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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의 세계 ⑤ 인도 불교의 문화적 배경 : 카스트 제도(힌두 세계의 사회적 구조)

작성자참괴|작성시간14.11.06|조회수320 목록 댓글 0

 

 

불타의 세계

1 불타의 대지인도 불교의 문화적 배경

4절 카스트 제도(힌두 세계의 사회적 구조)

 

                                                                                                          ▶고유명사와 그밖의 용어는 산스크리트어로 표기

 

 

1. 카스트 사회의 구성

1) () ∙ 부정(不淨)의 관념과 카스트 제도

십대 제자 중의 사람인 아난다는 세존과 같은 샤꺄족 출신으로 마음이 착한 젊은이였다. 어느 외출했던 길에 그는 물을 긷는 처녀를 보게 되었다.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이라 그는 그릇을 청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마탕가의 처녀입니다.마탕가란 접촉해서는 낮은 계급의 명칭이다. 아난다는 불타의 제자가 사람에게 세속 사회에서의 계급 차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설명한 다음 물을 얻어 마시고 사라졌다.

 

불교 경전에 나와 있는 일화는 세존 시대에도 이미 카스트적 계급제도가 존재했으며, 또한 부정의 관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종교적 관점에서 부정의 관념에 의한 불가촉성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이를테면 동양에서도 적부정(赤不淨, 여성의 생리) 꺼려한다거나 죽음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여, 죽은 사람의 육신을 일정 기간 동안 기피하는 습관(흑부정, 黑不淨) 있다. 영결식에서 소금을 뿌리는 풍습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인도에서는 이러한 부정의 관념은 상당히 강하다. 그것은 힌두교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카스트라 불리는 인도의 계급제도는 기본적으로 부정의 관념에 의존하고 있다. 카스트란 인도사회를 구성하는 단위 집단으로서 현재 인도에는 2,000 이상의 카스트가 존재한다고 한다.

 

카스트에는 보통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족내혼이다. 힌두교도는 원칙적으로 동일하거나 동등한 카스트의 집안끼리만 결혼할 있다. , 사핀다(조령제에 함께 바치는 제물)라든가 고트라(특정한 전설상의 성인을 조상으로 공유하는 )라든가 프라바라(고트라의 성인에 버금하는 몇몇 조상을 공유하는 )라는 관념도 있어서, 같은 카스트 안에서도 결혼할 없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너무 가까운 친족인 경우에는 결혼이 금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는 외혼(外婚) 내포하는 내혼(內婚)이라고 있을 것이다.

 

둘째 특징은 식탁에 함께 마주 앉을 있는 권리이다. 힌두교도는 보통 상하가 다른 카스트끼리는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다. 규제는 단순히 식사를 함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물건을 주고받는 자세와도 관련을 맺고 있다. 상위 카스트는 하위 카스트로부터 음식물이나 음료를 받지 않는다. 만일 그가 음료를 받는다면 하위 카스트의 더러움이 상위 카스트로 전염된다고 생각하여 왔던 것이다.

 

번째 특징의 근거에 깔린 것은 부정의 관념이며, 부정의 정도에 따라서 카스트의 상하순위가 결정되는 것이다.

부정하다고 생각되는 사물이나 행위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사람의 배설물은 부정하다. 이것은 물리적인 의미의 부정함이라기보다도 관념적인 부정함이기 때문에 이를테면 땀이나 오물이 묻은 의류의 세탁, 이발, 해산 뒷바라지, 분뇨수거 등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배설물을 몸으로 받는다고 해서 부정한 것으로 간주된다.

죽음도 부정하며 따라서 시체의 처리를 맡은 사람도 부정하다. 지금도 힌두교도는 남의 집에 문상을 다녀오면, 가족들로 하여금 문에 성수를 뿌리게 하여 부정함을 씻는 풍습이 있다.

사냥이나 어로에 종사하는 사람, 가축을 잡아서 식용으로 판매하는 백정 등도 부정하다고 생각된다.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는 사물과 부정함의 정도에는 지방에 따라 어느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를테면 대다수의 바라문은 육식을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이지만 벵갈 지방의 바라문에게는 생선을 먹는 행위가 허용되고 있으며, 추운 북부의 캐시미르 지방에 거주하는 바라문만은 고기를 먹는다.

 

2) 카스트 상호관계

 

 

 

 

 

 

 

 ◀ 인도의 농촌 풍경

인도 총인구의 8할은 농촌에 거주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지에서 자라나 대지와 더불어 살아왔다. 마을과 대가족, 그리고 카스트는 인도 사회를 구성하는 3개의 중요한 기둥이었다.

