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묘(行妙)
중생은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安樂]을 얻기 위해 수행을 한다. 진리를 알면 진리에 따라 살게 되고 업을 짓지 않아서, 진리에 따르면 즐거움을 얻고 어기면 괴로움을 얻는다. 진리에 따르는 것이 곧 수행이며, 진리를 깨달아 알고 실천하는 만큼 고통에서 벗어나기에 이를 수행의 계위로 설명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과 설법이 있어도 중생이 수행을 통해 나아가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수행은 매우 중요하다.
『법화현의』에서는 수를 더해가는 행[增數行], 차제5행(次第五行), 그리고 불차제5행(次第五行)으로 수행의 묘에 대해 논하고, 지혜가 행을 이끌기 때문에 행묘라고 한다고 밝혔다. 지혜가 곧 수행의 근본으로 지혜의 눈을 원인으로 하여 수행의 발을 일으킨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방편품」 안에서 수행의 묘의 뜻을 찾아 증명하면 아래와 같다.
본래부터 셀 수 없는 부처님을 쫓아 모든 도를 갖추어 행하니,
심히 깊고 미묘한 법 보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거늘,
무량억겁 동안 그 모든 도를 행하여 마치고 도량에서 그 성과를 얻었다.
합장하고 공경심으로 구족하신 도를 듣기를 원합니다.
모든 법은 본래부터 항상 적멸한 모습이니 불자가 도를 행해 마치면 오는 세상에 성불하리라.
「방편품」은 청허(聽許)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용문처럼 사리불이 듣기를 청하자 부처가 『법화경』 적문 안에서 법설(法說), 비설(譬說), 인연설(因緣說)로 근기에 따라 세 가지로 설법[三周說法]을 베푼다. 이 때 사리불이 청한 것과 부처가 설법한 것의 대상은 모두 1불승의 '수행'이다. 이에 「방편품」에서 제불장(諸佛章)·과거불장(過去佛章)·미래불장(未來佛章)·현재불장(現在佛章)·석가장(釋迦章)의 5불장(五佛章)의 가르침에는 서로 다름이 없는데, 모두 안락에 이르기 위한 1불승의 '수행'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본 절에서는 『법화현의』의 행묘의 구조를 바탕으로 수행에 대해 논한다. 먼저 4교를 기준으로 수를 더해가는 행[增數行]을 살펴보고 그 추묘를 논한다. 다음으로 다섯 가지 행으로 행묘를 밝히는데 두 가지가 있다. 차제5행, 즉 『열반경』의 열반5행과 불차제5행 즉 『법화경』의 안락행을 토대로한 원5행(圓五行)이다. 따라서 먼저 성행(聖行)·범행(梵行)·천행(天行)·영아행(嬰兒行)·병행(病行)의 차제로 나아가는 '열반5행'을 살펴본 후, 이 다섯 가지 행이 일심(一心) 안에 있어 불차제로 원융한 '원5행'을 『법화경』을 바탕으로 논한다.
1)4교의 수행
증수행(增數行)은 여러 행이 지혜를 근본으로 삼아서 수를 더해가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곧 앞서 논한 경계와 진리가 이끄는 바이다. 바른 지혜로 여러 행을 이끌어서, 바른 경계로 들어간다. 4교에 의거하여 이를 밝히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장교의 가르침에 수를 더하여 행을 밝히면, 한 가지 행[一行]은 게으르지 않은 마음[不放逸心]으로 6경(六境)을 취하지 않는 것으로, 이를 갖추면 열반을 얻을 수 있다. 두 가지로 늘려서 행을 밝히는 것은 '지(止)'와 '관(觀)'을 닦아 모든 공덕을 이루고, 다시 생사를 받지 않는 것이다. 세 가지로 늘려서 행을 밝히면 계(戒)·정(定)·혜(慧)의 세 가지로, 이는 세간을 벗어나는 사다리이다. 이 세 가지가 불법의 넓은 바다를 다 거두듯이, 이 뜻을 얻으면 수를 더하여 일체행을 거두는 것 역시 이와 같다. 이처럼 장교의 수를 더해가는 행은 낮은 지혜가 행을 이끄는 것이다. 장교의 수행은 홀로 3계6도를 벗어나 생사를 받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유와 공의 2분법적 분별 관을 토대로 한 생멸의 관점에서 열반을 얻고자 하기 때문에 낮은 지혜라고 지칭한다.
