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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이 할 일

작성자머털도사|작성시간26.06.11|조회수29 목록 댓글 0

예배 영상 : https://youtu.be/VHsySJFaG80

제목 : 일꾼이 할 일

본문 : 9:35-38

날짜 : 2026. 6. 14 주일오전예배

 

저는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지인의 직장에 202명이 입사를 했는데, 일은 안 하고 매일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하더랍니다. 결국 회사에서는 퇴사 조치했는데 이번엔 노동청에 신고까지 하더랍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예상외로 많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한 편의점 사장님은 20대 남자 알바생을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급을 미리 가불해 달라고 해서 가불해 주는 등 편의를 봐줬는데, 어느날 아침에 교대를 위해 편의점에 갔더니 알바생이 안 보이더랍니다.

편의점 사장님은 혹시나 해서 CCTV를 확인해 보니 알바생이 전날 밤에 가방을 메고 편의점을 나갔고, 이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문을 열어놓고 가는 바람에 손님들이 한참 기다리다가 돌아가기도 하고 일부는 물건값을 놓고 가기도 했답니다. 심지어는 기다리던 여성 손님이 알바생 대신 손님들의 물 것 값을 대신 계산해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대다수의 알바 하시는 분들은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일부 이런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종교 지도자들을 알바생을 뽑듯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할 뿐 하나님의 양들인 백성들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양무리는 목자 없는 양처럼 흩어졌고, 예수님께서 흩어진 하나님의 양무리를 찾아 그들을 돌보시며, 제자들을 향해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청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꾼으로 세우신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그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본문 9:35절을 보면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이러한 사명을 주시면서 더 많은 일꾼을 하나님께 요청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처럼 일꾼의 사명은 예수님이 하셨던 가르치고, 선포하고, 고치는 사역입니다.

 

1.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가르치시며라는 말은 원문을 보면 단순히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그 뜻에 합당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이런 가르치는 사명은 당시 율법사들이 그 책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장로들의 유전을 가르쳤습니다. 본래 장로들의 유전은 하나님의 율법을 더 잘 지키기 위해서 추가로 제정해 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를수록 율법의 권위보다 장로들의 유전이 더 권위를 갖게 된 것입니다. , 하나님의 율법을 더 잘 지키기 위해 장로들의 유전을 만들었는데, 오히려 장로들의 유전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꼴이 되었습니다.

7:13절을 보면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당시 장로들의 유전이 율법보다 얼마나 권위가 있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율법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일반 백성들은 율법을 어기면서도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 23:13절을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예수님께서 율법사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가르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면 사람은 한 번 잘못 배우면 그 그릇된 길에서 돌이키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잘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모두가 신학교를 가고 목회자가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비록 성경 한 구절이라도 그것이 내게 은혜가 되고 힘이 되었다면 그 말씀 하나로도 누군가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나의 삶 가운데 함께하시고 동행하시는 주님을 간증하는 것 또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선포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여기서 전파하시며라는 말은 원문을 보면 전령이 왕의 명령을 전하듯이 전파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4:17절을 보면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입니다. 또한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가장 먼저 외친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미 2천 년이 지났어도 하나님의 나라는 오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나라는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벧후 3:9절을 보면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르렀지만,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오래 참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선포는 곧 복음의 선포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누구나 다 믿을만한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지 못할 것을 믿는 것이 곧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복음을 보면 이 땅에서 복을 받아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을 받기 위해 십일조와 헌금을 많이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목회자들은 고후 9:6절의 말씀인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십일조와 헌금을 많이 하면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고후 9:9절을 보면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을 구제하기 위해 이방인들인 고린도 교회에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 사도 바울이 말한 헌금은 십일조도 헌금도 아닌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성도들을 구제하고 돕기 위한 헌금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선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에게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회개를 선포하는 것 입니다.

 

3. 고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치고 선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 주셨습니다.

여기서 고쳐주셨다는 말은 원문을 보면 데라퓨오라는 말인데 현대에서 사용하는 데라피의 어원이 되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병의 치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돌보고’, ‘섬기고’, ‘회복시키다라는 의미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아프면 그들을 돌보시며 육신의 병과 마음의 병도 치유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명은 제자들을 통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러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역을 잘못 이해를 하여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것이 목표이자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죄와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보고, 섬기고, 회복시키는 사역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자가 양들을 돌보고 양육하듯이 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주님의 일꾼들이 해야 할 사역이 바로 이러한 사역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일꾼이라고 하면 주의 종인 목회자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은 일꾼을 부르실 때 목회자로만 부르지 않습니다.

평신도로 사역하였던 스데반 집사도 있었고, 사도 바울의 든든한 동역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일꾼을 부르실 때에 다양하게 부르십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겨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웃을 향해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이제 주님의 일꾼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해 주며 낙심한 사람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든 사람을 우리가 치료할 수는 없지만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외로운 사람의 곁에 있어 주어야 합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꺼이 주머니를 열어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세상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을 돌보고, 섬기고, 회복시키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만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평신도들도 훌륭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9:35절을 보면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처럼 고생하는 영혼을 찾아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선포하며 그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인도함을 받은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추수할 밭을 바라보시며, 우리로 하여금 추수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밭으로 나아가기는커녕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떼만 쓰고 있습니다.

마치 알바생이 자기 일은 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만 주장했듯이, 우리도 주님의 일은 하지 않으면서 복을 받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위인들을 보면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을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 그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선포하며, 상처 입은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라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들을 보면 젊은이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CCM 사역자들이 인도하는 집회에는 수많은 청년들이 모여 눈물을 흘리며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합니다. 이것을 보면 교회는 이미 기득권층이 되었고 세속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가 그랬고, 중세시대의 교회가 그랬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우리가 일어서야 합니다. 밭으로 나가 추수를 해야 합니다. 평신도가 살아야 교회가 회복되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주님 오실 그날까지 추수하여 알곡을 많이 거두어 주님께 잘했다 칭찬받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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