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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해설

[해설]정전강의 - 의두요목

작성자조 오갈|작성시간07.07.27|조회수61 목록 댓글 0

연구의 깊은 경지를 밟으려면 
 




의두요목 

장석준 교무
영산원불교대학교
 

"수도인의 수첩에는
매양 의심거리가
있어야 한다.
'왜 그럴까'하는
탐구심이 있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의두란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이며 과거 불조의 화두 중에서 의심나는 제목을 연구하여 감정을 얻게 하는 것으로 연구의 깊은 경지를 밟는 공부인에게 사리간 명확한 분석을 얻도록 하는 공부이다.

의(疑)란 곧 일과 이치에 있어서 모르는 것을 발견하여 알고자 하는 것으로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니, '왜 그럴까' 하는 탐구심이 없다면 어떠한 깨달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생노병사에 대한 의심을 가졌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으며, 대종사님 역시 우주 자연 현상에 대한 의심이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잣집 곳간에는 재물이 쌓여 있기 마련이고 수도인의 수첩에는 의심거리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의두요목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먼저 물음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여야 한다. 대체로 어려운 한문이나 불교의 설화 또는 역사와 관련이 있거나 궁극적인 진리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에 단어나 문장 자체의 이해가 쉽지 않다.

사전을 찾아보거나 경전을 통하여 그 의미를 우선 정확히 파악하여야 한다. 문장 자체의 뜻을 모르면서 막연히 의심한다면 마치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는 것 같이 어리석은 일일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전 법규 연습을 대강 마친 사람에게 의두 연마를 하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의두요목 6조 '만법이 하나로 돌아갔다 하니, 하나 그것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하여 연마하기 위해서는 먼저 만법의 개념과 돌아간다는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만법이란 삼라만상, 천만 교법, 모든 현상, 모든 사상을 말하는 것이요, 돌아간다는 의미는 그 근원 또는 바탕이 무엇인가 하는 의미이다. 마치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서와 같이 만법의 근원을 의심하여 들어가서 최종적으로 귀결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연마하는 것이다.

물음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였으면 이제는 이 의심건을 놓지 않고 꾸준히 연마하여야 한다. 닭이 알을 품듯 내 마음 속에 그 의심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 의심만 생각하라는 것은 아니니 정신이 맑고 상쾌할 때 잠간 잠간 연마하되 명확한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꾸준히 연마하는 것이다.

의두는 쉽게 알려고 하지말고 이렇게 꾸준히 연마할 때 마침내 깨달음이 오는 것이다. 인간사를 살아가는데 부딪히는 일에 있어서도 의심건이 있을 때는 각종 정보를 통하여 그 문제를 명확히 분석한 후 마음에 품고 연마하다 보면 우연한 기회에 깨달음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고 막연히 그 일만 걱정하고 있다면 노력 없이 성공을 바라는 낮도깨비와 무슨 다름이 있겠는가. 이렇게 하여 깨달음이 있을 때는 반드시 지도인의 감정을 얻어 줄맞는 공부를 하도록 하자.

돈 안되는 의문

최정풍교무

의문이 없거나 그 의문을 풀려고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의문을 보면 대개 돈이 되는 내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의식주를 책임져야 할 어른이 되면서부터는 그 주제는 대개 의식주에 집중됩니다.
휴대폰을 만들며 통화품질에 대한 연구를 하든지, 줄기세포를 연구하든지 그 이면에는 경제적 이익이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의문들 덕분에 우리는 좀더 나은 삶을 살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실용적 고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요즘 돈으로 연결되기 힘든 인문학은 위기라고 합니다. 이런 세태 속에서 과연 ‘마음이 곧 부처라 하였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부모에게 몸을 받기 전 몸은 그 어떠한 몸인가?’와 같은 전혀 돈 안 되는 의문을 갖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부처님께 사업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모르되, 부처가 무엇인지는 알려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내 한 몸의 건강은 걱정하지만 내 본래면목 찾기나 생사해탈 등의 근본적인 의문은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돈이 되지 않는 의문! 쓸 데 없어 보이는 질문! 그 해결을 위해 고민하는 것, 사람됨의 이유이고 특권인데…. 이런 의문, 고민 없이 살면 혹시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순간에 땅을 치며 지나온 일생을 후회 할 수도 있습니다. 뿌리 없는 삶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죠.
정전에는 20가지의 대표적인 의두가 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그 존재 증명을 하기 위해 돌파해야 할 관문들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돈 안 되는 고민을 할 수 있어서…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지혜 단련 공부

성도정교무

 의두(疑頭)는 의심머리라는 말로 이는 우리의 지혜를 단련하기 위한 사리연구 과목의 하나이다.

