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용시성(作用是性)" 문제
"작용(作用)이 불성(性)이다"라는 명제는 본래 달마(達磨; Bodhi dharma, ?-528?)가 제시한 것이다.
남천축국왕이 달마에게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됩니까?"를 묻자, 달마는 "성(性)을 견득하면 부처가 됩니다"라 대답하였다. ... 왕이 "성이 어디에 있습니까?"하자 달마는 "성은 작용에 있습니다"하였다.
'작용'이란 "눈에서는 본다고 하고, 귀에서는 듣는다고 하며, 코에서는 냄새를 맡는다고 하고, 입에서는 담론하며, 손에서는 잡고 들며, 발에서는 운동하고 달린다고 하는" 것이다. 곧 시청언동(視聽言動), 즉 인심(人心) 전부가 '작용'인데, 이 인심을 불성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축도생 또한 중생의 본심을 중생의 실체라 하고, 불성이라 하여 성불의 근거로 보았다. 달마의 인심불성설(人心佛性說)은 축도생의 범성론(泛性論)적 불성론을 보다 강화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사이에 몇 가지 이론적 발전 단계가 있다.
사실 중국불교의 범성론적 "일체중생실유불성"설은 연기즉공(緣起卽空)과 무아(無我)를 주장하는 근본 교리와 충돌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불교 이론가들은 그 모순을 해결하는 데 치중하게 되었는데, 예를 들어 길장(吉藏, 549-623)이 "불성이란 제1의공(第一義空)을 이름한 것이다. 제1의공은 이름을 지혜로 한다"라고 말한 것이나, 지엄(智儼)이 불성의 "상(相)"을 체성, 인성, 과성, 업성, 상응성, 행성, 시차별성, 편처성, 불변성, 무차별성 등으로 분석한 다음 "공(空)"이 곧 불성이고, 불성이 곧 대열반(大涅槃)이라고 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중국불교학에는 이와 관련하여 많은 주장과 이론이 있지만 본 주제는 아니므로 여기서 더 이상 언급은 하지 않겠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해결 이론들에서 "불성"이 성불의 근거(因)인가 아니면 성불의 결과(果)인가 하는 문제가 생겨난다. "불성"의 내포에 대한 이해를 관건으로 하는 이 논쟁을 "본시지변(本始之辯)"이라 하는데, "본시(本始)"란 "본유불성(本有佛性)"과 "시유불성(始有佛性)", 또는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을 의미한다. "본유"ㆍ"본각"은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는 고유한 성덕(性德)으로 유정과 무정을 막론하고 그 본성은 원만자족하다는 것이고, "시유"ㆍ"시각"은 후천적으로 획득되는 습유(習有)의 성덕으로 중생은 본래 이러한 불성을 갖고 있지 않고 수행에 의해서 비로소 생기거나 성립되는 것을 뜻한다.
본시지변이란 불성이 본유(本有), 즉 중생 생래의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시유(始有), 즉 후천적인 수성(修成)인가에 관한 논쟁이다. 만약 진여(眞如)ㆍ실상(實相)을 불성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본유적인 것이며, 만유는 그것을 본체로 하고 그것에 인(因)하여 성립되며 그것을 떠나서는 있지 않게 된다. 반면 불성을 열반(涅槃)으로 본다면, 그것은 시유적인 것이 되고 일체의 중생 모두는 어떤 수행을 거치지 않고서는 열반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일체 존재의 공동 본성이자 진여실상인 "불성본유"만을 긍정하게 되면 후천적인 수행은 별다른 의미를 가지 못하게 되고, "불성시유"만을 긍정하는 경우에는 열반성불의 내재적 근거가 없게 되어 "성불"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아부정에 지나지 않게 된다.
길장은 이상과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중생 불성은 본래자유(本來自有)하는 이성진신(理性眞神)이고 아뢰야식이므로 열반에 또 두 가지가 있다. 성정열반(性淨涅槃)은 본래 청정(淸淨)이고, 방편열반(方便涅槃)은시유를 닦아서 이루는 것(修成)이다.
길장은 "불성"을 "이성(理性)"과 "행성(行性)"으로 나누어 "이성"은 본유불성으로 중생 성불의 본성이고, '행성"은 시유불성으로 중생 성불 이후의 덕성으로써 본성이 현실화, 외재화된 것이라 말하고 있으나, 이는 단지 방편적인 것일 뿐 "본시"의 동일성을 논증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수습의 강조는 현실의 중생 그대로가 부처는 아니라는 현실관에서 생겨난다. 이런 점에서 신회(神會, 684-758)의 "마치 지하에 물이 있는 것과 같이, 만약 굴착하지 않으면 끝내 물을 얻을 수 없다. 또한 마니보주와 같아서 연마하지 않으면 끝내 밝고 깨끗하게 할 수 없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만약 성불이 반드시 수습을 기다려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본유불성은 단지 그 '가능성' 또는 '근거'가 되는 것이어서 원만자족(圓滿自足)한 것일 수 없게 된다. 불성을 "원만"으로 해석하는 중국불교 전통에서는 본시일여(本始一如)를 중심으로 삼게 되는데, 우리는 종밀(宗密, 780-840)의 다음 말에서 그 일단을 찾아볼 수 있다.