통교의 수를 더해가는 행은 『대지도론』 중 지(地)·수(水)·화(火)·풍(風) 4대에 대한 설명에 의거하여 논한다. 일체법이 한 가지 모습이며, 한가지 모습은 무상(無相)임을 밝힌 것이다. 이 때 통교는 성문·연각·보살의 3승이 공통으로 배우는 법문을 가리킨다. 일체법이 한 가지 모습이고 그 한 가지 모습은 무상이듯, 한 가지 행 내지 두 가지 행으로 일체행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통교의 수를 더해가는 행이다. 통교는 환유의 속제에서 공의 진제를 설하고, 체공으로 일체가 공하다는 전제에서 위와 같은 설명으로 행을 이끈다.
별교의 수를 더해가는 행은 『화엄경』 「입법계품」을 들어 설명한다. 선재동자가 선지식들을 만나 각각 하나의 법문을 듣고 수행을 하는데, 이는 여러 가지 법문을 듣고 여러 가지 행을 통해 가르침을 증득해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하나하나의 법문과 행이 모두 무명을 파하는 것에 있어서 동일하기 때문에 모든 행이 하나이이며, 하나가 모든 행이다. 별교의 수를 더해가는 행은 이처럼 무량한 법을 행하고 더해 나가지만 무명을 파하고 중도로 나아가는 것에서 같다.
원교의 수를 더해가는 행은 일행삼매(一行三昧)에서 시작하여 지관·계정혜·4념처·5문선(五門禪)·6바라밀·7선법(七善法)·8정도·9종대선(九種大善)·10경계 혹은 10관성승(十觀成乘)으로 그 수를 늘려 나간다. 수를 늘려나가면서 각각이 또한 모든 행을 거둠을 말하는데, 그 수를 달리하지만 모두 하나의 원리에 입각한 법으로 중도 실상에 들어가는 것에서 다름이 없다.
4교의 수를 더해가는 행의 추묘를 따지면 다음과 같다. 장교의 수를 더해가는 행은 생멸의 지혜로 이끌어, 다만 고통을 벗어나는데 그치기 때 문에 추이다. 통교의 수를 더해가는 행은 체공의 지혜이지만, 역시 고통을 벗어나 끊는 것을 목적으로해서 추이다. 별교의 수를 더해가는 행은 무량한 지혜로 행을 이끌지만, 차별이 있어 원융하지 못해서 추이다. 원교의 수를 더해가는 행은 행과 지혜가 모두 원융하여 묘하다. 이렇게 밝히면 상대묘이지만, 법화의 개현으로 모든 행이 일불승의 진실에 귀일하고 여러 가지 행이 추즉묘로 모두 묘하여 구별 없이 원융하여 절대묘에 귀일한다.
2)열반5행(涅槃五行)
행묘를 다섯 가지의 수로 밝히는데, 먼저 『열반경』에서 보살이 닦아야 할 수행에 대해 성행(聖行)·범행(梵行)·천행(天行)·영아행(嬰兒行)·병행(病行)의 다섯 가지로 논한 것을 근거로 차제5행을 밝힌다. 차제5행은 이 다섯 가지 수행 각각을 개별적으로 차례로 닦아나감에 뜻이 있다.
