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계획과 다른 결과(전 10:8-11)
8.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 9.돌들을 떠내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상할 것이요 나무들을 쪼개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위험을 당하리라 10.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11.주술을 베풀기 전에 뱀에게 물렸으면 술객은 소용이 없느니라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나에게 감동이 되고 은혜가 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은혜 받는 것은 고사하고 무슨 말인지 이해조차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그럴 때 성경을 덮고 그만 보자 그러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성경인데 성경이 왜 어렵게 느껴지고 이해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셔야 합니다. 성경이 참 어렵고 감동도 안 되고 은혜도 안 되는 그 이유라고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성경을 우리의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내용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서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 현실이 성경에 녹아들고 섞이는 것이 아니고 도무지 하나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경대로 우리의 현실은 현실대로 각각 따로 움직이는 것처럼 관심도 없는 것이고 또 감동도 안 되는 게 당연한 거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맞지 않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관심이 안 가는데 그렇게 관심 가지 않는 내용에 감동이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사람이 책을 살 때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사지 않지요. 책을 고를 때는 책이 나에게 재미있는 것인가 또 내가 원하는 지식을 얻게 해주는가 또 세상 살아가는데 유익을 주는가 그렇게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책을 사게 되죠. 그런데 성경은 그 어떤 조건에도 부합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고 내게 필요한 지식을 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무언가 얻고자 하는 것을 성경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돈을 주고 성경을 사죠. 성경책이 싸지도 않는데 사는 것은 그래도 교회를 다녀야 하니까 사게 되지요.
요즘 교회는 예배 때 성경을 영상에 띄워주기 때문에 성경을 안 들고 다녀도 예배드리는데 문제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구입하는 것은 성경을 집에서 읽어보아야 하고 성경에 대해서 알아야 하기 때문에 구입은 하지요. 그런데도 성경이 어려워서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고 감동도 안 오니까 어렵게 생각하고 관심이 없어지죠. 그냥 목사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 알면 된다고 생각해버리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먼저 있습니까 성경이 먼저 있습니까? 성경이 먼저 있는 것이고 우리가 존재하기 전에 성경이 있습니다. 성경책이 먼저 만들어졌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창세전부터 이미 존재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먼저인 것입니다. 그 뜻과 계획에 의해서 세상이 창조되었고 우리가 존재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뜻과 계획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이 말은 성경의 어떤 내용도 내 뜻에 안 맞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성경 볼 때 늘 이것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볼 때 내 뜻과 계획에 성경을 맞추려고 하다 보니까 안 맞는 게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성경이 우리와 안 맞고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다고 한다면 세상 사는 일이 염려가 되고 걱정이 될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는 현실이 중요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금의 내 현실을 중요한 것으로 붙들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보고 믿는다고 하면서 염려 걱정이 그대로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자기 현실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까지도 내 현실에 맞추어 가지고 생각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려 걱정 없이 세상을 살아가게 해주는 그런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전혀 다르게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시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뜻하신 대로 우리를 이끌어가고 계시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정말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신자라면 기존에 알고 있던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바르게 알게 될 때 그것이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던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나니까 우상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알고 믿었던 하나님이 우상일 뿐이기 때문에 나의 구원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안다고 할지라도 멸망에 이르는 거죠. 그것을 우리가 생각해본다면 내가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정말 기쁨이고 복이 되는 것이죠. 그런 기쁨과 복이 되는 길로 이끌어 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게 하셔서 전혀 알지 못했던 생소한 기쁨을 알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분명하게 결론지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내 뜻과 계획대로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늘 기억하셔야 합니다.
8.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 9.돌들을 떠내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상할 것이요 나무들을 쪼개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위험을 당하리라
함정을 파고 돌을 떠내고 나무들을 쪼갠다는 것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금이야 이런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옛날에는 그렇게 살았지 않습니까? 특히 함정은 누군가를 빠뜨리기 위한 계획으로 팝니다. 동물을 잡기 위한 함정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어떤 설교를 들어보니까 남을 해롭게 하려고 함정을 파는 사람은 도리어 자신이 함정에 빠진다. 이런 벌 받는다는 의미로 설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남을 해롭게 하지 말라는 것이죠. 그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그냥 도덕적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있는 도덕적 교훈으로 적용해버리는 실수를 하는 거죠. 함정을 파든 돌을 떠내든 나무를 쪼개든 그 일을 할 때는 자기 계획과 자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 계획을 가지고 판 함정에 내가 빠져 버려요 또 담을 헐다가 뱀에게 물려버립니다. 돌을 떠내다가 내가 상하게 되는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거죠. 이런 일은 내 계획에 없던 일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계획과 선택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하던 일이 도리어 나에게 해롭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것이죠. 우리가 살다 보면 그런 일을 수없이 겪게 되는 것이죠. 여행의 계획을 세우고 떠날 때 여행의 목적은 즐거움이죠. 그런데 여행 중에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내 계획에 없었던 일이죠.
