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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자도 돌보시는 하나님

작성자머털도사|작성시간26.06.18|조회수23 목록 댓글 0

예배 영상 : https://youtu.be/R10DgBOLQA0

제목 : 버림받은 자도 돌보시는 하나님

본문 : 21:14-21

날짜 : 2026. 6. 21 주일오전예배

 

저는 예전에 한 기관에서 자원봉사로 독거노인 무료 도시락배달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혼자 사시는 노인분들인데,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말을 거는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이웃에 사는 사람들조차도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도시락을 전달해 드리면 잠깐이라도 앉아 있다 가라고 하시며 없는 형편에 뭐라도 대접해 주시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눈시울을 붉히며 고맙다고 하십니다.

이분들은 사실 배가 고프고 몸이 아픈 것 보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더 힘든 것입니다. 수십년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건물에 살아도 누구 하나 말을 거는 사람도 없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기에 거기서 오는 외로움과 고독함이 가장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립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만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준다는 것, 누군가 자신을 여전히 소중한 존재로 여긴다는 것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나와 피를 나눈 가족임에도 이해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친구들과 지인들로부터 잊혀진 것 같은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상황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조차도 나를 잊으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갈과 이스마엘이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하루아침에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 광야에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누구 하나 그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도와주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인 아브라함조차도 그들에게 준 것이라고는 떡과 물 한 가죽 부대가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다 떨어져 더 이상 버틸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계셨으며, 그들을 위해 우물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버림받은 자도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 절망 속에서 보고 계십니다.(14-16)

본문 창 21:14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갈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갈은 자식이 없었던 아브라함의 아들을 낳아준 은인과도 같았습니다. 더욱이 이스마엘이 태어났을 때의 아브라함 나이는 86세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은인과도 같았던 하갈과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은 매정하게 무일푼으로 쫓아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대신 받은 것이라곤 떡과 물 한 가죽 부대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광야에서 하루도 버티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나가 죽으라는 얘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갈은 어디로 가야 할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이 캄캄하고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갈은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가죽 부대의 물마저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갈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이스마엘을 관목 덤불 아래에 두고 멀리 떨어져서 아들을 바라보며 차마 아들이 죽는 것을 못 보겠다 하여 대성통곡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하갈처럼 혹은 이스마엘처럼 인생의 광야를 만날 수 있습니다. 건강의 문제로 광야를 만날 때도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광야를 만날 때도 있고, 가정의 문제로 광야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인간관계 때문에 광야를 만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광야를 만나면 앞이 캄캄하고 막막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은 없어 하나님이 나를 잊으시거나 버리신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갈이 집에서 쫓겨날 때도 보고 계셨습니다. 이스마엘이 관목 나무 아래서 엄마를 부르며 울고 있었을 때도 보고 계셨고, 하갈이 아들을 바라보며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을 때도 보고 계셨습니다.

비록 하갈과 이스마엘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외면당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하갈과 이스마엘을 사랑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외면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혹은 내가 믿었던 친구가 우리를 외면하고 배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결단코 우리를 외면치 않으십니다.

 

2. 울음소리를 듣고 계십니다.(17-18)

본문 21:17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들으셨으므로라는 말은 원문을 보면 단순히 소리를 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응답하시기 위해 관심을 가지고 들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스마엘의 이름 뜻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라는 것입니다.

사실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날 때, 아브라함의 집에는 이삭을 축복하는 잔치가 있었고 수많은 손님들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아브라함의 개인 사병만 해도 318명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하갈과 이스마엘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갈과 이스마엘의 울음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점점 나이가 들면서 남들 모르게 눈물을 흘릴 일들이 많아 지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밤에 혼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는데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 없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데 도와 줄 사람 없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자녀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너무 억울한데 하소연할 곳조차 없어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울음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듣고 계시듯이, 우리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듣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3. 보이지 않는 우물을 보게 하십니다.(19-21)

본문 21:19절을 보면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눈을 밣히셨으므로라는 말입니다. 사실 우물은 새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 더더욱 하나님께서 새 우물을 파 주신 것도 아닙니다. 우물은 이미 존재해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하갈이 그 우물을 보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그래서 원문을 보면 눈을 열었다혹은 눈을 뜨게 했다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는 하갈이 그 우물을 볼 수 있게 눈을 여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갈은 누구보다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갈은 그 지역을 방황하면서도 그 우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절망이 눈을 가리고 있었고, 심지어는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하갈의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되고 심지어는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눈앞이 캄캄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도 하갈처럼 눈이 가리어져 판단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요 20:14-16절을 보면 예수님이 장사된 무덤 앞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울고 있었을 때, 그녀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동산지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눅 24:13-31절을 보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을 하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 외에도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도 절망과 두려움 그리고 공포가 닥치면 눈이 가리어져 판단력을 상실하게 되어 해결책이 있음에도 이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갈이 보지 못하던 우물을, 눈을 열어서 보게 하셨듯이,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주관하셔서 해결책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의 응답을 마치 도깨비방망이가 소원을 들어주듯이 응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준비된 길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미 곁에 있는 해결책을 보게 하십니다.

마치 하갈이 늘 있었던 우물을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열어 우물을 보게 하심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심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본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들을 낳아주어 후처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로 태어나 약 14-17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울며 매달렸지만, 그 누구도 하갈과 이스마엘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이들을 외면하거나 모른척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자신들이 일평생 의지하고 믿었던 아브라함마저 매몰차게 떡과 가죽 부대에 담긴 물만 주어서 광야로 내쫓고 말았습니다. 세상천지에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도 하갈과 이스마엘이 내몰렸던 광야로 내몰릴 수 있습니다. 질병의 광야, 가난의 광야, 외로움의 광야, 상처의 광야 등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광야로 내몰려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도와 주는 사람조차 없는 광야에 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갈과 이스마엘이 울면서 쫓겨날 때도 그들을 보셨고, 그들이 광야에서 방황할 때도 그들을 보고 계셨듯이 우리를 어떤 상황에서도 외면치 않으시며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또한 하갈과 이스마엘이 집에서 쫓겨날 때,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들의 울음소리에 귀를 닫았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은 서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대성통곡을 하였지만, 그들의 을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눈물을 외면할 수도 있고, 울음소리에 귀를 닫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갈과 이스마엘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들으신 것처럼, 우리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갈의 눈을 열어 우물을 보게 하셨듯이 우리의 눈을 열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보게 하십니다.

하갈은 절망과 두려움 그리고 공포가 눈을 가리어 우물을 볼 수 없었습니다. 우물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하갈도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광야에 내몰리게 되면 절망과 두려움 그리고 공포로 인해 우리의 눈이 가리어져 길을 찾을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갈과 이스마엘의 눈을 열어 우물을 보게 하셨듯이 우리의 눈을 열어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버림받은 자도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 오실 그날까지 늘 주님의 돌보심을 받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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