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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2024)

‘표적’이 지시하는 계시, 복음을 믿어 생명에 이르다(왕하 6:1-7)

작성자굿뉴스|작성시간24.07.01|조회수170 목록 댓글 1

‘표적’이 지시하는 계시, 복음을 믿어 생명에 이르다(왕하 6:1-7)

1. 오늘의 말씀 : 왕하 6:1-7

1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2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3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

4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5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6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7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2024년 후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이 다 구원받기까지 역사를 진행하십니다(7:1-2). 종말을 앞질러 사는 믿음으로 깨어 있게 하소서. 내 눈 속의 들보를 보지 못하면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가 크게 보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부조리의 인생이라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오니, 다른 사람은 상관하지 말고 부르신 자리에서 충성하게 하소서.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멍에를 메고 내게 주신 짐을 감당하게 하소서. 주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습니다(11:29). 말씀 앞으로 가오니 내 영혼을 보혈로 정케 하소서. 진리의 영이시여 말씀을 조명하사 우둔한 자로 깨닫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엘리야는 독자적으로 사역했다면, 엘리사는 선지자의 제자들과 함께 사역하였다. 이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사역하신 것과 같다. 열왕기하 6장에서 엘리사의 사역이 계속된다. 1-7절은 선지자의 제자들이 집을 짓다 잃어버린 쇠도끼를 찾는 기적 이야기다. 8-23절은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을 때 엘리사가 그들을 물리친 기적이다. 6:24-7:2는 아람 왕이 사마리아를 포위하여 사마리아가 기근으로 고통받는 장면이다.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와 이곳은 선지자를 모시고 살기에 좁으니 요단으로 가서 더 넓은 거처를 짓자고 말한다(1절). ‘이곳’은 선지자와 제자들의 공동체가 있는 곳으로 요단강 근처, 곧 여리고 주변의 길갈 성소와 붙어 있는 곳으로 추정한다(그레이). 그런데 선지자의 제자들은 요단으로 가서 들보감을 각각 하나씩 가져다가 거처를 마련하자는 것이다(2절).

 

이때 제자 중 한 사람이 나서서 엘리사도 함께 갈 것을 청하니 엘리사가 그들과 함께 갔다(3절). 그들이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자르기 시작하였다. 선지자의 제자들이 요르단강 근처에서 벌목한 나무들은 무거운 목재라기보다는 가벼운 목재들이었다. 그리고 뜨겁고 건조한 요단 계곡에 작은 집을 짓는 데 무거운 목재들은 필요하지 않았다.

 

요르단강 둑에는 버드나무, 위성류, 아카시아, 그리고 플라타너스가 우거져 있다(그레이). 이러한 나무들이 밀림을 이루고 있어서 구약성경에서는 이곳을 들짐승들, 예컨대 사자의 서식지(렘 49:19; 50:44)로 부르고 있다.

 

그때 한 사람이 들보감을 찍다가 쇠도끼를 물에 빠뜨렸다. ‘쇠도끼를 물에 빠뜨렸다’를 직역하면 ‘쇠가 물에 빠졌다’이다. 그러자 그는 당황하여 부르짖었다. “아이고, 선생님, 이것은 빌려 온 도끼입니다”(5절). 당시 도끼는 귀중한 도구였으며, 새로운 도끼를 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그에게 “어디에 빠뜨렸느냐”라고 물었다. 그 사람이 쇠도끼 빠진 곳을 알려주니,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서 그곳에 던졌다. 그랬더니 도끼가 떠올랐다(6절). 엘리사가 “그것을 집어라”라고 말하니, 그가 손을 내밀어 그 도끼를 건져 내었다(7절).

 

엘리사의 기적은 마치 마술을 보는 것 같다. 학자들은 쇠도끼를 물에 뜨게 한 기적의 사실적 기반을 추론하였다. 즉 엘리사가 긴 장대 혹은 막대기를 가지고 도끼를 잃어버린 사람이 알려준 곳을 더듬어 마침내 도끼 자루를 끼는 구멍에 막대기를 집어넣는데 성공하였거나, 혹은 그 도끼 머리를 진흙 바닥으로 옮겨 그 사람에게 그것을 찾을 수 있게 하였다는 것이다(그레이).

