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대종경/불경해설

금강경해설 1~5장

작성자조 오갈|작성시간09.06.08|조회수370 목록 댓글 0

 

1. 금강경은 여래의 심법과 행적

 

금강경은 여래의 심법과 그 생활을 그대로 나투어 보이신 행적이다.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49년간 아함경, 화엄경 등 여러 가지 경을 설하셨는데 금강경은 49년 중 21년간을 설한 내용이다.

이렇듯 불경 중에 금강경의 위치가 가장 중요함을 알아야한다. 특히 소태산대종사께서 대각하신 후 모든 종교의 경전을 두루 열람하던 중 금강경을 보시고 "서가모니 부처님은 진실로 성인 중의 성인"이라 하시고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도를 얻었으나 발심한 동기로부터 도 얻은 경로를 돌아본다면 과거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되는 바가 많으므로 나의 연원을 부처님에게 정하노라" 하시고 "장차 회상을 열 때에도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 완전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리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말씀하신 뜻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금강경 공부를 시작해야 하며, 좌산상사는 "지금 이해가 되지 않아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천만년을 금강경 공부를 해도 금강경 도리는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금강(金剛)이란 굳어 단단하고 예리하여 날카롭고 밝으며 금강의 단단한 것이 능히 모든 고집을 쳐부수고 날카로운 것이 모든 번뇌망상(煩惱妄想)을 칼로 베어내는 듯 끊으며 금강의 밝은 빛이 어둠을 밝힌다는 뜻이다. 반야(般若)는 진리에 맞는 가장 높은 지혜로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요,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로 상대와 차별을 관(觀)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힘과 방편을 겸하여 갖는 특색이 그 지혜이다.

바라밀(波羅蜜)은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육바라밀로 괴로운 이 범부의 언덕에서 편안한 부처의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뜻이요 경(經)은 베 짜는데 길이로 늘인 줄로 만고에 바꾸지 못하는 떳떳한 씨줄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금강 같은 예리하고 단단하고 밝은 지혜로 모든 상과 고집을 쳐부수고 번뇌망상을 다 털어버리고 범부의 세계에서 청정하고 밝은 불보살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원불교신문 [1477호] 2009년 06월 05일 만덕산훈련원 이양신교무

 

2. 법회인유분

'여시아문(如是我聞) 하사오니' 이와 같음을 내가 듣사오니라는 이 말씀은 가장 법문을 많이 받든 아라한 존자께서 나의 말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들었다는 뜻이다.

'일시(一時)에 불(佛)이' 한 때에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부처는 범어로 '깨달았다, 깨달은 이'를 말한다. 즉 알지 못하고 망녕된 데에서 뛰어나 모든 참된 것을 알아 스스로 깨닫고 중생을 가르치며 제도시켜 깨닫게 하는 즉 본인도 깨닫고 타인도 깨닫게 하는 두 가지 행실을 원만히 성취하셨으므로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니 이것은 맨 처음 보리수나무 밑에서 도를 깨친 서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존호이며 동시에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삼세 모든 부처님 또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사용되는 단어로 깨달으면 곧 부처라고 하겠다.

'재사위국(在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하사' 사위국의 기수급 고독원에 머무사.

사위국의 대신 수달장자가 며느리를 얻고자 왕사성 대신 호미집에 머물 때 부처님을 뵙고 법문을 듣고 사위국에 왕림하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 그곳에 정사가 없음을 말씀하시거늘 수달장자는 "부처님께서 우리 나라에 오신다면 정사를 마련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서가세존께서 혜공제일 사리불에게 "같이 가서 정사 지을 땅을 고르라"고 분부하셨다.

이에 오직 기타태자의 동산이 마땅한지라 수달장자가 그 동산을 구입하려고 하자 기자태자가 황금으로 동산을 덮으면 팔겠다고 하였다. 이에 수달장자가 코끼리로 황금을 실어 날라 80정보의 땅을 다 덮는지라 기타태자가 생각하기를 '얼마나 훌륭하시면 저렇게 재물을 아끼지 않고 모든 것을 바치는가. 마땅히 힘을 합하여 큰 성인을 맞으리라'고 마음먹고 황금을 물리쳤다.

