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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기 이전부터 우울했을 여왕에게.

작성자The west|작성시간26.06.20|조회수207 목록 댓글 7

법흥왕릉의 소박한 소나무 숲을 뒤로하고, 해가 지기 전 발걸음을 재촉해 진덕왕릉으로 향했습니다. 차창 밖으로 경주 현곡면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이 눈에 들어옵니다.

'小見一里'
​처음엔 大見도 아니고 웬 小見? 하며 슬며시 웃음 지었지만, 신라 도성에서 마을이 조그마하게 드러나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소현 1리'라는 것을 알고 나니 천년 전 사람들의 시선이 지혜롭고 정겹게 느껴집니다.

그러고 보니 혈맥기에 많은 見들이 드러나 있었네요. 自心과 見 등의 識이 만든 수많은 경계와 망상들 속에 잡아봐야 고작 見을 잡고 구해봐야 겨우 愛밖에 없는 범부가 민낯으로 수없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경주에서는 보기드문 낯선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하천을 지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묘한 기분으로 여왕의 안식처에 닿았습니다.

한국 역사상 여왕이라는 존재는 오직 신라에만 존재했습니다. 고구려나 백제, 그리고 이후의 고려와 조선에서도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 여성으로 태후, 수렴청정등은 존재했지만, 국가의 최고 통치자이자 국왕으로서 보위에 오른 여성은 신라의 선덕여왕 제27대, 진덕여왕 제28대, 진성여왕 제51대 세 사람뿐입니다.

진덕여왕은
경전 속 이름인 ​승만勝曼으로 불리며 국가의 최고 통치자인 여왕이자 신라의 절대적 혈통인 성골聖骨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여왕의 본명은 승만입니다. 이는 불교의 대승경전 승만경에 등장하는 사위국의 왕비이자 지혜로운 여성 수행자인 승만부인에서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은 승만의 이름이 진덕
眞德에게 필요한 것은 신라를 불국토로 세우는 작업 때문이었습니다.

왕실 전체가 불교적 세계관으로 무장했던 신라에서,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불교를 통해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할 지혜로운 여성 지도자로 예정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경전 속 화려한 이름과 달리, 현실에서 여왕이 짊어져야 했던 왕관의 무게는 잔인할 정도로 무거웠습니다.

백제의 의자왕과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전장에서 직접 피를 흘리며 무시무시한 카리스마로 권력을 증명할 때, 여왕은 궁궐 안에서 고독한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적국의 거센 압박 앞에서 그녀는 김유신이라는 칼과 김춘추라는 방패를 쥐고 위태로운 나라를 지켜내야만 했습니다.

즉위와 함께 비담의 난을 진압하고, 당나라와의 긴밀한 외교로 군사적 지원을 이끌어내며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진 것은 다름 아닌 이 고독한 여왕이었습니다.

소박한 법흥왕릉에 비해 시대를 앞서간 웅장한 무덤, 그리고 숲길의 운치있는 ​진덕왕릉에 도착하면 능이 품고 있는 흥미로운 학술적 수수께끼와 마주하게 됩니다.

삼국통일 이전의 인물임에도 진덕왕릉은 훗날 성덕왕릉이나 경덕왕릉에서나 볼법한 단단한 호석과 정교한 십이지신상을 두르고 있습니다.

비록 능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논쟁은 남아있지만, 능을 한 바퀴 차분히 돌며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동물들의 조각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닳아 부드러워진 돌의 질감이, 마치 모진 시대를 묵묵히 견뎌낸 여왕의 마음결처럼 다가옵니다.

​마지막 성골의 퇴장, 승만이 머문 최후의 보루
​진덕여왕의 말년은 자신의 이름처럼 국가적 위기 속에서 처절하게 부처님의 힘에 기대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왕이 승하하니, 법류法流에 따라 장사 지냈다."
삼국유사의 기록입니다.