 

 인도의 촌락은 같은 개의 카스트가 모여서 이루어진다. 하나의 카스트 안에는 몇몇 가구만이 있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가구만이 있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인도의 촌락은 종렬로 봐서 마을(카스트) 가족으로 성립된다. 그러나 횡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카스트가 다른 마을의 동일한 카스트와 연결되어 있다.

 

마을을 단위로 카스트의 상하는 물질의 주고받음, 특히 날것의 주고받음으로 판정된다. A카스트인 사람이 B카스트인 사람에게 물건을 받고, B C에게서 받으며, C A에게 받는 삼각관계를 형성하여 엄밀하게 상하를 판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한편 경제적인 이유로 인하여 카스트 사이의 관계가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위에서 설명한 카스트의 상하는 종교적인 부정의 관념에 기초를 것으로서 마을의 제사나 의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이것은 의례상의 신분이라고 말할 있다. 그런데 지주라든가 기타의 정치적경제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카스트가 비교적 상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해서 종교적인 부정만이 순위 결정의 절대적인 요인은 아닌 것이다. 지방마다 특수한 사정도 있을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카스트 계열에 있는 사람들(카스트 힌두라고 ) 하부에 다시 아웃 카스트(out caste)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도 가지 상하를 이루는 카스트 집단이 존재한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부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불가촉성이 강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들에게는 사실상 카스트 힌두가 사용하는 공동우물이나 목욕탕의 이용이 허용되지 않는다. 같은 힌두교도이면서도 힌두 사원에 들어가는 일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농경에 종사하면서 주로 시체의 처리나 분뇨의 수거 등을 담당하며, 마을 밖에 거주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마을 안에 거주하는 경우에도 대개는 마을 변두리에 구획을 정해서 사는 일이 많다.

 

3) 카스트 개혁의 시도

경제적사회적으로 소외도는 일이 심한 아웃 카스트 대해서는 물론이려니와 카스트제도 자체에 대해서도 인도에서는 예전부터 비판과 개혁의 움직임이 계속 있어 왔다. 고대와 중세의 종교 운동치고 카스트제도의 부당성을 비판하지 않은 예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언제나 실패로 끝나서 실질적으로는 전혀 성과를 올리지 못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자기들 스스로가 카스트의 하나로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인도의 독립 이전에도 갖가지 개혁의 시도가 있었다. 이를테면 간디도 아웃 카스트 사람들을 하리잔(신의 아들)이라고 불러, 그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고등 교육을 받고 정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지도적 역할을 맡은 아웃 카스트들도 적지 않다. 그들의 생활수준도 예전보다 많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직도 개선되어야 점이 많은 것이다.

 

카스트에 있어서의 불가촉성은 단순한 관념적 개혁만으로는 제거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더럽혀진 사람들이니까 소외당하고 남들이 싫어하는 직업과 가난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대대로 빈곤해서 그러한 직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더럽혀진 사람들 되었는지, 선후관계는 매우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으므로 성급히 결론을 내릴 없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경제 상태가 점차 개선되어 가고 있으므로 이와 함께 불가촉이라는 관념도 소멸되어 가지 않으면 된다. 결국 양자가 상호 협조를 해야만 사태는 호전될 있을 것이다. 현대 인도는 만민 평등을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카스트에 의한 차별은 일체 인정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도 공장 노동, 군대, 기타의 사회적 요인에 의하여 카스트 제도가 옛날만큼의 엄격함을 잃어가고 있음이 사실이다. 물론 일반인들의 사고방식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결혼과 같은 문제에 있어서는 아직도 카스트 제도의 벽이 두텁기만 하다. 결국 전반적으로 , 카스트는 엄연히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2. 사성제도와 카스트 제도

1) 사성(4바르나) 제도의 기원

그런데 카스트 사실상 인도어가 아니다. 말은 16세기에 인도에 포르투칼인이 인도의 특이한 사회제도를 보고 카스타(casta)라고 부른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것은 피의 순결을 뜻하는 라틴어의 카스투스(castus) 소급되며, 인도어로는 자티(jāti, 출생)라고 한다. 그래서 카스트 제도는 자티 제도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원래 카스트 제도라면 바라문, 크샤트리야, 바이샤, 수드라의 4성으로 이루어진 제도라고 생각되어 왔으나, 이것은 사실상 카스트 제도가 아닌 4 제도라고 해야 것이다. 양자는 물론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4성제도는 자티 제도와는 다른 것이다.

