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력있는 사람이 타력도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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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自主力 |
유치원생 프로그램인 ‘혼자서도 잘해요!’를 몇 번 시청한 적이 있는데 핵가족화된 사회에서 과잉보호와 아이들의 의뢰생활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으로써 괜찮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앞으로의 시대는 ‘실력시대’라고 하셨다. 실력은 자력이며, 인간은 자력을 세울 수 있을 때 독립된 존재로서 존중될 수 있기 때문에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시스템도 적절한 시기가 되면 자력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개인의 발전이나 사회의 발전에 역동성이 살아나게 된다.
‘타력생활을 자력생활로 돌리자’는 자력양성에 대한 경구이다. 대산종사는 자력양성의 방향으로 정신의 자주력(自主力), 육신의 자활력(自活力), 부부경제(夫婦經濟)의 자립까지를 포함한 경제의 자립력(自立力)으로 구분하여 분명히 밝혀주셨다.
자력을 양성하여야 남녀차별과 인종차별이 없어져서 자연 인권평등이 될 것이며, 자력은 인격이요, 권리요, 행복이요, 건설이요, 건강이다고 하셨다. 자력이 없는 생활은 누군가에게 귀속되고 의뢰생활을 하게 된다.
과연 우리가 경제의 자립 없이 당당하게 살 수 있을까?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자립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인권평등의 기본조건이 되고 있다.
과연 우리가 육신의 자활력이 없이 건강을 잃고 누군가에 의존해야 할때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가 정신의 자주력을 세우지 못하고 인권이 보장될 수 있을까?
정신의 자주력은 가장 근본이 되는 자력양성이다. 정신의 자주력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자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며, 육신과 물질을 운용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국가나 사회나 이 정신의 자주력을 세우는데 뿌리를 삼고 가지와 줄기를 키워야 할 것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력만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서로의 관계성에 의해 살기 때문에 타력 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로 자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자력을 세우라는 의미는 정산종사께서 <경의편9장>에서 말씀하셨듯이 ‘자력과 타력을 병행하되 자력을 본위로 하자는 것이 그 주지다.’
자력 있는 사람이 타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또한 유념해야 할 것이다.
타력생활을 자력생활로
권도갑교무
왜 많은 사람들이 남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는 자기 스스로 지닌 놀라운 잠재력과 무한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항상 남을 의식하고 남의 평가에 따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언제나 깊은 자기부정과 혐오, 불신의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자신의 존엄한 가치를 부정하고 죄의식과 열등의식에 빠져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을 무가치하게 생각한다. 이때 가장 큰 마음의 고통을 겪는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만족을 얻지 못할 때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어떤 사람은 지식을, 어떤 이는 지위와 업적을, 또 다른 이는 재산과 권력을 얻어서 자기가치를 드러내려 혼신을 다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도 근본해결이 되지 않으므로 여전히 마음은 두렵고 불안하다. 이것이 바로 의존하는 삶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자신의 내면에 깊은 자기불신이 깔려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모든 활동이나 행동에 다른 사람의 좋은 평가를 기대한다. 따라서 자신의 업적에 대해서 홍보하고 선전하는 데에 힘을 쏟는다. 자신의 존재가치가 다른 사람의 관심과 반응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들이 무관심하거나 인정해 주지 않을 때 분노하고 속상해 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민감하며 칭찬과 박수를 받아야만 만족해하고 자신에 대해 비난이나 나쁜 평가를 받으면 괴로워한다. 이러한 사람은 몸은 어른이면서 마음은 아직도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러한 의존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여기서 가장 근본적인 해결은 이미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자성을 세우는 일이다. 자성의 입장에서는 많은 업적을 쌓고, 어려운 이를 돕고,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나의 가치가 높아지지 않는다. 또한 세상에 묻혀서 아무런 공적도 없이 빚만 지고 살아간다 하여도 낮아지지 않는다. 이 사실을 조용히 명상하자. 지금 있는 그대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소중히 할 때 어느덧 내면에서 차오르는 담담한 행복과 기쁨을 느낄 것이다.
금강경에 보면 부처님은 보살이 상(相)에 머무르지 않고 보시행을 하면 그로 인해 얻는 즐거움은 헤아릴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자기가 보시를 했다는 상이 있으면, 이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남의 평가에 의존하는 것이며 자기욕망의 실현일 뿐 진정한 보시가 아니라고 설법하고 계신다.
대종사님은 「분수에 편안한 사람이 제일 편안한 사람이며,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거기에 만족을 얻는 사람이 제일 부귀한 사람」(대종경 요훈품 20)이라고 하셨다. 결국 자력생활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나의 존재를 존중하고, 지금 여기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순수한 자기존재만으로 존귀한 가치를 느끼고 인간의 존엄성을 인식할 때 나는 남의 평가에 자유하고 다른 사람에 의해서 상처받는 일이 없어진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누가 뭐라해도 묵묵히 헤쳐나가는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세상의 여론과 주변의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일을 즐기면서 자신감에 넘쳐 사는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상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