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끝은 없어도 악한 끝은 있다
김별아의 장편 소설 ‘영영 이별 영 이별’을 읽는 중에 ‘선한 끝은 없어도 악한 끝은 있다’는 글귀를 접했다. 가슴에 남기에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엉뚱하게도 박완서의 소설 ‘도시의 흉년’에는 ‘착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는 구절이, 또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는 ‘악한 끝은 없어도 선한 끝은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면서, 그 의미를 ‘악하게 산 사람에겐 희망이 없지만 착하게 살면 나중에 잘 된다는 말’이라고 풀어놓았다.
인터넷을 더 뒤져 보니 다음의 4 가지가 골고루 나온다.
(1) 선한 끝은 없어도 악한 끝은 있다.
(2)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
(3) 악한 끝은 없어도 선한 끝은 있다.
(4) 악한 끝은 있어도 선한 끝은 없다.
과연 어느 것이 옳을까?
일단 의미로만 본다면, (1)번과 (4)번이 같은 뜻이고, (2)과 (3)번이 또 같은 뜻이겠다.
(1)번과 (4)번은 ‘권선(勸善)’보다 ‘징악(懲惡)’에 초점을 맞춘 것일 텐데, 그렇다면 아무래도 (4)번보다는 (1)번이 의미 전달에서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4)은 잘못된 문장일 가능성이 높다.
(2)번과 (3)번은 ‘징악’보다 ‘권선’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역시 같은 논리에 따라 (3)번이 바르고 (2)번이 그른 문장인 듯싶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해 보자.
문장 상으로는 그렇다 치고, 이제 내용적으로 보자면 당신은 (1)번과 (3)번 중 어느 것이 옳은 것 같은가? 어느 쪽이 인생의 진리를 말하는 것 같은가? 혹은 어느 쪽이 맞기를 바라는가?
내 추측에, (1)번이 맞기를 바라는 분이라면 혹시 지금 몹시도 미운 누군가가 있는 것 아닌가? 그 사람이 언젠가는 제 악행의 결과로 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1)번에 끌린 것 아닐까?
반대로 (3)번이 맞기를 바라는 분은 아마 다른 사람의 행실을 가슴에 담아두기보다는 자신의 선행이 훗날 어떤 식으로든 결실 혹은 보답이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느 쪽이 세상살이의 실제에 가까운 지는 잘 모르겠으나, 끌리는 쪽은 확실히 (1)번이다.
이런 내 마음을 보면서 나 자신도 놀라고 당황하는 중이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못 볼 꼴을 그리 많이 보고, 험한 꼴을 그토록 많이 당했단 말인가?
나는 나 자신의 행실을 가다듬는 일보다도 주변의 인물을 둘러보면서 미워하는 일에 더 열중했었나?
그렇지 않고서야 무슨 억하심정에 악인에게는 뒷끝이 꼭 있기를 그리 바라겠는가?
참으로 부끄럽다.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2012. 1.28.)
(경남대 김원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