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묘(境妙)
경계[境]는 관[觀]의 대상으로 중생이 모든 법의 참된 모습을 알기 위해 관하는 진리를 의미한다. 앞서 불교의 목적을 언급하면서 밝힌 것과 같이,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 여러 경론은 모두 이 진리에 관한 것으로 그 수가 매우 많다. 진리는 하나로 변하지 않고 흔들림 없지만 이를 이해하는 중생의 근연(根緣)과 관점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여러 경전에서 부처는 그 설법을 듣는 중생의 근기에 맞게 진리를 다양하게 설한 바, 경전에서 여러 가지 경계를 찾을 수 있다.
『법화경』의 경문 안에서 경계의 묘[境妙]와 경계[境]의 의미를 찾으면 아래의 원문과 같다. '지극히 깊고 미묘한 법'은 실상을 깨닫는 지혜인 실지(實智)를, '보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중생 근연에 따른 차별상을 모두 알고 방편을 쓰시는 부처의 권지(權智)를 가리키며, '이와 같이 큰 과보'는 불가사의한 경계를 의미한다.
지극히 깊고 미묘한 법이라 보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 무량억겁 동안 모든 도를 수행해 마치고 도량에서 과를 이루어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보았다. 이와 같이 큰 과보와 갖가지 성상과 그 뜻은 나와 시방의 부처님만이 그 일을 능히 안다.
『법화현의』의 적문10묘 중 경묘에서는 『법화경』 적문에 나타난 경계의 묘를 간략하게 6가지로 밝히면, 10여시(十如是), 12인연(十二因緣), 4제(四諦), 2제(二諦), 3제(三諦), 1제(一諦)이다. 이 경계는 모든 부처가 스승으로 삼기 때문에 '경묘'라고 이름한다. 그 순서는 『법화경』에서 제일 처음 언급한 '10여시'의 경계에서 시작하여 방편 없이 곧 바로 진실을 드러내는 '1제'까지 간다. 이 1제조차도 아직 이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추가로 무제에 대해서도 밝힌다.
이러한 여섯 가지 경계를 5시8교(五時八敎)와 여타 경론 등을 들어 비교하고 근거를 제시하며 내용을 정리하고, 각각의 추·묘를 판별하여 다시 개추현묘(開麤顯妙)로 절대묘를 밝히는 등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 여섯 가지 경계의 뜻을 『법화경』 안에서 찾아 구체적인 경문을 제시했다.
이에 본 절에서는 『법화현의』에서 해석한 내용을 토대로 여섯 가지의 경계의 내용을 그 근거가 되는 경문과 함께 정리하여 적문의 경계의 묘와 경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10여시(十如是)
10여시는『법화경』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경계[境]로 여섯 가지 경계 중 가장 직접적으로 그 내용과 뜻이 언급되어 있다. 『법화현의』에서는 『법화경』이 이 열 가지의 법으로 일체법을 거둔다고 표현했다. 『법화경』 「방편품」에서 부처가 무문자설(無問自說)로 제자들이 묻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깨달은 바에 대해 찬탄하는데, 이 때 10여시가 등장한다. 경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오로지 부처님과 부처님이여야만 능히 제법실상을 끝까지 다 구할 수 있다. 이른바 제법의 여시상(如是相), 여시성(如是性), 여시체(如是體), 여시력(如是力), 여시작(如是作), 여시인(如是因), 여시연(如是緣), 여시과(如是果), 여시보(如是報),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이다.
