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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her(2012.1~2021.1)

접붙임을 받은 가지; 날마다 생명의 말씀에 붙들려 믿음으로 서있게 하소서!(롬 11:11-24)

작성자Esther|작성시간20.08.18|조회수204 목록 댓글 0

2020818일 화요일 묵상(11:11-24)

 

[접붙임을 받은 가지; 날마다 생명의 말씀에 붙들려 믿음으로 서있게 하소서!]

 

1.본문 말씀(11:11-24)

11.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하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13.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6.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그러면 네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23.그들도 믿지 아니하는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2.시작 기도

아버지, 오늘도 영원에서 허락된 하루를 맞이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살아있음이 은혜요 행복인 것은 아들의 생명을 얻어 살게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함이옵니다.

오늘도 내가 있을 곳은 아들이 있는 곳, 아버지의 품속이오니 말씀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염된 영혼을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하사 새 영과 새 마음이 되게 하소서.

오직 주의 영을 부으사 진리를 알게 하시고 창세전 약속된 아들 안의 생명을 얻어 아들됨의 영광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소서.

아들을 통해 아버지께 가오니 받아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본문 주해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다(1:2).

그러므로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의 메시아적 행위로써 네가지 십자가 사건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다윗의 혈통에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죄사함과 영생의 구원을 성취하셨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 올리사 통치권을 행사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하시고, ‘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복음에 복종하여 죄사함과 영생의 구원을 얻음이 참신앙이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며,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된다.

복음의 목적은 창세전 약속인 영생을 얻게 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게 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자를 구원하여 믿음의 의를 가져왔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믿음의 의를 저벌고 율법의 의를 고수하여 불신앙의 죄악에 이르렀다.

그러나 하나님은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처럼 끈질긴 구애를 하며 내가 여기있노라종일 손을 벌리신다.

바울은 동족 유대인들의 불신앙을 탄식한다.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의 상황을 생각하며 남은자의 약속으로 위로를 받는다.

은혜로 택함받은 남은 자들이 있다.

여전히 율법의 의를 고수하는 유대인들은 구원에서 배제되어 완악해짐으로 영이 혼미해져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자기의 경건함으로 구원받고자 하여 은혜를 멸시하는 불신앙의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바울 자신의 답변은 그들이 버림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이 완악해졌다는 것이다.

믿는 남은 자들이 있으나 대다수의 다른 사람은 완악해진 것이 유대인의 현재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걸려 넘어져 완전히 쓰러져 망하게 되었는가 다시 질문한다(11).

바울의 대답은 결고 그럴 수 없다’(Not at all!)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타락을 통해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렀다.

이러한 이방인의 구원은 이스라엘을 시기하게 만들어 그들이 회복되도록 한다.

이스라엘의 충만(회복)은 세상에 훨씬 더 많은 부요함을 가져올 것이다(12).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부했고 이방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이방인의 구원을 이루는 계기로 삼으셨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구원의 복을 누리는 것을 보는 이스라엘이 시기가 나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라고 밝히면서 그 직분의 영광스러움을 말한다.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14)

그러므로 유대인과 이방인은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실패(불신앙)를 거울삼아서 믿음의 의를 지킬 것이다.

이스라엘의 충만함이 이방인들에게 가져올 훨씬 더 큰 부요함’(12)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15)라고 대답한다.

이스라엘의 넘어짐, 실패는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는 이유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

이스라엘의 충만함이 이방인들에게 가져올 훨씬 더큰 부요함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그것은 복음을 통해 생명으로 사는 영생의 현재성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몸의 구속을 바라는 죽은 자의 부활까지 의미한다.

이 상상할 수 없는 복이 이방인들을 부요하게 해줄 것이다.

아담 안에서 영적으로 죽은 자였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어 새생명으로 사는 복을 현재에서 누릴 뿐만 아니라 종말에 완성될 몸의 부활까지 확증하게 된 것이다.

 

맏물로 바치는 빵반죽 덩어리가 거룩하면 남은 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도 그러하다”(16).

맏물뿌리는 믿음의 의를 받아들인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이다.

거룩하다는 하나님께 바쳐져서 구별되었다는 의미이다.

약속의 말씀을 믿어 의롭다 함을 얻은 언약백성이 하나님께 속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 언약에 포함된 그들의 자손들도 그러하다.

 

바울은 감람나무의 비유를 통해 좀더 자세히 설명한다.

참감람나무는 이스라엘이며 돌감람나무는 이방인이다.

가지가 꺾인 참감람나무는 믿음의 의를 거절한 이스라엘이다. 그들로 인해 그 자리에 돌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이 접붙임이 되어 이스라엘 조상들의 믿음의 의에 참여하게 되었다(17).

그러니 본래가지들을 향하여 우쭐대지 말아야 한다. 그 이유는 가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가지를 지탱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18).

, 그들의 믿음의 뿌리는 구약에서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은 아브라함에서 시작된다.

그 뿌리라 지탱해주는 가지가 된 이방인들 역시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기 때문에 믿음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다.

그러므로 본래의 가지가 잘려나간 것은 그 자리에 내가 접붙임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었다하고 말해야 할 것이다(19).

이스라엘이 불신앙으로 인해 가지가 잘린 것은 믿어 의롭다 여김을 받은 이방인들을 그 자리에 접붙임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높은 마음을 품지말고 도리어 두려워할 것이다(20).

하나님이 본래 가지도 아끼지 않으셨으니 접붙은 가지도 아끼지 않으실 것이다(21).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생각해 볼 것이다. 하나님은 불신앙의 사람들에게 준엄하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이 인자하심을 베푸신다. 그렇지 않으면 찍힘을 당한다(22).

