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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98. 안동손씨(安東孫氏). 일직손씨(一直孫氏)

작성자삼 형제|작성시간10.12.21|조회수50 목록 댓글 0

198. 안동손씨(安東孫氏). 일직손씨(一直孫氏)

【시조】손응(孫凝)

【인구】24,187명 (2000년 현재)

【주요파】▲좌승지공파 ▲판서공파 ▲상서공파

 

 시조 손응은 본래 손씨가 아니라 순(荀)씨다.

고려 현종의 이름이 순(詢)으로 음이 같다 하여 손씨의 성을 하사받은 것이다.

따라서 안동손씨는 다른 손씨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8세손 손원유가 일직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일직 혹은 안동을 본관으로 삼았다.

일직은 오늘날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의 지명이다.

 

일직손씨는 고려 충숙왕조에 이르러 가문의 융성을 누리게 된다.

4세인 정평공 손홍량이 충렬왕 13년(1286년)에 일직면 송리에서 태어나

우왕5년(1378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하기까지 가문을 크게 일으켰다.

21세 때 문과에 급제한 그는 요직을 두루 거쳐 65세 되던 충정왕 3년(1350년)에 재상을 지낸다.

약관에 벼슬길에 들어 6조 임금을 모신 고려조 최장수 명신이다.

 

세종 때 대학자 손조서는 집현전 한림에 올라 당대의 학자인 박팽년, 김종직 등과 교우했다.

그는 성리학에 통달했고 시문으로 이름을 떨쳐 손씨 가문을 빛냈다.

그가 봉산군수로 있을 때 사육신이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다가 처형당하자 은둔생활로 여생을 마친다.

 

손조서의 6세손인 손처눌은 일찍이 벼슬에 뜻을 두지 학문에 정진하여 영남 성리학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손처눌은 대구 팔공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의 침입을 막고

팔공산을 사수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손조서의 5세손인 손인은 정술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손인은 퇴계가 죽은 뒤 퇴계의  문묘종사를 반대하는 대북파 정인홍을 탄핵하다 벼슬길이 막혔다.

그 뒤 서인 일파가 대북파를 몰아내고 인조반정이 일어난 뒤 현감에 기용된다.

그는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편 일직손씨 가문의 거목 손홍량이 6백여년 전 고려 충숙왕 때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와

자신이 태어난 일직면 송리에 심은 은행나무 한 그루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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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한국참풍수지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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