첫째, 성행 즉 성스러운 행에는 계율[戒]과 선정[定] 그리고 지혜[慧]가 있는데, 즉 계성행(戒聖行)·정성행(定聖行)·혜성행(慧聖行)이다. 『열반경』에서는 보살의 차제적인 성행을 분별하고자 하기 때문에 모든 계의 얕고 깊음, 처음과 끝을 갖추어 나열했다. 이러한 계를 잘 지키고 지니면 부동지(不動地)에 들어가서, 움직임이 없고 물러남이 없으며 흩어짐이 없는 것을 '계의 성행[戒聖行]'이라고 한다. 정성행에는 세간선(世間禪)·출세간선(出世間禪)·출세간상상선(出世間上上禪)의 세 가지가 있다. 역시 선정을 닦는 것을 근기에 따라 낮은 곳에서 높은 곳까지 차례로 밝히고 감인지(堪忍地)를 증득한다. 혜성행은 네 가지 4제[四種四諦]의 지혜를 말한다. 이 지혜를 닦으면 무소외지(無所畏地)에 들게 되는데, 즉 별교 수행계위의 10지(十地)중 첫 번째인 초환희지(初歡喜地)에 오를 수 있다. 이 지위에 들어가면 다섯 가지 두려움을 여의고, 25삼매를 갖추어 상(常)·락(樂)·아(我)·정(淨)의 네 가지 덕을 구족한다.
둘째, 범행(梵行) 즉 청정한 행은 무연(無緣)의 4무량심을 닦는 것이다. 이는 범천(梵天)이 닦는 바, 내지 장교와 통교의 중생연자비(衆生緣慈悲)나 법연자비(法緣慈悲)와는 다르다. 보살이 대열반의 마음, 즉 중생을 위하는 진정발보리심으로 내는 자비를 참된 범행이라 하는 것이다. 자비의 힘은 넓고 깊어서 모든 복덕과 장엄을 구족한다.
셋째, 천행(天行)은 보살이 초지(初地)에 오른 뒤에 정진하여 나머지 9지를 닦아 나가는 것으로, 이치에 말미암아 수행을 이루기 때문에 천행이라고 이름한다. 천행은 곧 지혜장엄이다.
넷째, 영아행(嬰兒行)은 자심(慈心)으로 선을 내는 것과 함께하여 중생이 선한 근기[善根]를 개발하는 것을 돕는다.
다섯째, 병행(病行)은 비심(悲心)으로 번뇌와 함께하여 중생이 병을 끊는 것을 돕는다.
정리하면 성행과 범행은 보살이 초지 이전에 닦는 행이고, 천행·영아행·병행은 초지 이후에 닦는 행이다. 보살은 위로 불도를 구하여 성행과 천행이 있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여 범행·영아행·병행이 있다. 성행은 계·정·혜를 닦아 위로 불도를 구하고, 범행은 무연의 4무량심으로 중생을 교화한다. 천행은 초지부터 위로 10지의 지혜를 닦아 나가고, 영아행은 자심으로 선과 함께하고, 병행은 비심으로 악과 함께 한다. 열반5행의 자행화타의 구조와 계위의 연결을 정리하면 '표11'과 같다.
3)원5행(圓五行)
『열반경』에서 차제5행의 뜻을 밝히면서 또 별도로 또 한 가지 행(一行)으로 '여래행'에 대해 밝혔는데, 이는 곧 '대승의 대반열반(大般涅槃)'이다. 이 때 대승은 원만한 인(因)이고, 열반은 원만한 과(果)로 이러한 여래행은 장·통·별의 3교가 아닌 원교의 여래행이다. 처음 발심하는 것과 열반이 다르지 않아 하나의 운용이 곧 일체의 운용[一運一切運]인 것은 모두 원만한 여래행의 뜻이다. 『법화경』 「안락행품」에서는 공덕이 낮은 초발심의 보살들에게 신(身)·구(口)·의(意)·서원(誓願) 의 네 가지 안락행을 통해 『법화경』을 유통할 것을 권한다. 이 중 몸으로 하는 신안락행(身安樂行)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행할 바[行處]와 가까이 할 바[近處]이다. 이 중 행할 것이 바로 원만한 5행, 즉 '여래행'이다.
『법화경』 「법사품」에서 묘법을 지니고 알리는 법사가 『법화경』을 설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 것에서 여래행의 뜻을 찾을 수 있는데, 내용은 아래의 경문과 같다.
여래의 방에 들어가,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 사부대중을 위하여 널리 『법화경』을 설해야 한다. 여래의 방은 모든 중생에 대한 바지의 마음이고, 여래의 옷은 유화인욕의 마음이고, 여래의 자리는 모든 법이 공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편안히 머물러 있으면서 게으른 마음을 내지 않고 모든 보살과 사부대중을 위해 이 법화경』을 널리 설해야 하다.
