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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관찰대상으로서의 의도 - 인식 과정에서의 의도 관찰

작성자원강사리|작성시간26.06.08|조회수29 목록 댓글 0

관찰대상으로서의 의도

 

1)인식 과정에서의 의도 관찰

초기경전의 여러 가르침을 통해, 붓다는 수행의 실천을 누차 강조하였다.

 

"비구들이여,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가르침을 섬으로 삼고, 가르침을 의지처로 삼되,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말라."

 

열반으로 향하는 붓다의 수행법을 구조화한 8정도와 3학에 있어, 이들의 실천은 끊임없이 강조되어 있다. 계학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윤리적인 생활방식을 갖춘 수행자는 자신의 언행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정학을 통해 선과 불선을 다스리는 마음, 4념처를 통해 마음챙김의 확립을 얻고, 5장애를 벗어나 4선정을 성취하여 마음챙김과 평정심의 청정함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훈련을 통해 4성제를 바르게 알고, 의도를 파악하는 바른 사유를 얻게 된다. 초기경전 안에서 의도는 수행의 실천적인 측면에서 그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 의도는 마음에 일어나는 인지적, 정서적 요소와 관련을 맺고 있으며, 상카라, , 윤회까지 인간의 삶에 다각도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마음 기제이다. 수행자는 반복적인 윤회로부터의 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불교수행 안에서, 업 그리고 윤회와 깊은 관련을 맺는 의도관찰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초기경전에 나타나는 인식의 분석 과정을 살펴보면 의도가 가지는 역할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먼저 12연기의 과정을 설명하는 빳짜야숫따(Paccayasutta)는 무명으로부터 늙음과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수행승들이여, 연기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고,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역이 생겨나고, 여섯 감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고,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그리고 앞서 언급되었던 마두삔디까숫따(Madhupiṇḍikasutta)는 또다른 시각, 3사화합의 차원에서 인식의 과정을 이해하고 분석한다.

 

"벗들이여, 시각과 형상을 조건으로 시각의식이 생겨나고, 그 세 가지를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낀 것을 지각하고, 지각한 것을 사유하고, 사유한 것을 희론하고, 희론한 것을 토대로 과거, 미래, 현재에 걸쳐 시각에 의해서 인식되는 형상에서 희론에 오염된 지각과 관념이 일어납니다."

 

상기 두 경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인식 과정에 대해 접근한다. 빳짜야숫따는 무명으로부터 생노병사와 괴로움이 일어나는 과정을, 마두삔디까숫따3사화합의 과정이 희론에 오염된 지각과 관념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대해 주목한다. 이 두 가지 경은 각기 인식에 대하여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설명하는 듯 보이나, 여기에는 분명한 공통적 요소가 존재한다. , '접촉(, phassa)'과 느낌(vedanā)'이 순차적으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전자에서는 접촉에 이어 발생한 느낌이 갈애로 이어지고, 후자에서는 그 느낌이 지각과 사유로 향하여 희론에 오염된 지각과 관념이라는 다른 결과를 낸다.

 

여기에서 이 두 경의 구조에 대한 비교를 통해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접촉과 느낌은 인간의 인식 과정 및 괴로움의 문제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핵심적 요소라는 사실이다. 12연기에서도, 3사화합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도 접촉으로 인한 느낌은 공통적으로 언급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둘째, 이 두 가지 요소는 윤회와 희론이라는 부정적 양상으로의 발전을 막기 위해 단속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두 경 모두 부정적인 결과로 향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이 요소들을 제어하고 단속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요구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감각기관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 3사의 화합 즉, 6(六境)6(六根)의 결합에 의한 6(六識)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를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2연기의 과정에서 근경식의 만남[]은 느낌으로 연결되며, 근경식의 만남은 우리를 인상과 연상작용으로 이끄는 것이다.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여진 대상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바로 인상과 연상으로 이어지기 쉽고, 이들은 집착으로 발전한다. 시각작용을 통해 단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안에 머물거나 그것을 다른 것과 연결할 때 자아의 관념은 확장된다. 그리고 이러한 자아관념의 확장은 갈애와 집착이라는 결과물을 낳는다. , 우리가 감관의 기관을 그 자체로의 역할로 다스리지 못할 때 불선하고 불건전한 마음이 확산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곧 무방비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붓다는 감각기관을 가진 인간으로서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으로 느낌을 알아차릴 것을 제안한다. 연기의 진행 과정에서 만약 느낌이 없다면, 혹은 느낌이 확산되지 않는다면, 느낌을 원인으로 발생한 갈애도 없거나, 확산되지 않을 것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마하니다나숫따(Mahānidānasutta)는 이에 대해 이와 같이 언급한다.

