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와 3학
3)의도와 혜학(慧學)
혜학(慧學), 즉 3학을 이루는 지혜의 훈련은 '바른 견해(正見, sammādiṭṭhi)'와 '바른 사유(正思惟, sammā saṅkappa)'로 구성된다. 보는 견해에 따라서 혜학은 3학의 시작인 뿌리로 볼 수도, 혹은 결과인 열매로 볼 수도 있다.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를 일반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이는 3학을 연마하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고, 만약 이를 출세간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불교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지로도 이해할 수 있다. 지혜로움을 바탕으로 계를 지키고 마음을 집중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것도 가능하고, 계를 지키고 마음을 집중하여 궁극의 지혜를 얻는 것도 가능하다. 혜학은 3학의 출발지이자 동시에 목적지인 셈이다.
혜학을 이루는 첫 번째 요소는 '바른 견해'이다. 견해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정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바른 견해'라는 토대가 없이 무언가를 시도하는 일은 자칫 길을 잃을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에 비유된다. 사리뿟따의 설법인 『삼마디띠숫따(Sammādiṭṭhisutta)』를 통해 '바른 견해'에 대한 정의를 파악할 수 있다. 이 경에는 '바른 견해'에 대한 방대한 내용이 서술되는데, 이 중 핵심적인 개념으로서 '4성제에 대한 바른 견해'가 제시된다.
"고귀한 제자가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의 발생을 알고 괴로움의 소멸을 알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잘 알면, 그만큼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바르게 되어,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고, 바른 가르침을 성취합니다."
'바른 견해'를 갖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핵심 요소는 '4성제에 대한 바른 견해'이다. 즉, 고통이라는 삶의 실재를 정확히 깨닫기 위한 모든 노력이 바른 견해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삼마디띠숫따』는 4성제를 이해하기 위해 집착, 갈애, 느낌, 접촉, 여섯 감역, 명색, 의식, 형성, 무명, 괴로움, 번뇌에 대해 이해할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열 가지 요소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이것의 발생과 소멸, 그리고 그 소멸로 향하는 길을 안다면 바른 견해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맛지마니까야』의 또 다른 경인 『마두삔디까숫따(Madhupiṇḍikasutta)』의 '희론에 오염된 지각과 관념'과 반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마두삔디까숫따』는 6근과 6경이 만나 6식이 생겨나고, 이를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이로 인해 느낌, 지각, 사유, 희론이 발생하며, 여기에서 희론에 오염된 지각과 관념, 달리 표현해 무지의 경향이 일어난다고 지적하였다. 두 경 모두, 인간이 감각기관을 통해 경험하는 다양한 외부적 현실이 느낌과 생각을 거쳐 그것이 굴절되는 과정을 통해 어리석음으로 향함을 설명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여기에서 두 경의 내용을 종합해서 본다면, 3사화합의 과정에서 일어난 접촉과 느낌은 『삼마디띠숫따』에서는 무명과 괴로움 그리고 번뇌로 결과하고, 『마두삔디까숫따』 경향을 낳는다.
에서는 희론에 오염된 지각과 관념 그리고 무지의 『삼마디띠숫따』에서 무명과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삶의 실재에 대한 바른 이해를 견지할 것이 제시되는데, 이것을 무지를 다룬 『마두삔디까숫따』의 내용에 적용한다면, 3사화합의 과정에서 집착이 아닌 실재를 보고자 하는 노력이 요구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에서 괴로움을 보았을 때, 5온(五蘊)의 무더기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바른 이해를 더 강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지는 의도의 목적 지향적 태도와 관련이 있으며, 따라서 의지는 '바른 견해'를 닦는 것과 간접적으로 연관된다. 삼마디띠숫따에는 직접적으로 의도를 언급하는 서술 역시 존재한다. 싸리뿟따는 비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양분(āhāra)에 대해 설명한다.
