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와 지혜 그리고 수행의 관계에 관한 연구
1.연구 배경
'불교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이는 비단 불교뿐만 아니라 학문이나 사회 전반, 그리고 나아가 모든 현상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인 것들을 마음이나 의식의 작용을 통해 인지하고, 이를 반복해 나가면서 각자의 인식체계를 형성하여 세상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하나의 현상에 대한 간단한 정의 조차도 천차만별로, '진실'은 하나지만 개개인의 관점에서 본 '사실'이 진실이라고 주장하고 믿는 형국이다. 불교 역시 여러 사람이 다양한 관점을 갖고 접근하기 때문에 그 정의나 설명이 무수히 많고 서로 다를 수 있다.
정의의 범위를 좁혀서 목적을 기준으로 불교가 무엇인가를 논하면, 불교는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의 즐거움을 얻는 것[離苦得樂]을 목표로 하는 종교이다. 말에서 글로 전승되어온 부처의 가르침, 그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제자들의 논서, 그리고 이를 따라 정진하여 수행하는 자 등 모두의 목적은 '진리'를 관하여 깨닫고 성불하여 즐거움을 얻는 것에 있다. 경전, 논서, 율장, 수행, 승가 등 불교의 역사적 흐름 안에서 생겨난 일체의 것들을 '현상'이라고 지칭한다면, 이 모든 것을 운용하는 '원리'가 바로 우리가 깨닫고자 하는 '진리'라고 할 수 있다.
'현상과 원리'라는 양자적 개념은 서로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또 원리에 기인하여 현상이 있기 때문에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러한 개념 구조를 흔히 사용하고 있으며, 또 양자 가운데 원리의 중요성은 모두가 알고 강조하는 지점이다. 동시에 모순적이게도 우리는 이 원리를 간과하기가 쉽다. 눈 앞에 펼쳐지는 다양한 현상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이 현상의 원리가 무엇인지에는 소홀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원리를 체화하고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원리에 대한 접근과 이해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며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교를 들어 말하면 교학뿐만 아니라 수행도 함께 할 때 혹은 수행뿐만 아니라 교학도 함께 할 때에 근기가 성숙하고 보다 진리에 가까워 질 수 있다. 교(敎)와 선(禪)의 대립으로 대표되는 이 문제는 불교의 역사 안에서 계속해서 논쟁이 있어 왔다. 시대를 타고 우위를 점하는 등의 승패가 있어 왔지만 결국은 양자 모두를 중시하고 지침으로 삼을 것을 권하는 포용적인 입장이 해결이자 해답이 되어왔다. 천태대사(天台大師) 지의(智顗, 538-597)는 이 대립에 있어서 교(敎)와 선(禪) 양자의 중요성과 원만함에 대해 '교관2문(敎觀二門)'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그 개념을 강설했다. 특히 천태대사는 교상판석에 있어서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장(藏), 통(通), 별(別), 원(圓)의 화법4교(化法四敎) 체계를 제시하고, 진리에 있어서는 중도실상의 이해를 위한 체계로 공(空), 가(假), 중(中) 3제(三諦)를 강조했다. 그리고 이 체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이르는 결론은 원교의 절대 묘에 귀일함과 원융한 중도의 깨달음에 다가서야 함이다. 천태대사가 본래 말하고자 하는 바는 중도실상의 진리에 있지만 중생들의 이해와 근기의 성숙을 돕기 위해 갖가지로 분류하여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이는 각각의 우열을 가려 원교나 중도제를 승의(勝意)로서 차별화하는 것이 아니며, 이 모든 설명 끝에는 일체가 원융하여 더 이상의 추(麤)와 묘(妙)가 없는 원융의 진리가 있다. 실상의 원리를 일분이라도 이해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귀결이다. 현상은 원리에 따라 갖가지로 현현하는 것이기에 이해를 돕기 위한 분류가 있을 뿐, 궁극적으로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하여 같은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원융(圓融)의 의미는 경전에 나타난 깨달음과 가르침을 하나의 절대적인 정답으로 이야기할 수 없듯이 각자의 이해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를 수 있다. 천태대사가 주로 '원융한 실상의 진리'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고 강조하는 공(空)·가(假)·중(中) 3제의 의미를 빌려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하나[一]와 전체[一切]가 있다고 할 때, 공제(空諦)는 일체법일법(一切法一法)을 말하고, 가제(假諦)는 일법일체법(一法一切法)을 말하고, 중도제는 비일비일체(比一比一切)를 말한다. 그리고 3제원융은 공(空) 안에 공(空)·가(假)·중(中)이 있고, 가(假) 안에 공(空)·가(假)·중(中)이 있고, 중(中) 안에 공(空)·가(假)·중(中)이 있어서 3제가 모두 원융한 것을 말한다. 즉,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이며, 혹은 하나도 아니고 전체도 아닌 세 가지 관점을 모두 포괄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3제원융 및 원융한 실상의 진리를 아는 것이다. 이는 무조건적으로 일체 대상을 하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외의 관점 역시 포괄하여 일체만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이에 본 논문은 원융의 관점에서 불교를 체계화하여 제시한 천태대사의 논서와 철학을 토대로 불교의 목적성과 그에 따른 운용원리를 논하고 이해하고자 한다. 위에서 언급한 화법4교, 3제 이외에도 많은 체계와 구조를 설명했으나 그 가운데 특히 『묘법연화경현의(妙法蓮華經玄義)』에서 소개한 경묘(境妙)·지묘(智妙)·행묘(行妙)에서 밝히는 경계와 지혜 그리고 수행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원융의 관점에서 불교의 원리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고자 한다.