​여기서 법류란 불교의 법식, 즉 화장인 다비식을 의미합니다. 신라 왕실에서 불교가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 그리고 여왕의 마지막 순간이 불교적 세계관 안에서 마무리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 왕위를 물려줄 자식이 없었던 여왕은 자신을 끝으로 최고 존엄의 혈통인 성골이 완전히 끊어진다는 역사적 무게감을 온몸으로 버텨야 했습니다.

말년에는 이미 진골 세력인 김춘추와 김유신에게 실권이 완벽히 넘어가 있었기에, 상징적인 군주로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다 눈을 감았습니다.

해 저무는 숲속, 세월에 닳아 숭고해진 호석 위에 이름처럼 살다 간 승만여왕의 고독이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왕릉을 내려오는 길, 삼국의 격랑 속에서 화려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으나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홀로 쓸쓸히 퇴장해야 했던 마지막 성골 여왕의 삶이 오래도록 뇌리에 맴돌았습니다.

푸르고 울창했던 옛 기억을 잃은 채, 군데군데 붉게 말라 죽어가는 소나무 숲길의 쓸쓸한 풍경을 마주하며 숲을 빠져나옵니다.

불교를 최후의 보루로 삼아 나라를 지키려 했던 여왕의 처절한 기원 위로, 문득 거스를 수 없는 성주괴공의 업보와도 같은 불교사 속 아픈 장면들이 겹쳐 지나갑니다.

​과거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조국이자 혈족인 석가족이 코살라국의 비유리왕에게 공격을 받게 되었을 때, 길목의 마른 나무 아래 앉아 세 번을 만류하셨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업의 굴레를 막을 수 없다며 당신의 종족이 참혹하게 학살당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셔야 했던 그 슬픈 침묵.

그리고 전생담인 자타카에서 왕국을 피로 물들이는 폭력의 잔인함에 큰 충격을 받고, 왕의 권력과 왕국을 아낌없이 포기한 채 고요한 수행자가 되었던 보살의 선택이 떠오릅니다.

과연 역사 속에서 '정의로운 전쟁'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요?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지구촌 곳곳은 여전히 종교와 인종, 맹목적인 민족주의로 인한 증오와 폭력으로 물들고 있으며, 그 광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인류는 아직도 그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는 지혜를 배우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해 저무는 현곡의 숲속, 세월에 닳아 부드러워진 호석 위에 이름처럼 살다 간 승만여왕의 고독과, 시대를 관통하는 인류의 오랜 비극이 노을빛처럼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우울증인 자가 감히, 태어나기 이전부터 우울했을 여왕 승만의 무덤 앞에서 이천오백년 전 부처님 여제자 게송을 조용히 읊조려 봅니다.

나는 그들을 여종처럼 섬겼지만
그들이 나를 저버리고 떠난 것은
내 업의 결과였다.
나는 마침내 그 모든 것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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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호명 | 작성시간 26.06.20 The west님

    매 번 올려주신 글귀에
    감동이 쓰나미처럼 일어납니다~~
    고맙습니다 🙏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

  • 작성자무상 | 작성시간 26.06.21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 _()_
  • 작성자The west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1 진덕여왕의 본명인 승만은 한자로 '훌륭한 꽃으로 만든 화관', 혹은 '뛰어난 미모와 덕을 갖춘 여인'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삼국사기에서는 여왕을 '외모가 아름답고 팔이 길어 무릎까지 닿았다'라며 범상치 않은 군주의 풍모로 기록하고 있지요.

    뭐, 이제 와서 팔이 길든 짧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
  • 작성자The west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1 시대와 시선이 바뀌면 해석도 달라지곤합니다.

    역사의 기록 속에서 만들어진 프레임에 갇힌 채, 승자들의 눈에만 비쳐온 '인간 승만'의 인생은 그 어떤 말로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 우리의 사연 많은 실존이 바로 업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 작성자The west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1 ​生이 다하면 다시 태어나는 법.

    여성 지도자가 자연스러운 21세기이니, 승만여왕께서도 이번 생에는 단단히 각을 세워 패자부활전에 멋지게 도전하시려나?

    에이 설마^^

    오늘은 일요일!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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