"자양분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이미 생겨난 뭇삶의 생존을 위하고 다시 생겨나게 될 중생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네 가지란 어떠한 것입니까? 거칠거나 미세한 물질적인 자양분, 두 번째로는 접촉의 자양분, 세 번째는 의도의 자양분, 네 번째로는 의식의 자양분이 있습니다.“
또한 같은 경에서 명색을 설명하는 부분에도 역시 의도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명색 중 명에 대한 언급을 함에 있어, '느낌, 지각, 의도, 접촉, 정신활동'을 명으로 범주화하여 제시하는 부분이다. 이는 다른 경전의 다른 맥락을 통해서도 제시되는 일반적인 설명이며 의도의 특별한 기능이나 의미를 다룬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른 견해'에 대해 다룬 경에서 의도가 직접적으로 언급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의도는 '바른 견해'를 닦기 위해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요소이며, 따라서 의도를 다루지 않고서는 혜학도 완성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혜를 닦는[慧學] 두 번째 요소는 '바른 사유(正思惟)'이다. 빠알리어로는 '삼마 상깝빠(Sammā-saṅkappa)'이다. '삼마 상깝빠'는 '바른 의도(right intention)'로 번역하기도 한다. PED에 의하면 'saṅkappa'는 '견해', '의도', '목적', '계획' 등의 의미를 가지며, 'saṅkappa'와 'vitakka'는 동의어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samma saṅkappa'를 '바른 의도'로 번역하기도 하고, '바른 사유'로 번역하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유를 다룬 대표적 경은 『드웨다위딱까숫따(Dvedhāvitakkhasutta)』로, 이 경에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기 전 두 가지로 사유했던 경험에 대해 비구들에게 설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붓다는 아직 깨달음을 이루기 이전에, 일어난 사유를 두 갈래로 나누어서 관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매인 사유가 일어났을 때, 붓다는 이러한 사유에 대해 의도적으로 나누어 보았다고 고백한다. 감각적 욕망, 분노, 폭력에 매인 사유인가, 혹은 이 세 가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유인가 하는 두 가지 갈래의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한 후, '이것이 나 자신을 해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이것이 남을 해치는 데에 도움을 준다'고 성찰하면 자신에게서 그러한 부정적 사유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붓다는 이 경에서 부정적 사유를 다스리는 일을 소치는 사람이 회초리를 가지고 소를 치고 막고 제어하는 것에 비유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곤장으로 맞거나 오랏줄에 묶이거나 약탈당하거나 비난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는 일어난 사유가 옳지 못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다짐과 판단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드웨다위딱까숫따』에 제시된 붓다의 가르침은 부정적인 사유에 대해 현명하게 인식하는 것, 그 자체가 그러한 사유를 몰아내려고 애쓰도록 자극한다는 것이다. 확고한 분별력과 일관된 추론을 통해 부정적 사유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생각하며 이것을 토대로 마음을 정화하는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고 조언하는 것이다. 한편, 나 자신이나 남을 해치는 데에 도움을 주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라는 붓다의 성찰은 『암발랏티까라후로와다숫따(Ambalaṭṭhikārāḥulovādasutta)』의 내용과도 이어진다.
"'라훌라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울은 어떠한 쓰임새를 갖고 있느냐?' '세존이시여, 성찰을 그 쓰임새로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 라훌라여, 성찰하고 또 성찰한 뒤에 신체적으로 행위하고, 성찰하고 또 성찰한 뒤에 언어적으로 행위하고, 성찰하고 또 성찰한 뒤에 정신적으로 행위해야 한다. 라훌라여, 네가 신체적으로 행위하고자 하면, 너는 그 신체적 행위에 대하여 나는 신체적으로 이와 같이 행위하고자 하는데, 나의 이 신체적 행위는 스스로를 해치거나 남을 해치거나 나와 남 둘 다를 해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신체적 행위는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이어서 그 결과도 괴로움이고 그 과보도 괴로움이 아닐까? 라고 잘 성찰해야 한다.' "
앞서 살펴본 『드웨다위딱까숫따』는 사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암발랏티까라후로와다숫따』는 행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붓다는 단속해야 하는 것이 사유이든 행위이든 관계없이, 그 결과와 과보에 대해 미리 성찰할 것을 강조하였다. 바른 사유와 바른 행위를 위해서는 이와 같이 스스로 동기부여하고 자극하여 그 결과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의도에 대한 맥더못의 정의와 맥락이 닿는 것으로, 이러한 맥락에서 바른 동기부여(intentional impulse), 즉 바른 의도는 바른 사유를 돕는 원인으로 기능한다. 두 경의 핵심적인 내용은 의도를 '동기부여'로 정의하는 견해와 맞닿아 있다. 물론 붓다는 이 두 가지 경에서 의도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붓다는 자신의 사유와 행위를 성찰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먼저 자신의 의도를 파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를 해치거나, 남을 해치거나, 둘 다를 해칠 수 있다는 판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행위를 [3행의 차원에서] 감행한다면, 결과적으로 나 혹은 남을 해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도의 동기부여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든, 혹은 목적 지향적 생각에 무게중심을 두든 '바른 사유'와 '의도' 사이에는 긴밀한 연관관계가 존재한다. '바른 사유'를 증득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존재하는 의도를 명료히 파악하고 이를 통해 결정할 것이 요구된다. 의도는 '바른 사유'를 얻기 위한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며, 사유와 행위 이면에 존재하는 의도를 면밀히 파악하는 것은 '바른 사유'를 더욱 강화한다.
이로써 혜학 역시 의도의 작용과 의도에 대한 알아차림이 필요함을 확인하였다.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지혜를 강화함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대두된다. '바른 견해', '바른 사유'를 위해 수행자는 매 순간 자신의 의도를 파악하고 알아차릴 필요성 또한 제기된다.
이상으로 8정도의 가르침을 성취하는 데에 있어 의도가 가지는 함의에 대해 알아보았다. 초기경전의 수행실천법인 8정도와 3학에서 의도는 직간접적으로 결부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불교수행의 차원에서 의도가 어떠한 맥락으로 다뤄지며, 또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는지 그 구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초기불교 수행의 의도 역할 연구/ 곽정은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