 

"아난다여, 만약 어떠한 자 모두에게 완전히 일체 느낌이 없다면, 예를 들어 아난다여, 시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청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후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미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촉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정신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이 없어서, 일체의 느낌이 없게 되어, 느낌이 소멸하여도 갈애가 시설될 수 있는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참으로 갈애의 그 원인, 그 인연, 그 발생, 그 조건은 바로 느낌이다."

 

붓다는 갈애의 원인을 느낌으로 규정하고,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도 소멸한다고 밝히고 있다. 3사화합으로 인해 발생한 인지가 인상과 연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매우 빠르게 일어난다. 따라서 수행자는 또 다른 이미지와 연상작용에 빠지게 됨을 알아차리고 이를 멈출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접촉 이후에 발생하는 느낌에 대해서도 이 느낌이 좋은 느낌과 좋지 않은 느낌으로 확장되어, 더 느끼고 싶거나, 벗어나고 싶다는 갈애로 확장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이처럼 초기불교의 수행은 접촉 이후에 발생한 느낌이 갈애와 취착으로 확장되지 않도록 느낌 자체에 대한 알아차림으로 주의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정준영은 수행의 대상으로서 느낌을 주시하고 이러한 관찰의 과정을 통해 느낌이 갈애로 발전하는 것을 방지하면, 괴로움의 확장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느낌을 분명히 알아차리고 있는 동안, 느낌은 3독심과의 연결고리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수념처(vedanānupassanā)는 느낌에 대한 집중(samādhi)과 마음챙김(sati)을 통해 갈애(taṇhā)의 발생을 조절하는 실천 방법이다. 냐냐포니까테라 또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느낌은 다양한 형태의 격렬한 감정이 일어나게 하고 12연기의 수에서 (윤회가) 연속되는 것을 깨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고통의 조건을 만드는 중요한 문제이다. 만일 감각적인 접촉을 받아들일 때 느낌의 단계에서 잠시 쉬거나 멈추게 할 수 있거나 또는 그 첫 번째 단계에서 청정한 염을 통해 느낌을 바라본다면 느낌은 갈애나 다른 갈망의 원인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여러 수행처에서는 몸의 느낌을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삼을 것을 권한다.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을 통해 느낌이 다음 단계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빠타마겔라냐숫따(Paṭhamagelaññasutta)는 수행의 대상으로 몸과 느낌에 대한 관찰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상기 경전의 전반부에서는 일상의 모든 동작들을 모두 올바로 알아차릴 것을 권하고 있으며, 후반부에는 느낌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비구가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방일하지 않고 성실하게 정진할 때에 괴로운 느낌이 생겨나면, 그는 이와 같이 '나에게 괴로운 느낌이 일어났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것은 조건적이지 조건없이 생겨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엇을 조건으로 하는가? 몸을 조건으로 한다. 그런데 이 몸은 무상하고 형성된 것이며 조건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무상하고 형성된 것이며 조건적으로 생겨난 이 몸을 원인으로 생겨난 느낌이 어떻게 항상할 것인가?"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고, 몸은 다양한 느낌을 발생시키는 원천이 된다. 그리고 실천적인 입장에서 수행자가 몸을 관찰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느낌이라는 현상을 통해 가능해진다. 따라서 몸에 대한 관찰과 느낌에 대한 관찰은 모두 중요하게 강조되며, 몸의 무상함에 대한 알아차림은 느낌에 대한 알아차림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몸이 무상하기에 느낌 또한 무상하며, 이것의 조건적인 특성을 알게 되면 '이러한 느낌에 집착하거나 환락할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는 가르침이 담겨 있는 것이다. 느낌은 무명을 벗어나 진리를 꿰뚫어 통찰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으로 제시된다. 왜냐하면 삼사의 화합을 통한 접촉[]은 수행자의 능동적 개입이 불가하다. 하지만 접촉 이후에 나타나는 느낌[]은 수행자의 능동적 개입이 가능하다. 따라서 느낌은 수행자의 역량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고, 느낌 이후에 갈애로의 전환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접촉과 느낌 사이에 수행자의 능동적인 개입이 가능한 자리가 있다면 어떨까? 몸과 마음에서 쉴새 없이 일어나는 다양한 접촉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느낌 사이에, 수행자가 개입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이것은 느낌 자체를 관찰하는 것보다도 유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일어난 느낌을 관찰하는 것보다, 느낌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느낌이 갈애와 집착으로 번지거나, 느낌이 지각과 사유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 선행조치가 가능하게 된다. 접촉과 느낌의 사이에 어떠한 요소가 개입되는지에 대한 초기경전의 입장은 마하깜마위방가숫따(Mahākammavibhaṅgasutta)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경은 느낌이 발생하는 과정에 있어서 의도적 행위가 개입함을 강조한다.