이 때 방에 들어가거나·옷을 입거나·자리에 앉는 대상을 모두 '여래'라고 부르는 것은, 사람의 입장을 취한 것이다. '열반'이라고 한다면 법의 입장을 취해서 말하는 것이다. 『법화경』은 사람에 즉하여 법을 논하기 때문에 여래가 곧 열반이라고 말하며 안락행으로 원만한 뜻을 풀이하고, 『열반경』은 '일행(一行)'의 이름을 들어 차제5행을 해석하였으니, 두 경전은 관점이 달라 부르는 것에 차이가 있고 차제와 불차제로 방법이다를 뿐 그 뜻이 같다. 이에 『열반경』의 5행과 『법화경』의 여래행을 연결하여 원만한 5행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법화경』 「법사품」에서 『법화경』을 유통하는 법사의 공덕에 대해 설하면서 『법화경』을 독송하는 자는 '부처의 장엄으로 스스로를 장엄함과 같다'고 했는데, 이는 곧 원만한 성행[圓聖行]이다. 독송하는 것이 부처의 장엄과 같음에 대해 밝힌 것은, 부처가 선정과 지혜의 힘으로 장엄하듯 독송하는 사람도 그러한 선정과 지혜를 닦는 것이 된다. 『법화경』 「신해품(信解品)」에서 언급한 '부처의 정계((淨戒)'는 곧 원만한 계[圓戒]로 계성행(戒聖行)을 의미하고, 「방편품」에서 말한 '선정과 지혜의 힘으로 장엄하는 것'은 정성행(定聖行)과 혜성행(慧聖行)을 뜻하며, 이는 곧 부처의 성행을 의미한다. 계·정·혜를 닦아 스스로를 장엄하여 위로 불도를 구하는 성행의 뜻을 알 수 있다.
'여래의 방'은 원만한 범행[圓梵行]이다. 여래의 방은 대자비의 마음이며 큰 서원과 신통 그리고 지혜로 중생을 인도해 법 가운데 머무르게 한다. 이 때 여래의 방을 닦는 것[修]을 대자비라고 하는 것을 법신·반야·해탈의 3덕(三德)으로 말할 수 있다. 중생과 부처가 일체(一體)로 서로 다르지 않다는 동체(同體)의 측면에서 말하면 곧 법신이고, 중생에 대한 가피 즉 이익을 주는 측면에서 말하면 곧 해탈이고, 중생에게 동체임을 깨닫게 하는 것은 곧 반야이다. 범행은 4무량심으로 무연의 자비를 발해 중생을 교화하는 것으로, 여래의 방이 곧 대자비로 동체의 마음을 일으켜 중생에게 이익을 주고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그 뜻을 깨닫게 하는 것에서 그 뜻이 통한다.
'여래의 자리'는 원만한 천행[圓天行]이다. 여래의 자리는 모든 법이 공한 실상을 관하는 것으로, 이러한 실상의 묘한 이치를 모든 부처가 스승으로 삼고 있으며 또한 모든 여래가 함께 머무는 곳이다. 천행은 지혜장엄으로 지혜를 닦아 정진해 위로 불도를 구해 나가는 것이며, 여래의 자리는 곧 법의 실상을 관하는 것으로 모든 부처와 여래가 머물고 따르는 실상의 묘한 이치를 뜻함에 그 뜻이 통한다.
