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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 풍습

고향의 전설 [안동]

작성자삼 형제|작성시간12.02.22|조회수19 목록 댓글 0

도산 애일당 현판 전설,

 

 


지금부터 약400년전 이조 연산군때

 

경상 관찰사로 있던 농암 이현보선생이 고향의 수려한 산천 도 즐길겸

늙으신 어머님을 위하여 그의 말년에 정계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안동군 도산면 분천동에 애일당이라는 정자를 짓고

현판을 걸기 위하여

중국에 있는 명필에게 글씨를 받으려고 아끼는 제자를 보내게 되었다.

중국까지 머나먼 길을 가게된 제자는

반년만에 중국에 도착하여 다시 그 명필을 찾기에 한달을 헤메게 되었다.

 

 

 

드디어 깊은 산중에 있는 그를 찾아 조선국 농암 선생에 대한 말씀을 올리며

애일당 현판글씨를 청하였다.

그 사람은 뭐 보잘 것 없는 사람의 글씨를 받으려고

그 먼곳에서 여기까지 왔느냐고 하면서

산에서 꺾어온 칡줄기를 아무렇게나 쥐고 듬뿍 먹을 찍더니

단숨에 "애일당" 석자를 써서 내주었다.

 

 

 

좋은 붓에 잘 간 먹을 찍어

정성스레 써 줄 것을 기대했던 제자는 내심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건 글씨가 아니라 장난으로 휘갈긴 것 같았다.

제자는 다시 써 줄 수 없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채널돋보기] 살아있는 화석 두루미를 찾아서

 

 

중국 명필은 "이 글씨가 마음에 안 드시오?"하더니

쓴 종이를 가볍게 두세번 흔들었다.

그러자 세글자가 꿈틀거리더니

세 마리의 하얀 학이되어 날아가 버렸다.

제자는 자신의 우매함을 백배사죄하며

다시 써줄 것을 며칠동안 간청하였으나 결국 거절당하고 말았다.

 

 

허나 그는 "이 아래 내려가면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으 니 찾아가 보라"고 했다.

제자는 어쩔수 없이 그가 이르는 대로

다시 산아래에 있는 명필을 찾 아가니

"산중에 계신분이 우리 스승님인데 그곳을 찾아가 보시오"하므로

자신이 당한 일을 자세 히 밝히니

"본국에서도 별로 남에게 글씨를 써주지 않는 분인데

특별히 조선국에서 왔다하여 써 주셨는데.... 좋은 글씨를 놓쳤군요"하며

자기의 글씨는 선생님의 글씨를 반도 따라가지 못하며

학 세 마리는 못되어도

한 마리 정도는 된다고 말하며 붓을 들어 정중히 써 주었다.

 

 

굴삭기가 대학 캠퍼스로 간 까닭은…

 

 

 

글씨를 받아가 지고 돌아오는 제자는

농암선생께 면목이 없고 그 애석함을 누를길이 없어

돌아온 뒤에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유서에서 이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이렇 게 해서 애일당 현판은 걸려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해 큰 홍수가 나 정자를 휩쓸어 갔을 때

현판도 함께 떠내려가 아주 잃었다고 체념했는데

그곳에서 백여리 떨어진 곳의 한 어부가 이 현 판을 들고 찾아와

무사히 애일당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어부는 고기르 잡으로 강에 나갔더니

무언가 물결을 타고 흘러내려오는데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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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는 혹 금물을 입힌 진귀 한 것이 아닌가해서

급히 배를 대어 건져냈더니 애일당 현판이었다고 한다.

전에 있던 애일당은

안동댐 건설로 수몰지구에 들어가게 되어 그 뒤산 중허리에 옮겨 세워졌다.

 

 

 

 


풍산 오미동 전설

 

 

오미동 참봉댁 명칭변경 안동 학암 고택


안동군 풍산읍에서 약 4km쯤 더 가면

오미동이란 풍산 김씨들이 살고있는 마을이 있다.

이 마 을은 풍산 김씨의 세력이 당당하여 출중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고

가세도 든든하여 이웃 마을에서 부러워하는 부촌이었다.

 

 

이 집안의 작은집에서 아들만 9형제를 낳았는데

이렇게 많은 아들은 낳은것도 천복인데

모두 재기가 출중하고 총명이 남보다 뛰어나

인근 마을사람들도 칭찬이 자자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막내 아들이 제일 영리하며 내외의 귀여움을 독차지하였다.

이때 안동부사 는 자식이 없어 적적한 나날을 보내던 중

김씨댁의 9형제 이야기를 듣고

그중 총명하고 귀여운 막내아들을 데려다 훌륭히 기르겠다고하여

마침내 부사댁에서 명문자제로 귀히 자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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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배우면 백을 통하는 총명에다가

깍듯한 예의범절과 부모에게 대하는 깊은 효심도 있어

부사는 친아들처럼 사랑하였으며

이동할 때마다 데리고 다녔다.

몹시 무더운 여름 어느날 막내아들은

더위를 식힌다고 낙동강에 뱃놀이를 나갔다.

 

 

영호루 앞에서 뱃노리를 즐기다가 호기심에

사람이 없는 곳까지 가게 되었다.

물살이 세어지자

노젓는 손에 균형을 잃어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그만 익사하고 말았다.

