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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her(2012.1~2021.1)

사나 죽으나 오직 주를 위하여 살며 날마다 하나님께 내자신을 직고하게 하소서!(롬 14:1-12)

작성자Esther|작성시간20.08.25|조회수241 목록 댓글 0

20208우러 25일 화요일 묵상(14:1-12)

 

[사나 죽으나 오직 주를 위하여 살며 날마다 하나님께 내자신을 직고하게 하소서!]

 

1.본문 말씀(14:1-12)

1.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어떤 사람은 이날을 저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2.시작 기도

아버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지나가는 인생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은혜 아래에 머물게 하셨나이다.

티끌과 먼지요 안개와 그림자 같은 인생에게 베푸신 주의 은혜가 한량없으시나이다.

하오나 간혹 나의 존재됨을 잊어버리고 본성대로 행하려는 자이오니 또한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있을 곳은 아들이 있는 곳, 아버지의 품속이오니 오늘도 아들을 통해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오염된 영혼을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하사 새 영과 새 마음이 되게 하소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으사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알게 하소서.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 가오니 은혜의 보좌에 이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본문 주해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하심으로 창세전 약속하신 영생을 주시는 구원을 성취하신 변함없는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구원얻은 그리스도인은 그 사랑에 기초하여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린다.

이제 바울은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실제로 무슨 의미인가에 대해 긴 예를 든다.

그것은 바울이 연약한 자강한 자라고 부르는 로마의 기독교 공동체 내에 있는 두 집단과 관련된다.

 

바울은 믿음’(faith)의 연약함을 먼저 언급한다(1).

그것은 어떤 사람의 믿음이 어떤 것들을 하도록 허용하는 확신의 연약함이다.

, 우유부단과 망설임으로 가득차 있는 그리스도인을 연상할 수 있다.

여기서 믿음확신을 의미하는데, 연약하고 미성숙하고 가르침을 받지 못하여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때문에 그들이 무시되어서도 비난받아서도 교정받아서도 안되고 오히려 교제권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는 따스함과 친절함으로 교제권에서 받아들이고 환영하라는 말이다.

 

바울은 연약한 자와 강한 자가 서로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첫 번째 실례로 음식물 규정의 문제를 다룬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는다(2).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된 자유는 음식에 대한 불필요한 망설임에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자도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서로를 생각해야 하는가?

먹는 자(강한 자)는 먹지 않는 자(연약한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 것이다(3).

강한 자는 연약한 자의 연약함(망설임)을 업신여기기 쉬우며, 연약한 자는 강한 자들이 이스라엘의 유서깊은 전통을 버렸으므로 정죄를 받아 마땅하다고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업신여기고 판단하는 것이 잘못된 이유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기때문이다(3).

하나님이 받으신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거부하겠는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맡겨두는 것이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받으신 사람을 거부하는 일은 주인과 하인의 관계에 참견하는 것만큼이나 부적절하다(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행동이 어리석은만큼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의 사이에 끼어들어 그리스도가 차지하는 위치를 빼앗을 권리가 없다.

 

바울은 강한 자와 연약한 자의 관계에 대한 두 번째 실례로 특별한 날을 준수하는 것과 준수하지 않는 것을 들고 나온다.

그날은 주간 혹은 월간 혹은 연례적인 축제일이나 금식일 등의 유대명절이다.

어떤 사람(연약한 자)은 이날을 저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강한자)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5)

강한 자는 음식을 구분하지 않듯이 날들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 것이다’(5).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 그 중심에 주를 위하여하는데 있으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6).

이땅에서 우리가 살고 죽음이 오직 주를 위한 것이면 된다(7-8).

왜 그런가?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9)

그리스도인 각자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됨과 부활에 연합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자가 되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러니 그 누구도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인하여 무시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10)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모두의 주가 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형제가 될뿐 오직 주님은 그리스도 한분뿐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10).

하나님만이 재판관이시고 우리는 아니다.