이처럼 계획에 없던 일을 겪으면서 인생 마지막까지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내 계획에 없던 일이라고 해서 우연한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도대체 왜 이렇게 일을 하시느냐는 거죠. 왜 내 계획에 없는 일을 만나게 하시느냐는 겁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은 내가 함정을 팠는데 거기에 빠져 버린다고 했을 때 그들은 내가 실수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담을 헐다가 뱀에게 물렸을 때 재수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내가 일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신 것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내 계획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모든 일을 재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해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함정을 팠는데 내가 거기에 빠지고 담을 헐다가 뱀에게 물리고 이렇게 내 계획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우리가 생각하게 되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일하시지? 이런 물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답을 내릴 수 있지요. 내 계획과 내 선택을 믿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 계획과 내 뜻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내 뜻과 계획을 믿지 못하도록 하실까?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은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이 땅의 현실을 살면서 나의 형통함을 위해서 하나님을 찾는 일은 아니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자기백성을 예정하시고 선택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택하신 백성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합니다. 이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막연하게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택과 계획대로 된다는 그 계획과 선택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믿습니까? 그럴 때 하나님의 계획과 선택을 믿는다고 하면 됩니다. 무엇을 믿는 것도 모르고 믿는다고 하는 것은 너무 막연한 것입니다. 이런 대답이 믿음과 믿음이 아닌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선택을 마음에 두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가짜입니다.
하나님이냐 하나님이 아니냐의 물음도 나는 하나님의 계획과 선택을 믿습니다 라는 답을 통해서 당신이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정도만 가지고도 지금의 교회에서 가르치는 믿음과 믿음이 아닌 것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가 있는 겁니다. 교회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믿음은 내 계획과 뜻을 이루기 위한 믿음입니다. 가짜라는 것이죠.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내 뜻과 계획을 이루도록 도와주신다고 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 계획과 내 선택을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과 선택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교회에서 믿습니다를 난발하면서 믿는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묻지마 믿음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는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내 믿음의 목적만 이루어지면 된다는 거죠.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믿자는 것은 자기 믿음일 뿐 성경의 믿음이 아닙니다. 이런 방식이기 때문에 믿음이 무엇인지 몰라도 부담이 없는 거죠. 그냥 믿습니다만 하는 것이죠. 내가 이렇게 믿으니까 내 믿음을 알아달라고 하나님께 사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정말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믿음도 아닐뿐더러 구원도 되지 않습니다. 믿는다고 착각하다가 지옥 가는 것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진노한 것도 그런 것이었거든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해서 바다와 육지를 돌아다니다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지옥 자식 만든다고 한 것입니다.
지금의 기독교에서 그처럼 교인을 만들어서 지옥 자식 되게 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 현실에서 내 믿음의 잘못된 것을 깨닫고 내가 믿었던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니었구나 이것을 알게 된다면 그게 정말 복이지요. 그것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획과 선택을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믿음은 내 뜻과 내 방식은 하나님의 구원에 전혀 보탬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계획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하면 내가 무엇을 하면 그런 생각은 내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없구나 알게 되는 것이고 그게 믿음이 역사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우리의 자발적읜 의지를 가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성령이 역사함으로서 보이지 않는 현실에 눈을 뜨게 되는 결과입니다. 성령으로만 되는 일입니다.
함정을 판 자가 함정에 빠져서 크게 다쳤다고 합시다. 그 다음 반응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함정을 팠는지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누군가를 빠뜨리기 위해서 판 함정이라면 하나님이 나를 벌주시는가 보다 내가 죄 짓는 것을 하나님께서 막으시는가 보다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는 거죠. 내가 편리한대로 생각하는 것이죠. 담을 헐다가 뱀에게 물렸으면 내가 괜히 담을 헐었나 보다 담을 헐지 않았으면 뱀에게 물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겠지요. 이런 것들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믿음이 무슨 믿음이겠느냐는 거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함정에 빠지지 않고 뱀에게 물리지 않는 내 계획대로 되는 것을 원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죠. 한 마디로 말해서 사고 없고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에서 선택하는 것은 하나 같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계획대로 아무 일 없이 잘 되기를 바라고 원하지만 원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거죠. 그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면 됩니다. 내 계획과 선택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선택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과 선택을 믿으라는 것이죠. 우리의 선택은 거의 현실에 도움이 되는 것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과 선택은 보이지 않는 현실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생이 누구의 선택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복이 될 수 있는지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분명히 알게 된 그런 결론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면서 자꾸 내가 선택한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의도로 하나님을 찾기 때문에 함정을 파는데 거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하시면서 너의 선택대로 안 되고 너의 계획대로 안 되니까 나의 선택과 계획을 믿고 따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주 신호를 보내시고 말씀도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 정말 무지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예수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런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여러분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물속에 엄청나게 큰 얼음이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물 표면에 조금 드러난 것만 보고 빙산을 안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우리도 하나님에 대해서 빙산의 일각만큼 희미합니다. 희미하게나마 안다는 것도 잘못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잘못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도 내가 하나님을 모른다는 무지함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필요성까지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 미련한 것이고 심각한 문제입니다. 10절 보겠습니다.