 

또 중요한 것은 기적의 과정보다 기적이 주는 교훈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도끼를 잃어버린 제자가 엘리사에게 호소했더니 엘리사가 기적적으로 도끼를 찾아주어 그의 믿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여 그 도끼가 어떤 방법으로 찾아졌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은 부분에 대한 추측은 억지이며 오류이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은 그를 통해 초자연적 기적을 베푸셨다. 쇠도끼를 건져 낸 것도 분명한 하나님의 기적이다. 엘리사는 여러 기적을 수행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담지한 선지자가 분명하다. 그러면 엘리사가 수행한 기적이 주는 영적 의미가 무엇인가?

 

‘기적’의 일반적 정의는 자연의 법칙과 모순되는 사건이다. 기독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에서 기적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기적’(헬, 테라스)은 놀라운 일, 기적, 기사 등과 같은 표현이다. 신약성경에서 ‘표적’(헬, 세메이온)은 기적의 종교적 의미를 지시한다.

 

기적은 부조리의 정도가 클수록 종교적인 가치가 크다. 병자를 고치는 기적보다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이 더 큰 가치가 있다. 절박한 문제에 대한 응답의 여부가 기적을 베푸는 신의 가치를 결정한다. 불임 부부가 교회에서 기도하여 효험이 없었는데, 불공을 드려 효험을 봤다면 불교를 더 크게 쳐주는 식이다. 특히 기독교 이단들은 귀신을 쫓아낸다는 명목으로 비합리적 기적 수행을 시도한다.

 

성경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은 ‘표적’(세메이온)이다. ‘표적’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나타나는 것이다(요 9:3). 곧 표적은 하나님의 계시 수단이다. 요한복음에서는 7개의 표적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는 오늘 엘리사의 기적과 같이 제자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나타난 표적들이 있다(포도주 표적, 오병이어 표적, 물 위를 걸어온 표적).

 

분명 초자연적인 기적은 인간을 뒤흔드는 놀라운 사건이다. 그러나 존재의 신비를 지시하는 것이 없이 우리를 뒤흔드는 것은 기적이 아니고 마술이다(폴 틸리히, <조직신학>). 한편 사탄이 배후에 있는 악한 자는 능력이나 표적이나 거짓 기적을 행한다(살후 2:9).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거짓 기적은 기적 사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존재의 신비, 곧 하나님의 계시를 부인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결론은 표적이 나타내는 계시를 말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하지 않은 다른 표징(세메이온)도 많이 행하셨다. 그런데 여기에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 20:30-31).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임을 믿게 하려함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인 것은 ‘복음’이다(막 1:1; 롬 1:2-4). 예수의 표적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임을 계시하며, 그 계시(복음)를 믿어 ‘생명’을 얻는 것이다. 곧 예수가 행하신 표적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믿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표적이 지시하는 하나님의 신비로서 계시이다.

 

표적은 감각과 지각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표적이 ‘지시하는’ 하나님의 계시(신비)는 오직 영으로 안다. 그러므로 영이 알려주지 아니하면, 예수 당시 많은 무리처럼 감각과 지각으로 표적을 대할 뿐 표적이 지시하는 복음과 그 목적인 생명에 이르지 못한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보내시는 진리의 성령으로 우리는 표적이 지시하는 궁극적 계시를 알게 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일러주실 것이요,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요 16:13).

“그러나 성경에 기록한 바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 것들,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셨다’ 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시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살피십니다”(고전 2:9-10).

 

 

4. 나의 묵상

나는 오래도록 영적으로 눈먼 자였다. 감각과 지각으로 아는 기적을 추구하였다. 그것은 갑자기 임한 통치의 은혜가 계기가 되었다. 1990년 4월 5일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에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강력한 통치 은혜가 임하였다. 사탄에 매였던 자가 풀려났다. 방언을 비롯한 여러 가지 영적 체험을 하였다. 이후로 신앙생활에 반전이 일어났다. 맹렬한 열심을 보였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기적 자체였지, 표적이 지시하는 존재의 신비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다 보니 내게 나타난 기적이 재현되기를 바라며 열광주의에 사로잡혔다.

