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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4. 남양방씨(南陽房氏)

작성자삼 형제|작성시간11.01.05|조회수118 목록 댓글 0

204. 남양방씨(南陽房氏)

【시조】방계홍(房季弘)

【인구】22,496명 (2000년 현재)

【주요파】▲한림공파 ▲제학공파 ▲정산공파 ▲판관공파 ▲교위공파 ▲참봉공파 ▲학생공파 

 

 시조 방계홍의 선대는 중국 사람 방준이다,

그가 당나라 8학사 중 한 사람으로 신라에 왔다.  방계홍은 방준의 9세손이다.

방준이 남양에 정착하여 예학을 가르치면서 남양을 본관으로  하사받았다.

남양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의 지명이다.

 

남양방씨의 인물로는 고려말에 직제학을 지낸 9세손 방사량이 있다.

그는 우왕 3년 문과에 오른다. 공양왕 3년 중랑장으로 있을 때 조정에 올린 시무11조가 고려사에 전해온다.

방사량은 세 아들을 두었다.

맏이 방구행은 세종 2년 문과에 올라 한림정언에 이르렀다.

둘째 방구달은 태종 14년 문과에 올라 부제학에 이르렀다.

셋째 방구성은 생원이 되고 나중에 정산현감을 지냈다. 

한편 다른 후손 가운데 방구영은 해주판관을 지냈고, 방구연은 정종 때 교위, 방구형은 헌릉참봉을 지냈다.

 

남양방씨의 분파는 10세조를 파조로 하여 7개파로 갈라진다.

10세조는 바로 방구행 등 형제로 9세조 방사량의 아들들이다.

방구행의 후손이 한림공파, 방구달의 후손이 제학공파, 방구성의 후손이 정산공파다.

정산공파는 다시 방구성의 현손을 파조로 하여 갈라진다.

또다른 10세손인 방구영의 후손이 판관공파, 방구연의 후손이 교위공파, 방구형의 후손이 참봉공파,

방옥심의 후손이 학생공파다.

한편 방사량의 셋째 아들 방구성은 일찍이 전북 남원으로 옮겨가 터를 잡았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남원은 남양방씨의 집성촌을 이룬다.

특히 방구성의 셋째 아들 방순문의 후손들은 전라남북도 일원으로 옮겨가 살면서 여러 곳에 뿌리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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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한국참풍수지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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