그러나 불신앙으로 인하여 잘려나갔던 가지가 믿게 되면 그 가지들도 접붙임을 받을 것이다. 접붙이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다(23).

본래 돌감람나무였으나 본성을 거슬러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다면 본래 가지였던 이스라엘이 자기 나무에 다시 접붙임을 받는 것이야 얼마나 쉽겠는가?(24)

 

구원은 창세전 약속된 아들 안의 생명을 얻는 것이다(1:2).

창세전 생명의 약속은 아담의 창조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생명을 얻은 구원은 창조때부터 시작되고 확립된 것이다.

그런데 아담이 생명을 얻기 전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나 죄가운데 머물렀다.

아담의 실패가 하나님의 약속을 폐기하지 못한다.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창세전에 주시기로 하신 영생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여자의 후손과 가죽옷으로 예표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메시아적 행위로써 복음이 선포되었다(3:15,21).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아들에 대한 약속을 이어가시면서 구속의 전략을 펼치셨다.

아벨, 에녹, 노아에 이어지는 원시역사(4~11),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말라기까지의 이스라엘 역사(12~말라기)를 통해 구원의 경륜을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역사를 떠나서는 구원이 존재할 수 없다.

구원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약속을 성취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그의 권리를 확립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죄사함과 영생의 구원이 성취되었다.

이제 아들을 믿어 그의 죽으심과 장사됨과 부활에 연합되면 새생명을 얻어 아들됨의 영광을 누린다.

아들됨의 영광은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그리스도의 머무는 묵상을 통해 확증된다.

매일 아들을 통해 아버지께 나아가는 파레시아를 준행할 때 믿음의 의를 저버리지 않고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간다(2:12).

이것이 믿음으로 서는 것이다(20).

믿음으로 서있을 때만 믿음의 효력이 발생하여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지속하게 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의를 통해 얻는 구원의 실제는 매일 아들을 통해 아버지께 나아가는 파레시아를 준행함으로 가능하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고 그리스도 안에 진입한(getting in)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staying in) 지속성이 있어야 믿음으로 서있게 된다.

그것은 날마다 생명의 말씀에 붙들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됨과 부활에 연합하여 지상적 현실을 넉넉히 감당하게 하는 믿음의 연단을 낳게 한다(5:1-4).

 

 

4.나의 묵상

나는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5:39; 3:13-15; 4:25-5:4; 1:2-4; 고전 15:3-5)에 무지하였다.

더구나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구속사를 펼치시는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다.

그러니 내가 접붙임을 받은 가지인 줄도 알지 못하였고 원가지인 이스라엘을 통해 구속사를 펼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도 알지 못하였다.

구원이 창세전 약속된 생명을 얻는 것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니 파편적 복음을 듣고 만물 안에서 하나님을 신앙하는 이교도와 다를바 없는 자였다.

원가지였던 이스라엘도 불신앙으로 인해 가지에서 꺾임을 당한 하나님의 준엄하심 앞에 두려워하기만 하였지 창세전 약속하신 영생을 주시기까지 신실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알지 못하였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율법의 행위에 치중하며 하나님의 눈치를 보던 불쌍한 자였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니 생명과 평안이 없이 죄의 종노릇하며 사망의 골짜기에 던져졌다.

그곳에서 목이마르고 주린 자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가 되었다.

그때 야곱의 우물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생수의 복음을 계시하시고 만물위 하나님을 신앙하는 참신앙의 길로 인도하셨다.

화들짝 놀라 날마다 말씀 앞으로 달려갔다.

그때마다 말씀이 나의 비참한 실존을 드러내었으나 그런 나를 위해 이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다시살리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알게 하셨다.

그 사랑과 능력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아들됨의 영광을 주신다.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구원을 성취하신 하나님은 만민이 구원을 받고 진리 가운데 이르기를 원하신다

이는 창세전 약속하신 영생을 주시기 위한 구원을 성취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그 사랑을 알고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자는 날마다 생명의 말씀에 붙들려 믿음에 서있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간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에 이른 자의 일상은 매일 그리스도안에 머물며 그리스도로 사는 생명의 삶을 이어가야 한다.

믿음으로 서있을 때만 믿음의 효력이 발생하여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찌 높은 마음을 품겠는가?

도리어 두렵고 떨림으로 생명의 말씀에 붙들려 살되 생명에 빚진 자가 되어 주와 복음을 위해 드리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한다.

 

 

5.묵상 기도

아버지,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에 무지하였습니다.

접붙임을 받은 가지로 사는 은혜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구속사를 펼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도 알지 못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치중하는 자, 불신앙의 극치에서 공의의 심판을 받았나이다.

심판의 자리에서 가만히 나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아닌 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나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런 내가 무엇인가를 행하여 의롭게 되고자 할수록 사망가운데 처해지는 곤고한 자였습니다.

그런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긍휼을 베푸시고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한 것은 결국 창세전 영생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행동하심이었습니다.

구약에서 증거하는 하나님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영생을 주시기 위함인 것을 복음을 듣고서야 알게 하셨습니다.

 

아버지, 이제 구약에서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생명을 주신 새언약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매일 말씀 앞에서 나의 비참성을 발견하지만 그런 나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함께 죽고 장사되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살리심을 얻습니다.

나는 없고 그리스도로 사는 새생명의 삶을 누리게 하시니 하루가 참으로 소중합니다.

 

아버지, 원가지의 불신앙으로 접붙임을 받은 은혜로 하루를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뿌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은 아브라함에게 있으며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한 아들에게 있음을 아나이다.

새언약 안에서 머물며 새언약 백성이 되어 오늘도 아버지 품에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새생명 가운데 행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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