정기 훈련법에서는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이며 과거 불조의 화두(話頭) 중에서 의심나는 제목을 연구하여 감정을 얻게 하는 공부이니 이는 연구의 깊은 경지를 밟는 공부인에게 사리간 명확한 분석을 얻도록 함이요.’라 하였다.

상시 훈련법에서는 ‘경전법규 연습하기를 대강 마친 사람은 의두 연마하기를 주의할 것이요.’라 하여 우리가 사리연구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의심나는 점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공부법이다.

불교의 참선수행 특히 한국불교에서는 주로 화두 또는 공안(公案)이라는 정해진 의문을 들고 참선하는 간화선(看話禪)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우리의 의두 공부도 이 화두나 공안에서 유래돤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정전 수행편 제5장 의두요목에는 과거 불교의 화두 가운데 20개 항목을 선정하여 우리의 의두 공부의 제목으로 정해놓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의두 공부는 훈련법에 밝힌바와 같이 단지 화두만 들고 연마하는 것이 아니라 대소유무와 시비이해의 일을 포함하는 어떠한 것이라도 분석하고 연구하여 밝은 지혜를 얻어 나가기 때문에 화두는 그 중 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불교의 간화 공부하고는 다른 면이 있다.

따라서 우리의 의두 공부는 실제로 자기 자신의 주변에서 흔히 보고 경험하는 사항 가운데 발견되는 대소유무의 이치나, 우리들의 현실 생활 가운데 흔히 당하는 일 가운데 무엇이 옳고 그르며 참으로 이롭고 해로운 가를 분석하고 연구해하여 시비이해에 대한 해답을 얻고 동지들과 문답하고 지도인의 감정을 얻어서 지혜를 단련해 가는 과정과 화두를 연마하는 과정이 다 포함되어 있다.

의두 공부의 본래 목적이 하나 하나의 화두에 대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서 해답을 구하는 것보다는 연마와 궁구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들 각자의 지혜가 밝아지고 그러한 지혜와 알음알이를 바탕으로 현실생활에서 시비이해를 밝게 분석하고 실천에 적용하기 위함이며 궁극적으로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나가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각각의 의두요목을 분석하고 답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모든 일을 진리에 비춰서 연마하고 탐구하는 자세와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떠한 문제이든 매사를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세밀히 관찰하고 생각하여 각자 자신에게 의문이 걸리는 것이 중요하고 의문된 바를 연마하고 탐구하여 해답을 구하려는 과정을 통해서 완전한 해답을 얻기까지 의문이 계속될 수 있도록 지니고 있다가 정신 기운이 맑을 때에 잠깐 집중하여 연마하는 방법으로 의두 공부를 하는 것이다.

사리간에 명확한 분석을 얻는 공부

원불교대학교 한덕천교무

 뒤돌아보면 공부하면서 가장 힘든 고통은 ‘의문’이 걸리지 않는 것이었다. 공부하는데 여러 가지 경계들이 시험을 하지만 모계포란(母鷄抱卵)과 같은 의두연마가 안되어 고민을 많이 했다.
의두연마는 ‘연구의 깊은 경지를 밟는 공부인에게 사리간에 명확한 분석을 얻도록 함’이라고 하셨는데, 교전을 읽으면 모르는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실지 설명을 하려고 하면 깊은 뜻을 모르겠고, 생활을 돌아보면 교법이 내면화되지 않아 지혜가 밝아지는 것도 없고, 사리간에 너무 어둡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하루는 상산 박장식 종사님을 찾아뵙고 고민의 일단을 고백하게 되었는데, 종사님께서는 “교전을 자세히 공부하는 않는 모양이구나. 정전의 내용 전체가 다 의두다.”고 명쾌한 감정을 해주셨다.
상시응용주의사항4조에 ‘경전 법규 연습하기를 대강 마친 사람은 의두연마 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라고 공부의 순서를 말씀하셨는데 글자만 읽었지 공부순서를 모르고 공부한다고 했던 것이다.

오롯이 골똘히 간절히 연마할
의심머리를 가지고 있는가?

