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32) 산사의 길 - 보은 법주사 2

작성자버벅이|작성시간26.06.20|조회수0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3일 (토) 촬영

청동대불과 석련지와 천왕문과 팔상전이 보이는 풍경

보은 법주사 석련지 / 국보

신라 성덕왕 19년 (720)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95m, 둘레 6.65m에 이르는 희귀한 석조 조형물이다.

8각의 받침석 위에 3단의 굄과 한 층의 보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식된 간석을 놓아

거대한 석련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둥둥 뜬 듯한 모습을 표현한 걸작품이다.

전체적인 조형 수법은 기발한 착상에 의한 것이며 특히 동자주(난간의 짧은 기둥)의 형태는 불국사 다보탑의 석 난간 동자주와 유사하다.

전면에서 우측으로 돌며 본 석련지

보은 법주사 석련지

석련지는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연꽃을 띄어 두었다고 한다.

불교에서의 연꽃은 극락세계를 뜻하여 사찰 곳곳에서 이를 본뜬 여러 형상들을 만날 수 있다.

입구 위 난간에 세워진 기둥은 불국사 다보탑에 새겨진 돌난간의 기둥과도 비슷하여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 국가유산 방문 코스 여권 큐알

석련지 좌측에 있는 능인전 입구 옆에 있는 석조입니다.

보은 법주사 석조(石槽) /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석조는 큰 돌을 파서 물을 부어 쓰도록 만든 석기를 말한다.

보은 법주사 석조는 높이 1.3m, 길이 4.46m, 너비 2.42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조로, 쌀 80가마를 채울 수 있다.

바닥에서 윗부분에 이르기까지 수직의 벽을 이루고 있으며,

안팎의 벽체에 아무런 무늬나 장식이 없는 단순한 형태지만 윗면의 가장자리는 모를 깎아서 부드러운 느낌을 내고 있다.

벽체의 두께를 긴 쪽은 23cm, 짧은 쪽은 34cm로 다르게 하여 수리적인 비례와 균형을 잃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아랫부분에 11cm의 구멍이 있어 실제로 물을 담아 두는 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퉁이 부분의 일부 손상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작품이다.

법주사 능인전 입구입니다.

커다란 바위 위에 석탑이 서 있네요.

보은 법주사 능인전(能仁殿)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32호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을 모신 곳으로

능인이란 부처님을 가리키는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여 널리 이로움을 주는 분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어졌다.

이곳에서 석가여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륵보살과 갈라보살이 협시하고 있으며 또 좌우로는 각각 8구씩 도합 16나한상을 안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 인조 2년(1624)에 벽암 대사가 중창한 것으로 목조와가이며 건평은 약 8.9평이다. - 현지 설명문 -

능인전 내부입니다.

불단 뒤가 유리로 되어 있어 뒤뜰에 있는 세존사리탑이 보이네요.

석가여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륵보살과 갈라보살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불단 좌우에 8구씩, 모두 16나한도 모셨습니다.

보은 법주사 세존사리탑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호

이 사리탑은 1362년 공민왕이 홍건적을 물리치고 개경으로 환도하는 중

법주사에 행차하여 경남 양산 통도사에 있던 부처님 진신사리 1기를 법주사로 옮겨와 봉납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전한다.

이 탑은 8각을 기본 형태로 하여 상, 중, 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기단부와 탑의 몸체에 해당하는 탑신부

그리고 탑의 꼭대기를 장식하는 간략한 상륜부로 구성된 팔각원당형의 사리탑으로 높이는 3.5m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사리탑은 고려 말기~조선 초기의 승탑에서 유행한 형식으로 탑신의 몸체가 공 모양으로 바뀌고

지붕은 처마 끝이 둔중해지며 지붕 위의 경사도 날로 심해지는 경향을 띠는데, 이러한 특징은 조선시대 사리탑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능인전의 불단이 투명하게 보이네요.

능인전에서 본 금동 대불입니다.

석련지와 당간지주를 다시 바라보며, 천왕문과 팔상전과 금동 대불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법주사 금동 미륵대불입니다.

