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境)·지(智)·행(行)의 원융
방편으로 진실을 분별하여 설하거나 추와 묘를 구분하여 차이를 드러내 상대묘를 가리는 격별은, 중생의 근기에 감응하기 위함에서 기인한다. 즉, 격별의 방식으로 차별상을 가리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중생교화에 있다. 이 중생교화의 핵심은 『법화경』을 들어 말하면 중생에게 1불승과 본불의 진실을 열어보여 이를 깨닫고 들어가게 함에 있다. 즉 방편과 진실의 구분 없이, 추즉묘로 일체법이 묘한 절대묘의 원융한 실상을 가르치기 위한 과정에서 격별을 설하는 것이다.
부처가 3승을 설하거나 적불로서 생멸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모두 진실[諸法實相]을 설하기 위함이듯, 천태대사가 4교를 통해 추와 묘를 나누고 원교의 상대묘를 말한 것도 절대묘로 귀일하여 추즉묘로 원융한 실상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격별을 통해 차이를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궁극적으로 원융한 진실에 나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에 본 절에서는 각각을 원융의 관점에서 다시 논하고자 한다.
먼저 경계와 지혜 그리고 수행 각각이 원융함에 대해 앞서 격별의 관점에서 분류하여 논했던 것을 다시 통합하고, 추묘를 판별하여 상대묘를 확인했던 것에서 나아가 절대묘로 귀일함을 통해 이야기한다. 다음으로 셋으로 떨어져 객체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격별의 관계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셋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셋으로 원융한 관계를 맺고 있음에 대해 논한다.
1)통합과 절대묘로의 귀일
경계와 지혜 그리고 수행의 각각의 원융을 확인하기 위한 공통적인 방법으로 『법화현의』의 경묘·지묘·행묘에 대한 설명에서 확인할 수 있는 통합과 절대묘의 귀일에 대해 논한다. 먼저 경계에 대해서는 경계를 여섯 가지 등으로 말한 것을 통합하여 본래 하나로 원융한 것, 그리고 각각의 경계 안에서 추묘를 판별하여 상대묘를 말했지만 절대묘에 귀일하여 원융한 것에 대해 정리한다. 다음으로 지묘에 대해서 4교의 가르침과 그 수행계위에 따라 20가지 지혜의 모습을 말했지만, 경계가 원융하기에 지혜 역시 원융하여 본래 그러한 차별상이 없이 원융함에 대해 논한다. 마지막으로 수행에 대해 4교의 증수행의 추묘를 말했으나 경계가 원융함에 따라 수행 역시 원융하여 절대묘에 귀일하는 것과, 여러 격별의 기준을 들어 열반5행을 말했으며 이는 차제로 추이고 원5행은 불차제로 묘함에 대해 말했지만 이 역시 절대묘에 귀일하여 원융함에 대해 설명한다.
(1)경계[境]의 원융
경묘에서 진리를 여섯 가지 등으로 밝힌 것은 하나의 실상 진리를 다만 여러 가지 이름을 들어 밝힌 것으로, 이들은 설명의 차원과 구조를 달리할 뿐 본질은 다름이 없다. 이 여섯 가지 경계는 모두 무명에서 일실제의 중도실상에 이르기까지를 고려하고 있으나, 다만 어느 측면이 더 부각되느냐가 다를 뿐 설하고자 하는 진리에는 다름이 없는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이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법화경』에 표현된 것처럼 중생의 지견으로는 알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지만 부처가 중생교화를 위해 갖가지 이름으로 설했는데 그것의 예시가 이 여섯 가지 경계이다. 그 실체를 아는 것은 이를 설한 부처뿐이다. 따라서 말로 설해진 경계들 가운데 우열을 가리거나 어느 하나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관점을 달리했을 뿐 본래 하나인 것에 어떻게 우열을 매기고, 그 관점에서 바라본 측면만 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계는 여섯 가지 내지는 무량한 이름과 개념으로 설해져 있지만, 본래 하나로 원융하다.
구체적으로, 여섯 가지가 모두 실상진리를 설하기 위한 체계라는 것에서 다름이 없다. 개별적으로는 10여시에서 처음의 성(性)부터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의 마지막 지(支)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법계를 막론하고 무명에서 실상에 이르는 진리를 설명할 수 있다. 12인연과 4제는 그 수와 항목을 달리하여 설명했지만, 중생의 3세윤회를 설명하여 진리에 이르는 길을 설하는 것에 다름이 없다. 2제·3제·1제도 설명의 과정에서 수나 이름을 달리했을 뿐 본질적으로 중생이 깨달아야 할 중도실상의 진리의 측면에서 경계를 설명하고 있음에서 같다.
