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강압적으로 키우면 안 되는 이유
자녀들이 어떤 일에 대해 진정으로 믿고 행하도록 키우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지나친 회유책이나 강압책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외부적 압력을 사용하게 되면 일시적으로 부모 뜻대로 행동하게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자녀들이 그런 외부적 압력이 없을 때에도 자발적으로 행동하도록 하려면 그들의 행동에 대해 내부적 책임을 지게 하여 그들의 자발적인 결정대로 행동하게 해야 한다. 프리드만(1965)의 실험은 자녀 교육에 있어서 우리가 꼭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프리드만은 2학년에서 4학년에 이르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였는데, 그들에게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고 금지하고서 6주일 후에도 과연 그들이 지시를 지키는지를 알아보려 하였다.
그는 만일 어린이들이 금지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 옳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면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것을 가지고 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그들이 매우 좋아하는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 왜 옳지 않은가를 확신시키는 일이었다.
아이들을 지시에 일시적으로 복종시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아이들에게 그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들키면 큰 벌을 받을 것이라고 위협하는 정도로도 충분했다. 그가 지키고 있는 한, 어떤 아이도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프리드만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하였다. 그는 아이들에게 5개의 장난감을 보여 주고서, ‘그렇지만, 이 중에서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 만일 너희들 중에서 누구든지 가지고 놀다가 들키면 큰 벌을 받을 것이다’라고 경고한 후, 그 방을 떠나 옆방으로 가서 일방 거울을 통해 어린이들의 행동을 관찰하였다. 실험에 참여한 22명의 어린이들 중에서 프리드만의 지시를 거역하고 그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논 아이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예측했던 대로 강한 위협은 높은 일시적 복종을 가져왔다. 그러나 프리드만이 진정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강한 위협의 효과가 감시자가 없는 미래의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가의 질문이었다. 그의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하여 그는 6주일 후에 젊은 여자 실험자를 아이들이 있던 학교에 다시 보냈다.
그녀는 아이들을 한 사람씩 차례로 불러내어 5개의 장난감이 있는 방으로 데려가서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아이들이 그림 그리기를 마치면, 그녀는 그림을 채점할 때까지 아이들에게 방안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기다리라고 말하였다. 그 결과, 77%가 6주일 전에 그들에게 금지되었던 그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6주일 전에 그토록 효과적이었던 프리드만의 강한 위협은 6주일 후, 감시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전혀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프리드만의 실험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표본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약간 다른 실험을 계속하였다. 앞서의 실험처럼 아이들은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도록 지시받았는데, 이번에는 강한 위협 없이 단지 ‘이것을 가지고 놀면 안 돼’라는 가벼운 경고만을 남겨둔 채 그는 옆방으로 가서 아이들의 행동을 일방 거울을 통하여 관찰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앞서의 실험과 동일하였다. 프리드만이 옆방에서 관찰하고 있는 동안 22명의 어린이들 가운데 오직 1명만이 금지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두 표본들 간의 진정한 차이는 6주일 후에야 드러났다. 앞서의 실험처럼, 또 다른 실험자에 의해 아이들은 6주일 전에 그들에게 금지되었던 장난감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도록 허락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았다. 5개의 장난감 중에서 로봇 장난감을 분명히 아이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것이 틀림없지만(다른 장난감들은 싸구려 플라스틱 잠수함, 어린이용 야구 장갑, 장난감 총, 그리고 장난감 트랙터였다) 오직 33%의 아이들만이 이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음이 발견되었다.
두 표본들 사이의 이러한 극심한 차이는 어떤 이유에서 생기는 것일까? 첫 번째 표본의 어린이들은 프리드만의 강한 위협에 따라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았지만 그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처벌의 가능성이 있을 때 규율을 위반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따라서 그의 위협이 처음에는 매우 효과적인 복종을 가져왔지만 나중에 감시자가 없을 때는 그의 위협과 지시는 효력을 잃고 무시되었던 것이다.
반면에 두 번째 표본의 아이들이 지시에 복종한 것은 외부적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적인 요소에 의한 것이었다. 프리드만이 비록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말라고 지시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지시를 어기게 되면 어떤 처벌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의 지시는 매우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첫 번째 결과는 강한 위협이 없는 가벼운 지시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로봇 장난감을 만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결과는 아이들이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은 이유를 내부적 책임감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그들은 그들이 원하지 않아서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의 행동을 설명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6주일 후에 프리드만이 더 이상 그들을 감시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지 않다는 내부적 결정에 따라 그 장난감을 무시하게 된 것이다.
프리드만의 연구는 바람직한 자녀 양육을 위하여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자녀에게 거짓말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한 부모를 생각해 보자. ‘거짓말 하면 안 된다. 만일 거짓말하다 들키면 혼쭐을 내 주겠다’는 식의 매우 강하고도 분명한 위협은 부모가 감시하고 있을 때는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접근법은 자녀 스스로 거짓말하는 것이 옳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부모는 새로운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즉, 부모는 왜 거짓말하는 것이 나쁜가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자녀에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 또한 그 이유는 자녀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만들 만큼 충분히 강하면서도 동시에 자녀가 그 이유 때문에 강제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 만큼 강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쉽지 않다. 그런 종류의 이유가 무엇이 될 것인가는 아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그 이유가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가 원하는 바람직한 행동을 취하도록 만들 만큼 강한 영향력을 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녀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책임감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 이유는 커다란 보상이나 체벌 같은 명백한 외부적 압력이 적을수록 효과적이다.
무엇이 자기 자녀에게 가장 적절한 이유가 될 것인가를 찾아내는 일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다를 수 있다. 그 차이는 한 마디로 요약하여 일시적인 복종(short-lived compliance)과 장기적인 개입(long-term commitment)의 차이를 의미할 것이다.
300여 년 전에 사뮤엘 버틀러(Butler)는,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동의한 사람은 여전히 똑같은 의견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출처>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이현우 옮김.(2002). 설득의 심리학. 21세기북스. 155쪽∼160쪽.
Freedman, J. L.(1965). Long-term behavioral effects of cognitive dissonance.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1, 145∼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