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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행(修行)의 시작과 공부의 행주좌와일여(行住坐臥一如)
수행은 젊은 사람의 경우는 번뇌가 조금이라도 더 분화(分化)되기 전에,
나이 많은 사람의 경우는 체력(體力)이나 뇌(腦)의 기능이 조금이라도 더 퇴화(退化)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
중생이 수행(修行)에 임(臨)하게 되는 것은 기도나 참회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전생(前生)부터 수행하던 사람은 수행습관이 남아 있어 어떤 계기에 불법(佛法)에 접하게 되면 바로 수행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수행에 임하게 되면 수행자는 다음과 같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1) 진여(眞如)와 삼보(三寶:佛法僧)를 믿는 확고한 신심(信心)이 있어야 한다.
부처님께서 "신심은 공덕(功德)의 어머니다"라고 하셨듯이 수행자가 수행함에 있어서 진여와 삼보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는 것은 마치 집을 지을 때 기초(基礎)를 단단히 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2) 수행자는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의 지도를 받으면서 공부해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속성을 꿰뚫어 보시고, 중생제도를 위하여 49년 동안 수행단계에 따른 수행방법과 수행자세를 자세히 제시하여 놓으셨지만 경전(經典)은 방대하여 수행자가 이해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불법(佛法)에 통달한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선지식(善知識)은 부처님을 대신하여 수행자에게 가장 알맞는 수행방법이나 수행자세를 제시하여 주며, 때로는 수행자의 공부를 점검하여 주며, 수행자의 공부가 어려운 고비에 이르렀을 때에는 쉽게 넘게 해 주며, 수행방법이나 수행자세에 변화가 있어야 할 단계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바꾸어 주는 등 수행자에게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3) 수행자는 항상 수행을 위하여 노력(努力)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수행자는 부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열심히 노력하여야만 한다.
수행이라는 것은 중생의 속성을 부처의 속성으로 바꾸는 작업이므로 수행자의 노력 없이는 결코 성불(成佛)할 수 없다.
수행자는 앞의 세 가지 요건을 갖추고 수행에 임하게 되면, 수행의 방편을 망각하지 않고 계속 이어짐이
마치 작은 빗방울들이 모여 실개천을 이루고, 실개천들이 모여 작은 강을 이루고, 작은 강들이 모여 큰 강을 이루고, 큰 강들이 모여 바다를 이루는 것처럼,
걸어다닐 때에도, 섰을 때에도, 앉아 있을 때에도, 누워 있을 때에도 한결같아지는데, 이 때를 수행자의 공부가 행주좌와일여(行住坐臥一如)에 이르렀다고 한다.
수행자의 공부가 행주좌와일여(行住坐臥一如)에 이르렀다는 것은 수행자가 수행을 시작하여 처음 이르게 되는 수행의 단계이지만, 이것은 수행자의 대신심(大信心)과 선지식(善知識)의 가르침 없이는 이르기 어려운 단계인 것이다.
5. 공부의 어묵동정일여(語默動靜一如)
수행자가 수행방편(修行方便)을 망각하지 않고 계속 이어감이 행주좌와일여(行住坐臥一如)에서 더욱 나아가면,
말을 할 때[語]에도, 남의 말을 들을 때와 같이 침묵할 때에도[默]에도, 일을 할 때와 같이 몸을 움직일 때[動]에도, 사고(思考)할 때와 같이 고요히 있을 때[靜]에도 수행이 한결 같아지는데,
이것을 어묵동정일여(語默動靜一如)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수행자의 공부가 어묵동정일여(語默動靜一如)에 이르렀다는 것은 수행자가 깨어 있는 시간의 전(全) 영역을 수행으로써 꿰뚫어버렸다는 말이 되므로, 공부가 오시일여(午時一如)에 이르렀다고도 말한다.
