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흥조씨들에게 질문하니 답변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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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흥조씨들에게 질문하니 답변바랍니다 영흥조씨 조영무의 부,조부,증조부의 관직 고찰 불법종회에서 간행한 불법족보에서 조영무와 조영무의 상계를 고찰함. 1.조영무의 부(父) 正憲大夫行禮儀判書 贈輔國崇祿大夫門下左政丞 漢山伯漢陽趙公世珍之壇 配贈貞敬夫人永興崔氏 ===>의문사항 (1)"정헌대부"와 "보국숭록대부"는 고려의 품계가 아니고 [조선의 품계]인데 조영무의 아버지는 고려때 사람인데 조선의 품계를 어떻게 받았는가? 위 사항은 품계는 조선,직책은 고려인데 이런 해괴한 경우가 어디에 있는가? (2)정헌대부 다음에 行은 행직으로서 품계보다 낮은 직책을 받았을때 부득이 내리는 경우인데(반대의 경우 즉,품계는 낮은데 직책이 높은 경우는 守직이라고 함) 정헌대부와 예의판서는 같은 품계이거늘 행직이 어떻게 성립하는가? (3)좌정승을 증직받았다면 조영무가 영의정이라고 써 있던데 증직법을 보면 조영무의 아버지도 증영의정이 되어야 앞뒤가 맞는데 어떻게 답변하려는고? 또한,조영무의 영의정은 누가 내렸는가? 조선에서 내린 기록은 없는데 왜국(일본)에서 내렸는가? 2.조영무의 조부(祖父) 正憲大夫參贊門下府事 漢陽趙公珣厚之壇 配貞夫人文川朴氏 ===>의문사항 (1)조영무의 부와 마찬가지로 "정헌대부"는 고려의 품계가 아니고 조선의 품계인데 고려때 사람인 조영무의 조부가 어떻게 "조선의 품계"를 받았는가? (2)조영무의 아버지가 좌정승을 증직받았으면 할아버지는 우의정 증직을 받아야 하는데 증우의정은 누구에게 주었는가? 보이지가 않으니 말입니다. (3)배우자는 고려때 품계가 文川郡夫人朴氏가 그래도 앞뒤가 맞는데 조선의 품계인 정부인을 사용하니 왜 이리 뒤죽박죽인가? 거짓말을 하려면 제대로나 하라! 3.조영무의 증조부(曾祖父) 奉翊大夫版圖判書 漢陽趙公麟才之壇 配貞夫人平昌李氏 ===>의문사항 (1)조영무가 영의정이면 조영무의 증조부는 증우의정을 받아야 하는데 조부와 마찬가지로 증직은 어디에 주었는가? (2)조영무의 조부와 마찬가지로 배우자는 고려시대는 平昌郡夫人李氏가 되어야 하는데 조선의 품계 [정부인]를 사용한것은? 역사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분들이 그대들이 불법으로 간행한 가짜 한양조씨대동세보를 보면 웃습니다. 그대들이야 남의 조상을 나의 조상으로 둔갑시키고(영흥조씨와 철원조씨), 나의 조상을 남한테 내주는(일부 한양조씨종인) 반인륜적인 사람들이라 창피한줄을 모를테지만 하늘을 머리로 둔 양심과 양식이 있는 대다수 한양조씨 종인들까지 도매금으로 그대들과 같이 넘어가는 현실이 한탄스러울 따름이며 그대들의 죄상은 문적에 낱낱히 남겨 세세토록 후세에 전할 예정입니다. 참고 : 공지사항 "조영무 상계관직 조작"검색 조선조는 숭유억불정책을 국가시책으로 삼을 만큼 유학과 예법을 중시하였습니다. 고위관직에 오른 [갑]이란 신하가 사망하면 [갑]의 아버지와 조부 증조부의 벼슬이 [갑]보다 낮을 경우 [갑]의 아버지와 조부 증조부 3대를 추증하였습니다. 충무공 휘 영무께서 태조 정종 태종조에 벼슬하여 관직이 영의정에 이르고 졸하셨으면(조선왕조실록 및 모든 국가문서에는 우의정으로 밝혀졌는데 귀 영흥조씨의 족보를 보면 충무공이 영의정을 배수받았다고 써 있고 묘소 비문 전면 및 음기에 영의정이라고 써있던데<귀파 족보 소장하고 있음,퇴촌소재 충무공 묘소비문 확인)이것도 조작임>아버지인 휘 세진(예의판서)은 증 영의정이 되어야 하나 귀파 족보를 보면 증 좌정승 한산백이라고 한계급을 낮추어 놓았고,조부인 휘 순후(참찬문하부사)는 아버지 세진보다 한계급 낮은 증 좌의정을 받아야 되는데 증직내용이 없이 판서급인 참찬문하부사라고만 되어 있고,증조부 휘 인재(판도판서)는 조부인 순후보다 한계급 낮은 증 우의정을 받아야 되는데 증직내용이 없이 판도판서라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것은 충무공의 3대 조상이 가공인물이란 확증이며 이는 한양조씨 시조 중서공에다가 억지로 끼워 맞추기 위한 술수입니다.