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13일 금요일 묵상 (고전 4:14-21)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다!]
1.시작 기도
아버지, 자고 깨는 이 아침 눈을 들어 만물위의 주를 바라보나이다.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시고 생성하시고 활동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이니이다.
아버지의 성실하심을 힘입어 말씀 앞에 나왔사오니 주의 보혈로 정케 하사 새 영과 새 마음이 되게 하소서.
주없이 아무것도 아니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를 불쌍히 여기사 주의 영을 부으시고 진리를 알게 하소서.
오직 아들을 힘입어 가오니 아버지 집에 이르러 안식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본문 내용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을 전하여 고린도 교회를 세웠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사람지도자를 따라 분파가 생기고 이로 인해 시기와 분쟁을 겪고 있다.
그들은 세상의 지혜로 판단하며 교만하여졌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그들이 십자가의 삶을 저버렸다.
반면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고난에 참여하며 그들 보기에도 비참한 자로 살아간다.
바울이 이것을 말하는 것은 그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14절)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지도자가 있으나 아버지는 많지 않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그들을 낳은 아버지와 같다.(15절)
바울은 그들을 자녀를 둔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권면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그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한다.(I urge you to imitate me.)(16절)
이런 이유로 바울은 그가 사랑하고 주안에서 충성된 디모데를 그들에게 보낸다.(17절)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바울의 삶이 모든 교회에서 가르친대로 살아가고 있음을 그들에게 생각나게 할 것이다.(17절)
어떤 이들은 바울이 그들에게 가지 않을 것처럼 해서 교만하여졌다.(18절)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바울은 이제 곧 그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 그러면 교만한 자들의 말이 얼마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인지 밝혀지게 될 것이다.(19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살아내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20절)
그들이 바울에게 원하는 것이 징계인가 아니면 사랑과 온유한 마음인가 선택할 것이다.(21절)
바울은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고린도 교인들을 자녀와 같이 대하고 있다.
아버지의 심정으로 그들을 권면하고 책망하며 사랑으로 대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지금 하나님 앞에서 멀리 가 있는 듯이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바울 자신의 삶은 그들이 본받을 만하다.
십자가의 고난을 따라 비참하게 살고 있는 사도의 현실이 세상기준으로 판단하는 일부 교만한 자들의 눈에는 부끄러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자신의 삶이 모든 교회에서 가르친대로 살아가는 것임을 분명히 말하며 디모데에게도 그것을 말하게 하여 사도됨을 입증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연합하는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을 얻어 살아가는 하늘에 속한 자이다.
그러므로 땅에 속하여 살아가는 세상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회에 있으나 여전히 세상기준을 따라 말하는 교만한 자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을 말하고 그 삶에서는 하나님의 능력대로 살지 않는다.
바울은 그것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삶에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아들을 장사한지 3일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다.
그러므로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됨에 연합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사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을 얻어 새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는 더 이상 땅에 속한 자가 아니며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 주안에서 천상적 실존으로 지상적 현실을 능히 견디고 이겨나간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3.나의 묵상
바람이 분다. 4월의 날씨치고는 쌀쌀하다.
어제는 바람으로 인한 열기구 사고로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하루하루의 삶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외침과 권면이 울림이 되어 나를 정신차리게 한다.
이시대 어느 누가 이처럼 아버지의 마음으로 복음의 본질을 말하고 생명으로 살아내야 함을 전할까?
나도 교회 안에 있었으나 삶으로 살아내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한 생명의 삶을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죽어서 가는 좋은 곳이라 여기면서 이땅에서의 보란듯한 삶을 구하였다.
세상기준과 다를 바 없는 교회의 기준에 따라 살며 표류하는 배와 같았다.
풍랑을 만났으나 안착할 항구를 찾지못해 표류하는 난파선에서 부르짖는 자가 되었다.
예수님은 풍랑을 만나 우왕좌왕하며 죽게되었다고 소리치는 제자들을 향하여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지 않았는가?
나도 그들처럼 믿음없이 행하며 부르짖으며 목이말랐다.
말로는 무엇이라도 될 것처럼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니 죽을 것 같았다.
주리고 영혼이 피곤하여 죽게 되었다.
그런 나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이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의 복음을 듣게 하셨다.
창세전 아들과 아버지와의 사귐 가운데로 나아가게 하시는 생명의 복음이 진리로 계시되었다.
진리의 말씀 앞에 나아가니 예수믿고 교회 안에 있어 열심을 내어 봉사하고 사역하는 자였으나 여전히 하나님과 분리된 아담안의 실존으로 사는 자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연합하여 죽고 장사됨으로써 육신이 불구가 되고 자기주장의지가 죽음으로 나는 없고 그리스도로 사는 생명의 삶이 없었던 것이다.
말씀 앞에 드러난 나의 모습은 나도 용납할 수 없는 패역한 자였으나 그런 나를 위해 이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납받는 자 되었다.
징계의 매를 드셨으나 그보다 더 큰 사랑과 온유함으로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날마다 내게 실제가 되어 죄사함과 영생의 구원의 감격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오늘도 그 사랑에 감격하며 하루를 맞이한다. 할렐루야!
4.묵상 기도
아버지, 어느새 4월 중순입니다. 바람이 부니 아직은 쌀쌀하지만 이또한 지나가고 점점 더워지겠지요?
지나온 세월 돌아보니 어느것 하나 주의 손이 안미친 곳이 없나이다.
존재하시고 생성하시고 활동하시는 아버지의 신실하심으로 오늘의 내가 여기에 있음을 아나이다.
복음을 들었으나 여전히 땅에 매여 만물안에서 신앙하던 자를 매로 징계하심은 더큰 사랑과 온유함을 알게 하시려는 아버지의 행동하심이었나이다.
아버지, 나같은 자가 무엇이기에 이 사랑 알게 하시며 날마다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시는지요?
아무것도 아닌 자로되 내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나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함입니다.
아버지, 이제 날마다 말씀 앞에서 주의 손에 붙들려 생명의 양식을 먹여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복음을 통해 생명으로 사는 능력에 있음을 아나이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아들을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으로 인함인줄 아나이다.
아버지, 바람이 부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도 그러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의 종말의 시대에 날마다 말씀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증거는 눈에 잘 보이지 않으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만물위 영원의 주와 함께 걸어가는 일상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영생의 실재입니다.
오늘도 그 크신 사랑 안에서 하루를 맞이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에 있지 않고 능력으로 살아내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하루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