-2).

 

요나는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고 주께서 그의 음성을 들으셨다(2b절). 구약에서 스올은 가장 낮고 깊은 곳이며 종종 가장 높은 하늘과 대조된다(신 32:22; 사 7:11; 시 139:8). 또 스올은 죽은 자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어둡고 캄캄한 흑암의 처소이며(욥 7:9; 시 143:3), 적막한 침묵의 장소이다(시 31:17; 94:17). 또한 스올은 세상과 단절되어 세상의 소식을 알수 없는 곳이고(욥 14:21),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없는 곳이며(전 9:4-6), 하나님과 단절된 곳으로서 주의 인자와 신실이 부재한 곳이다(시 88:5, 11).

 

그러나 하나님은 스올에도 임재하신다(시 139:8-10). 스올에 임재하신 하나님이 요나에게 응답하신다. 주께서 그의 음성을 들으셨다. 3-9절은 2절에서 그가 부르짖고 하나님이 응답하신 내용을 부연하여 설명한다. 주께서 그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물이 그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그 위에 넘쳤다(3절). 요나는 죽음 직전의 상황에 이르렀다. 그때 그가 구한 것은 상황 해결이 아니라 주의 성전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4절, 개역개정).

“주님의 눈 앞에서 쫓겨났어도, 내가 반드시 주님 계신 성전을 다시 바라보겠습니다”(4절, 새번역)

“나는 쫓겨났구나. 당신의 눈 앞에서 어찌 내가 다시 바라보리요. 당신의 성전 쪽을?”(4절, 원문).

 

요나에게 죽음이 덮치는 상황적인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자기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영적인 고통이다. “나는 쫓겨났구나. 당신의 눈 앞에서 어찌 내가 다시 바라보리요. 당신의 성전 쪽을?” 상황은 점점 더 극심해진다. “물이 나를 두르기를 영혼까지 하였으며, 깊음이 나를 에워쌌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휘감았습니다. 나는 땅 속 멧부리까지 내려갔습니다. 땅이 빗장을 질러 나를 영영 가두어 놓으려 했습니다”(5-6a절).

 

“물이 영혼까지 둘렀다”(개역개정)에서 영혼(네페쉬)은 목구멍의 의미도 있다. 하여 이 구절은 “물이 내 목까지 휘감아 올라왔다”라고도 번역한다. “산의 뿌리”(새번역 “땅 속 멧부리”)는 땅을 바치고 있는 기둥과 같은 것으로 바다의 바닥을 의미한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의 세계까지 갔다. 그러나 알수 없는 방법으로 구원이 그에게 임한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 그 구덩이 속에서 내 생명을 건져주셨습니다. 내 목숨이 힘없이 꺼져 갈 때에, 내가 주님을 기억하였더니, 나의 기도가 주님께 이르렀으며, 주님 계신 성전에까지 이르렀습니다”(6b-7절).

 

요나는 여호와(주)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한다. 그의 하나님이 큰 물고기를 통해 이러한 죽음에서 그를 건져주셨다. 구덩이(샤하트)는 무덤을 나타내며, 동시에 죽은 자의 세계를 의미한다(사 38:17-18; 시 16:10). 요나의 기도는 응답되었고, 그는 주님이 계신 성전에 이르렀다,

 

사망의 무덤에서 건짐받은 요나는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배하는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다(8절). 그러나 요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그가 드린 서원을 갚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곤궁에 처하여 부르짖음으로써 그가 계신 곳에 이른다. 곧 최후의 절망인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리에서라도 하나님을 생각할 때 그는 하나님 앞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상과 하나님의 근본적인 차이다.

 

요나는 생명을 부여받고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것을 기뻐하며 감사한다.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며 사명에 복종하겠다는 서원을 드린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다!” 요나의 기도가 끝나고 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육지로 토해진다. 전에 불순종하던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생명을 얻고 순종하는 자가 된다. 요나의 물고기 뱃속의 사건은 불순종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진지함과 필연성을 보여준다. 동시에 절망 중에 하나님을 생각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를 보여준다.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니 그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로 토해냈다(10절).

 

예수 그리스도는 요나의 표적을 자신이 행할 구원의 표적으로 삼으셨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생의 표적을 구하자, 예수는 그들을 책망하시며 요나의 표적을 보이시겠다고 하였다(마 12:38-40). 상기한 대로 요나의 사건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을 예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었다. 그가 무덤에 장사된 것은, 요나가 물고기에 들어간 것으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그가 무덤에서 받은 심판은 자기 죄로 인한 심판이 아니라 아담 안에 불순종한 실존이 되는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받은 심판이다.

 

그가 무덤에서 행하신 표적은 성전을 짓는 것이다(요 2:19-21). 무덤에서 성전을 짓는 표적은 심판을 통해 짓는 성전을 의미한다. 불순종하여 자기 뜻대로 살던 인생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죽음과 무덤에 처해진다. 그러나 그의 죽음과 무덤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무덤에 연합되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난다(롬 6:4; 골 2:12).