법주사 금동 미륵불 상의 변천

1. 장육 금불상

<대법주사 사적기>에 따르면 법주사 창건 당시에 높이 1장 6척(약 5m)의 금동 불상을 제작하였다.

이후의 기록에도 법주사 장육 금불상의 위용에 대해 언급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장육 금불상은 1872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수를 위한 당백전을 만들기 위해 해체하였다.

2. 미완성 미륵대불

일제강점기인 1939년 80척(약 24m)의 미륵불상을 세우는 불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불사에 참여한 조각가 김복진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20여 년 동안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3. 시멘트 미륵불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원으로 불상의 재조성이 시작되어 1964년 시멘트로 만든 미륵대불이 완성되었다.

4. 청동 미륵대불

시멘트 미륵불상을 철거하고 1980년대 후반에 청동 미륵대불을 다시 만들기 시작하여 1990년에 완성하였다.

5. 금동 미륵대불

민족화합과 세계 평화를 위해 청동 미륵불에 금을 입히는 불사가 시작되어 2002년에 완성하였다. - 출처 법주사 성보 박물관 -

천왕문입니다.

천왕문은 보수 중이라 내부에 모신 사천왕은 볼 수 없었습니다.

법주사 팔상전 / 국보

국보인 팔상전의 옥개는 네모지붕이며 그 위에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 있다.

1968년 해체 중수 할 때 5층 도리에서 상량문이 발견되고 심초석의 사리장치와 함께 동판에 새긴 글이 발견되었다.

동판 내용에 의하면 팔상전은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된것을 1605년에 재건하고 1626년에 중수했다고 한다.

건물은 2층의 석조기단 위에 세워졌는데 기단의 각 면 중앙에 돌계단이 있다.

건물의 평면은 정사각형이며, 외관은 층이 높아지면서 주간의 수가 줄어들어 강한 체감을 보인다.

공포의 짜임은 1층은 주심포식이지만 2층 이상은 다포식이다.

내부 가구는 5층 건물 전체를 통과하는 심주가 중앙에 있다.

심주의 4면에는 각 2폭씩 8폭의 팔상도가 있고 그 앞으로 4면에 열반상을 포함한 삼존불상을 각각 배치했다. - 출처 다음백과 어학사전 -

보은 법주사 팔상전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 수리한 것이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 출처, 국가유산 방문 코스 여권 큐알

팔상전 앞에 있는 청동 향로입니다.

2층에 걸린 팔상전 편액입니다.

팔상전 전면 2층 4면의 추녀 귀공포에는 서수가 있습니다.(사진은 전면 좌측의 서수)

강화의 전등사 추녀를 받치고 있는 원숭이(나부라고도 함)와는 조금 모습이 다르지만, 추녀를 받치고 있는 서수의 모습은 비슷합니다.

팔상전 전면 2층 우측 추녀에 있는 서수.

팔상전 후면

팔상전의 후면 좌측에 있는 서수상입니다. 이 서수는 두 팔로 추녀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 확실하죠.

그런데 추녀를 받치고 있는 이 서수가 혹시 원숭이가 아닐까요? 부처님의 전생에서 원숭이의 왕이었을 때가 있었거든요.

참고 사진(강화 전등사 추녀를 받치고 있는 원숭이)

부처님께 귀의하고 존경하는 마음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저 유명한 강화 전등사 대웅전 네 귀퉁이 귀공포에 새겨진 원숭이상은

전생에 원숭이 왕으로 종족을 살린 석가모니 부처님에 끝없는 존경심을 나타낸 것이다.

부처님이 계시는 지붕을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네 마리의 원숭이는

부처님에 대한 세세생생 끝없는 존경심을 나타내고 있어 가슴이 뭉클하다.

과연 이런 발상과 표정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해학의 양상이 달라진다"라고 한다.

경전에 근거한 마음으로 보느냐? 떠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느냐에 따라서

전등사 지붕 밑 귀공포의 네 마리 원숭이는 고귀한 생각을 가진 원숭이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도편수의 돈을 떼어먹고 줄행랑을 친 술집 작부로 볼 수도 있다.

부처님의 말씀 중 <본생경,本生經)은 산스크리트<자타카, jataka>의 한역이다.

