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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장년설교♡]내일 일은 모릅니다

작성자지팡이|작성시간26.06.21|조회수31 목록 댓글 0

          내일 일은 모릅니다 (7:9-8:2)                                   26. 6. 21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아멘

[서 론]

   할렐루야!      오늘 복된 자리에 잘 오셨습니다.      옆 사람과 함께 인사를 하십시다.     반갑습니다.    참 잘 오셨습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또 치료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오늘 설교 제목은 내일 일은 모릅니다.’입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내일 일은 모릅니다.’      사람은 아무도 내일 일을 모릅니다.     내일 내게, 내 가정에, 내 직장에, 내 사업에, 내 나라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불안한 것입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27:1)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지으실 때 내일을 알지 못하도록 지으셨습니다.     내일은 사람의 손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3:11)

   내일 일을 모른다는 고사성어(故事成語)로서 새옹지마’(塞翁之馬)가 있습니다.

[새옹지마(변방에 있는 노인의 말)의 유래는 이러합니다.     옛날 중국 북쪽 변방에 한 노인이 살았는데 이 노인에게 수말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노인의 말이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웃들이 노인을 위로하자, 노인은 담담하게 "오히려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몇달 뒤 달아났던 말이 암말과 어린 말들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이웃들이 노인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더니, 노인은 시큰둥한 어조로 "이 일이 도리어 화(재앙)가 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하겠소." 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후 노인의 아들이 암말을 타고 달리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이번에는 이웃들이 안타까워하자 노인은 "이 일이 도리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고 말했습니다.

   다음해 국경 너머 오랑캐들이 쳐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의 모든 젊은이들은 징집되어 전쟁터로 끌려갔지만, 노인의 아들은 다리를 다쳤기 때문에 소집면제를 받아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고사성어의 뜻은 무엇입니까?     내일 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오늘 한 가지 일로 인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내일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 론]

                               1. 하만과 모르드개의 사건

   오늘 성경의 내용은 페르시아 나라의 아하수에로 왕 때의 일입니다.      8:1절을 읽어볼까요?    그 날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아뢰었으므로 모르드개가 왕 앞에 나오니”(8:1)

   여기에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하만과 모르드개입니다.      하만은 당시 왕 다음으로 제 2인자였습니다.     그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왕의 신하들조차도 하만 앞에서 절했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만은 하만 앞에서 꿇지도 않고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3:2)

   그러자 하만은 매우 노하여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또한 모르드개가 하나님을 믿는 유다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모든 유다인도 함께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3:5-6)

   하만은 왕에게 많은 뇌물을 주고 유다인을 죽이라는 왕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유다인을 죽일 날을 제비 뽑았는데 열두째 달(아달월) 13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왕의 조서를 내려 그날 하루 동안에는 누구든지 유다인들을 죽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만은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이려고 자기 집에다 높은 장대(23m)를 매달았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만이 세운 장대 위에 누가 달렸을까요?      모르드개일까요?     아니면 하만일까요?     79-10절을 읽어볼까요?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높이가 오십 규빗(23m)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이르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7:9-10)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고자 나무를 세웠는데, 도리어 자기가 왕의 분노를 사서 매달리고 말았습니다.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던 2인자 하만, 왕의 모든 신하들조차 엎드려 절하던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매달릴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또한 유다인들을 죽이려고 제비 뽑은 1213일에는 누가 죽었을까요?      91절과 5절을 읽어볼까요?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들이 그들을 제거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제거하게 된 그 날에...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들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9:1, 5)

   그 날에 누가 죽었습니까?     유다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유다인을 죽이려고 했던 자들이 도리어 유다인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죽을 줄 알았던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들의 원수를 죽일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하만도, 모르드개도, 유다인도, 다른 사람들도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일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잘된다고 내일도 잘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또 오늘 어렵다고 내일도 어려울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내일은 우리 사람의 손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3:11)

 

                             2. 내일에 대한 자세

   이처럼 내일 일을 알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자랑하지 말라.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무엇인가 이루었거나, 성공했거나, 가졌다고 생각하면 자랑하거나 교만하기가 쉽습니다.      그것이 권력이든, 재물이든, 사업이든, 학벌이든, 자식이든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항상 내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내가 가진 것들이 내일에는 없어질 수도 있고, 또 내일에는 내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론 나라의 <느부갓네살> 왕을 보십시오.     어느날 느부갓네살 왕은 왕궁 옥상에 올라가 바벨론 도시를 내려다보면서 자신이 이룬 업적에 대해 자랑의 말을 내뱉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4:28-30)

   어떻게 되었을까요?      느부갓네살 왕의 입에서 그 자랑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라.”(4:31-32)

   그 말대로 느부갓네살 왕은 사람들에게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고, 몸은 이슬에 젖고, 머리털은 독수리 털처럼 자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정한 일곱 때까지 그렇게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4:33)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자기가 이룬 업적에 대해 자랑과 교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가진 것이나 이룬 것에 대해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일 내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자랑하는 권세와 명예와 재물과 건강이 내일에는 사라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9:23)      그러기에 우리는 가진 것에 대해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판단하지 말라.

