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6일 (토) 촬영
안동 봉정사 전경
봉황이 머무른 산사 안동 봉정사
봉정사는 하늘에서 등불이 내려왔다고 하여 그 이름을 지은 천등산(天燈山)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 시대에 세워진 절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극락전이 있는 유명한 사찰이다.
천등산에 자리한 봉정사는 672년(문무왕 12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봉정(鳳停), 즉 봉황이 머무른다는 뜻을 가진 이 사찰은 나무가 우거져 있고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아늑하다는 느낌을 준다.
봉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인 봉정사 극락보전이 있으며,
대웅전과 극락전이 각각 마당을 갖춘 구조로 형성되어 각각 석가 신앙과 미타 신앙을 구현하고 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이 바뀌었다.
1972년 보수공사 때 1363년(고려 공민왕 12년)에 지붕 수리 기록을 발견하였는데,
전통 목조건물의 통상적인 수리 시기가 건립 후 100-150년이 걸리는 것으로 보아
1200년대 초 건립으로 추정되며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 출처, 국가유산 방문 코스 여권 큐알
봉정사로 올라가는 길 계곡 옆에는 정자가 하나 있습니다.
명옥대라는 정자로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후학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사림들이 지은 누각입니다.
정자를 지나면 일주문이 나옵니다.
천등산 봉정사란 편액이 걸린 일주문입니다.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山寺, 韓國의 山地僧院)
산사는 한반도 남쪽 지방에 위치한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등 7개 산지 승원을 일컫는 것이다.
7세기에서 9세기에 창건된 이들 7개 사찰은 신앙과 수행,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한 한국불교의 역사적인 발전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한국 선불교의 특징인 자급자족이 가능한 사찰 관리,
승려 교육, 수행과 교리 학습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의 무형적, 역사적 측면도 확인할 수 있다.
경내에는 한국의 다양한 불교신앙이 수용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다수의 구조물과 전각, 유물, 문서 등은 한국 불교의 포용적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산사는 조선시대 억압과 전란으로 많은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신성한 장소로서, 신앙과 일상적인 종교적 실천이 살아 있다. - 현지 설명문 -
봉정사(鳳停寺)
천등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능인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능인이 도력으로 종이로 만든 봉황을 날렸는데,
이 종이 봉황이 앉은 곳에 절을 짓고, '봉황이 앉은 자리'라 해서 봉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1363년(고려 공민왕 12년) 극락전을 중수한 이후,
1625년(인조 3), 1809년(순조 9), 1863년(철종 14) 1972년 등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특히 1972년 극락전 해체 보수 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극락전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확인되었다.
봉정사는 안동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사찰로 국보 제15호인 극락전을 비롯하여 국보 제311호인 대웅전, 화엄강당(보물) 고금당(보물) 등의
건물들이 있는데, 고려 시대의 건물과 조선시대의 목조건물들이 나란히 있어 우리나라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외에도 삼층석탑, 만세루,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으며 부속 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 등이 있다.
1,300년 이상 우리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켜온 종합 승원으로서 2018년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봉정사를 포함한 7개 사찰이,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 현지 설명문 -
안동 봉정사
봉정사는 672년 능인 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본당 영역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건물이자 고려 시대의 간결하면서도 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극락전과,
조선시대 최고의 대웅전, 고금당과 화엄강당, 무량 해외, 스님들이 기거하는 공덕당, 만세루, 종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정사는 질서 정연한 건물 배치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산사이다. - 현지 설명문 -
계단 위에 보이는 건물은 만세루입니다.
천등산 봉정사란 편액기 걸려 있습니다.
만세루를 통과합니다.
만세루를 지나면 정면에 대웅전이 있고, 좌측에는 화엄강당, 우측에는 무량해회 건물이 있습니다.
안동 봉정사 화엄강당 / 보물
이 건물은 승려들이 경전을 공부하던 곳으로
온돌방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남쪽에 2칸 부엌, 북쪽에 4칸 온돌방이다.
원래는 정면 4칸, 측면 4칸으로 현재의 온돌방 뒤쪽에 4칸의 마루가 있었다고 한다.
강당으로 사용한 건물이므로 불당(佛堂)에 비해 낮은 기둥을 사용하였다.
측면에는 사각기둥 1개를 세워 대들보를 받치도록 하였으며 그 사이에 창을 냈다. 주심포 계열의 익공 양식이다. - 현지 설명문 -
대웅전 우측에 있는 전각에는 무량해회(無量海會)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대웅전의 가운데 계단에는 꽃을 놓아 양쪽 계단으로만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안동 봉정사 대웅전 / 국보
이 건물은 봉정사의 중심 건물로 1999년부터 2001년 초까지
이루어진 해체보수공사 시 1435년(세종 17년)에 중창하였다는 묵서명이 발견되어 연혁이 밝혀졌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건물이며 건물 앞에는 축대를 높이 쌓았다.
건물 앞쪽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는데 이러한 방식은 사찰 건축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예로 이 건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불단(佛壇)은 내부 중앙 뒷면에 높은기둥 2개를 세워 그것에 의지해 만들었다.
기둥 사이의 창문이나 벽체 등 일부가 건립된 이후 변경되었으나 공포의 구성에서 힘 있고 단순한 수법은 초기의 다포(多包)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부 단청은 고려 시대의 기법을 지니고 있어 건물과 함께 중요한 회화 자료로 주목되고 있다. - 현지 설명문 -
특이하게 대웅전 건물의 앞쪽에 설치한 툇마루입니다. 난간까지 두었네요.
대웅전의 불단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다는데, 맞는지 모르겠네요.
