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왜 ‘유색인’인가?
국어 시험으로 시작하자.
<문제> 다음 낱말의 반대말(반의어)은?
(1) 흰색
(2) 컬러(color)
1번 문제는 대부분 별 고민 없이 ‘검은색’이라고 답했을 것이고, 2번 문제는 좀 헷갈려 하다가 몇몇 사람은 ‘흑백’이라고 답했을 수도 있겠다.
흰색과 검은색은 ‘흑백을 가리다’는 말도 있고, 바둑돌도 백돌과 흑돌이요, 피아노 건반도 흰 건반, 검은 건반이니, 그 두 색이 정반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대비되는 것으로는 인정할 수 있겠다.
그에 비해 ‘컬러’는 답이 분명치 않은데, ‘흑백(黑白)’이라고 답한 사람은 아마, 컬러 TV가 나오기 전에 보았던 흑백 TV를 생각하거나, 혹은 요즘의 컴퓨터 프린터가 ’컬러 프린터‘와 ’흑백 프린터‘의 2 종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답변도 틀렸다고 만은 할 수 없겠다.
그렇다면 이런 답은 어떤가?
‘흰색’의 반대말은 ‘컬러’요, ‘컬러’의 반대말은 ‘흰색’이다!
‘컬러’를 직역하여 ‘색깔’이라 하든, 혹은 ‘흑백 TV'의 ’흑백‘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총천연색’이라 하든, 그 어떤 경우라도 ‘흰색’을 그 반대말이라 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지 않나?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흰색은 ‘색깔’ 중의 하나이므로 그런 주장에는 ‘유종(類種) 관계’의 오류도 있다. 마치 ‘코끼리’의 반대말이 ‘동물’이요, ‘동물’의 반대말이 ‘코끼리’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엉뚱한 고집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흰색’의 반대말은 ‘컬러’요, ‘컬러’의 반대말은 ‘흰색’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냐고? 바로 백인들이다.
영영 사전(American Heritage Dictionary)을 보니 ‘컬러(color)'와 ‘컬러드(colored)’의 뜻풀이를 이렇게 해놓았다.
* color: 4. The skin pigmentation of a person not categorized as white.
(컬러: (4 번째 뜻) 백인이 아닌 사람의 피부색)
* colored: A person belonging to a racial group not categorized as white. nonwhite. people of color.
(컬러드: 백인이 아닌 인종에 속하는 사람. 비(非)백인, 유색인종)
백인 어법으로는 우리 피부색이 바로 ‘컬러’란다. 우리나라 사람이 백인을 만났을 때 ‘너희 나라 말로는 내 피부색을 뭐라고 하느냐?’고 물으면, 그는 간단히 ‘컬러(color)'라고 답할 수 있으며 그것이 잘못된 답변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양 사람들도 한때는 - 주로 중국 원나라 때 - 서양 사람들을 색목인(色目人)이라 불렀었으니 ‘자 문화 중심적’이기는 피차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으나, 문제는 근래 미국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WASP(White Anglo Saxon Protestant)들이 세상을 제 맘대로 떡 주무르듯 하다 보니 우리 국민 중에도 알게 모르게 그들의 기준을 따라가는 (못난)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다음을 보라.
- 최근 인종차별 트윗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은 소폭 상승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019년 7월 1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민주당의 초선 연방 하원 의원 4인을 겨냥해 "자기네 고향에 돌아가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 뒤 언론과 민주당으로부터 ‘인종차별주의자’라며 집중 포화를 받고 있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의 ‘텃밭’인 공화당에서는 지지층이 결집하는 모양새다.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미 하원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 발언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찬성 240표 대 반대 187표로 통과시켰다. 결의안엔 "새로운 미국인과 유색인들에 대한 공포와 증오를 합법화하고 고조시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발언을 강력히 비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조선일보, 2019. 7.17.) -
- 문재인 대통령이 6·25를 하루 앞둔 24일 청와대로 참전유공자 및 유족을 초청, 위로연을 겸한 오찬을 함께 했다. 오찬에는 화살머리고지 전투 참전유공자 등 6·25에 참여한 유공자 및 배우자 182명이 초대됐고, 정경두 국방부 장관,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박한기 합참의장, 해리 해리스 주한대사,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등이 함께 했다.
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에 참전해 유색인으로는 유일하게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쟁영웅 16인에 선정됐던 고(故) 김영옥 대령의 조카 다이앤 맥매스 씨는 "삼촌은 헌신적인 분이었다. 굉장히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9. 6.24.) -
- 이수인은 학습 장애아들을 위한 소프트웨어 '킷킷스쿨'을 개발한 스타트업 대표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큰아이를 위해 게임에 기반한 학습 프로그램을 구상한 것이 실리콘밸리 벤처 투자가들을 움직였다. 최근 미국 LA에서 열린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서 우승, 일론 머스크가 내놓은 500만달러도 거머쥐었다. 이수인의 성공은 "유색인이고 이민자이며 영어도 못하는 여성"에 대한 실리콘밸리의 편견을 깨뜨렸다. (조선일보, 2019. 7.27.) -
- <어글리 코리안, 유색인종 차별하나... 백인엔 굽신, 유색인은 무시>
나이지리아 출신 우케부(33)씨와 임신 7 개월 째인 필리핀인 로웨나(여․29)씨 부부. 며칠 전 지하철을 탔을 때 몇몇 한국 청년들 옆에 서게 됐다. 이들은 우케부 부부를 향해 “도대체 저 뱃속에서 아이가 무슨 색으로 나오냐?”고 물으며 낄낄댔다. 우케부씨는 아내에게 “신경쓸 것 없다”고 말했지만 지하철에 내린 그들은 길바닥에 앉아 같이 울고 말았다.
