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32) 산사의 길 - 보은 법주사 1

작성자버벅이|작성시간26.06.20|조회수0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3일 (토) 촬영

속리산 테마파크 전망대에서 본 속리산 전경입니다.

관음봉 아래에 속리산 법주사의 금동 대불이 보이네요. 버스를 타고 법주사를 향해 출발해서

정이품송을 지나, 법주사 앞 상가에 내렸습니다.

상가를 지나,

멋지고 늠름한 노송지대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법주사 성보 박물관과,

'불교문화유산 안내소'가 나오는데, 이곳부터가 법주사의 경내입니다.

속리산 법주사 일원(俗離山 法住寺 一圓) / 명승 61호.

속리산 법주사 일원은 법주사를 중심으로 속리산의 천왕봉과 관음봉을 연결하는 일대 18.590.000m, 15,623.475평를 말한다.

속리산은 해발 1.057m의 천왕봉을 비롯해 9개의 봉우리가 있어서 구봉산이라고 불렀으나,

신라 때부터 속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속리산 일원은 대한 8경 중의 하나로 제2금강 또는 소금강으로도 불리는데, 계절의 변화에 따른 경치가 뛰어나며

기암, 기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또한 곳곳에 크고 작은 사찰 등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속리산의 대표 사찰인 법주사는 553년 의신조사가 서역에서 불경을 가져와 절을 지을 곳을 알아보던 중에

산세의 험준함을 보고 이곳에 세운 절이라고 전한다.

혜공왕 12년(776)에 진표율사가 대규모로 중창하였으며, 고려 시대를 거치며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으나

정유재란으로 전소되었다. 이후 조선 인조 2년(1624)에 사명대사 및 벽암 대사가 중건하고 증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국내 유일의 목탑인 법주사 팔상전(국보)을 비롯하여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법주사 석련지(국보)

법주사 사천왕 석등(보물), 법주사 대웅보전(보물) 등 국보 3점, 보물 13점, 천연기념물 1점, 도 지정문화재 24점이 있다.

속리산 법주사 일원은 1966년 사적 및 명승 제4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명승으로 변경 지정되었다.

또한 법주사는 2018년 7월 3일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공주 마곡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속리산에는 법주사를 포함하여 복천암, 탈골암 등 10개의 전통 사찰이 있다. - 현지 설명문 -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山寺, 韓國의 山地僧院)

산사는 한반도 남쪽 지방에 위치한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등 7개 산지승원을 일컫는 것이다.

7세기에서 세기에 창건된 이들 7개 사찰은 신앙과 수행,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한 한국 불교의 역사적인 발전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한국 선불교의 특징인 자급자족이 가능한 사찰 관리, 승려 교육, 수행과 교리 학습뿐만 아니라

한국 불교의 무형적, 역사적 측면도 확인할 수 있다.

경내에는 한국의 다양한 불교신앙이 수용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다수의 구조물과 전각, 유물, 문서 등은 한국 불교의 포용적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산사는 조선 시대 억압과 전란으로 많은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신성한 장소로서, 신앙과 일상적인 종교적 실천이 살아있다. - 현지 설명문 -

법주사의 일주문입니다. 전면에는 '호서제일가람'이라고 새긴 편액이 걸려 있고,

안쪽에는 '속리산 대법주사'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뒤편에는 현판이 없습니다.

경내로 들어가는 길 양편에 돌기둥이 있습니다.

무엇에 썼던 물건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길 옆 숲에는 근대에 세운듯한 승탑들이 있네요.

 

승탑과 탑비가 한 쌍을 이룬 모양입니다.

조계사조성림당월산대종사비명(曺溪嗣祖聖林堂月山大宗師碑銘). 이 비와 거의 같은 비와 탑비가 의왕 청계산 청계사에도 있습니다

승탑군을 지나면 하마비가 나오고,

그 앞에 속리실기비(俗離實記碑閣)를 보호하고 있는 비각과, 벽암 대사비가 있습니다.

속리산 사실기비 /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보은 속리산 사실기비는 조선 현종 7년(1666)에 세운 비로,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고 글씨는 동춘당 송준길이 썼다.