일승성현교는 일체의 유정이 모두 본각진심을 가지고 있고, 무시이래로 항상 청정함에 머무는 것이고, 환희 밝아 어둡지 않고, 환희 깨달아 항상 아는 것이라 또한 불성이라 이름하고, 여래장이라 이름하기도 한다.
그런데 본시통일만을 강조하면, 수습이 전혀 필요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예를 들어 희운(希運, ?-850) 선사의 "조사들께서 일체 중생의 본래 몸과 마음이 그대로 부처임을 바로 가리키신 것이다. 이것은 닦아서 되는 것도 아니고, 점차적인 단계를 밟아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는 말이 그것이다. 이 말은 지나치게 점수(漸修)를 강조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지만, 불성의 원만자족만을 강조한 논리적 귀결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의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여래장(如來藏)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성구선악론(性具善惡論)"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불교에서는 "선악"을 또 "정염(淨染)"으로도 말하므로 성구선악론은 "성구정염론(性具淨染論)"이다. "염(染)"은 인간의 완성과 초월을 장애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재장(在障)", "능장(能障)", "소장(所障)"으로 해석되고, "정(淨)"은 주체 완성의 내재적 근거와 실현을 나타내므로 "출장(出障)", "무장(無障)"으로 해석된다. 명대의 전등대사(傳燈大師)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태종에서는 성을 말할 때는 선악을 갖추고 있다고 하고, 수(修)를 말한 다음에 선악을 나눈다. 그러므로 불계(佛界)를 본구(本具)하는 것이 성선(性善)이고, 9계(九界)를 본구하는 것이 성악(性惡)이다. 불계를 수성(修成)하는 것이 수선(修善)이고 9계를 수성하는 것이 수악(修惡)이다.
"성"은 만물의 진실한 본성, 우주의 본체, 세간과 출세간 일체 사물과 현상 모두가 본성으로 삼는 것이므로 선(善)도 "성"을 근본으로 하고'' 악(惡)"도 "성"을 근본으로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은 선악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선악 자체는 "성"이 아니다. "선 악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은, "성"에는 향선(向善)과 취악(超惡)의 두 가지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며," 성선"은 중생이 모두 성불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가리키고, "성악"은 중생이 "불(佛)" 이외의 9계에 머물고 말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생의 선악은 "성"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지(修持)에서, 다시 말해 후천적인 수행에서 "성"의 선악이 현실적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성구염정론은 본시일여에서 제기되는 수습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론이다. "성정(性淨)"ㆍ"성염(性染)"은 본성이 고유(固有), 실유(實有). 자유(自有)하는 것으로써 "부처(佛)" 또한 "염(染)"이 적지 않고, 범부 또한" 정(淨)"이 적지 않다.
"사염(事染)"ㆍ"사정(事淨)"은 후천적인 수습의 염정으로, 이는 "성염정(性染淨)"이 밖으로 드러난 것으로써 매시(每時), 매처(每處), 매사(每事)에서 볼 수 있는 염정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불'은 "정(淨)"만 있고 "염(染)"은 완전히 끊어버린 것이고, 나머지 9계 중생은 염정이 상잡해 있는 것이 된다. "성"이 선천적으로 잡염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중생은 사염(事染)으로 끝날 수 있고, 또 "성"이 선천적으로 "청정(淸淨)"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중생은 성불할 수 있고, 열반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성구정염론"의 주지이다.
성구염정론은 또 "인불불이(人佛不二)"론과 밀집한 관계가 있다. 길장은 이를 "만약 여래성을 구하면 곧 중생성이고, 열반성을 구하면 곧 세간성이다"라 표현하고, 송승(宋僧) 극권(克勸)은 보다 분명하게 "마음을 온전히 하면 곧 불(佛)이고, 불을 온전히 하면 곧 인(人)이어서 인과 불이 다름이 없다. …심진(心眞)에 관해 말하면, 인불(人佛)이 함께 진(眞)이므로 조사께서 다만 직접 인심을 가리켜 견성하면 성불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 마음은 비록 사람마다 모두 구족하고, 무시이래 청정무염(淸淨無染)하며 능소(能所)가 없지만 자성을 지키지 못함에 따라 망동하게 되고 가없는 지견(知見)을 일으키게 되어 유(有)에 표류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상에서 보듯이 성구염정론은 인불불이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불성론의 본체론적 토대에 기초하고 있다.
<인성과 불성의 비교/ 유흔우 동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