   나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듯이, 남의 장래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의 현재 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현재 모습만 보고 판단했다가 나중에 나의 판단이 틀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즉 내가 무시했던 사람이 나중에 잘 되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기대했던 사람이 나중에 잘 안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기에 한 면만 보고 남을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8형제 중의 막내였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은 사울 왕을 대신할 새 왕을 세우고자 사무엘 선지자를 이새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이새의 아들들 중에 왕으로 선택한 자가 있으니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것입니다.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삼상 16:1)

   그래서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가서 그의 아들들을 하나씩 그의 앞에 나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7명의 아들이 다 지나가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새에게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고 물었더니 막내 다윗은 지금 양을 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삼상 16:11)

   막내 다윗이 오자 하나님은 그가 왕이 될 것이니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삼상 16:12-13)

   양치던 막내 다윗이 장차 왕이 될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도 몰랐고, 아버지 이새도 몰랐고, 형들도 몰랐고, 다윗 자신도 몰랐습니다.     사실 막내 다윗은 모든 면에서 형들보다 부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윗을 아예 제쳐놓고 부르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는 왕이 될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도 생각지 못한 막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현재 모습이나 현재 상황만 보고 그를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현재 모습이나 상황이 내일의 모습이나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에 대해 판단한 것이 나중에는 틀릴 수가 있기에 함부로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라.

   많은 사람들은 큰 어려움이 오면 낙심하거나, 포기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꿈도, 계획도,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를 그냥 살아갑니다.     하지만 오늘은 내게 어려움이 있어도 내일은 내게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내가 생각지 못한 일이 내일 일어날 수도 있기에 오늘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10대 청소년 때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형들에 의해 외국 장사꾼들에게 팔렸습니다.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37:28)

   애굽에 팔려간 요셉은 애굽 바로 왕의 친위(경호)대장인 보디발의 종이 되었습니다.      또 그의 집에 있는 동안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외국에 팔려가 남의 종이 되었을뿐만 아니라 누명으로 옥에 갇히게 되었으니 낙심이 되지 않겠습니까?     인간적으로 그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요셉은 그런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낙심하거나, 자포자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른 사람의 종이 되었고, 또 옥에 갇혀있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41:41-43)

   남의 종이 되고, 옥에 갇힌 요셉이 애굽을 다스리는 총리가 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아마 요셉 자신도 자신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요셉이 낙심하거나, 원망하거나, 신세타령만 했다면 총리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게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이 올지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내가 종이라도 내일은 자유인이 될 수 있고, 오늘은 내가 실패자일지라도 내일은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경외하라는 말은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섬기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장래는 나 자신의 손(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장래를 아시며, 나의 걸음을 인도하십니다.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20:24)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16:9)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이 나의 내일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경외)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3:5-6)

   성경에 나오는 <다니엘>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총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나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을 시기하는 자들이 왕을 꾀어 기도금지령을 내리게 했습니다.     누구든지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게 던져넣는 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 법령을 잘 알면서도 기도하기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6:10)

   어떻게 되었을까요?     기도하던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하지만 그가 경외하던 하나님이 다니엘을 사자의 입에서부터 지켜주셨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서 찾아온 왕에게 말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6:22)

   왕은 사람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그 법을 만든 것을 알고 그들을 사자굴에 던졌더니 사자들이 그들의 뼈까지 부서뜨렸습니다.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6:24)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살아있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사자굴에서 살아난 것은 다니엘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이 변함없이 경외하던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그를 경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미래, 곧 내일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마음과 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경외하면 그가 나의 내일을 지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결 론]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내일 내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27;1)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잘 되고, 또 가졌다고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것이 내일에는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면만 보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내일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일 일을 모르기에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일 내게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내일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 일을 알 수 없어 불안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십시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나의 내일이 가장 안전하고 잘 되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러분을 하나님이 여러분의 내일을 지켜주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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