 

예수께서 죽으시고 삼 일간 무덤에 거하셨다. 그는 육체로는 죽음의 상태이었으나 영으로 살리심을 받아 옥으로 내려가셨다. 그곳에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셨다.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벧전 3:18b-19). 구약의 묵시문학 에티오피아 에녹서 6-16장에서 에녹은 설교를 하기 위해 지하의 감옥에 내려간다. 그는 그곳에 있는 타락한 영들(천사들)에게 어떠한 용서와 평화도 기대하지 말라는 심판을 선포한다(12:5; 16:4). 이러한 배경을 근거로 하여 그리스도는 하데스에서 구원을 선포한다(벧전 4:6;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옥에서 선포한 것은, 우주적으로 나타나는 그의 구속적인 힘이 하나님을 멀리하는 세계의 가장 깊은 곳까지도 미치며 그의 권능은 죽음에 의해서도 제약받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선포된 주의 말씀은 가장 심각한 타락과 깊은 지옥도 제거할 수 있으며 죽음의 동맹 세력들을(벧전 3:22) 모두 분쇄한다. 물론 이 말은 가톨릭의 주장처럼 이미 죽은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구원과 그의 말씀의 힘이 죽음의 세계에까지 미치며 그것은 가장 심각한 타락이나 그로 인한 지옥의 현실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볼프강 슈라케, 베드로전후서 주석).

 

예수 그리스도는 최후의 절망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에게 최후의 절망은 요나가 예시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유기됨’(버림받음)이다(마 27:46).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눅 23:46).

 

요나를 삼일만에 살리신 하나님의 권능이 그리스도에게 나타났다. 이것은 영으로만 아는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권능이다(엡 1:19-20). 이제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살리신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우리에게 나타났다. 허물과 죄로 죽어 심판에 이른 자, 그의 무덤이 그리스도의 무덤에 연합되면 생명을 얻고 하늘에 앉히운 자가 된다. 이는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함이다(엡 2:4-6).

 

그리스도의 무덤에 연합된 자, 그는 요나의 기도를 드린다. 인생의 절망 앞에서 우상을 섬기던 자는 결국 우상에게 버림받는다. 그러나 주를 믿는 자는 최후의 절망 앞에서도 결코 버림받지 않는다. 심지어 하나님께 버림받는 그 순간에서 그의 영혼이 주를 생각하고 주를 찾으면 하나님께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자에게 극복되지 않을 절망은 없다! 그의 영혼이 낙망하고 불안할 때 오직 하나님을 생각하는 자, 그는 여전히 찬송하는 자가 된다. 이것이 바로 요나가 예시한 그리스도의 무덤의 표적이다. 곧 하나님의 능력의 신비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5).

 

 

4. 나의 묵상

요나가 들어간 물고기 뱃속은 그리스도의 무덤을 예표한다. 내가 실제로 무덤을 경험하기 전까지 이 이야기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무덤은 죽은 다음에나 들어가는 것이고, 문제는 예수 믿고 이 세상에서 번듯하게 사는 것이었다. 새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삼 일간 무덤에 장사되어야 주어지는 것인데, 새 생명의 존재도 효력도 관심 밖이었다. 돌아보니 마지막에 사망을 삯으로 받는 아담 안의 옛사람에 충실한 삶이었다.

 

아, 그런 자에게 무덤이 찾아왔다. 그것은 인자하신 하나님의 행동하심이었다. 하나님이 큰 바람을 내게 던지셨다. 내가 탄 인생의 배는 파손되어 갔다. 내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파괴되어 갔고, 선원들이 짐을 던지듯 교회까지 내려놓아야 했다. 그런데 바람은 더 흉용해졌다. 결국 나는 알수 없는 힘으로 바다에 던져졌다. 죽음을 구했고 죽는 것이 마땅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죽지 않았다! 바다에 던져진 요나를 위해 하나님이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듯이, 무덤에 던져진 나를 위해 하나님이 이미 그리스도의 무덤을 예비하신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무덤에 연합된 자에게 말씀이 빛이 비쳐왔다. 그 말씀은 나의 심령을 좌우의 날 선 검으로 쪼개는 심판의 말씀이었다. 그렇게 삼일이 예표하는 무덤의 시간을 지났다. 비로소 귀로만 듣던 생명이 표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나는 요나처럼 다시 살아난 자의 신앙을 고백하는가? 내게 생명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주께 산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갚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사람이 구하는 헛된 것과 거짓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가? 아, 여전히 함량미달인 자가 말씀 앞에서 화들짝 놀라며 자복한다. 주의 긍휼을 구하며, 내게 생명 주신 은혜로 감격하며 생명을 전하는 사명에 나를 드리기를 서원한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요나가 바다에 던져집니다. 그러자 바다가 잔잔해집니다. 요나는 익사하거나 물고기 밥이 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다에 바람을 던지신 하나님이 이미 요나를 위하여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습니다. 죽기에만 합당한 자가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 역시 죽음의 바다에 던져져야 할 자였습니다. 주께서 명하신 것에 무지하여 사람의 일을 하며 목사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심판의 날이 왔습니다. 돌아보니 주께서 나를 무덤에 던지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죽지 않고 살았나이까? 나 같은 자를 위하여 하나님이 이미 그리스도의 무덤을 예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요나가 삼 일간 물고기 뱃속에 있듯이 그리스도가 삼 일간 땅속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생명을 주는 표적입니다. 그리스도의 무덤에 연합하여 날마다 말씀을 얻어먹었습니다. 심판의 말씀이오나 어찌 그리 달고 오묘했던지요? 그렇게 새 생명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신의 손이 함께 하심으로 오늘까지 18년간 생명의 교제를 계속합니다. 또 모든 성도 중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에게 그리스도의 품성을 전하게 하십니다. 다함이 없는 은혜 앞에 오늘도 오열합니다.

 

아버지... 그러나 요나의 마지막 고백이 내 심령을 찌릅니다, 무덤에서 다신 살아난 자, 어찌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세상 사람처럼 살리이까?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저버렸나이다. 나 역시 언제든지 그럴 수 있는 연약한 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말씀 앞에 엎드립니다. 저 옛날 시인의 고백처럼, 세상 사람들이 재물을 즐거워하는 것 이상으로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게 하소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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