경전을 인용하여 경묘(境妙)를 증명하면서 실상(實相) 즉 참된 모습이 곧 부처의 지혜의 문이고, 이 문이 곧 경계라고 밝혔다. 오직 부처만 알 수 있는 제법의 실상을 중생들을 위해 설명하고자 이를 가늠할 수 있는 틀로서 열 가지를 나누어 분별하여 말한 것이다. 10가지의 공통적인 뜻을 말하면, 상(相)은 바깥에 의거하여 보고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성(性)은 안에 의거하여 스스로 고칠 수 없는 것이다. 체(體)는 주된 성질이다. 력(力)은 공능, 즉 공적과 재능이다. 작(作)은 만들고 짓는 것이다. 인(因)은 습인(習因)으로 이전에 해오던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고, 연(緣)은 인(因)을 돕는 것이다. 과(果)는 습과(習果)이고, 보(報)는 받는 결과이다.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은 처음의 상(相)이 본(本)이고, 나중의 보(報)를 말(末)이라 하고, 돌아가는 곳을 구경등(究竟等)이라고 한다.
특히 구경등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처음도 공(空)하고 끝도 공(空)해서 같다[等]는 것이다. 둘째, 끝의 과보는 처음의 상(相)·성(性)의 가운데 있어서 끝과 처음이 같다[等]는 것이다. 셋째, 처음의 상(相)·성(性)이 끝의 과보 중에 있어서 처음과 끝이 같다는 것이다. 이치에 근거하여 같음을 논하기에 이러한 뜻으로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이라 하며, 이 세 가지 뜻을 고루 갖추었음에 같다[等]고 한다. 10여시의 권(權)·실(實) 즉 방편과 진실을 따지는데 있어서 과거에는 10여시 항목의 각각을 들어 방편과 진실을 나눴다면, 천태대사는 이것의 문제를 지적하고 10여시 각각이 아니라 10법계를 들어 그 권실을 밝혔다. 10여시는 10법계에 의거하며, 10법계란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6도(六道)와 성문·연각·보살·부처의 4성(四聖)을 말한다. 하나의 법계가 10여시를 갖추어 10법계가 100여시를 갖추게 되고, 또 하나의 법계가 9가지 법계를 구하여 100법계·1000여시를 갖추게 된다.
이 10법계를 속성에 따라 다섯 가지로 분류하면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의 악(惡), 인간·천상의 선(善), 성문 연각의 이승(二乘), 보살(菩薩), 부처(佛)로 나눌 수 있다. 방편과 진실의 두 가지 법으로 이를 판별하면 앞의 악·선·2승·보살의 10여시는 방편이고 부처의 10여시는 진실이다. 이 불법계(佛法界)의 10여시가 진실인 이유를 '가장 위없음'을 들어 밝힌다. 이전의 네 가지와 달리 불법계의 10여시는 일체종지(一切種智)의 깨끗함이 허공과 같음을 나타내며 5주번뇌에 물들지 않고, 생사도 아니고 열반도 아닌 중도의 상락아정(常樂我淨), 유루도 무루도 아닌 선, 즉공즉가즉중(卽空卽假卽中) 등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표2'와 같다.
이처럼 방편과 진실을 들어서 가장 위없는 것을 가리고, 중생이 지향해야 할 바를 알려주시지만 이 역시 불가사의하다. 진실에도 방편이 있고, 방편에도 진실이 있어서 양자는 상즉하며 서로 방해하지 않는데 이는 오직 부처만이 능히 헤아릴 수 있는 바이다. 5시교 중 법화시에 이르러 방편과 진실, 추와 묘의 구분 없이 절대묘로 귀일한다. 이것이 10여시의 경계의 묘이다.
부처가 스스로만 알 수 있는 모든 법의 참된 상을 중생들을 위해 열 가지로 설한 것은, 절대적으로 정해져 있는 정답이 없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중생이 가늠할 수 있도록 돕는 10가지의 체계를 제시한 것이다. 여기에 천태대사의 설명을 더하면, 100법계 1000여시로 일체법을 다양하게 조망해 볼 수 있다. 좁게는 하나의 법계가 나머지 9법계를 갖춤에 대해 생각하면 지옥법계 안에도 불법계가 있음을 들 수 있고, 크게는 방편과 진실이 서로 상즉하여 방해가 없어 지옥법과 불법이 다름 없이 상즉하여 분별상을 버리고 중도실상의 원융으로 나아가야함을 시사한다.