이리하여 기타태자는 "동산은 수달장자가 산 것과 다름이 없으니 동산은 수달장자의 것이고 숲은 내 것이니 내가 숲을 기증하겠다" 하여 두 사람이 합하여 부처님의 처소 1채, 제자의 처소 120채를 기증하여 '기원정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기수는 기타태자의 숲이고 급고독원은 수달장자의 동산이란 뜻이다.

원불교신문 [1478호] 2009년 06월 12일 만덕산훈련원 이양신교무

 

3. 수도인의 참모습이요 여래행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과 구(俱)러시니' 천이백오십인의 제자와 더불어 계시는 중.

가섭 삼형제의 제자 1천명, 사리불의 제자 2백명, 야사장자 제자 50명으로 1,250명이 구성되었다.

비구란 남자 스님을 뜻하며 마구니를 겁나게 하고 부지런히 일하며 자기 물건을 하나도 갖지 않고 거지마냥 얻어먹고 도를 닦으며 250계를 지킨다.

청정한 생활을 목숨보다 중히 여기며 위로 법을 빌어 도를 닦고 아래로 먹을 것을 빌어 활신하므로 마왕의 무리가 겁내고 무섭게 하므로 마구니를 겁나게 한다고 한다.

'이시(爾時)에 세존(世尊)이 식시(食時)에 착의지발(着衣持鉢)하시고 입사위대성(入舍衛大城)하사 걸식(乞食)하실새.' 미시에 세존께서 사위국의 성에 들어가 걸식을 하실 때.

미시란 오후1시부터 3시까지를 이르며 세존이 사위국의 성으로 들어가 걸식을 하셨다. 걸식은 밖으로 밥을 빌고 안으로 법을 비는 뜻인데 세속에 찌든 상, 명예, 자존심을 다 털어버림을 뜻하고 일체중생에게 마음을 낮추는 굴기하심을 의미한다.

'어기성중(於其城中)에 차제걸이(次第乞已)하시고' 성 안에 들어가서 밥을 차례로 비실 제. 아라한 존자는 부잣집만 밥을 빌고 가섭 존자는 가난한 집에서 밥을 빌러 다니시는데 부처님께서는 빈부를 가리지 아니하고 차례로 일곱 집을 가셨다. 이는 법 앞에 평등함을 밝힌 것이다.

'환지본처(還至本處)하사 반식흘(飯食訖)하시고 수의발(收衣鉢)하시고 세족이(洗足已)하시고 부좌이좌(敷座而坐)러시다' 식사를 마치시고 손발을 씻으시고 법좌를 마련하시다.

부처님께서 보통 사람과 똑같이 손과 발을 씻는다 이름이요, 손이나 발을 씻는 것으로 깨끗함이 아니요, 마침내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하나니 한 생각의 마음이 깨끗하면 곧 모든 허물과 때를 다 제거함이라 여래께서 법을 설하실 때에 항상 단좌(檀座)를 펴서 깔아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는 뜻이다.

 

원불교신문 [1479호] 2009년 06월 19일 만덕산훈련원 이양신교무

 

4. 선현이 일어나서 법을 청하다

'시(時)에 장로(長老) 수보리(須菩提)가 재대중중(在大衆中)하시다가 즉종좌기(卽從座起)하사 편단우견(偏袒右肩)하시고 우슬착지(右膝着地)하시고 합장공경(合掌恭敬)하사. 이백불언(而白佛言)하시되 희유(希有)하오이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如來) 선호념제보살(善護念諸菩薩)하시며 선부촉제보살(善咐囑諸菩薩)하시나이다.'

그 때에 장로 수보리가 공손히 부처님께 여쭙기를 희유하신 부처님께서는 항상 저희들을 두호해주시니, 잘 호념한다는 것은 공부인으로 하여금 반야의 지혜로 자신의 심신을 호념하여 안으로 망령되이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밖으로 육진이 생사고해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마음 가운데에 추호도 삿됨이 없이 자성여래를 호념케 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보살은 수도인의 마음으로 마음 가운데에 미물, 곤충, 식물까지도 공경하며 사랑하며 업신여기거나 거만한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는 것을 이름이다. 예를 들어 꽃나무가 잎이 말라갈 때에 목이 말라 시들어지는구나 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물을 주어 살려내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선남자나 선여인이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한 이는.'

