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온양정씨(溫陽鄭氏)
【시조】정보천(鄭普天)
【인구】24,897명 (2000년 현재)
【주요파】▲삼등공파 ▲부사공파 ▲소윤공파 ▲고성공파 ▲판관공파 ▲대사성공파 ▲전력공파
온양정씨는 경주정씨에서 갈라졌다. 정씨의 원조 지백호의 34세손이다.
온양정씨의 시조 정보천은 고려조에 호부상서를 지냈다.
시조 이래 온양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후손들이 온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온양(溫陽)은 충청남도 아산군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탕정군을
고려 초에 온수군으로 고치고 현종때 천안부에 속하게 하였다.
조선 태종때 신창현과 합하여 온창이라 하다가 다시 온수현이라 하였으며, 세종때 온양군이
되었고, 1913년 아산군에 속한 온양면이 된 후 지금의 온양읍에 이르고 있다.
온양정씨(溫陽鄭氏)의 시조는 고려에서 호부상서를 역임한 정보천 (鄭普天) 이다.
문헌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탕정(온양의 고호)에 왔다가 고을 관리의 공을 가상히 여겨
누대로 토착 세거한 정씨 일가에게 향직인 호장(戶長)을 제수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온양을 본관 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보천의 아들 작진(作珍)과 작정(作貞)이 함께 찬성사를 역임했고,
손자 존구(存玖)는 헌납을, 증손 자준(自準)은 간의대부를 지냈다.
찬성사 달존(達尊)의 아들 응휴(應休)는 감찰어사를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으며,
조선조에 와서는 판서를 역임한 백붕(百朋)과 탁(鐸)의 아들 순붕(順朋)이 유명했다
순붕(順朋)은 중종때 호조판서를 지낸 후, 지중추부사에 이르렀고, 명종이 즉위하자
대윤(大尹) 일파를 제거하는데 크게 활약하여 보익일등공신으로 우찬성 겸 지경연사에
승진하여 온양부원권에 봉해졌으며 우의정에 올랐다.
그의 아들 염은 중종과 명종대에 이름난 학자로 한때 포천 현감을 지냈으며,
유(儒). 불(佛). 도교(道敎)는 물론 천문. 의술. 음률(音律)에 정통했고, 문장과 산수화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그밖의 인물로는 공신에 올랐으며 온성군에 봉해진 희번(嬉藩)과,
의학에 능통하여[서주유고(西疇遺稿)]를 집필한 예남(禮南)이 뛰어났고,
두경(斗卿)은 부수찬. 정언. 직강 등을 지낸후 승문원제조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학문
수양에만 전념했다.
정조때 시파(時派)의 거두였던 민시(民始)는 대사성. 이조참의 등을 역임했으며,
오랫동안 선혜청에 있으면서 삼남에서 진상하는 약재를 반감케 하고, 조세의 수납 사무를
통일하는 등 백성의 부담을 덜어 주었고, 당시의 문물개혁에 크게 공헌하였다.
순조때 청백하기로 이름난 만석(晩錫)은 홍경래의 난때 평안도 위무사로 나가
난이 평정된 후에 흩어진 민심을 잘 수습하였으므로 생사당(生祠堂)이 세워졌다.
또한 창성(昌聖)과 창순(昌順). 상우(尙愚)가 유명했으며, 이조 판서 태호(泰好).
참판 일영(日永)등이 명문 온양정씨를 빛나게 하였다.
집성촌
충북 중원군 가금면 장천리
황해도 연백군 도촌면 오산리
충남 서산군 소원면 모항리
함남 갑산군 갑산면 억년리
충남 아산군 인주면 문방리, 대음리
함남 갑산군 회린면 진둔리
충남 천안군 광덕면 대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