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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107강) 이스라엘의 허물(대하 28:8-15)

작성자프토코스|작성시간26.06.21|조회수1 목록 댓글 0

https://youtu.be/6bAEnBwkw5k

<본문>

8.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형제 중에서 그들의 아내와 자녀를 합하여 이십만 명을 사로잡고 그들의 재물을 많이 노략하여 사마리아로 가져가니

9.그 곳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는데 이름은 오뎃이라 그가 사마리아로 돌아오는 군대를 영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다에게 진노하셨으므로 너희 손에 넘기셨거늘 너희의 노기가 충천하여 살륙하고

10.이제 너희가 또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압제하여 노예로 삼고자 생각하는도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

11.그런즉 너희는 내 말을 듣고 너희의 형제들 중에서 사로잡아 온 포로를 놓아 돌아가게 하라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한지라

12.에브라임 자손의 우두머리 몇 사람 곧 요하난의 아들 아사랴와 무실레못의 아들 베레갸와 살룸의 아들 여히스기야와 하들래의 아들 아마사가 일어나서 전장에서 돌아오는 자들을 막으며

13.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포로를 이리로 끌어들이지 못하리라 너희가 행하는 일이 우리를 여호와께 허물이 있게 함이니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더하게 함이로다 우리의 허물이 이미 커서 진노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하매

14.이에 무기를 가진 사람들이 포로와 노략한 물건을 방백들과 온 회중 앞에 둔지라

15.이 위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 일어나서 포로를 맞고 노략하여 온 것 중에서 옷을 가져다가 벗은 자들에게 입히며 신을 신기며 먹이고 마시게 하며 기름을 바르고 그 약한 자들은 모두 나귀에 태워 데리고 종려나무 성 여리고에 이르러 그의 형제에게 돌려준 후에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설교 요약>

역대기는 남 유다를 중심으로 기록된 역사서입니다따라서 북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한 선지자들의 활동은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그런데 본문에서는 예외적으로 여호와의 선지자 오뎃이 북이스라엘을 향해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그들의 죄를 책망합니다이처럼 역대기에서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의 죄를 직접적으로 지적하는 장면은 사실상 본문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을 단순히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으로만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지금까지 유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왔는데 갑자기 북이스라엘의 죄를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어 책망하신 것에는 분명 우리가 주의 깊게 생각해 봐야 할 어떤 이유와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아하스 왕은 자녀들을 제물로 바치면서까지 우상에게 제사하고 분향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습니다그로 인해 하나님은 그를 아람 왕과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심으로 많은 백성이 죽고 포로로 끌려가는 곤욕을 당합니다특히 이스라엘 왕의 손에 죽은 용사가 십이만 명이었고사마리아로 끌려간 사람이 이십만 명이나 되는 피해를 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해서 한 가지 의문이 되는 것은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며 선지자 오뎃을 보내어 그들을 책망하셨다는 것입니다진노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유다를 이스라엘 손에 넘기셨는데이스라엘이 노기가 충천하여 유다 백성을 살육하고 노예로 삼으려 했기 때문으로 말합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진노와 책망이 이해되는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비록 하나님께서 유다를 징계하시려고 이스라엘 손에 넘겼다 할지라도어쨌든 유다와 이스라엘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같은 형제 관계에 있습니다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에 사용되는 도구로서의 수준을 넘어서 자신들의 분노대로 과도히 살육하고형제들을 노예로 삼으려 했습니다즉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점을 진노의 이유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노의 이유를 그렇게 생각한다면 또 다른 의문이 생깁니다그것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어 유다를 치는 이스라엘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행동했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유다를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시거나어느 선까지 행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기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전쟁이라는 상황 자체를 생각해 보면상대를 죽이고 포로로 사로잡아 노예로 삼고자 하는 일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따라서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그들은 단지 전쟁에서 승리했고승리한 군대가 일반적으로 취하는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이것이 우리가 본문을 깊이 생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의 행동에 진노하시고 죄로 규정하셨을까요그리고 하나님께서 문제 삼으신 것은 단순히 살육의 규모였을까요아니면 그들의 행동 이면에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일까요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역대기에는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신 이야기가 유다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가 본문에서 생각해야 할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이스라엘 손에 넘기신 이유는 여호와를 버린 유다를 징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이 유다보다 의롭다거나 신앙적으로 우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그래서 선지자 오뎃은 그러나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10)라는 말로 이스라엘 역시 여호와께 범죄한 자임을 상기시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죄와 허물은 단순히 유다를 쳐서 많은 백성을 살육하고 포로로 사로잡은 행위의 문제로 볼 수 없습니다이스라엘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 역시 여호와께 범죄한 자들이면서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이스라엘의 죄와 허물이라면 유다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그들 역시 자신들을 여호와께 범죄한 자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우상에게 제사하고 분향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만약 유다가 자신들을 여호와께 범죄한 자로 여겼다면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언약하신 긍휼과 자비임을 알았을 것이고 성전으로 나아갔을 것입니다따라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책망을 통해서 유다의 죄와 허물을 드러내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것이 이스라엘을 책망하시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의문은 이스라엘은 왜 유다를 향해 노기가 충천하였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극심한 분노를 드러내었느냐는 것입니다비록 두 나라가 분열된 이후 오랫동안 경쟁 관계에 있었고 때로는 전쟁을 했다고 해도 엄밀히 말하면 형제 관계입니다그리고 아합 가문과 혼인한 적도 있었고 서로 동맹을 맺고 협력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노기가 충천하여 살육했다는 점이 이상하긴 합니다그럴만한 특별한 계기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가인의 사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가인이 아벨에게 분노한 이유는 아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는 것 때문입니다즉 가인은 하나님이 자기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을 통해서 자신을 범죄한 자로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아벨에게 분노하였고 결국 그를 죽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분노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웃시야와 요담이 유다의 왕이었던 시대에 하나님이 유다를 강성하게 하심으로 크게 번성한 것을 보면서상대적으로 자신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고 불만을 품었을 수 있습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 유다를 자신들의 손에 넘기시자 그동안 쌓여 있던 분노를 쏟아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것이 자신들을 여호와께 범죄한 자로 여기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범죄한 자로 인식했다면 하나님 앞에서 마땅한 것은 강성함이나 번영이 아니라 징계와 심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그리고 심판이 마땅한 자를 심판으로 대하지 않으신 것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느꼈을 것입니다형통하고 강성해지는 것을 통해서 드러나는 사랑과 자비하심이 아니라 죄의 자리에서 드러나고 증거되는 사랑과 자비하심입니다이것을 오늘의 우리에게 증거하는 것이 곧 십자가입니다.

 

 

이스라엘의 허물은 자신들을 여호와께 범죄한 자로 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그리고 이것이 유다의 허물이기도 하며또한 우리의 허물이기도 합니다사람은 누구도 여호와 앞에서 범죄함이 없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의 바른 태도는 복과 형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한 자로서 심판이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그럴 때 죄인 된 자를 주의 피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놀라운 사랑으로 다가올 것입니다우리의 삶에서 쉬지 않고 증거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자가 성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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