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성씨

[스크랩] 199. 양주조씨

작성자삼 형제|작성시간10.12.22|조회수58 목록 댓글 0

199. 양주조씨

【시조】조잠(趙岑)

【인구】23,942명 (2000년 현재)

【주요파】▲정평공파 ▲강화공파 ▲문강공파 ▲제학공파

 

시조 조잠은 고려 때 양주호장을 역임했다. 후손들이 그를 1세조로 하고 양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조잠의 증손 조계생은 고려 우왕 때 문과에 올라 조선 개국 이후 이조판서를 역임했다.

조계생의 아들 조극관은 세종 때 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1453년 (단종1년) 이조판서에 오른 그는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 때

동생 조수량을 비롯 조카 조정서, 조번, 손자 조계동, 조귀동과 함께 김종서 일파로 몰려 죽음을 당한다.

조계생의 동생 조말생은 태종 때 영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그는 태종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 항상 측근에서 보좌했다.

세종이 즉위하자 주문사로 명나라에 다녀 오기도 했다. 1439년 궤장을 하사받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조말생의 아들 3형제중 맏아들 조선은 태종의 부마가 된다.

조말생의 7세손 조정은 광해군 때 우의정에 올라 가문을 중흥시킨다.

조두순은 한성부 판윤 등을 지내고 1849년(철종 즉위) 헌종실록 편찬에 참여한다.

그는 1862년(철종 13년) 삼정의 문란으로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총재관으로서 삼정의 개혁에 힘썼다.

그 뒤 영의정에 올라 삼군부를 부활시켰으며 대전회통을 간행했다.

조병세는 을사조약으로 기울어가는 국운 앞에 충성을 다한 명신이다.

1859년(철종10년) 문과에 급제한 그는 고종 때 함경도 암행어사로 나가 탐관오리들의 비리를 척결했다.

을사조약의 파기를 주장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동포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한국참풍수지리학회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