역사학자에게 물어보시오? 어느것이 사실이고 어느것이 거짓인지를! 또한 그 당시 우리 한양조문의 인물들 즉.총관공,용성군,양렬공,검한성공,충정공,양절공 등에 관하여는 초년도 낮은 벼슬부터 고려사에 전부 기록되어 있는데 귀파의 2세조 판도공,3세조 참찬문하부사공,4세조 한산백공은 요즘 장관급,부총리급으로 고려조에서 최고위관직인 판서와 작호 '백'을 받으신 어마어마한 어른들인데 고려사를 비롯한 모든 국가문서에 단 한사람의 이름도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묘소는 어찌하여 하나같이 전부 실전하였는지요? 이 또한 가공인물이란 확증입니다. 영흥조씨인 판도공후손들이 조상을 과대포장하여 단순히 자신들의 신분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우리 한양조문에서는 무어라 할말이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가공인물을 만들어 우리 한양조씨의 시조 중서공의 1자라고 억지로 끼워맞춰서 한양조씨라고 종통을 침범하니 누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충무공께서는 비록 번상군 즉,군졸출신이었지만 조선의 개국 정사 좌명공신으로 개국초에 나라의 기틀을 닦으신 어른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직언을 서슴치 않은 훌륭하신 분입니다.무관의 최고훈장인'충무'시호를 조선조에서 최초로 받으셨는데(성웅 이순신장군도 시호가 '충무'이다) 충무공의 일부 극소수자손들의 헛된 망상으로 분란이 발생하고 또 이런글을 쓰게 되어 마음이 착찹하기 그지없습니다.헛된망상에 희생되는 다수의 충무공 후손들께 무례를 저지른 점 양해하여 주시기를 바라며 침묵하시는 다수의 충무공 후손들께서는 어느것이 조상님을 올바르게 모시는 것인지 생각하고 바른길로 갈것을 권유하는 바입니다. 모든 일은 사필귀정입니다.귀 영흥조씨는 이미 역사적인 고증을 통하여 밝혀진대로 영흥조씨로 돌아가 판도공 또는 충무공을 시조로 모시고 가계를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본관을 전부 바꾸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을 것이지만 남의 조상을 내조상으로 둔갑시켜 모시는 것보다 백번 천번 타당한일입니다. 귀 영흥조씨의 충무공과 우리 한양조씨의 충정공,양절공,양경공은 혁명동지로서 매우 가까웠던 사이였습니다. 앞으로 본관이 서로 다르더라도 같은 조가를 쓰는 성씨로서 친하게 지냅시다. 잘 검토하시고 서로가 좋은 방향으로 결정이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참고 : 귀 충무공 조영무는 조선왕조실록에 벼슬과 사적이 아주 상세히 나와 있는데 충무공 조영무의 선대는 하나같이 모두가 판서급 이상으로 조영무와 비슷한 직급에 올라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고려사에 한줄도 없는지 비교하여 보시기 바랍니다(한양조씨 조상들은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사에 똑같은 비중으로 다같이 나옴) 한양조씨 대종회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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