이러한 수행이 과연 가능한가? 만약 이러한 수행이 불가능하다면 부처님의 49년 동안의 법문(法門)은 그 뿌리부터 거짓말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중생들이 생각하기에는 인간(人間)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공부할 수 있는가 하고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수행단계에 알맞는 수행방법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수행자에게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징후(徵候)가 나타나게 된다. ---------------------------------------------------------------------------
(1) 삼매관성(三昧慣性)과 무기관성
수행자가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면 마치 물리학(物理學)에서의 관성(慣性)의 법칙(法則)과 마찬가지로 수행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됨을 알게 된다.
물리학적인 관성에 운동관성(運動慣性)과 정지관성(停止慣性)이 있는 것처럼, 수행의 관성에도 삼매관성(三昧慣性)과 무기관성(無記慣性)이 있다.
삼매관성(三昧慣性)은 수행자가 수행 중 삼매(三昧)로 인하여 생기는 관성(慣性)이다.
삼매관성은 마치 운동관성이 운동의 힘에 비례(比例)하는 것처럼 수행의 힘에 비례한다.
수행자가 수행력(修行力)을 높이면, 삼매관성(三昧慣性)은
수행자가 수행 중 수행의 방편을 잊어버릴 때, 수행의 방편 외 다른 번뇌를 일으켜야 할 때,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깊은 잠에 빠졌을 때와 같이
수행에 공간(空間)이 생길 때 그 공간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여 수행의 단절(斷切)이 생기지 않게 하므로, 수행자의 공부를 쉽게 어묵동정일여(語默動靜一如)에 이르도록 한다.
삼매관성(三昧慣性)은 수행자의 공부를 어묵동정일여에 이르게 한 다음에도 멈추지 않고 잠잘 때인 매시(寐時)까지 그 영역을 넓혀 공부의 몽중일여(夢中一如)와 숙면일여(熟眠一如)를 가능케 한다.
따라서 삼매관성은 추번뇌 모두를 평정함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반대로 무기관성(無記慣性)은 수행자가 수행 중 무기에 빠지게 되면 그 무기에 관성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무기관성(無記慣性)은 마치 정지관성(停止慣性)이 무게에 비례하는 것처럼 무기의 깊이에 비례한다.
무기관성(無記慣性)은 수행자로 하여금 고요하고 편안하고 기분 좋게 하여 지혜(智慧)를 없게 한다.
그리하여 무기관성은 수행자로 하여금 미물(微物)이나 축생(畜生)의 과보(果報)를 받게 하므로 수행자는 대단히 주의해야 한다. ----------------------------------------------------------------------------- (2) 육계신호
수행자가 수행방편을 갖고 공부할 때, 손으로는 결인(結印)을 하고, 호흡으로 공부의 리듬을 맞추고, 입천정에는 혀를 말아붙이는 등
수행방편에 대한 간절한 생각을 수행자 자신의 육신(肉身)에 삼중(三重)으로 연결시키면,
처음에는 머리의 육계가 생기는 곳에 어딘가에 받힌 것 같은 아픔이 있다가,
그 시기가 지나면 그곳에 수행자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신호가 감지(感知)되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그 신호가 계속과 단절이 거듭되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 신호가 작은 파장(波長)으로 이어지고, 드디어는 그 신호가 마치 선(線)과 같이 계속 이어지게 된다.
이때 수행자 자신은 그것이 수행방편을 24시간 망각(忘却)하지 않도록 이어지게 하는 삼매(三昧)의 신호임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삼매관성이 길어지고 육계에서 삼매의 신호도 감지하게 되면, 수행자는 어묵동정일여(語默動靜一如)의 어려운 고비를 넘게 되고, 쉽게 공부의 몽중일여와 숙면일여에도 이르게 되면서 모든 추번뇌를 완전히 평정하게 된다.
수행자의 공부가 이러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삼매(三昧)의 신호가 나오는 육계가 구의 형태로 솟아오름을 확인하게 됨으로써 부처님의 육계가 수행의 결정체(結晶體)인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수행자는 수행방편에 대한 간절한 생각을 육신(肉身)에 삼중(三重)으로 연결시키도록 가르치셨던 불조(佛祖)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하게 된다.
원불사한국불교개혁源佛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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