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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96. 장흥위씨(長興魏氏)

작성자삼 형제|작성시간10.12.17|조회수54 목록 댓글 0

196. 장흥위씨(長興魏氏)

【시조】위경(魏鏡)

【인구】24,654명 (2000년 현재)

【주요파】▲청양파 ▲관산파 ▲행원파 ▲신대파 ▲사월파 ▲관북파

 

시조 위경은 중국 당나라 사람으로 신라에 귀화했다.

신라에서 상서시중을 지내고 장흥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장흥을 본관으로 삼았다.

고려초 시중을 지낸 위창주를 1세조로 한다.

 

전남 장흥군 관산면 방촌은 우리나라 장흥위씨의 본고장이다.

1천3백여년 동안 터전을 지키며 지금도 위씨 일가 1천여명이 살고 있다.

조선조 영조 때 호남실학의 큰 별 위백규를 낳은 마을이기도 하다.

 

위백규의 할아버지 위세보는 시. 서. 화에 모두 능해 "삼절(三絶)"로 불리었다.

어려서 할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운 위백규는 이미 8세에 시를 지었다.

정조22년(1798년)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뜰 때까지 "의례문답" "정현신보" "존재집(存齋集)" 등

자그마치 90여권의 저술을 남긴다. 이는 다산 정약용 다음으로 많은 저서다.

그는 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91년이나 앞서 그린 "조선총도"

그리고 "세계도" "천문도" 등 64개의 지도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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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한국참풍수지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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