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상주박씨(尙州朴氏)
【시조】박언창(朴彦昌)
【인구】23,627명 (2000년 현재)
【주요파】▲참판공파 ▲남양파 ▲상주파 ▲판원사공파
시조 박언창은 신라 박혁거세의 후예로 경명왕의 다섯째 아들로 사벌대군에 봉해졌다.
박언창은 경명왕 2년 후백제 견훤의 침입을 받아 항전 13년만에 전사했다.
그에 앞서 사벌주를 수호하기 위해 스스로 사벌국을 독립, 왕이 되었다.
상주박씨의 후손중에 15세손 박이령은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지만 후세의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박안신은 태종의 사랑을 받아 이름을 박안신(朴安信)에서 박안신(朴安臣)으로 바꾼 사람이다.
박이령은 황해도와 평안도병마사를 거쳐 공조참판을 지냈다.
안평대군 교제가 깊었으며 김종서와도 친한 사이였다.
그는 단종 손위 때 무안과 연일에 유배된 뒤 결국 죽임을 당했으며 가산까지 몰수된다.
그래서 그의 묘소도 알려지지 않는다.
상주박씨의 후손 가운데 비극적인 인물은 또 있다.
중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박세준의 딸은 중종 2년에 입궁하여 숙의가 되고 왕자를 낳아 경빈으로 책봉된다.
그러나 뒤에 경빈이 아들 복성군을 세자로 책봉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하여 품위를 박탈당하고 상주로 유배,
마침내 세 자녀와 함께 사사된다. 그 뒤 모함으로 밝혀져 인종과 명종이 경빈과 복성군을 복위시켰다.
효행과 학덕으로 이름을 알린 사람은 송촌공 박세훈과 대사헌 박상호가 있다.
선정으로 추앙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판서공 박사화가 있다.
특히 박사화는 학문이 깊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아 사림으로 존경받은 인물이다.
중종 때 조광조가 현량과를 신설, 박세훈도 천거했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그 뒤 을묘사화가 일어난 뒤에는 이름조차 숨기고 곤궁한 생활 속에서 일생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