 

"벗이여 뽀딸리뿟따여,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 결과가 즐거움으로 느껴지는 의도적 행위를 하면, 그는 즐거움을 느낀다. 벗이여 뽀딸리뿟따여,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 결과가 괴로움으로 느껴지는 의도적 행위를 하면, 그는 괴로움을 느낀다. 벗이여 뽀딸리뿟따여,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 결과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으로 느껴지는 의도적 행위를 하면, 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을 느낀다."

 

상기 경전에서 느낌의 원인으로 나타난 것은 '의도적 행위(Sañcetanikaṃ kammaṃ)'이다. 3행의 결과로서 느낌이 발생하는 과정에 의도적 행위가 선행한다고 보는 것이다. 의도와 3행이 합쳐지면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발생시킨다. 이들 세 가지 느낌들은 초기경전 안에서 느낌을 대표하는 느낌들이다. 인간은 의도에 의해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를 하게 되고, 이로 인해 다양한 느낌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의 구조 내에서 의도는 느낌을 촉발하는 원인이 된다. 물론 연기의 구조에서 느낌과 의도도 상호작용하겠지만, 본 경에 따르면 의도가 느낌에 선행하고 느낌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맥락을 근거로 본다면, 갈애의 원인이 되는 느낌의 발생을 다스리고 싶다면, 혹은 부정적 느낌의 발생을 막으려 한다면, 느낌보다 먼저 일어나는 의도에 대한 조절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의도는 접촉과 다르게 수행자의 능동적 참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체적 행위, 언어적 행위, 정신적 행위라는 삼행에 대한 의도는 중요한 관찰 대상으로서의 위치를 지니게 된다. 갈애를 단속하기 위해 느낌의 단속이 필요하다면, 그러한 느낌에 선행하는 의도를 단속하고 주시하는 것은 수행자에게 한층 유리한 선택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추가적인 근거는 쩨따나숫따(Cetanāsutta)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구들이여, 신체가 있을 때 신체적인 의도를 원인으로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언어가 있을 때, 언어적인 의도를 원인으로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수행승들이여, 정신이 있을 때, 정신적인 의도를 원인으로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무명에 의해 조건지어진다중략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을 일으키는 신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고."

 

3행과 의도가 결합했을 때 느낌이 일어난다는 설명이 상기 경전에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의도를 원인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러한 모든 과정에 무명(無明, avijjā)이 영향을 주고,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지고 소멸하면 더 이상 이러한 느낌을 발생시키는 모든 요소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무명을 소멸하고 지혜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에 있어 의도의 조절이 관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청정도론인드리야삿짜니데사(Indriyasaccaniddesa)는 정신적인 괴로움이 육체적인 괴로움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설명한다. 정신적인 괴로움[느낌]을 의미하는 '도마낫싸(domanassa)''둑카(dukkha)'에 선행하는 것이다. 붓다고사는 근심, 고뇌, 비탄이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이 '도마낫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근심(Domanassa)'이라는 것은 정신적 괴로움이다. 그것은 정신적 핍박을 특징으로 삼고, 정신을 괴롭히는 것을 기능으로 삼고, 정신적 질병을 현상으로 삼고, 고통의 괴로움인 까닭에, 신체적 괴로움을 가져오는 까닭에 괴로움이다. 정신적 괴로움에 떨어진 자들은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고 울고, 가슴을 치고, 앞으로 돌고, 뒤로 돌고, 거꾸로 떨어지고, 칼을 휘두르고, 독을 삼키고, 밧줄로 목을 매달고, 불 속에 뛰어드는 등의 여러 가지 괴로움을 경험한다. 그래서 이와 같이 설한 것이다. 이것은 정신을 핍박하고 다시 신체적 괴로움을 야기하나니, 그래서 근심을 여읜 자들은 근심은 괴로움이라고 말한다."

 

청정도론은 정신적인 괴로움이 육체적인 괴로움을 야기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고뇌와 비탄은 정신을 핍박하고 괴롭히는 것에서 연유하며 그것은 다시 신체적인 괴로움을 가져오는 것으로 나타난다. 괴롭다라는 것은 마음이 몸을 괴롭히고 괴로움을 이끌기 때문이다. 즉 마음이 몸의 괴로운 느낌을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상기 내용에 의도라는 표현이 명확하게 명시되지는 않지만, 데브다스는 '도마낫싸'를 두고 혐오에 뿌리를 둔 목적적 충동, 즉 혐오에 기반한 '의도'라고 해석하였다.

 

부정적인 정서나 부정적인 마음이라는 의도는 심신의 괴로움을 만들고 확장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는 이 괴로움의 느낌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불편감 그리고 타인으로부터의 소외감으로 볼 수 있다고도 설명한다.