 

4성을 가리키는 말은 바르나(varṇa)로서, 이것은 () 뜻한다. 말은 본래 아리안이 인도에 침입해 왔을 , 원주민과의 피부색의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말이었다. 기원전 1,500~1,000년경에는 침략자인 아리안과 피정복자인 원주민은 아리아(ārya), 다사(dāsa, 노비), 다슈(dasyu) 각각 구분이 되었다.(다사족 [Dasa] Dasyu라고도 . 아리안족의 침략을 받고 이에 대항해 싸운(BC 1500) 인도 원주민 종족. 아리안족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피부색이 검고 말이 거칠며 남근(男根) 숭배하는 종족이었다고 한다. 기록으로 미루어 많은 학자들은 힌두교의 종교적 상징물인 '링가'(linga 男根像) 숭배풍습이 이들에게서 왔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다사족의 ()관습을 가리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들은 요새화된 곳에 살면서 군대를 내보냈다. 브라만과 크샤트리아(전사), 바이샤(상인)라는 상위 계급을 섬기면서 이들 계급의 종교의식에서는 배제되었던 수드라 또는 노동자 계급의 원조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기원전 1,000~600 , 바라문 문화가 정착한 시기에 이르게 되면 이러한 구분이 아리아와 수드라(sūdra) 대비로 변모하고 있다. 수드라 원래 군대를 가진 비아리아계의 부족의 이름이다. 부족은 이내 아리아 문화권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시대에는 아리아 사회의 하층을 차지하면서 원주민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이때 아리아라고 하는 상류계층에는 원주민 출신자나 혼혈자도 있었고, 동시에 수드라에는 아리아 계통의 사람 중에서 농노의 지위로 전락된 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얼마 바라문 계급이 출현하게 되자, 바라문들은 점차로 자신들의 지위를 최상위에 두는 4성제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고 「브라흐마나」 문헌에 따르면 바라문의 혈통을 보유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며, 명예를 존중하고 남을 교화한다. 스스로에게 의무를 부과했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바라문을 존경하고, 보시하며, 반항하지 않는다. 의무를 강요했다. 한편, 정치군사상의 지도자 계층은 크샤트리야라고 불리게 되었다. 말은 크샤트라(권력)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바이샤는 남에게 공물을 바치고, 남에게 해를 입으며, 그의 뜻대로 압박받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바라문들은 앞서 말한 있는 수드라에 대한 아리아를 세분하여 등급(바라문, 크샤트리야, 바이샤)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라문과 크샤트리야는 서로 의존해 가면서, 바이샤와 수드라에 대립된 상층 지배계급을 형성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무렵 4성은 태생에 의해서 정해진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유동적이어서 이를테면 크샤트리야 출신의 바라문도 있었으며, 형제가 각각 왕과 사제승을 분담하고 있는 예도 있었다. 수드라는 남의 종으로, 주인의 뜻대로 쫓겨나거나 죽음을 당하는 사람으로 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바이샤와 함께 납세의 의무가 부과되어 있었다. 양자의 차이는 명확하지 않으며 다같이 농업과 수공업에 종사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이 4성제도란 당시의 사회 실정에 순응하면서도 인위적으로 수립된, 바라문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있어야 사회상이었던 것이다.

 

2) 자티집단과 4바르나 밖의 사람들

그러나 기원전 6세기 이후가 되면 아리아 문화, 힌두 문화는 동인도와 남인도로 확대되어 간다. 4성제도는 이념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었으므로, 바라문들은 새로 힌두화된 부족종족을 어느 위치에든 편입시켜야만 했다. 기원전 4세기 이후에 접어들면서 그리이스인이나 사카족(새족, 塞族) 비롯한 중앙아시아 여러 민족들의 위계를 정하는 것이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대략 무렵부터 세습적인 직업을 주축으로 해서 소위 카스트, 자티집단이 성립되어 갔다. 부정의 관념도 분명해지고, 태생에 근거한 차별도 사회적 실태로서 구체화되었다.

 

바라문들은 새로운 부족이나 종족, 자티집단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잡혼의 이론을 내걸었다. 결혼은 동일한 바르나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을 이상으로 하고 있지만, 남성이 상위 바르나이고 여성이 하위일 경우에는 아눌로마 ()(머리의 결에 따르는 결혼)으로서 허용되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프라틸로마 (머리의 결을 거스르는 결혼)으로서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 다른 바르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는 자티(잡종)로서 특별한 명칭이 주어졌다.