 

목마른 자가 찬물 더운 물 가리지 않듯, 기적을 행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쫓아다녔다. 한동안 할렐루야 기도원에 철야기도를 하러 다닌 적도 있다. 그곳은 여자 원장이 손으로 암 덩이를 꺼내 치료하는 것으로 소문났던 곳이었다. 물론 속임수였다. 그러나 전국에서 몰려온 무지몽매하고 절박한 신자들로 기도원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듬해 신년 초 축복 성회가 열렸는데, 그 원장은 100원짜리 동전을 주며 축복기도를 하였다. 동전을 지니면 일년동안 물질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들은 말씀이 있어서인지. 이것은 완전히 무속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후로 발길을 끊었다.

 

하지만 기적의 의미에 무지하니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요한복음을 수시로 읽었으나 육적 해석에 그치니 유아기적 신앙에 머물렀다. 하나님께 돌아서서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것에 종노릇 하였다. 경건의 모양은 갖추었으나 내면에서 목마름이 끝이 없었다. 거의 죽게 된 자리에서 주의 은혜가 임하였다. 공의로 심판하시고 무덤에 던지셨다. 그리스도의 무덤은 내게 표적이 되었다. 말씀의 빛이 비치고 영으로 복음을 통해 생명에 이르렀다.

 

기적은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불이 나면 구경꾼이 모이듯 사람들도 모여든다. 교회도 그러하다. 교회가 침체기이나 기적이 나타나고 열광적으로 예배하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인다. 지난주간 일본 사역에서도 경험한 바이다. 삿포로에서 소위 큰 교회들은 대부분 오순절 계통 교회이다. 사람들의 감정을 고양시키고 통성으로 기도하고 뜨겁게 찬양하는 교회가 부흥한다.

 

다음주간 있을 멕시코의 기독교 상황도 비슷하다. 남미는 가톨릭 국가이다. 십수년 전부터 개신교가 부흥된 것은 열광적인 오순절 교회로 말미암았다. 그러다 보니 타 교단이라도 오순절 교회의 신앙 내용을 추구한다고 한다. 물론 나의 경우만 보아도 기적은 신앙의 반전을 가져오는 축복된 사건이다. 그러나 내가 그러하였듯이 표적이 지시하는 존재의 신비를 알지 못하면 결국 기독교는 미신적 종교로 추락한다. 내게 주신 은혜가 표적 자체에 머문 이들에게 베풀어지기를 간구한다. 표적이 지시하는 계시, 곧 복음을 통해 생명 얻는 역사가 복음을 듣는 교회에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엘리사는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기적을 행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그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리하여 곤경에 처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권위를 나타냅니다. 엘리사가 예시하는 그리스도 역시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는 제자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존재의 신비를 지시하지 않는 모든 기적은 신자를 미혹하는 마술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제게도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초자연적인 통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러나 표적이 지시하는 하나님의 계시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기적 자체에 열광하는 신앙이었습니다. 무지몽매한 자, 기적을 행하는 자들을 찾아 이곳저곳을 유리방황하였습니다. 또 신자들에게 기적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서서 기적을 따르던 자를 공의로 심판하셨습니다. 최후의 표적인 그리스도의 무덤에서 생명을 얻었습니다.

 

아버지... 기독교 안에서도 여전히 신자들은 기적에 열광합니다. 불난 데 사람들이 모이듯, 기적을 구하는 교회에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표적이 지시하는 계시를 알게 하소서. 설령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영으로 계시를 알게 하소서. 그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를 믿어 영생을 얻고 더 풍성히 누리는 것입니다. 지난주간 사역한 일본교회가 그리되길 바라고, 다음주간 멕시코 신학교 사역도 그리되길 간구합니다. 교회마다 영의 눈을 떠서 표적이 지시하는 계시를 알게 하소서. 복음을 통해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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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답터 | 작성시간 24.07.03 아멘~ 표적이 지시하는 신비를 오직 영으로 깨달아 알기 원합니다. 나의 감각과 지각의 인식으로 궁극적인 계시를 알지 못하며 성령이 모든 것을 살피시는 오직 그의 영을 통하여 계시를 보고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 살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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