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境)·지(智)·행(行)의 관계
부처는 중생들의 이고득락을 위하여 그들의 근기에 감응해 방편을 사용하며 진리에 대해 설했다. 석가모니 부처는 보리수 아래에서 성불했을 때 내지 구원겁전의 본시(本時)에 이미 불도를 이루고 제법실상을 알고 있었지만, 중생들을 위해 방편으로 진리를 분별해 설하며 중생들의 근기의 숙성을 기다렸다. 그리고 때가 됐을 때 3승이 곧 1승이고 적불이 곧 본불로 부사의한 하나로 원융한 진실을 보인 것을 담은 경전이 『법화경』이다. 격별의 가르침을 통해 근기를 숙성시켜 원융에 도달하도록 이끄는 단계적 과정을 포착할 수 있다.
만약 중생이 원융한 진실을 듣고서 바로 알고 이해했다면 방편으로 분리하여 따로 설명하거나, 단계적으로 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융에 '부사의(不思議)'라는 수식어가 함께하듯이, 5욕락에 취해 무명이 짙고 아상(我相)에 빠져 분별하기를 좋아하는 중생이 원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격별의 관점에서 가장 작은 범위 내지 차원에서부터 설명하고 정리해 나가면서, 근기의 숙성 혹은 분별 없는 유연한 사고의 개발을 통해 원융에 다가가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격별에서 원융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융합'의 개념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융합은 둘 이상의 요소를 조화시켜 합하는 것이다. 융합에는 최소한 둘 이상의 개념이 전제되어야 하듯, 원융을 말하기 위해서는 격별이 전제되어야 한다. 원융한 실상을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없기 때문에 구별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이 때 격별을 통해 각개의 대상을 상세히 알고 차이를 가늠하면서 원융에 다가가는 것이다. 현상과 원리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원리에 도달하기 위해 이를 기저로 발발한 현상들을 관찰하고 이해하면서 알아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현상에 대한 고찰이 있을 때 원리에 대한 통찰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법화현의』에서 경계와 지혜 그리고 수행을 논하는 것 역시 격별에서 원융으로 나아가며 설명의 관점을 달리해 나가는 단계를 취한다.
첫째로, 경묘·지묘·행묘 각각 역시 여러 수와 기준을 들어 분류를 적용하여 설명하지만 종국에는 절대묘에 귀일함을 통해 구분없이 묘하다고 회통한다.
둘째로, 추와 묘를 판별해 상대묘를 확인한 뒤에는 추즉묘로 절대묘에 귀일함을 이야기한다.
셋째로, 경묘·지묘·행묘로 나누어 자세히 설명하지만 셋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본래 하나로 분리되지 않는 원융한 것이다.
이에 본 장에서는 이해의 단계를 고려하여, 경·지·행의 관계를 격별에서 원융으로 관점을 넓혀가며 논의하고자 한다. 그리고 각 관점 안에서도 역시 대상범위를 좁은 것에서 넓은 것으로 확장하면, 먼저 경·지·행 각각에 대한 논의에서 세 가지의 관계에 대한 논의로 넓혀나간다. 앞의 융합의 예시처럼 관계를 논하기 위해서는 이를 형성하는 대상요소들에 대한 구별과 인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관계 속에서의 각각의 역할과 기능을 파악하고, 그 방향성과 성질에 대해 논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격별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에서 나아가, 원융의 관점에서 관계를 재조명하고 이해하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한다.
<경계와 지혜 그리고 수행의 관계에 관한 연구/이혜린 금강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불교교학전공 석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