연구의 깊은 경지를 밟기 위해서는 의두연마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관건은 놓을래야 놓을 수 없는 오롯이 골똘히 몰입하여 연마할 의심머리를 가지고 있느냐다.
오롯이 몰입 되지않는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의두연마로는 공부에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고 효과도 없어 자신의 무명을 더 두텁게 하기 쉽다.
그래서 도를 이루겠다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의심이 안 걸리는 것은 크게 경계할 일이다. 깨달음이 없는 교리지식은 문자에 얽매이고 문자의 노예가 되어 스승님의 본의나 진리의 참 소식을 모르기 때문이다.
의두란 “대소 유무의 이치와 시비 이해의 일이며 과거 불조의 화두중에서 의심나는 제목을 연구하여 감정을 얻게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화두를 참선의 한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의두는 사리연구 과목으로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에 명확한 분석력을 기르는 방법이며 더불어 불교의 화두참구까지를 포함한 공부법이다.
우리는 천조의 대소유무 이치와 인간의 시비이해를 떠나 살 수 없기 때문에 명확한 분석력을 얻지 못하면 죄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불교의 화두참구는 화두에 일생을 걸고 참구하는데 비해 대종사께서는 화두에 근본적으로 의심이 걸리지 않는 사람이나 잘못하여 병이 일어날 수 있어 일반적으로 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간파하시고 선과 연구를 병행하여 누구나 공부할 수 있도록 교법을 제정하셨다.

 

스스로 문제를 푸십시오

해마다 개학을 앞두고 엄마와 아이들의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에 학교에서 학원으로 시계추처럼 움직이는 모습이 안쓰러워 실컷 놀게 해주었더니 방학숙제만 고스란히 남았기 때문입니다.

걱정이 태산입니다. 몇 차례 한숨을 내쉬고 답답한 가슴을 두드린 끝에 결국 온 가족이 동원되어 합동작전을 펼칩니다. 밤늦도록 아이 옆에 붙어 앉아서 “이것도 제대로 모르냐?”면서 머리를 쥐어박습니다. 부모는 속이 터지고 아이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많은 아이들이 방학 내내 놀다가 방학 끝 무렵에 숙제에 매달리는 것은 결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아이를 나무라는 엄마아빠도 그런 과거가 있었습니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옛 모습을 아이가 대물림하는 것 같아서 더욱 마음이 상했는지도 모릅니다.

나무람으로 마음을 다잡은 아이는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새 학기를 시작합니다. 새로 구입한 문제집을 펼쳐놓고 한 문제씩 풀어봅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잘 푸는 것 같더니 이내 얼마못가서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이리저리 궁리를 해봐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참을 낑낑대다가 결국 슬며시 뒷장을 넘겨서 곁눈질하듯이 해답을 찾아봅니다.

그래! 이렇게 해서 이런 답이 나오는구나. 해답을 몰라서 답답했던 심경은 해소가 되었지만 비슷한 문제를 확실하게 풀어낼지는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막히는 문제마다 해답을 열어보니 실력은 전혀 늘지 않습니다. 틀렸던 문제 또 틀립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출 수 있을지 전혀 희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살다보면 의문이 생기는 일과 이치가 하나둘이 아닙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며 이롭고 해로운지? 이치에 합당한 분석은 과연 무엇인지?

오래전부터 수행자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연구하던 화두(話頭)에는 무슨 뜻이 담겨있는지?

무조건 손쉽게 해답만 엿보려하지 말고 계속 연마하다보면 마침내 의문이 풀리면서 진리를 체득하게 됩니다.

소태산 대종사님도 20여 년간 생각하시던 모든 의두를 차례로 연마해 보신즉 모두 한 생각에 넘지 아니하여 드디어 스스로 대각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의두요목'을 제시하십니다.

목마를 때 물을 마시고 배고플 때 밥을 먹으며 졸릴 때 잠을 청하듯이 스스로 의두를 챙겨서 연마하십시오.

일과 이치에 대하여 명확한 분석을 얻고 깨달음을 이루게 됩니다. 앉으나 서나 ‘의두’ 생각~

 고원국 교무·원광대 대학교당

 

어미닭이 알을 품듯이

 

정기훈련 11과목의 하나인 의두(疑頭)는 의심할 의(疑)와 머리 두(頭)로서 '의심머리' 또는 '의심의 첫머리', '의심의 실마리'라는 말이다. 의심의 첫머리란 의심의 시초 또는 의심의 근원이란 뜻이다. 의심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것임과 동시에 모든 의심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바로 의두인 것이다.

정기훈련법에서 의두는 '대소유무의 이치나 시비이해의 일이며 과거 불조의 화두(話頭)중에서 의심나는 제목을 연구하여 감정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전에 담겨진 법문, 과거 성현의 말씀 그리고 일상의 생활에서 부딪쳐 오는 사소한 일까지도 의두연마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의두에 직면하여 물러서지 않는다면 그를 통해 진리의 세계에 달음질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의두요목은 의두 연마를 실효 있게 할 수 있도록 선별한 20개의 조항이다. 물론 스무 조항을 다 골고루 연마할 수도 있겠지만, 그 중 한 조항을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연마한다면 그로 인한 깨달음은 나머지 조항에 이르러도 두루 통할 수 있게 된다.