<본생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서 보살로 수많은 생을 거듭하는 사이에 천인, 국왕, 대신, 장자, 서민,

혹은 코끼리, 원숭이, 공작, 토끼, 물고기 등 여러 가지 동물의 생을 받아 많은 선행과 공덕을 쌓은 전생 이야기다.

전등사 추녀 밑 귀공포에 있는 네 마리 원숭이는 한글 대장경 <육도집경, 六度集經>의 전생 이야기로부터 연원한다.

전생에 부처님은 500의 원숭이 무리를 안전하게 지키려고 자신은 잡혀

'벌레 같은 몸뚱이의 썩어질 살이오나 가히 왕에게 바치면 하루아침의 반찬이 될까 한다.'라고 결심했다.

왕을 감동시킨 부처님의 전생 일화를 잘 알고 있는 전등사의 도편수의 눈은 가히 최고라 할 수 있다.

전생의 부처님의 행적과 원숭이와의 관계를 훤히 꿰고 있는 그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에 집 짓는 도편수 또한 스님이셨을 것이다.

이 같은 전생의 이야기를 알고 추녀 밑을 보면 오히려 원숭이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미물도 저러할진대 인간인 우리들은 부처님에 대한 끝없는 존경심을 어떻게 표현하여 다른 중생들을 감동시킬까?

이렇게 거룩한 존경심을 표현한 것인데

이를 두고 기껏해야 "술집 작부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벌을 받고 있다"라는 식의

성적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통속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안다면 원숭이는 어떤 생각이 들까?

부끄럽기 그지없다.

귀공포 첨차 위 연꽃무늬의 소로 위에 다소곳이 앉아 두 팔로 처마를 받들어 지붕을 들고 있는 모습은 가히 일품이고 해학적이다.

일반적으로는 그 부분에는 용머리를 장식하여 마감을 하는 데 반하여

전등사에는 지금도 원숭이 왕을 우러러 대웅전 지붕을 받히고 있는 네 마리의 원숭이를 볼 수 있다.

경전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도편수의 돈을 떼어먹은 술집 작부'라 하여 수군거리지만 다시 한번 자세히 보면

대웅전 안에 계신,

전생에 원숭이의 왕이셨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한없는 공경의 뜻을 나타내고 있는 원숭이임을 알 수 있다.

- 출처, 사찰의 구석구석 불교미술의 해학 중에서. 글 권중서

강화박물관에 전시해 놓은 전해오는 전설 이야기 중에서.

팔상전의 전면입니다. 팔상전이라고 새긴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법주사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8개의 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를 모시고 있는 5층 목조탑입니다.

전면에는 석가모니의 생애를 여덟 장의 그림으로 그린 팔상도 중에서 '사문유관상'과 '유성출가상'이 걸려 있습니다.

사문유관상과 유성출가상

전면에서 본 내부의 오른편과

왼편의 모습.

전면에서 시계방향인 왼쪽으로 돌며,

왼편 방향에는 '설산수도상'과 '수하 항마상'그림이 있습니다.

설산수도상과 수하 항마상

뒤편에는 '녹원전법상'과 '쌍림열반상' 그림이 있습니다.

녹원전법상과 쌍림열반상

팔상전 내부의 모습입니다.

'도솔래의상'과 '바람강생상'의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팔상도의 순서대로 따지면 이 그림이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림입니다.

도솔래의상과 바람강생상.

팔상전의 내부 모습입니다. 내부는 통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단하죠?

아래부터 팔상도를 순서대로 다시 올립니다.

1.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 도솔천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오심

2.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 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의 몸을 통해 태어나심

3.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 생, 노, 병, 사의 괴로움을 보고 출가를 결심

4. 유성출가상(諭城出家相) - 한밤중에 카필라밧투성을 떠나 출가수행자가 됨

5.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 출가수행자로 히말라야 산속에서 6년간 수도하심

6.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 보리수 아래서 마구니의 항복을 받음

7.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최초의 설법을 하심

8. 쌍림열반상(雙林涅盤相) - 쿠시니라의 두 그루 사리나무 아래서 열반하심

팔상전에서 바라본 석등과 범종각입니다.

        작성자 : 칠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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