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와 고양이와 강아지
우리 집에서 내 별명이 노숙자다. 아내와 딸들이 붙여줬다. 길고 헝클어진 머리, 덥수룩한 수염, 낡고 떨어진 옷이 역전에 나가 앉으면 딱 노숙자란 거다.
그런 나에게도 늘 넘치도록 애정을 표하는 이들이 있으니, 우리 강아지 호두와 고양이 완두다. 호두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변함없이 그래 왔으니 이제는 꽤 익숙하달 수 있는데, 완두의 경우는 최근 들어 갈수록 나를 더 잘 따라 새로운 감격을 준다. 예를 들면 내가 식탁에 앉을 때마다 바로 무릎에 올라와 앉고 곧 어깨 위로 올라가 마치 새처럼 내가 밥 먹는 것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내가 손 씻으러 화장실에 가면 거기까지 졸졸 따라와 등에 업히기도 하고 어깨에 올라타기도 한다. 그럴 땐 솔직히 도를 넘는 애정 공세가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혹시 완두 마음에 상처가 될까봐 그런 티는 겉으로 절대 내지 않고 있다.
그럴 때마다 호두는 또 어쩌느냐 하면, 저는 내 어깨로 뛰어 오를 수는 없으니 그저 옆에서 마냥 부러운 듯 올려보기만 하다가, 완두가 바닥에 내려오면 그때부터 질투심이 폭발하여 완두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 당하는 것은 완두가 아니라 또 호두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개는 고양이의 상대가 못 된다. 일단 달리기 속도가 완두가 더 빠를 뿐만 아니라 몸집이 작고 유연해 장롱 속이나, 침대 밑, 변기 뒤 등의 작은 공간에 숨으면 호두는 그 앞에서 쩔쩔맬 뿐이다. 도약력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완두는 도망가다가 잡히겠다 싶으면 바로 식탁이나 책상 위로 깡총 뛰어 올라가는데 그러면 호두는 바로 닭 쫓던 개, 아니 고양이 쫓던 개 꼴이 되고 만다. 완두는 위에 올라가자마자 바로 여유를 되찾고는 밑에서 저를 쳐다보며 낑낑대는 호두를 앞발로 톡톡 치면서 놀리기까지 한다. 호두는 너무 약이 올라 혼자 제 자리를 뱅뱅 돌 밖에. 꼭 ‘톰과 제리’의 한 장면이다. 에니메이션에서는 고양이 톰이 생쥐 제리에게 골탕 먹지만 우리 집에서는 역할이 바뀌어 강아지 호두가 고양이 완두에게 항상 당한다.
그렇다고 둘이 늘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말썽을 부릴 때는 협동심을 발휘하기도 한다. 책상 위에 올라간 완두가 앞발로 연필을 살살 밀어 떨어뜨리면 밑에 있던 호두는 그것을 받아 물어뜯는 것이다. 완두는 또 그걸 재미있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그럴 때는 마치 둘이 이런 식으로 뜻을 맞추는 것처럼 보인다.
“호두 오빠, 이 연필 던질 테니까 잘 해봐.”
“알았다, 완두야. 던지기만 해. 내가 바로 물어뜯을 테니.”
“간다. 투하!”
“좋았어. 이거 물어뜯기에 딱 좋은 걸. 아그작 아그작”
“와, 우리 오빠, 이빨 정말 좋다. 강력하게도 씹네. 다 부수면 말해. 한 개 더 던질게”
그래서 우리집에는 이 두 녀석 때문에 멀쩡한 연필이 없다.
완두, 호두 사진 몇 장 올린다.
(2015.12. 1.)
(경남대 김원중)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정분시 작성시간 15.12.01 따끈따근 방금 올리셨네요..교수님!!
늘 안녕하시죠?
정겨운 모습 잼있게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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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배서영 작성시간 15.12.09 교수님네도 냥이랑 멍이가 협공으로 일을 치르네요.
저희집도 냥이랑 멍이가 평소에는 앙숙인데
책상위의 물건 떨어뜨려서 망가뜨리는건
협동하더라구요.
참~~~이상하지요. ㅎ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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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다람쥐 작성시간 15.12.24 완두의 뒷발 받침대가 되신 교수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뜨악! 했습니다.
말못하는 이들과의 교감이 참 아름답습니다~~ -
작성자한마음 작성시간 16.01.01 호두와 완두..너무 귀엽네요.. 멋진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