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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2024)

'순진한 무사유'. 생각 없이 순응하는 자의 결말(왕하 1:9-18)

작성자굿뉴스|작성시간24.06.20|조회수182 목록 댓글 3

'순진한 무사유'. 생각 없이 순응하는 자의 결말(왕하 1:9-18)

1. 오늘의 말씀 : 왕하 1:9-18

9 이에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 본즉 산 꼭대기에 앉아 있는지라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10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1 왕이 다시 다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니 그가 엘리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니

12 엘리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3 왕이 세 번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보낸지라 셋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 앞에 이르러 그의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14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전번의 오십부장 둘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매

15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엘리야가 곧 일어나 그와 함께 내려와 왕에게 이르러

16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의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안 계심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니라

17 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둘째 해였더라

18 아하시야가 행한 그 남은 사적은 모두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 시작 기도

아버지!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러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 오직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116:3-4). 내 영혼을 사망의 고통에서 건지소서. 주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십니다. 인간의 법정에서는 악인을 정죄하고 의인을 의롭다고 하십니다(25:1).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악인이라도 정죄 받지 않고 의롭다고 여기십니다(3:24). 비록 사람은 정죄하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정죄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이 은혜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않게 하소서. 오늘도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갑니다. 내 영혼을 보혈로 정케 하소서. 진리의 영으로 말씀을 조명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열왕기하 1장은 아합의 왕위 계승자 아하시야의 통치기를 기술한다. 본 장에서는 아하시야가 어떻게 통치했느냐보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아하시야는 악한 왕 아합을 따라 범죄하였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있었다(왕상 22:53). 그에게 심판의 재앙은 이미 예견된 것이다.

 

아하시야가 왕궁의 다락에서 추락하여 크게 다쳤다. 그는 하나님에게 묻지 않고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묻기 위해 사절단을 보냈다. 그때 여호와의 천사가 엘리야에게 나타나 아하시야가 여호와께 묻지 않았으므로 반드시 죽을 것임을 사절단에게 알리라고 하였다. 엘리야가 사절단에게 말하였고, 사절단은 중도에서 돌아와 이 일을 아하시야 왕에 고하였다. 아하시야는 그 말을 한 사람의 행색을 묻고 그 사람이 선지자 엘리야라고 외쳤다.

 

9-18절은 아하시야 왕이 엘리야를 찾으러 세 번에 걸쳐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을 보낸 일화이다. 처음 두 번의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죽었고 세 번째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천사의 지시로 왕 앞에 섰다.

 

9-10절,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은 왕의 명령을 받고 엘리야를 찾으러 갔다. 오십부장은 엘리야가 산꼭대기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소리쳤다. “어명이오. 하나님의 사람께서는 내려오시오!”(9절). 엘리야가 그 오십부장에게 말하였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네 부하 쉰 명을 모두 태울 것이다”(10절). 엘리야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을 살랐다.

 

11-12절, 두 번째로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이 왕의 명령을 받아 엘리야를 찾으러 갔다. 오십부장은 엘리야를 향하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고 하셨다고 전하였다. 엘리야가 직전 오십부장에게 한 말을 하였고, 이들도 하늘에서 온 불에 살라졌다.

 

13-14절, 왕은 포기하지 않고 세 번째로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을 보내 엘리야를 찾게 하였다. 세 번째 오십부장은 산에서 내려오라는 ‘왕의 말씀’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엘리야 앞에 무릎을 꿇어 엎드려 그의 생명과 군사들의 생명을 귀하게 보아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이미 오십부장 두 명과 그들의 부하 100명을 모두 태워 죽였으나 이제 그의 목숨을 귀하게 여겨달라고 하였다.

 

15절,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러 왕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십부장과 함께 내려가라고 명하였다. 천사의 말은 엘리야가 왕 앞에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였음을 보여준다. 엘리야는 ‘왕의 명령’이 아니라, 천사를 통해 고지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왕에게 나아갔다.

 

16절, 엘리야는 왕의 사절단에게 하였던 하나님의 말씀을 아하시야에게 전한다. 그것은 왕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그의 병에 관하여 묻고 하나님께 묻지 않아, 그가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죽을 것이란 사망의 말씀이다.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아하시야 왕이 죽었다. 그에게 아들이 없었으므로, 그의 동생 여호람이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17절). 때는 남왕국 유다에서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즉위하여 다스린 지 2년이 되던 해였다(BC. 852년). ‘그의 동생’이란 표현은 70인역과 시리아 역본을 따른 것이다. 즉 아하시야의 왕위를 계승한 여호람은 아합의 다른 아들이다.

