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대본] 잉어와 세 기인(奇人)
### **기획 및 등장인물**
* **행촌 민순 (行村 閔純):** 소박하고 청빈한 삶을 살지만, 이미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도를 이룬 인물. 담대하고 여유롭다.제자 들은 이불 모아 말하기를 이미 도의 경지를 넘어선 역의 달인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 **화담 서경덕 (花潭 徐敬德):** 당대 최고의 주기론(主氣論) 학자이자 도학자. 진중하고 깊이가 있다.
* **토정 이지함 (土亭 李之菡):** 《토정비결》의 저자. 기행에 능하고 세상만사의 변화를 꿰뚫어 보는 인물.
### **[S# 1] 행촌의 집 근처 산길 (낮)**
화창한 어느 날. 민순이 가벼운 걸음으로 산책을 하고 있다.
문득 걸음을 멈춘 민순, 하늘의 구름과 바람의 결을 살피더니
**민순:** "어허, 귀한 손님이 오실 것 이로구나. 그것도 지금 당장!"
민순, 옷자락을 휘날리며 부랴부랴 집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 **[S# 2] 행촌의 집 앞마당 (낮)**
민순이 살포시 마당으로 들어선다.
청빈한 집. 마당은 쓸쓸하나, 가지런히 잘 정돈된 정원 소박한 부엌문 부엌문은 낡아 있지만 정갈하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사은숙고(思恩肅考)한 걸음걸이로 대문 안을 들어서는 두 사람. 화담 서경덕과 토정 이지함이다.
**이지함:** (사방을 둘러보며 허허 웃는다) "행촌, 우리가 올 줄 어찌 알고 마당까지 나와 마중을 하시는가?"
**서경덕:** "우연히 발길이 닿아 들렀네만, 허허, 집안이 참으로 청빈. 하나 정갈 하구려."
**민순:** (반갑게 절을 올리며) "두 분 어른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방금 천기를 보니 귀한 분들이 오신다 하여 서둘러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어서 사랑채로 드시지요."
### **[S# 3] 사랑채 안 (낮)**
가구 하나 없이 도 정갈한 사랑채 안. 세 사람이 마주 앉았다.
민순은 손님들을 모셔놓고 만면에 기운은 그윽 하다. 집안을 어디를 둘러봐도 홈 잡을 곳이 전혀 없다.
**민순:** (속마음) '하도 쓸쓸하여 마땅히 대접할 음식이 없구나. 멀리서 오신 귀한 분들인데 술상 하나 제대로 차리지 못하다니...'
민순,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민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내 가벼운 안주라도 마련해 오겠소이다."
### **[S# 4] 사랑채 안 (잠시 후)**
민순이 자그마한 물 양동이 하나와 낚싯대를 들고 방으로 들어온다.
이지함과 서경덕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이지함:** "행촌, 방 안에 웬 양동이와 낚싯대인가요? 설마 여기서 낚시라도 하시겠다는 게요?"
민순은 말없이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는 방 한가운데에 빈 물 양동이를 덩그러니 놓아둔다. 양동이 안에는 물 한 방울 없다.
민순이 서서히 낚싯대를 드리운다. 낚시늘어뜨린 줄이 텅 빈 양동이 안으로 툭 떨어진다.
이지함과 서경덕이 흥미진진하게⁷ 지켜보는 가운데, 민순이 눈을 감고 기를 모은다.
**지리릭-!**
갑자기 팽팽하게 당겨지는 낚싯줄! 민순의 손목에 묵직한 힘이 들어간다.
**서경덕:** (눈이 커지며) "음?! 저것은...!"
민순이 기합 소리와 함께 낚싯대를 확 낚아챈다.
그러자 허공을 가르며, **물이 뚝뚝 떨어지는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파닥거리며 양동이 속으로 툭 떨어진다!
양동이 안은 어느새 맑은 물로 가득 차 있고, 잉어는 힘차게 푸드득 꼬리를 치고 있다.
**이지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마술인가, 도술인가?!"
**서경덕:** (깊은 감탄을 터뜨리며) "공(空)에서 색(色)을 부르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구려..."
민순은 여전히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잉어가 담긴 양동이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두 사람은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 **[S# 5] 사랑채 안 (저녁)**
방 한가운데에 소박 하지만 잘 차려진 술상이 놓여 있다. 갓 조려낸 잉어찜이 먹음직스러운 김을 풍긴다.