다음으로 각각의 경계 안에서의 원융에 대해 차례로 논한다. 먼저 10여시의 경우 10법계의 성질에 차별을 두어 구분하고 진실과 방편을 가렸다. 선과 악을 모두 알아 무기(無記)의 성품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기 때문에 10법계의 100여시로 차별을 두고 나누어 말하지만, 종국에는 법계나 성질의 차별없이 원융한 하나의 실상을 알고 증득한다. 한 법계 안에 또 나머지 아홉 가지 법계가 갖추어져 있어서 곧 100계 1000여시를 이룬다고 했다. 지옥 법계에서도 부처[佛]의 성(性)·상(相)을 갖추어 수행하고 불과를 이루는 이룰 수도 있음이다. 차별상에 집착하여 그 편견에 사로잡힌다면 아무리 좋은 목표를 갖고 수행을 하더라도 진실상을 만날 수 없다. 100법계의 1000여시가 분분하여 나타나는 가운데 또한 다르지 않으며, 방편안에 진실이 있고, 진실 안에 방편이 있어 서로 다르지 않음이 10여시의 원융을 말해준다.
나머지 다섯 가지 경계의 경우 4교를 기준으로 네 가지 내지는 일곱 가지로 나누어 각 경계 안에서의 차이를 말하고 추와 묘를 구분했다. 그리고 순서와 구별이 없어 걸림이 없는 원교의 무작(無作)의 경계의 상대묘를 말했다. 그러나 『법화경』에서 1불승 혹은 본불의 진실을 열어 이전의 3승의 분별이나 적본의 구별로 설한 방편을 모두 폐하고 진실로 나아가면, 가르침에 따른 경계의 구별 역시 원교 내지 법화시에 이르러 원융한 진실의 개현으로 모든 추가 절대묘에 귀일하여 원융함에 다름이 없다. 비록 중생의 근기를 고려하여 경계를 4교의 가르침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별하여 말했지만, 본래 이는 원융한 하나의 가르침으로 다름이 없고 추·묘의 구별이 없다.
(2)지혜[智]의 원융
지혜를 4교의 수행계위에 근거하여 20가지로 나누었는데, 이 지혜의 차이는 곧 어떠한 진리를 얼마나 아는가를 기준으로 한다. 4교의 교문이 3혹을 파하고 3제를 아는 것에서 차이가 있음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의 목적은 단순히 3제 각각을 알거나 그 중에서도 승의(勝意)를 가려 중도제를 최종목표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천태대사는 항상 가르침의 마무리에 있어서 설명을 회통하며 즉공즉가즉중(卽空卽假卽中) 즉, 공 안에 공·가·중이 있고 가 안에 공·가·중이 있고 중 안에 공·가·중이 있음을 아는 3제원융을 목표로 정진할 것을 강조했다. 실상(實相)의 진리가 곧 3제원융이라고 정리한 것이다.
진리 자체가 3제원융하다면, 지혜 역시 3제원융하다. 천태대사는 경계를 설명함에 있어서 부사의한 3제원융의 진리를 바로 설하지 않고 공·가·중의 3제로 분별하여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3제는 원융하여 즉공즉가즉중으로 차별상이 아니다. 이를 관하는 4교의 지혜 역시 공을 관하는 지혜 혹은 중도를 관하는 지혜 등으로, 대상을 나누어 설명하였지만 이는 중생의 이해를 위한 구분이지 실제로 지혜나 경계에 있어 명확한 분절(分節)은 없다.
분절이 없다는 것은 크게는 경계와 지혜가 딱 끊어서 이분법적으로 분리된 개념이나 객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더 자세히 들어가서, 지혜에 분절이 없음은 공을 아는 지혜·가를 아는 지혜·중도를 아는 지혜 등도 각각의 특정한 분위에 해당하고 이것을 읽는 한정적인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혜의 깊이나 정도에 의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절대적인 분절점을 상정하고 그에 따라 끊어내어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전에서 이를 비유적으로 분별하여 말하거나, 논서에서 이를 자 세히 설명하는 것은 모두 중생을 위해서이다. 중생의 근성과 편견에서 기인한 사고의 한계를 고려하여 그에 알맞은 가르침과 지침을 제시하기 위해서, 임의의 분계점을 상정하고 그 분별에 따라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다.
