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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65. 천안전씨(天安全氏).

작성자삼 형제|작성시간10.08.23|조회수199 목록 댓글 0

65. 천안전씨(天安全氏).

【시조】전섭(全聶) 

【인구수】133,074명 (2000년 현재)

【주요파】▲천안파

 

우리나라 모든 전씨의 시조는 환성군 전섭이다.

온조가 부여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건국할 때 온조를 도운 10명의 공신 중의 한 사람이다.

전씨는 전섭을 시조로 하여 아랫대로 내려오면서 여러 파로 갈라진다.

그 중에서 ▲정선전씨가 141,380명으로 가장 많으며 ▲천안전씨가 그 뒤를 잇는다.

그 다음 ▲옥천전씨 43,920명, ▲용궁전씨 27,706명, ▲전주전씨 16,434명, ▲옥산전씨 15,659명,

▲경산전씨 14,742명, ▲죽산전씨 11,229명 순이다. 그밖에 전씨는 각각 몇 천명에 불과하다.

천안전씨의 관조는 시조 전섭의 16세손인 전악(全樂)이다.

서기 927년 왕건은 전이갑. 전의갑. 전악 등 전씨 일가 3명과 신숭겸 등을 장수로 삼아 대구 팔공산에서 싸우다

적에게 포위당하는 위기를 맞는다. 이때 전이갑이 왕건으로 가장,

적의 주력부대를 유인하는 사이 왕건은 극적인 탈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전악 등은 모두 장열하게 전사한다. 그 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왕건은 전악을 천안군에 봉했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천안으로 삼았다.

동학혁명의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은 천안전씨가 배출한 인물이다.

그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봉준은 전북 태인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가 민란의 주모자로 처형되자 동학에 입문, 접주가 된다.

그리고 고부 군수 조병갑이 백성의 고혈을 짜는 것을 보다 못해

이 땅에 최초의 민중혁명을 일으켜 백성이 나라의 주인임을 일깨워 준다.

1893년 1월 전봉준은 농민과 동학교도를 이끌고 궐기,

관아를 습격하고 강탈되었던 세곡을 농민에게 반환하고 부패한 관리들을 감금했다.

1894년 동학봉기를 빌미로 청일전쟁이 터졌고 한반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군마에 짓밟히기 시작한다.

전봉준은 구국의 기치를 들고 대일전을 시작했다.

남도 접주로 12만 병력을 지휘, 북도 접주 손병희의 병력 10만과 연합하여

교주 최시형의 총지휘 아래 이천. 목천. 공주 등지에서 일본군과 혈전을 벌였다.

그러나 우수한 무기와 조직적인 훈련을 받은 일본군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패배한다.

1895년 3월27일 녹두장군 전봉준은 그 크고 높은 뜻을 펴지 못한 채 교수형에 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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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한국참풍수지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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