어느 날 소태산 대종사님을 찾아 온 이가 여쭙는다. "저는 항상 진세(塵世)에 있어서 번뇌와 망상으로 잠시도 마음이 바로 잡히지 못하오니 그 마음을 바로 잡기가 원이옵니다." 그 때 대종사께서는 "마음 바로 잡는 방법은 먼저 마음의 근본을 깨치고 그 쓰는 곳에 편벽됨이 없게 하는 것이니 그 까닭을 알고자 하거든 이 의두을 연구해 보라."라고 하시면서 "만법귀일(萬法歸一)하니 일귀하처(一歸何處)오"라는 문구를 써주신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부초처럼 흔들리는 자신 때문에 괴로워한다.

대종사께서는 괴롭고 힘든 삶을 극복하는 근본치유는 바로 마음의 근본을 깨닫는 것이며, 그 깨달음에 의두가 직행티켓임을 알려주신다. '만법이 하나에 돌아갔다 하니 하나 그것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라는 의두요목 한 조항을 내려주심으로써 본질적인 궁구의 세계로 인도하신 것이다.

의두연마를 할 때는 마치 모계포란(母鷄包卵)과 같이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모계포란이란 어미 닭이 알을 품어 병아리로 부화시킨다는 뜻이다. 의두를 마치 어미닭이 알을 품듯이 소중하게 품어 연마하고 연마해야 큰 지혜를 얻고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헛된 욕심도 집착도 내려놓아야 한다. 내려놓고 또 내려놓아야 한다. 모두 다 내려놓아도 내려놓아서는 안되는 것, 그것은 바로 지금 연마하는 의두요목이다.  의두연마, 맑은 정신에 비추고 비추어 밝게 깨닫는 기쁨을 누리는 묘수이다.

[원불교신문1441호] 2008년 09월 05일 (금) 박혜훈교무

 

반야지를 알자는 것

"의두(疑頭)는 대소 유무의 이치와 시비 이해의 일이며 과거 불조의 화두(話頭) 중에서 의심나는 제목을 연구하여 감정을 얻게 하는 것이니, 이는 연구의 깊은 경지를 밟는 공부인에게 사리간 명확한 분석을 얻도록 함이요."

의두 요목은 의심나는 중요한 20가지 제목이다. 의두는 사리연구 훈련 과목이며, 사리연구는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반야지)을 알자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의심의 뭉치가 뭉쳐서 정(定)에 들어 깨침을 얻는 방법이 있고 좌선 후 정신이 맑을 때 잠깐 잠깐 연마하는 방법도 있으며, 묻고 배우는 가운데 깨치는 경우도 있고, 생활하는 가운데 우연히 알아지는 경우 등이 있다.

의심이 걸리지 않고는 생각되는 것이 없고 생각하지 않고는 깨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나 기타 경전을 보는 중에서나 의심난 제목을 기록해 놓고 정신이 맑을 때 잠깐 잠깐 궁굴려 보라. 좌선 후 5분간 의두 연마를 하는 것은 그 때만 문제를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며 항상 의심나는 문제를 잠재의식 속에서라도 잊지 않고 있어야 하는 것이며, 스스로 의심이 해결된 때에는 반드시 스승님의 감정을 받아야 한다.

모든 문제의 핵심에 대하여 의심을 하고 그 근본을 해결하는 것이어야 한다. 의심이 걸리고 그것을 놓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풀리는 것이다.

의두(疑頭)는 의심의 머리, 생각하는 머리라는 말로 일과 이치 간에 의심을 일으켜 그 의심의 해결을 위해 머리를 쓰고 생각을 연마하여 알아내는 연구의 깊은 경지를 밟는 공부인에게 사리 간 명확한 분석을 얻도록 하는 사리연구 공부의 과목이다.

무엇 보다 의심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답을 가르쳐 주지 않는 공덕이 크다고 하는 것이다. 이론으로 그런 것이다 하고 이해만 하면 의심이 걸리지 않는다. 의두 요목 20조목 가운데 관심이 있고 평소에 의문이 들었던 조목을 정하고 좌선 후 정신이 맑을 때 마다 연마하고 궁굴리면 의문이 깊어지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우물을 파는데 장마 때 땅속에 스며들었던 물이 솟아나서 괸 건수(乾水)를 막지 않으면 원천수(源泉水)가 솟아 나오지 않는 것처럼 정신이 맑아 잠시 나타나는 거짓 지혜에 재미를 붙이면 참 지혜는 솟아나지 않는 것이다.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듯이 깨달음이란 필요 충분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문제가 있어야 하고 그 문제가 풀리려면 맑아져서 밝아지고 밝아진 상태에서 보아야 보이는 것처럼 조건이 갖추어져야 풀리는 것이다.

원불교신문 [1489호] 2009년 09월 04일 김원종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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