 

이를테면 바라문끼리 결혼한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는 물론 바라문이며, 바라문 남자와 크샤트리야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도 바라문이라고 있다. 그러나 바라문 남자와 바이샤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는 아무바쉬타이며, 수드라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는 니샤다라고 한다. 한편, 바라문 여자와 크샤트리야 남자와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는 수타(마부라는 )라고 하고, 바이샤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는 마가타와 바이데하라고 한다. 각각 마가타 사람, 바이데하 사람이라는 뜻이다. 역생(逆生) 관계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라문 여자와 수드라 남자의 결합인데,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찬달라이다. 그들은 인간 중의 가장 천한 사람 (「마누 법전」)으로서 마을 밖에서 살아야 한다. 자티 사이의 통혼은 새로운 자티를 낳게 되고, 이렇게 해서 이론상으로는 무수한 자티가 산출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티는 4바르나 바깥의 존재(바히야)로서 수드라와 같은 양의 의무가 지워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티의 이름으로서 있는 것이, 어느 것이든지 직업 이름이거나 부족 이름이거나 변두리 지역의 이름이라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각종 법전마다 잡혼의 자티 이름이 통일되어 있지 않은 것도 그것이 편의에 따른 구분이었다는 추정을 방증해 주고 있다.

 

한편 바히야로 인정되는 가운데서도 브라땨라는 집단이 있는데, 이들은 원래 바라문이나 크샤트리야 계층에 속하던 사람들이 지켜야 서계(誓戒, 브라타) 지키지 않아서, 베다의 의식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마누 법전」) 하층으로 전락된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흥미있는 것은 법전에서 브라탸라고 지칭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말라 족이나 릿차비 동인도에서 불교와 자이나교를 비롯한 신흥교단의 기반을 이룬 부족들의 이름이 있고, 초다(남인도의 초라족), 드라비다, 야바나(북서인도 아프카니스탄 일대의 그리이스인), 사카, 지나(支那) 등의 이름도 들어 있다는 점이다.

 

결국, 힌두 문화권의 확대에 따라 주변에 거주하면서 완전히 힌두화되지 않은 부족이나 이민족들을 브라탸로서 바르나 제도의 한쪽 끝에 위치시켜 포섭해 나간 것으로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소종족이나 직업 집단, 실질적인 카스트 집단은 자티(잡종)로서 4성제도 안에 끼어들게 것이다.

 

만일 브라탸가 그러한 것이라고 한다면 어느 지방의 주권을 장악하고 있던 부족이 힌두화될 , 그들은 스스로를 크샤트리야라고 지칭할 있는 여지가 남게 된다. 물론 이것은 크샤트리야의 브라탸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되겠지만, 여하튼 그러한 이름을 부여받음으로써 그들은 힌두화되어 힌두사회의 내부에 자리를 잡게 되며, 더욱이 종래부터 가지고 있던 주권을 계속해서 그대로 유지할 있었다. 라지푸트 족이나 남인도에 거주하는 나야르의 힌두화는 좋은 예가 것이다. 더욱이 바라문 측에서는 그들을 수드라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마누 법전」에서의 바히야에 해당되는 것이다.

 

3) 카스트바르나 제도

이리하여 4 제도는 사회의 실질이라고 있는 자티 제도를 내부에 포함하면서 하나의 이론적 범주로서 기능을 발휘해 왔다. 바라문 계급을 별도로 한다면 다른 크샤트리야나 바이샤, 수드라 계급들은 이론적인 대범주일 실체적인 사회 단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명목적 이론 범주와 실질적 사회 단위(자티 집단) 서로 밀접하게 관련을 맺으면서 전승되어 왔다. 만일 4바르나 제도가 없었더라면, 당시의 자티 집단이 현재의 카스트 제도로 발전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자티 집단이 없었더라면, 4바르나 제도도 단순히 고대의 바라문 계층이 품고 있었던 이상적인 이론으로서 이미 오래 전에 망각되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 틀림없다. 카스트 제도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아직 이렇다 결론은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양자의 존재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자티는 교묘하게 4바르나와의 관련 하에서 설명이 되고 자티 제도의 특징도 바르나 제도 자체로서 논의가 되었다. 광대한 인도에 거주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서로 이해를 나눌 있었던 것은 사실상 이러한 4 제도라는 이론 범주 때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최근 제도를 카스트바르나 제도라고 칭하자는 설도 등장하고 있다. 또는 바르나 제도와 자티 제도를 포괄하는 이름으로 카스트 제도라는 술어를 사용하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어느 쪽을 택하든 간에, 카스트 제도가 광대하고 다양한 힌두 문화를 하나의 힌두 세계로 응집시키는 힘을 발휘해 것만은 분명하다. 새로운 종족, 부족, 민족이 힌두화한 것도 카스트 제도의 덕분이다. 그들의 카스트화가 완료되었을 , 그들의 힌두화로 완성이 되었던 것이다. 각양각색의 이질적 생활문화는 그것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카스트화되고, 이어서 힌두화되었을 명실공히 힌두 문화로 성립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다채로운 생활문화의 내용은 다시 다르마 관념에 의해서 통일적인 힌두 세계 속에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출처 : 佛陀世界 / 中村元 , 金知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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