10.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연장이 무뎌졌는데 갈지 않고 쓰면 힘들다는 것은 상식이고 누구나 아는 문제입니다. 무딘 날을 갈아서 쓰겠죠. 그냥 쓰는 사람은 미련한 것이죠. 인간이 그렇다는 겁니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미련한 모습만 드러내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무지하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이신가 아는 일에 힘써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죠. 그렇게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런 지혜가 믿음에서 유익하다고 하는 겁니다. 믿음의 성공은 주를 믿고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주를 아는 것이 믿음의 성공이죠. 11절을 보겠습니다.
11.주술을 베풀기 전에 뱀에게 물렸으면 술객은 소용이 없느니라
이 내용을 보면 뱀을 부리는 술객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술을 베풀기 전에 뱀에게 물렸다면 주술을 베풀어도 이미 물렸기 때문에 술객은 소용이 없다는 거죠.
3.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4.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5.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시58:3~5)
악인을 모태에서부터 멀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모태에서부터 진리에서 멀어진 상태를 악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나면서부터 진리가 아닌 다른 길로 나아가면서 거짓을 말하는데 이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태에서부터 진리에서 멀어진 악인으로 나온다는 겁니다. 이런 인간을 술사가 방술을 행해도 그 소리를 듣지 않는 독사로 표현을 하는 겁니다. 술사가 아무리 방술을 행해도 안 듣습니다. 그런 독사로 인간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런 뱀에게 물린 자를 인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않고 자기를 위해 선악과를 먹은 그것이 뱀에게 물린 인간으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나를 다스리고 죄에게서 벗어나게 할 술사는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도 없다. 이미 모태에서부터 진리에서 멀어진 상태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인간을 다스려가지고 죄를 짓지 않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뱀을 다스리고 승리하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죠. 하나님이 뱀을 이기고 우리를 구원할 자로 보내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택이고 계획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선택과 계획 앞에서 이미 뱀에게 물린 자로 표현되고 있는 우리는 다른 방법을 끄집어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술수도 안 통하는 것은 이미 뱀에게 물렸으니까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그게 인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꾸 받을 수 있는 것을 기대하면서 방법을 끄집어내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인간은 모르는 겁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의 무지함에서 자꾸 내 방법과 계획을 끄집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성경과 늘 곁길로 흘러가고 있는 악인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사48:8)
역시 이사야도 인간을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다고 합니다. 나고 나서 사악해진 것이 아니고 이미 모태에서부터 배역한 자로 정해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1.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2.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사44:1,2)
모태에서부터 뱀에게 물린 자로 태어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태어날 때부터 어떤 술사도 다스릴 수 없는 그런 인간으로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모태에서부터 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라고 하는 것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선택과 관계 안에서 살아온 것입니다. 이미 모태에서부터 작정되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나의 뜻과 선택과 계획이 잘 되어서 살아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선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삶의 끝은 영원한 영광의 생명이라 그렇게 정해놓고 하나님의 선택을 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좀 알아야 되는 것은 내 선택과 계획과 다른 결과가 주어지고 있는 것을 경험하면서 내 계획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아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게 하시려고 우리의 선택과 계획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선택대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나의 계획과 선택대로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그 결과가 어떨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내 계획의 끝과 하나님의 계획의 끝의 차이가 어떤 것일지 생각해보면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정말 진심으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내 육신 말고 내 영혼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그런 지혜가 있어야 인생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살아가면서 형통하는 것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의 형통이라고 해보아야 잠시 잠깐 내 계획대로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지 진짜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진짜 형통은 요셉처럼 옥에 갇혀도 하나님이 요셉의 길을 정하시고 그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형통이라고 합니다. 옥에 있는 요셉이 형통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는 것을 형통이라고 합니다. 내게 세우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선택대로 되는 것이 형통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형통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편하게 산 것을 형통이라고 복 받았다고 좋아할 때 그게 형통이라는 함정에 내가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방법은 내 뜻과 계획과 선택을 흔들어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심에 끌려서 언제나 이 세상에서 형통이라고 하는 함정에 빠지고 뱀에게 물린 채로 살아가는 자가 나구나. 이것을 알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계획과 선택만 믿는 그런 길로 이끌어 가시는 것이죠. 하나님의 계획과 선택이 세상에 낱낱이 드러난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아니면 지옥 갑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고 그 십자가가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최고의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방식이 여러분의 계획보다 더 기쁨이 되게 하시고 그 기쁨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면서 여러분의 계획과 선택은 너무나 허술하고 허망한 것이며 헛수고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빈틈없고 완벽한 계획이 기쁨과 즐거움이 되는 그런 새로움을 느끼고 살아가는 신자가 하나님의 간섭을 받고 이끌림 받고 형통하는 신자입니다. 그런 형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라겠습니다.(신윤식 목사 설교 편집- 산골편지 원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