2.연구 목표
기록으로 남겨진 천태대사의 많은 강설 중 『묘법연화경현의』(이하 『법화현의』)는 『묘법연화경』의 깊은 뜻을 명(名)·체(體)·종(宗)·용(用)·교(敎)의 5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논서이다. 경문에 대한 해석이나 주석을 가한 것이 아니라, 경전에 나타난 불설(佛說)의 의미와 진리를 5중현의(五重玄義)라는 분석체계로 재구성하여 자세하게 설명한다. 5중현의 중 경전의 이름을 풀이하는 명현의(名玄義)에서 '묘(妙)'라는 글자를 적문(迹門)과 본문(本門)의 10가지 묘로 나누어 소개한다. 이 적문10묘 중 처음 세 가지인 경묘(境妙)·지묘(智妙)·행묘(行妙)는 『법화경』에 설해진 경계의 묘함, 수행의 묘함, 지혜의 묘함을 5시8교(五時八敎)의 교상판석과 경전적 근거를 들어 설명한다. 이 세 가지를 각각 분류하고 자세히 설하는 가운데 서로 연결하여 그 관계를 설명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세 가지가 다름없이 하나인 원융에 대해 강조한다.
논서 전체내지 부분의 기준을 세우고 분석체계 및 구조를 만드는 것은 경문의 가르침·선학들의 논서·개인적 깨달음 등 난무하는 지식과 현상 사이에서 그 기저에 있는 원리를 관하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다. 비단 기계적 분류에만 능하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천태대사는 불교의 목적성에 맞게 진리를 이해하고 관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스스로 이해한 바 안에서 교학과 수행의 체계를 세워 타인의 이해를 도왔다. 그의 많은 강설과 논서에서 제시하는 교학체계·교상판석·수행방법 등은 원융의 진리에 대한 이해가 핵심이 된다. 기준을 세우고 이에 따라 분류하여 자세히 분석한 뒤에는, 그 구조를 넓혀 원융을 논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을 본 논문에서 의제로 삼는 경계와 지혜 그리고 수행의 관계를 논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경계(境界)와 지혜(智慧) 그리고 수행(修行)의 관계는 비단『법화경』이나 천태학 안에서만의 논의가 아니라 그 범주를 넓혀 불교 수행과 학문 전반의 운용을 시사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현상과 원리의 문제에 있어서 원리의 측면에서 불교의 진리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설명과 '교(敎)'와 '선(禪)'의 조화에 대한 배경과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경계[境]와 지혜[智] 그리고 수행[行]의 관계를 원융의 측면에서 조망하는 연구는 없었다. 노채숙의 『불교교학: 담연(湛然)의 『십부이문론』 고찰 -『법화현의』의 『적문십묘』와 비교하여-』· 이병욱의 『천태지의 철학사상 논구. -『법화현의』·『마하지관』과 『유마경현소』의 비교를 중심으로-』·한종만의『『법화현의』『천태사교의』의 비교연구』와 같은 연구는 『법화현의』와 다른 논서들 간의 비교연구를 중심으로 한다. 지창규의 『법화현의의 개현(開顯)과 관심(觀心) -칠번공해(七番共解)와 오중각설(五重各說)을 중심으로-』는 『법화현의』의 내용보다도 주로 그 구조에 대해 논한다. 내용면에서의 연구의 경우, 강경숙의 『천태지의의 감응 연구 -『법화현의』의 감응묘를 중심으로-』·배완준의 『천태의 원융적 수행계위 연구 -『법화현의』 위묘를 중심으로-』·정효영의『천태 실상론의 근본체계 연구 -『법화현의』경묘를 중심으로-』와 같이 적문10묘 중 한 가지 묘에 대한 고찰들이 있을 뿐 적문10묘 간의 관계에 대한 조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목표로 하는 것은 경묘(境妙)·지묘(智妙)·행묘(行妙)의 각각의 내용에 대한 이해를 넘어, 불교의 경계와 지혜 그리고 수행의 관계를 원융의 관점에서 논하는 것이다.
이에 본 논문은 『법화현의』를 토대로 세 가지의 관계를 차제에서 불차제(不次第)로, 격별에서 원융으로 나아가는 개념과 구조의 확장을 통해 확인한다. 단계적 과정이란 먼저 경묘(境妙)·지묘(智妙)·행묘(行妙)의 내용을 토대로 경계와 지혜 그리고 수행의 각각의 뜻과 개념을 개체적 관점에서 확인한 뒤, 세 가지의 관계를 논하는데 여기에 또 격별과 원융의 두 단계가 있다. 격별은 세 가지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으며 고정적이거나 확정적 혹은 일방적 관계만을 갖고 있지 않고 다양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원융은 여기서 더 나아가 셋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셋으로 부사의(不思議)하게 하나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경계, 지혜, 그리고 수행의 관계를 단계적 과정과 구조의 확장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 즉 점진적으로 원융에 다가감으로써 더 많은 불교의 원리를 이해하고 접근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계와 지혜 그리고 수행의 관계에 관한 연구/이혜린 금강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불교교학전공 석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