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론 70강
출애굽기 29:29-37
제사장 위임(3)
모세가 주도하는 제사장 위임식 제사에 대한 말씀이 계속 이어진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한 속죄제와 번제를 행한 후 위임식을 화목제로 드리게 되는 말씀이다. 28절에서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영원한 분깃이요 거제물이니 곧 이스라엘 자손이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취한 거제물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거제물이니라”(출 29:28)라고 말씀하였다.
본래 이것은 모세의 것이었다. 26절에 보면 “너는 아론의 위임식 숫양의 가슴을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으라 이것이 네 분깃이니라”(출 29:26)라고 말씀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훼 하나님께 드리는 거제물, 곧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을 들었다가 내려서 모세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넘겨줌으로 제사장에게 영원한 분깃이 된다고 선언한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나타낸다. 그래서 레위기에서는 이렇게 말씀한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가져다가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레 7:34)
속죄제를 통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죄를 속하고, 번제를 통해 제사장으로서 온전히 헌신되어야 함을 보여주셨다면 이제 위임식의 숫양을 통해 화목 제물을 나타내신다. 그런데 갑자기 29-30절에서 제사장 직분의 승계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문맥의 흐름상 뜬금없이 주어지는 말씀처럼 보이는데 여기서 갑자기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화목 제물의 가슴과 뒷다리가 아론과 그의 자손들의 음식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차원이 아니라 언약의 말씀을 이루어간다는 차원이다. 이스라엘이 제물을 가져와서 규례대로 제사장에게 돌아갈 분깃이 항상 있게 만든다면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야훼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는 화목의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은 제사장의 제사 직분이 예표하는 언약의 말씀이라는 의미이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구하는 바는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다. 그들은 항상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출 16:3, 17:3, 민 11:5).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흔들었다가 올렸다가 하면서 보여주시는 것이다. 높이 들리고 바쳐진 그 제물은 언약의 말씀을 성취하실 예수 그리스도이니 너희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그분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론과 그의 자손을 통해 대대로 언약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는 차원에서 제사장직의 승계에 대하여 말씀한다.
“아론의 성의는 후에 아론의 아들들에게 돌릴지니 그들이 그것을 입고 기름 부음으로 위임을 받을 것이며”(29절). “성의”는 ‘거룩한 옷’이라는 말인데 옷이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은 “제단 위의 피와 관유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에 뿌리라 그와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 거룩하리라”(21절)라고 말씀하였기 때문이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죄인이다. 죄인이 무엇을 하든 무엇을 입든 죄인의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와 그의 옷에 피와 관유가 뿌려졌기에 구별된 옷을 입고 구별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피와 기름이 상징하는 바는 기름 부음 받은 자가 피 흘리는 십자가 죽음을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자가 제사 직무를 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제사의 직무를 행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피흘리심 안에서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것을 입고 기름 부음으로 위임을 받을 것이며”라고 말씀한다.
이때 옷을 새로 지어 입히는 것이 아니라 아론의 옷이 그대로 물려진다. 언약의 말씀을 이어간다는 의미이다. 아론이 그의 아들에게 대제사장직을 넘겨줌으로 인간 제사장이 스스로 언약의 말씀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넘겨주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그것을 잊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다.
