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의론: 존 롤스의 ‘차등 원칙’(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와이즈베리) 213쪽 ∼233쪽)
미국 정치 철학자 존 롤스(1921∼2002)는 그의 ‘정의론(A Theory of Justice)’(1971)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원초적으로 평등한 상황에서 어떤 원칙에 동의할 것인지를 묻는 방법으로 정의를 생각해 보자고 주장한다.
롤스의 추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집단생활을 지배할 원칙을 정하기 위해, 즉 사회 계약을 작성하기 위해, 현재의 모습대로 한 자리에 모였다고 가정하자. 어떤 원칙을 선택할까? 아마도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저마다 각자의 이해관계, 도덕적·종교적 신념, 사회적 지위에 유리한 서로 다른 원칙을 선호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부자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다. 어떤 사람은 권력이 있고 화려한 인맥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어떤 사람은 인종, 민족, 종교 면에서 소수 집단에 속하고, 어떤 사람은 그 반대다. 어쩌면 타협점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타협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에 있는 이들이 더 큰 협상력을 발휘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런 식으로 합의된 사회 계약을 정당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제 한 가지 가상의 사고 실험을 해보자. 원칙을 정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잠시 잊게 된다고 상상해 보자. 즉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일시적으로나마 전혀 알 수 없는 ‘무지의 장막’ 뒤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상상하자. 내가 어떤 계층, 성별, 인종, 민족, 정치적 견해,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건강한지 허약한지, 고등 교육을 받았는지 고등학교를 중퇴했는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문제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내게 무엇이 유리하고 무엇이 불리한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선택하게 된다. 이처럼 협상에서 어느 누구도 우월한 위치에 있지 않다면, 우리가 합의한 원칙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롤스가 생각한 사회 계약의 개념은 이처럼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가상적 합의다. 롤스는 (이성적이며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만약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원칙을 고를지 자문해 보라고 말한다.
우선 공리주의를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추론했다. 우리는 무지의 장막 뒤에서, ‘어쩌면 내가 억압받는 소수에 속할지도 몰라’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군중의 쾌락을 위해 자신이 사자에게 던져지는 기독교인이 되는 위험을 무릅쓸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완전한 자유지상주의 원칙을 선택해, 시장 경제 체제에서 벌어들인 돈을 몽땅 소유할 권리를 인정할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추론한다. “나는 빌 게이츠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노숙자일지도 몰라. 그러니 가난한 데다 도움도 못 받을 상황에 놓일지 모를 제도는 피하는 것이 좋겠어.”
롤스는 이 가상적 계약으로부터 두 가지 정의의 원칙이 드러난다고 믿는다. 첫 번째는 언론 및 종교의 자유 같은 기본 자유가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사회적 공리나 일반적 복지에 대한 고려보다 앞선다. 두 번째 원칙은 사회적·경제적 평등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소득과 부를 똑같이 나누라고 요구하지는 않지만, 불평등한 사회적·경제적 배분은 사회 구성원 가운데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롤스가 옳다고 가정해 보자. 무지의 장막 뒤에서, 즉 원초적 평등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원칙을 선택할지 묻는 방법으로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하자. 과연 어떤 원칙이 나을까?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어떤 원칙을 택하게 될까? 자신이 지독히 가난한 처지에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처음에는 소득과 부의 완전 균등한 배분을 선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윽고 그보다는 나은 방법, 심지어 가장 하층 사람들에게도 더 나은 선택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약간의 불평등을 인정(예를 들어 의사에게는 버스 기사보다 더 높은 보수를 주는 식)하는 대신 빈곤층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등 환경 개선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을 허용한다면, 사회에서 가장 약자에 속하는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경우에만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한다는 롤스의 소위 ‘차등 원칙’을 우리는 받아들일 것이다.
무지의 장막이라는 장치의 밑바탕에는 사고 실험과는 별개의 도덕적 주장이 제시되고 있다. 그 주장의 핵심은 소득과 기회의 분배는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임의적 요소에 기초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롤스는 정의에 대해 대립적인 몇몇 이론의 비교를 통해 그러한 주장을 제시했다. 우선 봉건 귀족 사회부터 시작한다. 오늘날 봉건 귀족 계급이나 카스트 제도가 정의롭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롤스는 이런 제도가 출생이라는 우연을 기준으로 소득, 재산, 기회, 권력을 배분한다는 점에서 불공평하다고 보았다. 귀족으로 태어난 사람은 농노로 태어난 사람이 누릴 수 없는 권리와 권력을 갖지만 타고난 환경은 그가 노력한 결과가 아니다. 따라서 삶의 전망이 이런 임의적 요소에 달려 있다면 정의롭지 않다.
시장 경제 사회는 최소한 어느 정도는 그런 임의성을 교정한다. 재능 있는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법 앞의 평등을 보장한다. 시민들은 기본적 자유를 평등하게 보장받고, 소득과 부는 자유 시장을 통해 분배된다. 이처럼 제도적으로 기회 균등 및 자유 시장을 보장하는 체계는 자유지상주의 정의론에 부합한다. 이 체제는 출생에 따라 계급이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봉건 사회와 카스트 사회보다 개선된 모습을 보인다. 법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노력과 경쟁을 법으로 허용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기회가 매우 균등하지 않게 배분될 수도 있다.