2)12인연
다음으로 12인연은 (1)무명, (2)행, (3)식, (4)명색, (5)6입), (6)촉, (7)수, (8)애, (9)취, (10)유, (11)생, (12)노사의 열두 가지로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번뇌로 인해 업을 짓고 고통받는 3세(三世)의 윤회를 설명한다. 인연의 경계의 묘를 네 가지로 밝히면, ①사의(思惟)할 수 있는 생멸의 12인연[思議生滅十二因緣], ②사의할 수 있는 불생불멸의 12인연, ③사의할 수 없는 생멸의 12인연, ④사의할 수 없는 불생불멸의 12인연이다. 3계 안팎 그리고 현상[事]과 이치[理]를 기준으로 구분하면, 이는 각각 장(藏)·통(通)·별(別)·원(圓)의 4교(四敎)에 해당한다.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장교의 사의할 수 있는 생멸의 12인연은 무명에서부터 노사까지의 생함과 노사에서부터 무명까지의 멸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근거를 『법화경』 「화성유품」에서 12연기가 차례로 생하고 멸함에 대해 설한 것에서 찾는다. 공이나 윤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근기에게 생멸로 그 과정을 분석하여 알려주는 것이다. 통교의 사의할 수 있는 불생불멸의 12인 연은 무명에서 노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허망하여 생하거나 멸하지 않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근거를 『법화경』 「비유품」에서 4제 중도제(道諦)에 대해 설하면서 '다만 허망함을 떠난 것'이 해탈이라고 언급한 것에서 찾는다. 공(空)을 체달하여 일체법이 불생불멸로 허망함에 대해 알게 하는 것이다.
별교의 사의할 수 없는 생멸의 12인연은 무명의 마음이 노사에 이르는 등의 일체법을 그려내어 그 수가 무량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원교의 사의할 수 없는 불생불멸의 12인연은 번뇌·업(業)·고(苦)가 곧 보리·해탈·법신으로 요인불성(了因佛性)·연인불성(緣因佛性)·정인불성(正因佛性)의 3불성을 이루며 무명 역시 생겨나지도 멸하지도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이사의 할 수 없는 계외의 두 가지 12인연의 근거는 『법화경』 「방편품」에서 부처는 일체법이 항상 무성(無性)임을 알지만 중생이 부처가 되는 종성[佛種]은 연에 따라 일어나기에 이에 맞추어 1불승의 법을 방편으로 분별해 설함에서 찾는다. 성이 없는[無性] 법을 다양한 중생의 인연에 따라 설하여 그 수가 무량함은 별교의 12인연이다. 1불승의 진실을 인연에 따라 3승으로 분별하여 설하지만 권실(權實)에 다름이 없으며 인연 역시 생하거나 멸하지 않는 것은 곧 원교의 12인연이다.
부처가 12인연을 설한 것은 모든 법의 참된 상을 3세에 윤회를 나타내는 12인연의 경계를 통해 설명하기 위함이다. 부처는 권지(權智)와 실지(實智)를 모두 갖추어 본래 실지로 분별없는 12인연의 모습 즉 원교의 12인연을 설하고자 했으나, 권지로 중생의 갖가지 근연(根緣)을 관하시고 이에 맞게 분별해 4교(四敎)로 혹은 시기에 맞게 5시교(五時敎)의 다섯 가지로 설했다. 이에 4교와 5시교의 12인연을 권실 내지 추묘로 구 별할 수 있지만 방편과 진실을 구별할 수 있게 되면, 즉 근기가 성숙하게 되면 법화의 개현(開顯)으로 원교의 12인연의 진실을 알아 방편을 버리고 진실로 나아갈 수 있어 추묘의 구분없이 일체법이 절대묘에 귀일한다. 이것이 12인연의 경계의 묘이다.
<경계와 지혜 그리고 수행의 관계에 관한 연구/이혜린 금강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불교교학전공 석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