'여래의 옷'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부드럽고 온화한 것[柔和]은 원만한 영아행[圓嬰兒行]이고, 모욕과 박해를 참고 견디는 것[忍辱]은 원만한 병행[圓病行]이다. 여래의 옷은 시끄러운 것과 조용한 것을 모두 비추기 때문에 유화라 하고, 또 반대로 두 가지를 모두 막기도 해서 인욕이라고 한다. 이처럼 유화와 인욕이 각각 자심(慈心)으로 중생의 선한 근기를 개발하는 영아행과 비심(悲心)으로 중생이 병을 끊는 것을 돕는 병행의 뜻에 통한다. 지금까지 열반5행과 『법화경』의 여래행을 연결하여 원5행을 말한 것을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이러한 다섯 가지 행은 곧 하나의 실상행(實相行)으로, 하나가 다섯을 일으키지 못하고 다섯이 하나를 일으키지 못하며, 함께하는 것도 아니고 떨어진 것도 아니어서 사의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5행[一五行]이라고 한다. 일심에 다섯 가지 행이 있어 순서 없이[不次弟]로 원융한 5행[圓五行]이라고 말하는 뜻을 알 수 있다. 10법계를 관하고 비추는 것을 다섯 가지 행으로 말할 수 있어서, 일심으로 10법계를 비추면 곧 원만한 5행을 갖춘다.
원5행을 3제삼매와 연결하여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3제원융의 관점에 서원5행을 해석한 것이다. 일심의 5행을 3제삼매로 말하면 성행은 진제 삼매이고, 범행·영아행·병행은 속제삼매이고, 천행은 중도왕삼매로 원융한 3제삼매가 25유를 원융하게 파(破)한다. 이러한 연결의 의미를 해석하자면 먼저 성행은 진속 내지 부정의 구별이 있어 속된 것과 더러운 것을 멀리하고 정진하여 진리를 아는 것에 매진하기 위해 계·정·혜를 닦으면 공에 즉하여 25유의 견사혹을 파하는 진제삼매이다. 범행·영아행·병행은 자비심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것으로 이는 무량한 중생의 병과 이를 고치는 약과 치료법을 알아 중생을 구제하는가의 진리에 즉하여 25유의 진사혹을 파하는 속제삼매이다. 천행은 실상의 이치를 관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중도실상의 진리에 즉하여 무명혹을 파하는 중도왕삼매이다. 이렇게 원5행을 3제와 3혹 그리고 3삼매로 말했지만, 하나가 곧 셋이고 셋이 곧 하나로 원융하기 때문에 여래행이라고 이름한다.
또 『마하지관』에서는 3제삼매를 계·정·혜의 수행을 통해 설명한다. 3제의 계행과 정행을 닦아 지혜가 개발되는 구조인데, 무생 즉 공의 계행과 정행을 닦기 때문에 진제삼매가 현전하여 일체지(一切智)가 개발되고, 가의 계행과 정행을 닦기 때문에 속제삼매가 현전하여 도종지(道種智)가 개발되고, 중도의 계행과 정행을 닦기 때문에 중도왕삼매가 현전하여 일체종지(一切種智)가 개발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섯 가지 행 중에서 하나인 범행의 계·정·혜를 들어 3제삼매를 설명하는 것을 함께하는 것도 아니고 떨어진 것도 아니어서 부사의한 일심의 5행의 뜻을 설명하는 예시로 볼 수 있다.
원5행을 앞서 논한 여러 가지 경계와 연결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원5행이 곧 각 '경계의 지혜행(智行)'으로 여러 경계와 지혜를 원5행의 틀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이처럼 원5행을 모든 경계의 지혜행으로 연결하는 것은 곧 이러한 다섯 가지 행이 모든 수행을 포섭함을 보여준다. 열반5행과 달리 원5행이 부사의한 하나이며, 모든 경계의 지혜행으로서 원만한 것에서 추와 묘를 확인 할 수 있다. 차제로 구별하면 추이지만, 하나의 행이 곧 모든 행인 것은 묘로 이것은 상대묘의 뜻이다. 그러나 법화시에 이르러 개추현묘로 원교의 진리를 밝히면 추즉묘로 상대할 것 없는 절대묘가 되는데, 이것이 『법화경』 여래행을 통해 밝히는 수행의 묘의 뜻이다.
위의 '경계[境]'의 지혜[智]행[行]'이라는 표현과 그 연결은 역시 경·지·행의 관계에 대해 시사한다. 앞서 지혜를 수행의 계위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나 지혜가 여러 경계를 비추는 것을 논한 것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이러한 논점들을 토대로 다음 장에서 경·지·행의 관계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경계와 지혜 그리고 수행의 관계에 관한 연구/이혜린 금강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불교교학전공 석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