가족의 지원과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확실히 유리하다. 경주에 참가할 기회를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서로 다른 출발선에서 경주를 시작해야 한다면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롤스는 기회 균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자유 시장에서 소득과 부가 공정하게 배분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자유지상주의 체제에서 가장 정의롭지 못한 부분은 “분배되는 몫이 도덕적으로 봤을 때 대단히 임의적인 요소에 부적절하게 영향을 받는 상황이 허용된다는 점”이다.
이 부정의를 바로잡는 한 가지 방법은 사회적·경제적 불리함을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다. 공정한 능력주의 사회는 제도적 기회 균등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조치들로 이를 실현하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공정성을 해치는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도 풍요로운 가정 출신 학생과 똑같은 기반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고르게 제공한다. ‘헤드 스타트(Head Start)’ 프로그램(저소득층 대상 교육 지원 프로그램 - 옮긴이), 아동 영양보건 프로그램, 교육 및 직업 훈련 프로그램 등을 통해, 모든 사람이 계층이나 가정환경에 관계없이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돕는다.
능력주의라는 명분에 부합하게 자유 시장을 통해 소득과 부가 정당하게 배분되려면, 재능을 계발할 기회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져야 한다.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경주를 시작할 수 있을 때에만 승자는 포상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롤스는 능력주의라는 개념이 임의적 요소로 인한 부당한 이점을 어느 정도 상쇄하기는 하지만, 정의롭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을 애써 같은 출발선에 세우더라도, 누가 그 경주의 승자(가장 빠른 주자)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른 주자가 되는 것은 전적으로 내 노력에만 달려 있지 않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이 우연이듯, 빠른 주자가 되는 것 역시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우연이다. 롤스는 이렇게 썼다. 능력주의 시스템이 “사회적 우연의 영향을 완전히 제거한다 해도, 타고난 능력과 재능에 따라 부와 소득의 배분이 결정되는 상황은 여전하다.”
롤스가 옳다면, 교육 기회가 균등한 사회에서 운용되는 자유 시장도 소득과 부를 공정하게 배분하지 못한다. 이유는 이렇다. “타고난 운에 따라 배분되는 몫이 결정된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임의적이다. 소득과 부의 배분이 역사적·사회적 행운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되듯이, 타고난 자질에 따라 결정되어도 좋을 이유는 없다.”
롤스는 능력주의 정의 개념 역시 자유지상주의 개념과 (비록 정도는 약하지만) 같은 이유로 결함이 있다고 결론 내린다. 둘 다 배분되는 몫이 도덕적으로 볼 때 임의적인 요소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상황이 배분되는 몫을 결정하는 데 미친 영향을 고민하다 보면, 결국 타고난 우연이 배분되는 몫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게 된다. 또 타고난 우연의 영향을 고민하다 보면 사회적 상황의 영향을 고민하게 된다. 도덕적 관점에서 보면 둘 다 임의적이다.”
정의에 관한 자유지상주의 개념과 능력주의 개념에서 모두 발견되는 도덕적 임의성이라는 결함을 감안하면, 평등을 보다 강조하지 않는 개념에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고 롤스는 주장한다.
롤스는 획일화된 평등을 능력주의 시장 경제 사회의 유일한 대안으로 보지 않는다. 롤스가 내놓은 대안은 소위 차등 원칙으로, 재능 있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으면서 선천적인 재능과 소질의 불공정한 분배를 바로잡는다. 어떻게? 재능 있는 사람이 그 재능을 개발하고 연마하도록 독려하되, 그 재능으로 시장에서 거둔 대가는 공동체의 몫임을 이해시킨다. 가장 앞선 주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말고 최선을 다해 달리게 하라. 승자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재능이 부족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점을 미리 알려 주면 된다.
차등 원칙은 소득과 부를 똑같이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그 밑바탕에는 평등에 대한 단호하고 고무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롤스는 그의 ‘정의론’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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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 원칙은 사람들의 타고난 재능을 공동 자산으로 여기고, 그 재능을 이용해 얻은 이익은 사실상 공유하자고 주장한다. 천부적 혜택을 입은 사람들은 그들이 누구든,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상황을 개선할 때만 자신들의 행운을 이용해 이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천부적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단지 재능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이득을 얻어서는 안 되며, 그들을 훈련시키고 교육하는 데 들어간 비용을 갚고,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그러한 행운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누구도 뛰어난 능력을 타고날 자격이 있거나 사회에서 보다 유리한 출발선에 설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차이를 없애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를 다룰 다른 방법이 있다. 임의적 요소들의 혜택이 행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쓰이도록 사회의 기본 구조를 조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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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 정의와 관련된 네 가지 이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봉건 제도 혹은 카스트 제도: 출생에 따라 계층이 정해짐.
2. 자유지상주의: 제도적 기회 균등을 인정하는 자유 시장.
3. 능력주의: 공정한 기회 균등을 인정하는 자유 시장.
4. 평등주의: 롤스의 차등 원칙.
롤스는 앞의 세 이론에서는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임의적 요소(출생, 사회적 혹은 경제적 이점,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 등)에 따라 배분되는 몫이 정해진다고 주장한다. 오직 차등 원칙만이 운에 따른 소득과 부의 배분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자료>
엘리트 세습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68778.html)
‘하면 된다’ 능력주의 ‘분노의 정치’ 낳았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112701031230119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