......
성남외국인 노동자의 집 김해성 목사는 “한국인들은 백인들을 보면 ‘차 한잔 하겠습니까?’ 하면서 영어 한마디라도 더 배우려고 하고 유색인종들에게는 대뜸 ‘얼마나 버느냐?’고 물으며 만만하게 보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2003.10.30.) -
위 기사 중 첫 번째는 미국인들이 ‘백인이 아닌 사람들’을, 그 뒤의 두 개는 우리나라 기자가 한국인을, 마지막은 우리나라 사람이 흑인을 ‘유색인’이라 표현하고 있다.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우기로 세계 인종에는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이 있는데 우리는 황인종에 속하며, 또 미술 시간에 사람을 그릴 때는 너나할 것 없이 ‘살색’으로 칠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우리 피부 색깔을 ‘황색’, 혹은 ‘살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살색’이라는 용어는 인종 차별의 요소가 있으니 사용하지 말 것을 권유하고, 산업지원부 기술표준원에서도 문구류 등의 한국산업규격(KS)에서 ‘살색’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이후로는 ‘이제 우리 피부색깔을 표현할 때 쓸 수 있는 말은 ‘황인종’의 ‘황색’만 남았군!‘ 하고 생각했다.
한데 신문에서 우리나라 기자들이 우리 얼굴색을 ‘황색’도 아니고 ‘유색’이라 하니 놀랍고도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어째 우리가 ‘유색’이란 말인가? 누가 그리 분류했나? 신문에서도 버젓이 그렇게 쓰는 걸 보면 이미 틀린 것도, 전혀 생소한 것도 아닌 모양인데, 우리가 언제부터 자신을 ‘유색인’으로 여기게 되었지? 혹시 외국물 먹은 유식한 분들과 세상 물정에 밝다고 자부하는 기자가 ‘유색인(colored)'이라는 말이 우리 종족을 표현하는 더 수준 높고 세련된 표현이라고 오해한 건 아닐까? 그런 자 중에 미국에 가는 걸 ‘들어간다.’ 하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걸 ‘나온다.’ 하는 둥, 안과 밖, 제 집과 남의 집도 구별 못하는 멍청이도 드물지 않으니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다.
적어도 나는 자신을 유색인(colored, people of color)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나와 내 자식의 피부색이 ‘살색’은 아닐지언정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컬러’라는, 색표준분류(color standard)에도 없는 이상한 색깔이라는 것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
끝으로 위 기사를 쓰신 기자님들에게 하나만 묻자.
여러분이 보기에는 정말 우리들의 피부색이 ‘유색’인가? - 백인들의 피부색은 ‘무색’이고? - 백인들이 우리를 '유색인'이라 하는 것도 유쾌한 일이 아니거늘, 우리 스스로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것은 무슨 의도인가? 당신들은 눈과 뇌도 벌써 ‘made in USA’로 바꿔 넣었나?
제발 정신 차리고 이 학생에게 배워라. 영국 버밍엄에 있는 ‘에드워드 6세 왕 학교(King Edward VI School)’의 어느 학생이 쓴 시란다.
제목: Coloured
When I was born, I was black.
나는 태어날 때 피부가 검은색이었죠.
When I grew up, I was black.
자라서도 검은색이었고요.
When I get hot, I am black.
더울 때도 검은색
When I get cold, I am black.
추울 때도 검은색
When I am sick, I am black.
아플 때도 검은색이죠.
When I die, I am black.
죽을 때도 검은색이겠죠.
When you were born, You were pink.
당신은 태어날 때 피부가 핑크색이었죠.
When you grew up, You were white.
자라서 흰색이 되었고요.
When you get hot, You go red.
더울 때는 붉은색
When you get cold, You go blue.
추울 때는 파란색
When you are sick, You go purple.
아플 때는 보라색으로 변하죠.
When you die, You go green.
죽을 때는 초록색으로 변하겠죠.
AND YET YOU HAVE THE CHEEK TO CALL ME COLOURED!!!
그런데 당신은 뻔뻔스럽게도 나를 유색인이라고 부른답니다.
두 가지 제안하는 걸로 마치겠다.
(1) 혹시 영문을 번역하는 중에 colored 혹은 people of color라는 단어가 나오면 ‘유색인’이라 하지 말고 ‘비(非)백인’이라 하라! 그게 더 정확한 번역이다.
(2)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흑인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유색인이란 말을 쓰지 마라. 흰둥이(white)들의 기준으로는 노랑둥이(yellow 혹은 brown)든 검둥이(black)든 똑같은 유색인(colored, people of color)일 뿐인데, 노랑둥이가 검둥이 보고 유색인이라 하면 흰둥이들이 얼마나 웃겠나? 유색인이란 말 대신 아프리카인, 동남아인 등과 같이 출신 지역으로 호칭하는 게 더 적절하다.
유색인이란 말은 본래부터 있었던 우리말이 아니라 colored라는 영어 단어를 번역하기 위해 새로 만든 신조어다. 낱말 자체가 ‘백인 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한 것인 만큼 타 인종이 사용하기에는 마땅치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