비문에는 속리산이 명산이라는 것과 세조가 이곳에 행차한 사실 등 속리산의 내력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수정봉(水晶峰) 위에 있는 거북바위의 내력이 쓰여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나라 태종이 세수하려는데 세숫물에 큰 거북 그림자가 비쳤다. 이를 이상히 여긴 태종이 유명한 도사를 불러 물으니 그가 대답하기를,

동국(東國) 우리나라의 명산에 큰 거북이 형상이 당나라를 향하고 있어

많은 당나라 재물을 동국으로 들어가게 하고 있으니 거북 모습의 물건을 찾아 없애라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태종이 사람을 보내 속리산 수정봉에 있는 돌거북의 목을 자르고,

돌거북의 등 위에 10층 석탑을 쌓아 거북의 정기를 눌렀다고 한다. - 현지 설명문 -

보은 법주사 벽암대사비 /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보은 법주사 벽암 대사비는 법주사를 크게 다시 지은 조선 중기의 고승 벽암 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로, 현종 5년(1664) 5월에 세운 것이다.

비석은 커다란 암석 위에 홈을 파서 세웠으며 규모는 높이 213cm, 폭 110cm, 두께 35cm이다.

비문은 정두경이 지었고 글씨는 선조의 손자인 낭성군이 썼다.

벽암 대사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선종의 승려이며 승병장으로, 임진왜란 때에 해전에 참여하였다.

인조 2년(1624)에 남한산성을 쌓을 때는 8도도총섭에 임명되어 승군을 이끌고 3년 만에 성을 완성하였다.

이후 인조 14년(1636)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국 사찰에 격문을 보내 승군 3천 명을 모은 후 항마군(降魔軍)이라 이름 짓고

남한산성으로 향하였으나, 도중에 전쟁이 끝나 항마군을 해산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 현지 설명문 -

벽암 대사비를 지나면 수정교가 나오고 수정교를 지나면 금강문이 나옵니다.

속리산의 보물창고 보은 법주사

속리산에 위치한 법주사는 553년(진흥왕 14년) 신라의 의신조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미륵 신앙의 요람인 법주사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돌로 만든 연못인 보은 법주사 석련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탑인 보은 법주사 팔상전 등 많은 보물들이 전해지고 있다.

특히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은 부여 무량사 극락전, 구례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3대 불전(佛殿)으로 꼽힌다.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법주사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석등으로 사자를 조각한 석조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통일신라 시대 주된 형태이던 8각 기둥 대신 두 마리의 사자가 이를 대신하고 있는 매우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보물)과 함께 통일신라 석등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보은 법주사 석련지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연꽃을 띄어 두었다고 한다.

불교에서의 연꽃은 극락세계를 뜻하여 사찰 곳곳에서 이를 본뜬 여러 형상들을 만날 수 있다.

입구 위 난간에 세워진 기둥은 불국사 다보탑에 새겨진 돌난간의 기둥과도 비슷하여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보은 법주사 팔상전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 수리한 것이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 출처, 국가유산 방문 코스 여권

금강문 앞에 돌기둥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에 썼던 물건일까요? 아마도 절의 위치를 알려 주던 당기를 꽂았던 돌기둥 같기도 한데....

금강문입니다.

금강문 뒤로 천왕문과 팔상전이 보입니다.

금강문 안 오른쪽에는 금강역사와 사자를 탄 문수보살이

오른쪽에는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이 금강역사와 함께 있습니다.

청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보살

흰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

금강문 뒤로 보수 중인 천왕문과 팔상전이 있습니다.

좌측부터 먼저 답사했습니다.

보은 법주사 당간지주

당간이란 찰(刹) 또는 찰주(刹柱)라 불리고 일반적으로 절(寺)을 사찰(寺刹)이라 말함은 절에 당간

즉, 찰 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종파를 표시하기 위해 당간 위에 특정한 색깔의 깃발을 내걸기도 하였다.