그러나 세 사람 사이에는 묘한 침묵이 흐른다.
민순이 말없이 서경덕과 이지함의 잔에 술을 따른다.
**쪼르르-** 술 따르는 소리만 방 안을 채운다.
세 사람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는다. 그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깊은 술잔을 부딪치고, 묵묵히 술을 들이켤 뿐이다.
이미 말(言)이라는 도구가 필요 없는, 경지에 이른 이들의 소통이다.
술잔이 비워질 때마다 세 사람의 미소는 깊어간다.
### **[S# 6] 행촌의 집 앞마당 (밤 -> 새벽)**
달이 기울고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기 시작한다.
술자리를 끝낸 서경덕과 이지함이 자리를 뜨려자 행촌이 말한다. 이미 밤이 어색하니 하룻밤 거하시고 내일 아침에
돌아가시는 것이 어떠하신지요.
그러나 이들은 대문을 나선다. 민순이 고개를 숙여 배웅한다. 야심한 밤길 조심히 돌아가시지요.
**민순:** "멀리까지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서경덕:** " 융승한 대접을 받고 갑니다 그려.. 몸 건강히 계시게."
두 사람은 안갯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잠시 멈춰 서서 민순의 집을 돌아보는 두 사람.
**이지함:** (속마음/나레이션) '행촌은 이미 자신만의 일가(一家)를 이루었구나. 집은 비어있으나 우주를 품었으니, 내 더 이상 이곳에 머물며 도를 논할 이유가 없도다.'
**서경덕:** (속마음/나레이션) '도(道)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거늘, 행촌의 경지가 이토록 깊을 줄이야. 나 역시 내 안의 도를 더 닦아야겠구나.'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갈 길이 달라진 두 사람.
**서경덕:** "토정, 나는 금강산(金剛山)으로 들어가 세상의 이치를 더 탐구해 보려네."
**이지함:** "화담 선생님, 그것 참 좋은 생각입니다. 소인은 발길 닿는 대로, 천안 아산(牙山) 쪽으로 내려가 백성들의 삶이나 살펴볼까 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은 절을 올린 후, 각자 반대 방향의 길을 향해 걸어간다.
자욱한 새벽안개 속으로 서경덕은 깊은금강 산을 향해, 이지함은 넓은 세상을 향해 사라진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행촌 민순의 은은한 미소 위로 화면이 천천히 페이드아웃(Fade-out)된다.
**제목: 천기를 읽는 자들**
**[인물 소개]**
* **행촌 민순 (50대):**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은거 기인. 겉모습은 소박하나 천문과 역학에 통달하여 세상의 흐름을 꿰뚫어 본다.
* **화담 서경덕 (60대):** 조선 최고의 주기론(主氣論) 학자. 기(氣)의 흐름을 읽는 대유학자로, 묵직하고 깊이 있는 성품.
* **토정 이지함 (50대):** 《토정비결》의 저자. 기행으로 유명하며, 유쾌하고 변화무쌍하지만 눈빛만큼은 매서운 도인.
### **[S# 1. 행주나루터 (낮)]**
강바람이 잔잔하게 부는 행주나루터.
행촌 민순이 홀로 나루터를 거닐고 있다. 그의 걸음걸이는 서두름이 없고 유유자적하다.
문득 행촌이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천기를 보니 구름의 움직임과 바람의 결이 예사롭지 않다.
**행촌:** (하늘을 보며 미소 지으며 혼잣말로)
하늘의 기운이 북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구나. 귀한 손님이 올 징조야. 게다가 아주 기이하고도 가벼ㅆ운 발걸음들이군.
행촌, 옷자락을 가볍게 털고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 **[S# 2. 행촌의 집 마당 및 사랑채 (낮)]**
행촌이 마당으로 들어서서 겉옷을 정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은(蓑衣·도롱이)을 걸친 토정 이지함과 단정한 도포 차림의 화담 서경덕이 사뿐사뿐 마당으로 들어선다.
**토정:** (껄껄 웃으며)
이것 보세요, 선생님! 제가 말씀드렸죠! 행촌 선생은 우리가 올 줄을 이미 알고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화담:** (행촌을 향해 깊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드립니다, 행촌 선생. 불쑥 찾아와 결례가 많습니다.