 

의도를 수행의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은, 느낌의 발생과 소멸을 조절하기 위해, 무명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대두된다. 의도를 수행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갈애로의 확산을 저지하고, 희론에 휩싸인 지각과 사유의 확산을 방지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이처럼 의도의 수행적 역할은 의도를 다룬 여러 경전을 통해서 나타나지만, 3사의 화합 이후에 나타나는 인식의 진행과정을 통해서도 그 역할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빠타마왁가(Paṭhamavagga)는 의도를 느낌과 지각 이후에 배치하는 형태를 보인다.

 

"시각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형상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시각의식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시각의 접촉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시각의 접촉에서 생겨난 느낌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형상에 대한 지각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형상에 대한 의도는 영원한가 무상한가?, 형상에 대한 갈애는 영원한가 무상한가?"

 

상기 경전은 근경식 3사의 화합 이후에 접촉, 느낌, 지각, 의도, 갈애의 순서로 설명한다. 물론 인식의 과정이 상기순서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는 인간이 대상을 만났을 때, 갈애이전에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의도는 다스려져야만 하는 대상인 것이다. 뿟따망사숫따(Puttamaṅsasutta)는 의도를 갈애와 직접적으로 연결 및 배치하여 설명한다. 더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 혹은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욕구에는 네 가지 요소가 개입된다고 설명하며, 물질의 자양, 접촉의 자양, 의도의 자양, 의식의 자양을 거론한다. 물질의 자양은 쾌락에 대한 욕구와 연관되며, 접촉의 자양은 느낌과 연결된다. 의도의 자양은 세 가지 종류의 갈애와 함께 다뤄지고, 의식의 자양은 명색과 연관되는 것으로 기술한다.

 

"의도의 자양이 완전히 알려지면 세 가지 종류의 갈애가 올바로 알려진다. 세 가지 종류의 갈애가 완전히 알려질 때 고귀한 제자는 더 이상해야 할 일이 없어진다고 나는 말한다."

 

상기 경전은 갈애를 촉진하는 주체가 의도가 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마음으로 짓는 행위의 자양분을 알면 세 가지 갈애를 완전히 알게 된다는 의미는 의도가 갈애를 촉진하고, 갈애는 삶에 대한 집착과 다시 태어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도를 조절할 수 있다면, 윤회를 이끄는 요인을 조절한다는 가능성 또한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빠타마왁가뿟따망사숫따는 모두 의도를 중요한 요소로 언급한다. 의도를 중심에 놓고 두 경전을 함께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의도는 접촉, 느낌, 지각으로 이어진 과정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갈애를 추동하는 원인으로 정리된다. 데브다스는 초기경전에서 나타나는 여러 인식들의 배열에 대해, 이들의 순서는 앞의 요소와 뒤의 요소가 인과관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가 설명하듯 여기에 명확한 차제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들이 인과의 흐름 안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의도는 느낌과 접촉 등에 의해 조건지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배열은 의도와 갈애 등이 어떠한 행동을 추동하게 만드는 원인일 뿐 아니라 의식, 지각, 생각 등 일반적인 인지적 과정이 모두 감각의 자극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갈애는 의도에 의해 자극되고 조건화된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살펴보면, 의도는 인간의 인식 과정에 있어서 주어진 상황에 따라 역동적으로 기능한다. 의도는 느낌이나 지각의 이전에 발생하기도 하고, 느낌과 지각 이후에 일어나기도 한다. 혹은 갈애의 이전에 발생하여 갈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도 나타난다. 12연기와 인식의 진행 과정에서 느낌이 주로 갈애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이나,

 

빠타마왁가는 의도가 갈애로 이어지는 경우를 설명했다. 이처럼 의도는 인간의 인식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등장하는 맥락 또한 다양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의도가 한 지점에 고착되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점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은 수행자에게 있어 양면의 의미를 지닌다.

 

느낌 이전에도, 느낌의 이후에도, 갈애의 발생 이전에도 의도가 개입된다는 것은 수행자에게 유리한 요소로도, 불리한 요소로도 작동된다. 의도를 잘 파악한다면 인식 과정에 있어서 느낌이나 갈애로의 발전을 막을 수 있는 계기 역시 많아지는 것이지만, 의도를 관찰하고 주시할 수 없다면 이러한 의도의 역동성은 오히려 수행자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통찰하는 데에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역동적인 요소로 기능하는 의도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관찰한다면 의도의 작용을 조절하는 것은 보다 용이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갈애로의 확산을 방지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수행자는 의도의 이러한 측면을 정확히 깨닫고 구체적인 수행의 과정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초기불교 수행의 의도 역할 연구/ 곽정은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 박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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