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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경명상기도

적적성성 성성적적

작성자조 오갈|작성시간07.07.27|조회수41 목록 댓글 0

적적성성 성성적적

성도종 교무·충북교구장

 좌선을 하는 것은 무위자연(無爲自然)한 우리의 근본 정신을 양성하기 위하여 망념을 쉬고 진성(眞性)을 나타내는 공부이다.

몸을 고르고 기운과 호흡을 고르는 것도 결국은 이 원적무별(圓寂無別)의 정신상태, 즉 무위자연의 진경에 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좌선 수행을 하면서 이 경지를 들지 못하는 것은 목적을 상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좌선에 있어서 그 정신상태가 선의 진경에 들어가는 표준을 정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혀주셨다.

“정신은 항상 적적(寂寂)한 가운데 성성(惺惺)함을 가지고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을 가질지니 만일 혼침(昏沈)에 기울어지거든 새로운 정신을 치리고 망상(妄想)에 흐르거든 정념으로 돌이켜서 무위자연의 본래면목자리에 그쳐 있으라.”

적적하다는 것은 고요하다는 것이고 성성하다는 초롱초롱하다는 것이다. 마음 가운데 모든 잡념이 가라앉고 아무런 생각이 없어서 적막하고 고요한 무념의 상태를 적적이라 하고, 마음이 맑고 싱그럽고 초롱초롱하여 모든 것을 하나도 놓지지 않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는 상태를 성성이라 한다.

정신상태가 적적한 가운데 성성함을 지키고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을 지키는 것을 줄여서 적적성성 성성적적이라 하는데 이것이 예로부터 좌선 수행을 하는 가장 중요한 표준으로 삼아 온 것이다.

그런데 마음을 고요하게 적적을 유지하다보면 졸음이 오거나 정신이 혼몽한 상태에 들기 쉬운데 이러한 상태를 혼침이라 하며, 적적하기만 하고 초롱초롱하지 않은 상태를 무기공(無記空) 또는 무기라고 한다.

반대로 정신을 차려서 초롱초롱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면 온갖 상념들이 일어나서 오락가락하는 수가 허다한데 이 모든 생각들이 망상인 것이다.

따라서 예로부터 좌선에 있어서 “적적하다하여 무기에 빠지는 것도 그르며(寂寂無記非) 성성한 가운데 정신이 산란한 것도 그르다(惺惺散亂非)”한 것이다.

좌선을 하면서 처음에는 몸의 자세 때문에 괴로워하고 다음에는 기운과 호흡을 체잡지 못하고 헤매는 수가 많다. 그러나 어느 정도 수련을 하면 몸의 자세도 잡히고 기운도 골라지고 호흡도 되는 듯하여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상당기간 선을 하면서도 적적을 즐긴다고 혼침에 젖어있다거나 성성을 유지한다고 이 생각 저 생각하는 것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 있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이런 오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혼침과 번뇌망상을 즐기면서 자신이 선을 한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하기 때문에 크게 경계할 일이다.

이러한 수련 과정을 통해서 결국은 적적도 성성도 없는 원적무별의 선의 진경에 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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