**행촌:** (정중하게 맞절을 하며)
두 분 귀한 발걸음을 어찌 몰라뵙겠습니까. 화담 선생의 깊은 기운과 토정 선생의 기이한 바람이 벌써 나루터까지 전해지더이다. 어서 사랑채로 드시지요.
### **[S# 3. 사랑채 안 (낮)]**
방 안은 가구 하나 없이 쓸쓸하지만 청빈하다. 손님을 대접할 차 잔과, 약과와 다식이 놓여 있다.
**토정:** (방 안을 슬쩍 둘러보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허허, 소문대로 행촌 선생의 청빈함은 집안 가득 바람만 통하게 해두었구려. 배가 출출한데, 어찌 아시고 준비를 해두셨네요! 하고 너스레를 떤다.
**행촌:** (빙그레 웃으며)
귀한 분들이 오셨는데 어찌 빈손으로 모시 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행촌이 방 한구석에 있던 커다란 **물동이**를 번쩍 들어 사랑채 한가운데에 턱 하니 내려놓는다. 물동이 안에는 맑은 물이 찰랑거린다.
이어 벽에 걸려 있던 **낚싯대**를 내리더니, 방 한가운데 앉아 물동이를 향해 낚싯줄을 툭 던진다.
**토정:**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니, 행촌선생? 지금 방 안에서 강태공 시늉을 하시는 게요? 물동이에서 고기가 나올 리가……
그 순간, 물동이 안의 물결이 거세게 출렁이기 시작한다. 낚시대가 아래로 쑥 내려간다.
**화담:** (눈빛이 깊어지며 마른침을 삼킨다)
……기가 모이고 있군. 보통의 낚시가 아니야.
행촌이 낚싯대를 묵직하게 들어 올리자, 물동이 속에서 어른 팔뚝만 한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퍼득 거리며 튀어 오른다.
토정은 무릎을 탁 치고, 화담은 조용히 감탄의 미소를 짓는다.
### **[S# 4. 사랑채 안 (잠시 후, 식사 시간)]**
방 한가운데, 잘 쪄진 잉어찜 한 그릇과 소박 하지만 향긋한 산채 나물이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이 들어 온다.
세 사람 사이에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 오직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잉어찜을 나누는 고요함만 가득하다.
행촌은 묵묵히 손님들의 공기를 채워주고, 화담은 깊은 사색에 잠긴 채 음식을 음미하며, 토정 역시 평소의 장난기를 거두고 진중하게 식사를 마친다.
말은 없으나, 세 사람의 시선과 호흡 속에서 보이지 않는 교감이 오고 간다.
식사가 끝나자 세 사람은 잔잔한 미소를 나누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 **[S# 5. 행촌의 집 앞길 (오후)]**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길의 갈림길에서 세 사람이 마주 서 있다.
**화담:** (행촌을 바라보며)
대접 잘 받았습니다. 나는 이 길로 발길을 돌려 금강산(金剛山) 으로 깊은 기운을 품으러 가려 합니다.
**토정:** (여장을 꾸리며)
화담 선생은 산으로 가시니, 나는 아래로 내려가 천안 아산(牙山)의 백성들 틈으로 흘러 들어 가야겠습니다.
**행촌:** (두 사람에게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며)
두 분의 앞길에 천기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화담은 북동쪽 금강산 방향으로, 토정은 남쪽 아산 방향으로 각자 발걸음을 옮긴다.
행촌은 그들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묵묵히 서서 배웅한다.
### **[S# 6. 길 위 (석양)]**
각자 길을 걷던 화담과 토정이 잠시 멈춰 서서 지나온 행촌의 집 쪽을 돌아본다.
**토정:** (감탄 가득한 한숨을 쉬며)
화담 선생, 보셨습니까? 방 안의 물동이에서 잉어를 낚는 그 솜씨라니. 단순한 도술이 아니었소.
**화담:** (고개를 끄덕이며, 아련한 눈빛으로)
그렇고말고요. 천지의 기운을 제 안방 쓰듯 부리는 경지였습니다. 굳이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 않아도, 행촌 선생은 이미 자연과 하나 되어 **자신만의 거대한 일가(一家)를 이룬 도인**이었습니다.
**토정:** (하늘을 보며 호탕하게 웃는다)
조선에 이만 한 기인이 숨어 살고 있었다니! 천하를 다 가진 자가 부럽지 않구려! 허허허!
붉게 물든 석양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하는 화담과 토정의 실루엣이 각각 금강산과 아산 향을 향해 멀어져 가며 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