우리에게는 판사석으로 올라가 우리 동료들을 피고석에 세워 판결을 내리고 선고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바울은 이것을 확증하기 위해 이사야 45:23의 말씀을 인용한다(11).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그러므로 우리 각자가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해야 할 것이다(12).

 

하나님의 구원대상은 만민이다.

이는 창세전 영생을 약속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다.

비록 첫사람 아담이 영생을 얻기 전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떠나 죄가운데 빠졌으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죄사함과 영생의 구원을 위해 여자의 후손과 가죽옷으로 예표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시고 인간의 역사 속에서 구원의 전략을 펼쳐가신다.

영혼구원은 양과 같은 우리가 아들의 생명(영생)을 얻고 더 풍성히 누리는 것이다(10:10).

때가 되어 하늘에서 오신 인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 구원을 성취하셨다(3:13-15).

이제 누구든지 아들을 믿어 영생을 얻고 현재에서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

생명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사는 자이다.

그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

그의 삶에 있어 동료 그리스도인들은 형제자매이며 지체이다.

업신여기거나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함께 섬길 대상이다.

서로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며 교회를 세워가는 주의 일에 힘쓰는 동역자들이다.

그러므로 어찌 어떤 것들을 허용하도록 하는 확신(믿음)에 대하여 논쟁하겠는가?

아들의 희생으로 인해 하나님이 받으신 그들을 서로 존중하고 받아들임이 마땅하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임을 잊지 말 것이다,

다만 날마다 말씀 앞에서 각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해야 한다.

 

4.나의 묵상

나는 믿음의 연약함과 강함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였다.

사실 믿음이 무엇인지 무지하였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어떤 일에 대해 허용하는 확신의 정도이다.

나는 처음부터 믿은 자가 아니라 고2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대학4학년때 예수님을 영접하여 본격적으로 교회생활을 하였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충성봉사하는 일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며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새벽기도는 물론 교회의 거의 모든 예배와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였고 주도하여 사역을 진행하였다.

그렇게 열심을 내니 그렇게 하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니 내가 원하던 신앙생활이 아니라 종교생활로 치달으며 부르짖는 만물 안의 신앙으로 내려갔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생각하며 참하나님을 알고싶다는 갈망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말씀으로 살아야하는 것은 당연히 알겠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 여전히 사역에 치우치며 행하는 자가 되었다.

사역도 처음에는 신선했으나 시들해졌다.

그때즈음 주님의 은혜로 만물위의 하나님을 알게 하는 영생의 복음이 계시되었다.

만물 안에 매여 하나님을 신앙하던 나의 연약함이 드러났다.

만물위의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됨에 감사하며 아들됨의 영광과 자유함으로 사는 은혜를 주신다.

그 자유함으로 나는 서서히 강한 자가 되었다.

~그런데 내 안에 연약한 자들에 대한 업신여김이 생긴다.

그들모두 하나님이 받으신 자들인데...내가 뭐라고..부끄럽고 할말이 없다.

다만 내가 할 일은 날마다 말씀 앞에서 하나님께 내자신을 직고하는 일이다.

그것만이 내가 할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가 되어 주를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다.

 

 

 

5.묵상 기도

아버지, 연약한 자로 살면서 강한 자를 판단하던 자였습니다.

만물 안에서 신앙하던 자였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새벽기도회부터 시작하여 교회의 모든 예배와 행사에 빠지면 큰일나는 줄 알았던 연약한 자입니다.

그런데 주님 은혜로 생명의 복음을 알고 생명으로 살면서 진리 안에서 자유한 자가 되었나이다.

강한 자가 되어 감사감격하는데 내안에 연약한 자를 업신여김이 있나이다.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 모두를 위하여 하나님이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다 받으셨는데..

다만 내가 할 일은 날마다 말씀 앞에서 내자신을 직고하는 것임을 잊었나이다.

 

아버지, 다만 불쌍히 여기소서.

요즘 치병중에 몸상태가 왔가닸다 하나이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참된 인생으로 인도하소서.

오늘도 모든 일상이 주를 위한 것이 되게 하소서.

주안에서 새날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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