부사와 온 마을사람들은 매우 슬퍼했다.

특히 아우를 잃은 나머지 형제들의 슬픔은 매우 컸다.

 

 

그들은 열심히 글을 읽어 훌륭한 인재가 되는 것이

아우의 죽음에 대한 형제의 정이라 생각하여 작업에 열중했다.

드디어 한과거에서 오형제가 다같이 급제하게 되었다.

 

 

이 경사스런 소문이 전국에 퍼지니

이를 시기한 무리들이 생겨 나게 되었다.

이들은 열심히 임금께 무고를 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임금님 수라상은 어땠을까 

 

 

"5형제가 동시에 등과한 것은 불길 한 징조이며

그곳은 필시 보통 지형이 아닐지니

이를 그냥두면 역모가 날 것이옵니다.

처단하여 원화소복하기를 바라옵니다"고

왕에게 연일 상소를 올렸다.

 

 

왕이 이말을 듣고 처음엔 시기하는 무리의 참소라고 생각했으나

횟수가 잦아지자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다.

임금은 당시 풍수지리에 뛰어난 지관을 밀파하여 자세히 조사하도록 하였다.

밀령을 받은 칙사가 지형을 조사해보니

역 모의 땅같지는 않았으나

어명인지라 김씨네 선조의 묘지를 파보기로 하였다.

 

 

“나 쌀로만든 붕어빵이야” 쌀 붕어빵 등장 

 

 

 

무덤을 반쯤 팠을 때 이상하게도 붕어 세 마리가 나오지 않는가!

그런데 한 마리가 펄쩍 뛰어오르더니 저만큼 나가 죽었다.

그 죽은 자리에 훗일 절을 지은것이 지금의 광생의 절이다.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갯가에 뛰어나가 죽었는데

죽은 곳에 비문 없는 비석을 세워 지금까지 남아있다.

 

 

마지막 한 마리 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괴이하게 생각한 지관이 보니

명산혈이 산줄기를 타고 뻗히는지라 혈을 타고 가보니

예천군 고평면 오천동에서 끊어져 있으므로

이는 역모가 날 징조가 아님을 확인하게 되었다.

 

 

지관은 오히려 명당의 무덤을 판 것을 후회하여

서울로 올라가 왕에게 사실대로 아뢰니

왕도 무덤을 파헤치기까지한 것을 퍽 애석히 생각하여

이 마을에 새 이름을 지어주니

5형제가 한 꺼번에 과거에 급제한 것은

과연 아름다운 일이란 뜻에서 오미동이라 하였다.

 

 

 

 

 

 

 용소 전설

 

 

 

골기퍼 정성룡 부인 임미정씨, 아들사진 공개

 

 

 


옛적 안동군 길안면 산달리 월성 이씨 가문에서

온 집안이 기다리던 아들이 태어났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되는 이 아기는 아주 신통한 힘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은 장사가 태어났다고 수군거렸다.

낳은지 얼마 안되어 이빨도 나고 걷기도 하며 젖보다도 밥을 먹었다.

 

 

아지 첫돌도 지나지 않은 어느날 어머니가 시장에 갔다오니

놀랍게도 시렁위에 올라가 흰 이를 보이며 씩 웃는데

가만히 보니 겨들랑이에 날개까지 돋아있는게 아닌가!

당시에는 장사가 나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역적이 된다고하여

그 집안을 멸족시키는 국법이 있어

소문이 자꾸 퍼지면

아들은 물론 친척들 까지 모두 화를 입게 될 처지였다.

 

 

 

이에 당황한 월성 이씨 일가는

의논 끝에 갓 태어난 장사를 죽이려 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썼지만

어린 장사는 힘에 지혜까지 있어 어렵기만 했다.

 

 

인척들은 뜻대로 잘되지 안차 마침내 낮잠을 곤히 자는 장사위에

큰 널판을 덮고 떡메로 쳐죽여 버렸다.

장사가 마침에 숨을 거두자

그마을 건너편 산 기슭에 장차 용이 날 곳이라하여

용바위라 칭하던 큼직한 바위가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 용마가 한 마리 나타나 큰소리로 하늘을 향해 부르짖더니

곤두박질을 치며 산기슭아래 큰 못속에 빠져 죽었다.

 

[디카갤러리] 초식동물이라고 우습게 보지마라!

 

 

 

그 용마는 장사가 타는 말로서

장사가 태어나면 하늘에서 점지된 용마도 동시에 태어나

어떤 시기에 그둘이 만나게 되면

비로소 큰 장사 의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 어린 장사에게로 오던 용마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빠져 죽은물은 하루에도 세 번씩이나 색깔이 변하여

이씨일가뿐 아니라

마을사람 들에게 큰 두려움을 주게되자

이 못을 없애려고 흙을 실어 메우게 되었다.

 

 

 

그러자 때아닌 큰 홍수가 마을을 휩쓸고

그 못을 메운 흙을 모두 쓸어가 버리고 말았다.

몇번 시도를 했으나 매번 홍수가 나 다시 못이 이루어지자 포기하게 되었다.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 될 어린 장사를 죽인

월성이씨 가문은 점차 몰락하게 되었다고 하며

용마가 빠져 죽었다는 그 물을 용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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