한편 당간이란 솟대와도 같은 기능을 갖게 되어 신성 구역임을 표시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현재 전해지는 법주사 당간지주는

고려 목종 7년(1006년)에 조성된 것으로서 조성 당시의 높이는 전체 약 16m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고종 3년(1866) 국가 재정 마련을 위한 당백전 주조라는 대원군의 명에 의해 사찰의 수많은 금속물들이 수거된 바

있었는데, 당시 이곳의 철당간 역시 파괴되었다. 곧이어 순종 당시(1910년 경) 이곳 철당간은 22m의 높이에 원래 모양대로

복원되었으며, 1972년 다시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현지 설명문 -

당간지주 뒤에 있는 해설사의 집입니다. 이곳에 국가유산 탐방을 인증하는 빨간 도장 함이 있습니다.

해설사의 집 옆, 수정암 입구에 있는 큰 바위에 마애여래의좌상이 있습니다.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磨崖如來倚坐像) / 보물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마애불로 높이가 약 6m나 되는 큼직한 바위에 볼록 새겨진 이 여래 좌상은

보기 드물게 의자에 앉아 있는 의상(倚像)으로 옆에 조각된 지장보살과 함께 법주사의 성격을 알려주는 미륵불상이다.

둥글고 온화한 얼굴, 길고 큼직한 코, 둥근 눈썹, 뚜렷한 눈두덩, 꽉 다문 두꺼운 입술 등은 기다란 귀, 삼도(三道)의 표현 등과 함께

고려 초기 마애불의 특징적인 양식을 잘 보여준다. 넓은 어깨에 비해서 유난히 잘룩한 허리는

비사실적인 수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점은 거의 수평적으로 처리한 조각 수법에서도 나타난다. - 현지 설명문 -

보리수 열매.

바위 안쪽으로 들어가면,

승탑이 또 있습니다.

금오 대종사 부도비(浮屠碑)

금오 대종사 부도탑. 이 부도탑도 청계산 청계사에 같은 모양의 탑이 있습니다.

1967년 법주사 주지로 취임하여 조실 스님으로 추대 받은 이듬해인 1968년 법랍 57세, 세납 73세로 법주사에서 입적하셨습니다.

부도 탑비에서도 보이는 큰 바위 면에는,

나무아미타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미륵존 불이라고 새겨 있습니다.

부도탑(승탑) 안쪽에 수정암이 있습니다.

수정암으로 들어가며

돌아본 바위

수정암 입구에도 부도탑(승탑)이 있습니다.

경오당 쾌유(暻梧堂 快愈) 선사비(禪師碑)

수정암 사적비.

수정암 대문에 그려져 있는 금강역사.

수정암 (水精庵) / 전통사찰 제36호

수정암은 553년(신라 진흥왕 14) 의신(義信) 스님이 법주사와 함께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창건 이후의 연혁은 거의 전하지 않으며, 근대에 들어와 1914년에 태수(泰守) 스님이 칠성각, 독성각, 산신각, 대선방 등을 새로 지었다.

1960년에는 선방 건물을 중수하였고, 1973년에는 극락전, 진영각, 그 이후 요사 등의 전각들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 현지 설명문 -

극락전입니다.

극락전의 내부.

산신도, 칠성도, 독성도가 우측 벽에 걸려 있고.

불단에는 삼세불을 모셨습니다.

보은 법주사 수정암 석조여래 좌상 /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70호

수정암 극락전 안에 모신 불상으로 높이 92cm이며,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 수 없다.

이 석조 불상은 얼굴 부위가 몸체부보다 크며

턱을 숙이지 않고 정면을 주시하고 있는 형상으로 머리털 있는 부분이 고르고 이마 부위에 백호가 표현되어 있다.

눈은 반쯤 떴으며, 코는 두껍게 표현하였고,

입술은 도톰하면서도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어 석조 불상으로는 보기 드문 얼굴 형상을 보여준다.

손가락이 감싸여 작게 표현된 손바닥 안에 별도로 제작된 원형 지물을 놓아 약사여래로 추정된다.

석조불로 제작되었으나 나중에 금칠을 다시 한 불상이다. - 현지 설명문 -

극락전 좌측에 있는 진영각입니다.

되돌아 나오는 길.

법주사 답사 중 1번 후기 사진에 담은 곳

7. 마애여래의좌상 12. 당간지주 15. 벽암 대사비 16. 금강문 19. 사실기비 * 수정사는 7번 마애여래의좌상 안쪽에 있음.

 

        작성자 : 칠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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