천태대사는 원교의 42계위가 곧 '무차위의 차위[無次位之次位]'라고 했는데, 원교의 계위를 '6즉(六卽)'으로 판별하는 것을 통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수행계위에 따라 얕고 깊음이 있음을 여섯 가지를 말하고, 나타나는 진리의 체가 계위마다 다르지 않기 때문에 같다[卽]고 한다. 6이라는 글자로 계위의 차이를 깊이 아는 것은 증상만(增上慢)을 물리치고, 즉이라는 글자로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진리의 체가 다르지 않음을 아는 것은 비하만(卑下慢)을 물리친다. 즉 계위는 다르면서도 하나이고, 하나이면서도 다른 것이다. 지혜를 나타내는 척도로 계위의 구분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중생을 위해 바르게 판단하여 분별[善分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를 다음의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자행(自行)의 관점에서, 계위는 수행 가운데 스스로의 위치를 알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과 이후의 수행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지침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화타(化他)의 관점에서, 계위는 중생의 근기와 위치를 알고 그에게 필요한 가르침과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천태대사는 4교의 계위 가운데 장교와 통교는 성인의 지위를 성문·연각·보살의 세 가지로 말했고, 별교와 원교는 성문과 연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보살에 대해서 말했다. 앞서 이와 같은 차이는 4교의 교문이 같지 않음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하였다. 장교와 통교는 공의 진리를 가르치기 때문에 자행으로 공을 깨닫는 지혜를 가진 성문과 연각의 계위에 대해 말하지만, 별교와 원교는 중도의 진리를 중점으로 가르치며 별교는 차제로 공·가·중 세 가지를 모두 알아나가고 원교는 3제원융하게 세 가지를 모두 안다. 이에 별교와 원교는 3승 가운데 성문과 연각은 말하지 않고, 보살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계와 지혜가 분절없이 원융하고, 이에 근거하여 차이와 단계를 말하는 계위 역시 원융하기에 종국에는 3승의 구별도 방편으로 버려진다. 『법화경』 적문에서 방편으로 분별하여 3승을 설했지만, 오직 1불승의 진실만 있음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분절없이 원융한 실상 아래 나와 남의 구별을 상정하고 나만을 위해 공을 깨치는 성문과 연각이 있을 수 없다.
지혜가 관하는 경계의 격별과 그 방식의 차이를 들어, 상대적인 추와 묘를 가려 4교의 지혜와 그 상대묘를 말했다. 그러나 중생의 근기가 성숙하여 법화시에 이르러 방편을 열어 진실을 설하는데, 모든 추가 묘에 귀일하여 추묘의 구분 없이 오직 절대묘만 있다. 4교의 지혜 그리고 더 세분화하여 20가지 지혜를 상정하고 설명했지만, 실제로 그러한 지혜를 특정짓는 정확한 분절점이 없으며 이에 의거한 고정적인 지혜 역시 없다. 대상 경계가 원융하고, 이를 관하는 지혜 역시 원융하기에 절대묘를 말한다.
(3)수행[行]의 원융
행묘를 설명함에 있어 수를 더해가는 행[增修行]으로 4교의 수행 각각에 대해 말하고 상대묘를 가렸다. 이 때 4교 각각의 수행의 숫자나 이름 혹은 종류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천태대사는 4교 각각의 수행을 말하고 회통하면서 각 가르침[敎]의 뜻을 얻으면 하나의 수행이 곧 일체의 수행이 된다고 했다. 4교 각각 안에서 수와 이름을 달리하여 수행을 말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떤 수행이든지 같은 가르침에 도달함을 뜻한다. 또 범위를 넓혀 경계가 원융함, 즉 진리의 원융함을 확인한 것에 따라 4교의 가르침 즉 지혜가 향하는 3제의 경계가 원융하기 때문에 수행 역시 원융하다. 법화시에 이르러 개권현실로 진실이 드러나 모든 추가 묘에 귀일하여 구별 없이 원융한 절대묘가 된다. 4교로 나누어 말하지만 결국 수행을 통해 이르는 목적지가 같기에 원융한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천태대사는 4교를 기준으로 수행의 차별상을 두어 설명하고, 추와 묘를 판별하여 상대묘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원융을 설명했던 것이다.
열반5행을 설명함에 있어 별교의 초지(初地)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과 자행과 화타를 구분하여 말하는 것에서 격별을 논했다. 그러나 앞서 지혜의 원융을 다루면서 계위의 차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같으면서도 다름에 대해 말했듯이, '초지'라는 기준에 따른 구분 역시 원융의 관점에서는 차제적으로 수행을 이해하기 위한 한시적 구분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자행과 화타로 수행의 성질과 기능을 나누어 말한 것은 화타를 행하기 이전에 자행으로 공덕과 힘을 쌓아야 하는 시기가 있고, 또 화타를 통해 얻는 바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돕는다. 원융의 관점에서 자타불이(自他不二)를 생각하면 자행과 화타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기 어렵지만, 수행자의 능력을 고려하여 바르게 판단하여 분별[善分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열반5행의 격별과 차별상을 해소하고 수행의 원융을 설명해 주는 것이 바로 원5행이다. 하나의 행안에 다섯 가지가 있으며, 불차제로 다섯 가지 행을 말하기 때문이다. 똑같이 다섯 가지 행을 말하지만 여래행으로서 원융의 관점에서 수행을 말하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격별이 원융으로 귀일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수행을 차제로 말하여 추이고, 원융하게 말하여 묘하다고 원5행의 상대묘를 밝혔다. 그러나 법화시에 이르러 모든 추가 묘에 귀일하여 구별없이 원융한 절대묘를 이루기에, 차제로 다섯 가지 행을 말했으나 본래 하나로 부사의하게 원융하며 다름이 없다.
<경계와 지혜 그리고 수행의 관계에 관한 연구/이혜린 금강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불교교학전공 석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