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과 불성의 비교
마치는 글
선종의 "작용시성"은 축도생의 "일체중생실유불성" 이후의 중국불교 불성론을 총결한 것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로 표현되었다. 선종의 이러한 표지는 분명 유학의 영향을 반영한다. 한편 성리학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들로부터 중국철학사에 이른바 "원유입불(援儒入佛)"과 "원불입유(援佛入儒)" 현상이 본격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유학에서는 "인성"이 처음부터 유적공성(類的共性)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 최종적 경계인 성인이 "지선(至善)"한 사람을 의미하였기 때문에 중국불교 불성론에서와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인성"은 "위성"의 '가능 근거'로만 설정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성리학자들의 본체론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었고, 거기에는 불교의 영향이 매우 컸다.
유가가 강조하는 것은 인성의 "가능선(可能善)"이 아니라 "당위선(當爲善)"이다 "사람마다 모두 요순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만이 아니라" 사람이면 마땅히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더욱 강조하는 명제이다. 이런 이유로 유가는 "인성불이(人聖不二)"를 주장하지 않는다. 유가의 시각으로는 선종의 "작용시성(作用是性)이" 당위성을 강조할 수 없음으로 해서 실제적으로는 매우 비상한 공부론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불성을 "지선(至善)"으로서가 아니라 절대선(絶對善)ㆍ초월선(超越善)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는 배경도 바로 "작용시성"에 있었다.
사실 이 논문은 어떤 결론을 전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체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주희의 작용시성 비판은 선종의 공부론에 대한 비판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성과 불성의 비교/ 유흔우 동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