 

아하시야가 한 나머지 일들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다(18절). 아하시야는 불과 2년 남짓 북왕국을 다스렸다. 열왕기서에서는 단 2개의 일화만 기록한다. 하나는 모압의 반역으로 국력이 쇠퇴한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병이 들어 하나님 대신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을 의지하다 죽었다는 것이다. 이 일로 오십부장 2명과 군사 100명이 불살라 죽은 것도 주목할만한 사건이다.

 

어떤 학자들은 아무 죄가 없는 왕의 사절들이 불살라 죽은 것에 대해 역사성의 의문을 제기한다(그레이). 또 어떤 학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무고한 사절들을 죽인 것은 너무도 잔인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 속했다는 점에서 수긍한다(정중호). 그러면 두 번에 걸쳐 오십부장과 군인 50명이 불살라 죽은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잘못이 없는 무고한 죽음인가?

 

세 번째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이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세 번째 오십부장은 ‘왕의 말씀’을 언급하지 않고, 엘리야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생명을 구하였다. 그가 왜 왕의 명령을 언급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며, 그가 왕에게 오는 것은 왕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임으로 추정한다. 그는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더 경외하였다.

 

아합의 시대 바알 숭배가 만연한 왕궁에서도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오바댜가 있었다(왕상 18:3). 마찬가지로 세 번째 오십부장은 비록 왕의 수하에 있었으나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그의 선지자 엘리야를 경외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불살라 죽은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은 과연 무고한가? 이에 대해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1960년 유대인 학살 주역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체포되어 이스라엘로 압송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친위대 장교였던 아이히만은 유럽 각지의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소로 이송했던 역할을 한 최고 책임자였다. 그는 약 500만 명의 유대인을 이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자, 아렌트는 뉴요커(New Yoker)라는 잡지에 이 재판과정을 특파원으로 추적하겠다고 제안하였다. 이 재판과정을 담은 기사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으로 나왔다. ‘악의 평범성’은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보며 만든 개념이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상부의 지시를 수행한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 때문이라고 하였다. 순전한 무사유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아렌트가 목격한 아이히만은 예상과 달리 괴물이나 인격장애자가 아니라 정신이 지극히 정상적인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상부에서 주어진 명령을 잘 따르고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사람이었다. 아이히만은 성실했으나 사유와 의지와 판단에서 무능하였다. 곧 아이히만은 악의 평범성으로 유대인 학살이라는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야스퍼스의 문하생이었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현존재를 세계내에 내던져진 피투된 존재라고 하였다. 인간은 이미 결정된 세계내의 구조에 적응하며 거기에 익숙한 존재로 살아간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안’을 초래한다. 현존재로서 다수의 인간은 세계내에서 불안을 초래하지 않고 거기에 안주하며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이런 삶은 안전할지 모르나 바보스럽고 어리석고 동물적인 삶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존재는 다른 피조물과 달리 자기 인생을 기획하고 결정하는 기투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판단하고 의지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인간성을 상실하고 ‘악의 평범성’에 빠지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의심과 익숙한 것으로부터 결별은 ‘불안’을 일으키지만, 이것은 홀로 있음의 영광인 고독 속에서 해소된다. 다시 말해 홀로 있음이 불가능한 자는 익숙한 집단에 순응하며 ‘악의 평범성’의 희생양으로 전락한다. 아렌트가 주로 연구한 ‘전체주의’ 사상은 악의 평범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나치나 스탈린 등 전체주의적 지배의 본질은 인간에게서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간성을 완전히 박탈하고 인간의 무용성을 증명함으로써 인간을 완전히 배제하고자 하는 태도에 있다. 전체주의의 과정은 인간이 필요 없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목표 아래 궁극적으로 인간을 쓸모없게 만드는 모던적 태도를 말한다(아렌트, <인간의 조건>).

 

악의 평범성과 전체주의 사상은 비단 정치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종교 안에 악의 평범성과 전체주의 사상이 얼마든지 깃들 수 있다. 기독교 역사는 신자들을 우민화하며, 순진한 무사유로 맹종하게 하는 패역한 지도자들과 싸워야 했다. 교회 안팎으로 패역한 종교 지도자는 신자들이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기투의 존재’가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대심문관은 신자들에게 믿음의 장치를 다 마련해주고 ‘순진한 무사유’로 자기들에게 맹종하게 만든다(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신자들은 아무 생각도 판단도 행동도 없이 대심문관이 정해놓은 장치에 따라 신앙생활에 안주한다. 대심문관이 만들어놓은 장치나 그 집단에서 이탈하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을 일으킨다. 굳이 그런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인 이전에 인간 존재로서 이미 인간성을 상실한 자이다.