안동 봉정사 아미타 설법도 / 보물
봉정사 대웅전의 아미타설법도는 아미타불이 서방 정토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표현한 불화로,
1713년에 승려 화가 도익(道益), 여청(麗淸), 정심(定心)이 그린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불단 위에 걸리는 불화는 세로가 긴 형태가 많지만, 이 불화는 가로 403cm, 세로 336cm로 가로축이 더 길다.
비단에 채색한 이 불화는 붉은색을 중심으로 녹청색, 짙은 남색, 흰색 등을 사용하였다.
중앙에 자리한 아미타불은 높은 연화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등 뒤로는 성스러운 빛을 상징하는 광배가 빛난다.
아미타불의 양옆에는 범천과 제석천, 10위의 보살, 십대 제자, 사천왕, 신장(神將), 타방불이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다른 불화에 비해 본존인 아미타불의 비중이 작아서,
여러 등장인물이 있어도 화면이 답답하지 않고 안정감 있게 구성되었다.
균형 잡힌 신체 표현, 엄숙한 표정, 유려한 문양 등 18세기 전반 경상도 지역 불화의 특징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대웅전에서 본 만세루입니다.
불단과 기둥의 단청이 검은색에 가깝네요.
우담바라 꽃이 피어있다고, 유리장 안에 모셔 놓은 부처님.
기둥에 그려져 있는 용.
불단에 조각된 연꽃 문양
천장도 검은색입니다.
닫집에 조각되어 있는 용.
대웅전을 나와서
특별한 툇마루를 다시 봅니다.
툇마루 뒤로 보물인 화엄강당 건물이 보이네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999년 4월 21일 천년고찰 봉정사를 방문하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극락전을 둘러보고
삼층석탑 앞에서 기와조각으로 돌탑을 쌓으면서 축원하고, "조용한 산사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라는 방명록을 남기고,
이후 대웅전과 만세루를 둘러보았고, 법고치는 장면을 보고 청기와에다 여왕의 방문 기념 사인을 남겼다고 합니다. - 현지 설명문 -
대웅전 앞마당.
대웅전 앞의 만세루입니다.
국보인 극락전 앞마당에 있는 삼층석탑입니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古金堂) / 보물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스님들이 참선하는 선원이었으나 지금은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다.
1969년 해체 복원 당시 발견된 상량문에 광해군 8년(1616)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처음 건립한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당초 남쪽에는 우화루(雨花樓)가 있어서 남쪽 지붕이 이 건물과 연결되고 그 아래쪽을 부엌으로 사용하였는데,
1969년 고금당과 화엄강당을 해체하면서 지금의 영산암으로 이건하였다.
고금당은 맞은편에 바라보이는 화엄강당과 같은 시기에 같은 목수에 의하여 지은 건물로 조선 시대 중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금당 맞은편에 있는 역시 보물인 화엄강당의 뒷모습입니다. 좌측에 국보인 극락전과 국보인 대웅전이 있습니다.
극락보전 앞의 봉정사 삼층석탑 /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봉정사 극락전 앞 뜰에 있는 이 탑은 고려 시대에 만든 것으로 높이는 3.18m이다.
탑의 무게로 인하여 기단부 일부가 약간 파손되었으며, 상륜부는 완전하지 않으나 원형에 가까운 3층 석탑이다.
2중 기단의 방형 석탑으로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의 폭이 좁으며,
각 층 높이의 체감이 적당한 반면 폭의 체감률이 적고, 지붕돌도 높이에 비해 폭이 좁아 처마의 반전이 약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다소 둔한 느낌을 준다.
이 탑은 봉정사의 극락전과 건립 연대가 같을 것으로 추정되며, 전체적으로 고려 중엽의 석탑 양식을 잘 갖추고 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 / 국보
이 건물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 건물로 고려 시대의 건물이지만 삼국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다.
1972년에 실시한 보수공사 때 밝혀진 내용에 의하면 건립 후
첫 수리는 고려 공민왕 12년(1363)이며 그 뒤 조선의 인조 3년(1625), 순조 9년(1809) 3차에 걸친 수리가 있었다.
원래는 대장전(大藏殿)이라 불렀으나 뒤에 극락전이라 이름을 바꿨다.
기둥의 배흘림, 공포의 단조로운 짜임새, 내부 가구의 고격(古格) 함이 이 건물의 특징이다.
돌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배열했으며 전면과 후면 중앙칸에 판문(板門)을 달고 양쪽에는 살창을 내었는데
전면의 판문과 살창은 1972년 보수공사 때 고증을 통하여 고형(古形)으로 복원한 것이다.
법당의 중앙 뒤쪽에 2개의 기둥을 세워 불단(佛壇) 벽을 만들고 그 안에 불단을 설치하였다.
극락전의 내부입니다.
법당의 중앙 뒤쪽에 2개의 기둥을 세워 불단(佛壇) 벽을 만들고 그 안에 불단을 설치하였습니다.
극락전에 모신 아미타불
마루판 아래로 원래 깔았던 전돌이 보입니다.
극락전의 살창을 통해 본 풍경.
극락전에서 본 극락전 앞마당.
극락전 앞 마당에 있는 보물인 고금당입니다.
고금당 뒤를 통해서 삼성각으로 가는 중입니다.
삼성각입니다.
삼성각에서 보이는 극락전(국보), 대웅전(국보), 고금당(국보), 범종각
삼성각에 모신 산신도, 칠성도, 독성도.
범종각.
좌측 건물이 고금당(보물)이고, 가운데 건물이 극락전(국보)이고, 오른쪽 건물이 화엄강당(보물)입니다.
화엄강당과 만세루
만세루입니다.
이제 영산암으로 올라갑니다.
작성자 : 칠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