무상대도를 증득해 보고자 하면 어떻게 그 마음을 주해서 외경에 뺏기지 않도록 때때로 일어난 마음을 어떻게 항복 받으리이까? 선한남자(善男子)라는 것은 바르게 정한 마음으로(定) 일체 공덕을 이루어 가는 곳마다 거리낌이 전혀 없는 보살이며, 선한여인(善女人)이라는 것은 바른 지혜의 마음으로(慧) 한량없는 공덕을 남기는 보살이다.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은 마음이 망령됨이 없고 교만이 없고 항상 바르게 정한 바른 지혜로 마음이 항상 텅 비고 고요하여 한 생각 잡된 마음이 없고 깨끗한 마음이다. 곧 부처의 성품을 본 것으로 무상대도 즉 위가 없는 도를 깨달아 보겠다는 마음을 낸 것을 이름이니 큰 공부에 서원을 세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마음을 낸 사람이 응할 때마다 일어나는 마음을 어떻게 주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을 수 있는가를 부처님에게 여쭙는 내용이다.

원불교신문 [1480호] 2009년 06월 26일 만덕산훈련원 이양신교무

 

5. 어떻게 항복 받아 이겨나갈 것인가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은 모든 중생의 망령된 마음이 가볍게 흔들려 머물지 아니하고 움직이는 것이 마치 허공에 날아다니는 수많은 티끌 같아서 망녕된 번뇌 속에 계속하여 일어나니 그 괴로운 마음을 어떻게 주하고 어떻게 항복 받으오리까.

즉 아무리 서원을 굳게 세우고 공부를 하는 공부인일지라도 번뇌망상에 끌리게 되어 방황하게 되면 자칫 공부길을 놓치고 큰 공부에 들지 못하게 된다. 늘 마음이 역경과 순경에 시달리며 정(定)하지 아니하면 이런 저런 경계에 끌려 다니게 되므로 이 흔들리는 마음을 주하는 공부 방법을 묻는 것이다.

또한 공부인이 무상대도를 증득하기 위하여 공부를 할 때에 방해하는 마음 즉 부처님께 마왕파순이가 팔만사천 마구니로 하여금 공격하였듯이 그 수많은 경계를 어떻게 항복받아 이겨 나갈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상대도를 서원한 길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순경 도적' '역경 도적'이 우리의 좋은 마음을 다 도적질 해 가므로 어떠한 경계를 당하더라도 그 도적을 항복받아 성공하도록 그 수많은 티끌처럼 날아다니는 마음을 붙잡아 공부심을 놓지 않도록 할 것인가. 이는 고삐 없는 송아지가 남의 논밭 다 짓밟고 뛰어다니는데 이 송아지는 형상이 있으므로 코를 뚫어 고삐를 매어 말뚝에 매어놓을 수 있지만 형상도 없고 보이지 않는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붙들어 공부를 할 것인가. 이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어려운 일원대도 회상에 성불제중의 큰 서원을 세우고 출가하여 공부하던 중 그 아까운 인재들이 경계를 못 이기고 도중하차하는 것을 볼 때에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대산종사께서는 "죽은 잿더미 속에도 색욕은 남아있다"고 무섭게 말씀하셨다. 또한 "여자는 여자의 지도를 받아야 하고 남자는 남자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다.

수많은 경계 중에 색경계가 제일 무섭다는 말씀이다. 마음이 색계에도 가서 기웃거리다 색욕에 빠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경계를 당하고 재물에도 가서 욕심을 부리다 죄를 짓고 명예에도 가서 기웃거리다가 손해를 보아 전도몽상이 되어 공부심을 놓고 본의 아니게 죄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원불교신문 [1481호] 2009년 07월 03일 만덕산훈련원 이양신교무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