 

계몽주의의 기여는 집단에 순진한 무사유로 순응하던 악의 평범성을 일깨운 데 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은 각자가 말씀 앞에서 사유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 요구를 받는다. 키르게고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신 앞에 단독자로 사는 자라고 하였다. 이것이 불편하고 고통스럽다고 포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이전에 인간 이하의 자리로 추락하는 비극이다. 오늘도 종교 집단과 이단들이 우는 사자처럼 그런 사람들을 삼키려 든다. 그렇게 그들의 인생은 불살라진다.

 

 

4. 나의 묵상

세상을 소란케 하는 끔찍한 사건들이 기독교와 연루된 것은 이제는 이상할 것도 없게 되었다. 지난 주말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한 달 전 인천의 모교회에서 일어난 여고생 사망 사건을 다루었다. 그 교회는 구원파의 아류인 기쁜소식선교회 소속 교회였다. 그 선교회를 창립한 박아무개 목사는 대형 집회를 열어 성경세미냐를 수시로 개최한다. 방송에서 보니 세계적으로 1,000개 넘는 교회가 있다고 한다. 그는 대형 집회 때마다 ‘교회의 아이돌’로 불리는 합창단을 데리고 다닌다.

 

그 합창단 단장은 이번에 구속된 박목사의 장녀가 맡고 있다. 제보자들의 증인에 따르면, 그녀는 신적 존재로 추앙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단원들에게 무차별하게 폭력을 자행한다고 하였다. 17세 여고생 역시 그의 폭행과 구타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도되었다. 합창단에서 견디다 못해 빠져나오면 무력을 동원해서 잡아들인다고 한다. 특히 선교회 대표 박목사는 이탈자들에게 직접 전화해서 ‘내가 하나님의 종인 것을 알면 당장 돌아오라’라고 겁박하였다.

 

기독교의 전체주의가 득세한다. 이들은 순진한 무사유자들에게 유토피아를 주겠다고 선전하며 그들을 먹잇거리고 삼는다. 아,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 집단에 구름 떼 같이 모여드는 순진한 무사유자들을 어찌할 것인가? 교회에 사람이 모여들고 목사가 유명해는 것이 이토록 두려울 수가 없다. 혼돈의 시대, 집단에 휩쓸리지 않고 말씀 앞에서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이들, 곧 주 앞에 단독자로 서는 이들이 천금보다 귀하다. 그러나 그들은 이상히 여김 받는 시대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탄식한다.

 

일본 홋가이도 신학교 사역이 가까워지고 있다. 이번 신학교 복음생명세미나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공개강좌로 열린다. 그리고 마지막 날 밤 복음을 전할 홋가이도 목회자 기도모임에는 신자들도 참석하여 200여 명이 모인다고 한다. 일본의 전체 그리스도인이 40만 명인데 이 정도 규모는 한국에서는 대형 집회이다.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사실이 새삼 두렵다. 각 사람이 주님 앞에서 단독자로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기도한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아하시야는 2년 남짓 북왕국을 다스렸습니다. 그도 선왕 아합을 따라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는 곤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이방신을 찾았습니다. 그에게 사망의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그 앞에서 회개했어도 부족할 자가 그 말씀을 전한 엘리야를 찾아내고자 하였습니다. 그 일로 오십부장 2명과 군사 100명이 불살라 죽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 대신 하나님과 선지자를 경외한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은 생명을 보전했습니다.

 

아버지여... 아무 생각 없는 순진한 무사유는 불살라 죽을 수 있는 죄악입니다. 악은 흉측한 모습으로 오지 않습니다. 비록 성실해도 사유와 판단과 의지 없이 행하는 것이 죄악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런 자는 ‘악의 평범성’으로 정죄받습니다. 교회 안에 악의 평범성이 가득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격적이고 개인적일 교제를 저버리고 아무 생각 없이 집단에 순응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거대한 인원동원과 기망하는 말로 영혼들을 유린하는 사이비 종교와 이단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아버지... 생명의 문은 언제나 좁습니다. 말씀 앞에 홀로 앉아 주의 뜻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참 그리스도인이 귀합니다. 편리한 세상에서 신앙까지 편리하게 간주하는 시대, 순진한 무사유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적은 무리이지만, 날마다 말씀 앞에서 생명으로 사는 이들을 얼마나 귀한지요! 끝까지 신실하게 하소서. 주여, 이 땅의 교회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우리를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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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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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문희경 | 작성시간 24.06.21 오늘도 중앙일보 전면광고로 사이비 교주 신옥주가 두목인 해빛교회 이름으로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오늘 저의 묵상도 이단 사이비의 폭행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굿뉴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1 개인이 말씀 앞에서 묵상하고 사유하고 판단하는 인격적인 신앙이 참으로 절실할때입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아답터 | 작성시간 24.06.22 아멘~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데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하게 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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