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5일 목요일 묵상 (계 20:1-6)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의 시간을 사는 비밀; 십자가 사랑]
1.본문 말씀(계 20:1-6)
1.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이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년 동안 결박하여
3.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묵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4.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5.(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2.시작 기도
아버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오나 오늘 하루 영원에 잇대어 살게 하시오니 주의 인자와 성실하심이 참으로 크고 크나이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시간이옵니다. 항상 있고 변함없는 영원을 오늘도 사모하며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밤새 오염된 영혼을 주의 보혈로 정결케 하사 새 영과 새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잠시 잠깐 후면 다시 오실 주님을 오늘 말씀을 통해 보게 하옵소서. 높이 들리신 그리스도 주안에서 하늘에 앉히우는 영광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본문 주해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심은 사람에게 영생을 주어 함께 하시기 위함이었다.
사람은 땅의 먼지로 지음받았으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적 교제의 존재였다.
그런데 첫사람 아담이 불순종하여 하나님과 분리되는 죽음에 이르렀고 사탄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로써 아담 안의 모든 인간은 죄의 종이 되어 사망을 삯으로 받는 비참한 실존이 되었다.
사람은 불의하였으나 불의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은 창세전 약속인 영생을 위하여 아들을 보내실 것을 정하신 뜻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 사건을 통해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때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이로써 죄아래에 있던 모든 인간을 구원하여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을 내셨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담 안의 옛사람이 죽고 장사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되어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된 것이다(요 1:12).
하나님은 창세 이후 아담이 범죄한 즉시 인간의 시간 속으로 틈입해 오셔서 구원의 전략을 펼치시며 구속사를 완성해 가신다.
인간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만물위의 하나님이 구속사를 펼치시는 하나님의 행동하심의 결과이다.
인간의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은 결국 십자가 사건을 통해 사탄을 무력화 시켰다(골 2: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아담 안에서 이땅에 온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에서 떠나 사탄의 지배하에 죄의 종노릇하면서 사망을 삯으로 받는 비참한 운명에 놓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늘에 앉히운 그리스도 주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기에 더 이상 사망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오늘 말씀(계 20:1-6)은 완전히 결박되었던 사탄이 잠시 풀려나 ‘천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상을 다스리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거기에 제외됨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6절).
‘천년’의 기간은 하나님의 시간에서 잠시 허락된 한시적 시간이며 아직도 사망의 지배하에 있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한 시간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 가운데에 거하기를 바라신다(딤전 2:4).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 죄의 세력 사단을 완전히 무력화 시켰다.
믿는 자는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으며 날마다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4.나의 묵상
오늘도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시간이다.
변함없는 영원의 시간에서 잠시 허락된 한시적 인생을 살아가는 나그네 인생이 만물위의 하나님을 신앙함은 감당할 수 없는 지복이다.
물리적 시간이 아닌 항상 있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시간을 사는 것이 영생이다.
나는 그 ‘영생’을 참으로 오해하였다.
탄생과 죽음 사이의 허무한 인생에서 의미있고 보란듯한 삶을 살기 위해 예수를 믿었다.
정말 보란듯한 인생이 이런 것임을 보여주는 모델이라도 된 듯이 열심을 내어 살았다.
내 인생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잊고 내가 주체가 되어 심지어 하나님과 말씀까지 이용하였다.
내 안에 내 인생을 살아갈 자원이 없음을 알지 못하였다.
오히려 열심을 내어 살수록 죄의 종노릇이며 사망에 속한 자였음을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과 분리된 아담 안에서 영적으로 죽은 자로 살면서 둘째 사망에 지배를 받는 자였다.
그런 나를 하나님이 구원하시려고 공의의 심판 속에 던지셨다
티끌과 재 가운데 던져진 채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 참 하나님을 갈망하게 하셨다.
그리고 때가 되어 하늘의 하나님을 만나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는 예수님이 나의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셨다.
비로소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 만물 안에서 신앙하는 나의 비참함이 드러났다.
말씀의 빛 앞에서 나의 어둠과 죄악이 수도 없이 드러나니 나는 십자가에 죽기에만 합당한 자였다.
그런 나를 위해, 내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나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오늘 내가 여기에 있음을 알게 하셨다.
아~내가 무엇이기에...
버림받을 것 외에 받을 것이 없는 자에게 어찌 이런 사랑을 베푸시는가...
날마다 아버지의 성실을 힘입어 말씀 앞에 머무르며 나의 비참함을 발견하지만 그런 나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용납받는다.
흑암과 사망에서 신음하던 자가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자유와 기쁨을 주신다.
그 사랑에 매여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게 하신다.
복음을 통해 생명으로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는 가운데 지난 4월 중병이 발견되고 수술과 치병하며 벌써 8개월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 얻은 증거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삶의 실제로 나타난다.
‘암’이라는 무서운 질병에 매인다면 나는 여전히 사망에 매여있는 자이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나를 아들 안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셨기에 질병에 매이지 않고 치병하며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돌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병자들과 함께 복음을 나누고 생명으로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날마다 말씀 앞에 머물며 복음을 통해 생명을 누리며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증거가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내 삶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신 증거이다.
주님이 이미 앞서 가시고 나는 따라갈 뿐이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나 생명길이며, 진리의 길, ‘꽃길’이다.
더 이상 둘째 사망이 다스릴 권세가 없는 길이다. 할렐루야!
5.묵상 기도
아버지, 예수를 믿고 예수집 사람이 되고 교회 안에서 열심을 내어 충성봉사하였어도 여전히 사망의 지배를 받던 자였습니다.
열심을 내어 섬길수록 곤고와 환난이 그치지 않고 이중적이 되어가는 나를 죄책하며 살았습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신음하며 어둠의 터널을 지나던 자였습니다.
그런 나를 불쌍히 여겨 공의의 심판 속에 던지시고 믿음으로 꽃길을 가는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꽃길은 자기가 원하는 인생이나 믿음으로 가는 꽃길은 십자가의 길이며 생명의 길, 진리의 길임을 이제 아나이다.
더 이상 사망이 다스릴 권세가 없고 천년이 하루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길,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길임을 이제 아나이다.
아버지, 아들의 십자가 사건에 연합하는 믿음을 통해 고아와 객과 과부와 같이 사망의 길에 있던 자를 생명으로 옮기는 크신 일을 행하셨습니다.
만물 안에 갇혀 있던 나의 눈을 열어 만물위의 하나님을 보게 하시오니 이제 날마다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는 아들됨의 자격을 주시오니 감사합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속에서 맞이하는 하루가 천년 같음은 영원에 잇대어 사는 기쁨이 한량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오늘 한날도 하늘의 기쁨으로 넉넉히 감당하게 하소서.
만나는 이들과 복음을 나누며 생명으로 사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모두가 연약하고 병든 자들이오니 불쌍히 여기사 가난한 심령을 주옵소서.
주께서 앞서 행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