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13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렘 5:31, 6:13)
진리를 행하지 않는 인간 제사장에 의해 진짜 제사장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임을 당하심으로 말씀은 성취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언약을 확인시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18 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렘 33:14-18)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6:21)
이스라엘이 스스로 제사장을 유지하고 제사를 행한다고 하여 제사장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제사장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끊어지지 않게 하셔야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사장이 계속 유지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유효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를 이어 제사장이 되는 아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성소에서 섬길 때에는 이레 동안 그것을 입을지니라”(30절)라고 말씀한다. 즉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일하심을 7일 동안 제사장 옷을 입는 것으로 드러낸다. 그러므로 제사장직이 언제나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약이 성취되기까지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 제사장이 유지되는 것은 언약의 말씀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4-15)
아론의 대제사장직은 장자에게로 이어진다. 그러나 후에 장자 나답과 차자 아비후의 사망으로 셋째 엘르아살에게로 계승된다. 그리고 위임식은 대제사장 아론이 했던 것과 같은 위임제가 7일동안 치루어짐으로 언약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모세가 아론의 옷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매 아론이 그 산 꼭대기에서 죽으니라 모세와 엘르아살이 산에서 내려오니(민 20:28)
“31 너는 위임식 숫양을 가져다가 거룩한 곳에서 그 고기를 삶고 32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회막 문에서 그 숫양의 고기와 광주리에 있는 떡을 먹을지라”(31-32절). 여기서도 “위임식 숫양”(31절)이란 앞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충만함, 완전함의 숫양’이다. “거룩한 곳”(31절)이란 회막 경내 곧 성막 울타리 안의 뜰을 의미한다. “삶고”(31절)의 ‘바샬’은 ‘끓이다, 삶다, 굽다’라는 뜻인데, 야훼께 드려진 거제물이지만 모세가 넘겨주었고, 그것을 양식으로 받아먹게 되었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것으로 산다는 의미이다. 진리의 말씀을 넘겨주고 먹을 수 있는 양식이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성막 내에서만 가능하다. “회막 문에서 그 숫양의 고기와 광주리에 있는 떡을 먹을지라”(32절)라는 말씀은 화목 제물과 함께 무교병을 먹으라고 말씀이다. 무교병 역시 사람의 계명과 교훈이 거부된 순수한 진리의 양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들은 속죄물 곧 그들을 위임하며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데 쓰는 것을 먹되 타인은 먹지 못할지니 그것이 거룩하기 때문이라”(33절). “속죄물”이란 ‘화해 혹은 속죄의 제물’이라는 뜻으로 속죄 제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위임식의 화목제 제물을 말한다.
11 여호와께 드릴 화목제물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12 만일 그것을 감사함으로 드리려면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그 감사제물과 함께 드리고 13 또 유교병을 화목제의 감사제물과 함께 그 예물로 드리되 14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로 돌릴지니라 15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레 7:11-15)
제사장이 화목 제물을 먹음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어 진리를 이스라엘에게 드러내고 보여주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타인은 먹지 못할지니 그것이 거룩하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타인”의 ‘주르’는 ‘곁길로 들다, 멀어지다, 세속인이 되다, 간음하다, 이방인, 외국인, 창녀’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진리로 구별된 자만 먹을 수 있는 말씀이라는 의미이다.
“위임식 고기나 떡이 아침까지 남아 있으면 그것을 불에 사를지니 이는 거룩한즉 먹지 못할지니라”(34절). 위임식 고기나 빵을 비롯한 모든 예식은 모형으로 하늘의 것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한시적으로 구별된 것이기에 그때만 거룩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아침”, 즉 진리가 다 드러난 빛의 상태가 되면 모형으로 주신 것들은 심판 가운데 있는 것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이루어진 말씀이 복음으로 주어지면 문자의 율법 행함은 심판 가운데 있는 것이다.
“35 너는 내가 네게 한 모든 명령대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그같이 하여 이레 동안 위임식을 행하되 36 매일 수송아지 하나로 속죄하기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며 또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깨끗하게 하고 그것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라 37 너는 이레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라 그리하면 지극히 거룩한 제단이 되리니 제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리라”(35-37절). “이레 동안”(35, 37절)이란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일하심을 나타낸다. 그런데 본문의 해석에 대하여 성경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다양하게 이해된다. 하루 한 번씩 일곱 번에 걸쳐 위임식을 가졌는지, 오직 한 번의 위임식을 가졌는지, 또는 하루 동안 위임식을 행하고, 이어서 6일 동안은 수송아지를 제물로 바치는 제사(속죄제)를 드렸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레위기에 보면 이렇게 말씀한다.
33 위임식은 이레 동안 행하나니 위임식이 끝나는 날까지 이레 동안은 회막 문에 나가지 말라 34 오늘 행한 것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게 하시려고 명령하신 것이니 35 너희는 칠 주야를 회막 문에 머물면서 여호와께서 지키라고 하신 것을 지키라 그리하면 사망을 면하리라 내가 이같이 명령을 받았느니라 36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신 모든 일을 준행하니라(레 8:33-36)
분명한 것은 회막 문을 나갈 수 없다는 것이고 “매일 수송아지 하나로 속죄하기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며”(36절)라고 말씀하고 있기에 이 기간 동안 매일 수송아지 한 마리를 속죄제로 바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하여 번제단을 깨끗하게 한다고 하였다. 즉 위임식 7일 동안 진행된 제사를 통해 거룩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만드셨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번제단에서 행하여지는 희생 제사는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타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죽음 안에서만 거룩하게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20260621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